민트문 (사계절 1318문고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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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탁경은
책정보 및 내용요약
모든 청소년에게 보내는 섬세한 위로
삶은 때로 우리를 ‘혼자’가 되게 한다. 사계절1318문고 133번째 책 『민트문』은 바로 그런 순간에 놓인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다섯 편의 짧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어제와 다름없는 교실에서, 내 편이라 믿은 친구와 함께일 때, 가족들과 함께인 집, 익숙한 내 방 안에서도 문득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외로움에 맞닥뜨린다. 그러나 지켜 줄 사람도, 돌아갈 곳도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민트문』 속 청소년들은 거기서 멈춰 서기보다는 한 걸음 내딛기를 택한다. 그 한 걸음으로 이제껏 막다른 골목 같던 삶은, 길을 걷다 보면 몇 번쯤 지나치게 될 어둠으로 여겨진다.
『싸이퍼』로 제14회 사계절문학상을 받은 탁경은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 『민트문』은 저마다 다른 무게와 빛깔을 지닌 청소년의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청소년의 현실과 내밀한 심리를 차분히 응시해 온 탁경은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홀로 두지 않는 달빛처럼, 이번에도 청소년들의 가장 가까이에 있다.
목차
이번 생은 망했어
민트문
모기
동욱
작가의 말
편집자 추천글
상처를 받더라도 놓아 버릴 수 없는 마음
늘 완벽했던 유나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갑작스레 생리가 시작된 것? 하필 생리대 파우치를 가져오지 않은 것? 문제집 사이에 ‘완벽한 척, 깔끔한 척, 밥맛없어’라며 자신을 비난하는 쪽지가 들어 있었던 것? 단편 「지금은 생리 중」은 유나가 문제의 쪽지를 누가 보냈는지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유력한 용의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친한 친구들. 무엇도 믿을 수 없어진 유나는 심한 생리통 때문에 급기야 백화점에서 쓰러지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고단한 며칠을 보낸 뒤 친구들과 함께한 파자마 파티에서, 유나는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는다.
「지금은 생리 중」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생리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대가도 바라지 않는, 일명 ‘생리 의리’를 소재로 삼는다. 최근 사회적 인식이 변화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놓고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는 ‘생리’를 둘러싸고 여성 청소년들의 사생활과 달라진 생각들을 경쾌하게 담아냈다. 거기에 ‘우정과 인생’에 대해 나름의 견고한 기준을 세워 둔 유나의 첫 번째 시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우정’이 ‘미움’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유나를 상처 입혔고, 한 번도 원한 적 없던 ‘생리’는 아마 오랫동안 유나를 괴롭게 할 것이다. 하지만 우정도 생리도, 친구들과 유나를, 이름 모를 타인과 유나를 묶어 주는 연결고리임에 틀림없다. 유나는 완벽한 세계를 잃은 대신, 삶에는 상처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믿어 볼 만한 것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깊은 외로움과 간절한 소망 사이에 선 청소년들
「이번 생은 망했어」의 주인공 영욱은 공부도 운동도 하물며 게임조차 못 한다.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재미도 없고 닮고 싶은 어른도 없다. 이번 생은 글렀는데 살아서 뭐 하냐고 자조한다. 그러나 ‘그 많은 실패에 하나의 실패를 살포시 얹는다고 더 쪽팔리거나 슬플 것도 없다.’(49쪽)면서도, 어떤 일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욕망이 꿈틀댄다. ‘나도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51쪽)
표제작 「민트문」의 주인공 민정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현실보다 자신이 창작한 팬픽 세계에 몰두한다. 좋아하는 뮤지션과 함께 그 세계의 오롯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믿음도 견고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뮤지션이 세상을 떠나자, 민정은 절망에 빠진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오빠가 없다. 오빠가 없으니 팬픽도 없다. 그러므로 나도 없다.’(93쪽)고.
『민트문』에 수록된 다섯 단편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모두가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는 청소년들이다. 그들의 외로움에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한 가지쯤 잘하는 일이 있기를,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 있기를, 고단한 날들을 지탱해 줄 단 하나의 희망이 생기기를…. 언뜻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 소망들은 어른들이 정한 틀로 일방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협소한 일상에서 청소년들이 찾아낸 ‘내가 존재할 이유, 살아갈 동력’이다. 그렇게 찾은 소망이기 때문에 그들은 외로움에 쉽게 지지 않는다. ‘키는 더 클 거고, 잘하는 걸 하나라도 찾을 거야. 그리고 부모님은 너를 사랑한다.’(66쪽) 영욱이 처음 받은 어른의 격려에 좀 더 살아 볼 마음을 먹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 덕분에 버텨내고 삶을 살아 낸 순간이 오빠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95쪽) 민정이 자신이 받은 사랑과 위로가 그에게도 닿았으리라고 믿는 것처럼.
자주 울고 웃으며 오늘을 살아 내기를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를 찾는 것조차 버겁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는 동욱에게는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먼저다.(「동욱」) 남보다 늦은 변성기, 곱상한 얼굴과 왜소한 몸집을 가진 동욱에게 아이들은 단박에 거부감을 느꼈고, 학교에서는 금세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동욱을 학대했다. 동욱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를 닮은 자기 입술에 립스틱을 칠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남자다움을 가르쳐 주겠다며 칼을 휘둘렀고, 결국 동욱은 집에서 도망쳤다. 그러다 하지도 않은 도둑질로 소년교도소에 수감된다. 유일한 친구조차 그를 위해 증언하지 않았다. 동욱은 누구도 소리 쳐 원망하지 않고, 크게 울지도 않은 채 지쳐 간다.
“오고 싶을 때 와. 언제든 환영이니까.”
소년교도소 동기였던 친구가 건넨 말에, 가만히 그의 품에 안긴 동욱을 보면서 독자들은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분노도 희망도 희미해 보이던 삶에서 동욱이 간절하게 바란 것은 어쩌면 ‘돌아갈 곳’이 아닐까. 탁경은 작가는 동욱의 지난한 삶을 미화하지 않고,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동욱이 자신의 삶을 회피하지 않듯, 작가는 그 삶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동욱의 외로움과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디디는 삶의 걸음걸음에 더욱 묵직한 감동을 느낀다.
지금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시간은 생각보다 힘이 세고, 많은 일을 해결해 준다고. 도망만 치는 인생보다는 기쁨과 슬픔을 빼곡히 느끼는 인생이 훨씬 멋지다고.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말에 담긴 진심은 『민트문』 속 모든 청소년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사회와 기성세대가 미숙한 존재로 치부하기 일쑤지만 청소년들은 누구도 대신 살아 주지 않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진 채, 각자의 희망을 찾으며 살고 있다. 『민트문』은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청소년을 응원하는 동시에,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청소년의 삶과 그들의 소망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