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소독스 : 밖으로 나온 아이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 585
• 지은이 : 데버라 펠드먼(Devorah Feldman)
• 옮긴이 : 홍지영
• 가격 : 16,800원
• 책꼴/쪽수 :
141×222mm, 344쪽
• 펴낸날 : 2021-07-23
• ISBN : 979-11-6094-745-8
• 십진분류 : 문학 > 영미문학 (840)
• 도서상태 : 정상
저자소개
지은이 : 데버라 펠드먼(Devorah Feldman)
1986년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하시딕(유대교 초정통파) 공동체 사트마에서 태어났다. 얼마 후 어머니가 공동체를 떠났고, 정신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조부모에게서 자랐다. 사트마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데버라는 신앙심이 깊었고, 유대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말했으며, 독서를 금지당했다. 미국의 보통교육을 거부하는 종교 공동체에서 데버라는 책을 침대 밑에 숨겨놓고 몰래 읽으며 신앙이 아닌 이성을 열망하게 되었다.
열일곱 살에 중매결혼을 하고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았다. 이후 2009년 여성에게 출산만을 강요하는 사트마에서 탈출했다. 2012년 남편과 이혼하며, 소송을 거쳐 양육권을 지켜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데버라가 사트마 공동체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자 그곳에서 탈출한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0년 3월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로 극화되어 에미상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열일곱 살에 중매결혼을 하고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았다. 이후 2009년 여성에게 출산만을 강요하는 사트마에서 탈출했다. 2012년 남편과 이혼하며, 소송을 거쳐 양육권을 지켜냈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데버라가 사트마 공동체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자 그곳에서 탈출한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2020년 3월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로 극화되어 에미상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옮긴이 : 홍지영
IT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 영국에 체류하며 출판 번역자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대전환』 『기원 전후 천년사』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나는 이미 타락했다. 그래서 매달릴 과거가 없다.”
오래된 차별의 역사를 거부한 여성의 삶
역경을 거스르며 자신을 찾아가는 매혹적 오디세이
전 세계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뉴욕. 그곳에 홀로코스트로 절멸 위기에 처했던 유대인의 인구 회복에 몰두하는 유대인 초정통파 공동체 사트마가 모여 있다. 사트마의 모든 여성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조혼과 출산만을 강요당한다. 어느 날 뉴욕 윌리엄스버그에 갇혀 있던 한 여자아이가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이 책은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통체를 탈출한 여성의 회고록이다. 이 이야기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족과 종교, 공동체 등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속박에서 탈출하며 찾은 것은 바로 ‘자기진실성authenticity’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을 ‘과거의 나’를 살해하고 ‘현재의 나’를 만난 과정으로 묘사한다. 고통과 굴욕의 껍데기를 벗고 자신의 땅에 스스로 뿌리내리는 투쟁은 지은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모든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으며,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남들이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할 때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이미 당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오래된 차별의 역사를 거부한 여성의 삶
역경을 거스르며 자신을 찾아가는 매혹적 오디세이
전 세계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뉴욕. 그곳에 홀로코스트로 절멸 위기에 처했던 유대인의 인구 회복에 몰두하는 유대인 초정통파 공동체 사트마가 모여 있다. 사트마의 모든 여성은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조혼과 출산만을 강요당한다. 어느 날 뉴욕 윌리엄스버그에 갇혀 있던 한 여자아이가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이 책은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통체를 탈출한 여성의 회고록이다. 이 이야기는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거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족과 종교, 공동체 등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속박에서 탈출하며 찾은 것은 바로 ‘자기진실성authenticity’이다. 지은이는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을 ‘과거의 나’를 살해하고 ‘현재의 나’를 만난 과정으로 묘사한다. 고통과 굴욕의 껍데기를 벗고 자신의 땅에 스스로 뿌리내리는 투쟁은 지은이의 이야기인 동시에 모든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으며,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남들이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할 때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이미 당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목차
책을 읽기 전에 005
프롤로그 008
1장 나의 숨겨진 힘을 찾아서 015
2장 순수했던 시절 이야기 057
3장 깨어나다 087
4장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115
5장 목표를 품다 161
6장 투쟁할 가치가 없는 일 187
7장 야망에는 대가가 따른다 217
8장 정의라 불리는 불의 249
9장 반기를 들다 283
에필로그 323
후기 327
감사의 말 331
옮긴이의 말 334
독서 모임 가이드 337
프롤로그 008
1장 나의 숨겨진 힘을 찾아서 015
2장 순수했던 시절 이야기 057
3장 깨어나다 087
4장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115
5장 목표를 품다 161
6장 투쟁할 가치가 없는 일 187
7장 야망에는 대가가 따른다 217
8장 정의라 불리는 불의 249
9장 반기를 들다 283
에필로그 323
후기 327
감사의 말 331
옮긴이의 말 334
독서 모임 가이드 337
편집자 추천글
[추천의 말]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 뉴욕 전역의 소녀들은 이 책을 매트리스 밑에 숨겨놓고 읽으며 자신의 탈출구를 찾고 있을 것이다.”
_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
“한 여성의 해방뿐 아니라, 극단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어떤 의미인지 들려주는 다층적 보고서이다.”
_『슈피겔Der Spiegel』
“무덤덤한 글 속에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_『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라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펼치는 순간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다.”
_조앤 리버스Joan Rivers, 스탠드업 코미디언
“엄격한 유대 공동체에서 자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빛나는 재능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 감각적인 성장기는 안지아 예지에르스카의 『브레드 기버스Bread Givers』와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A Tree Grows in Brooklyn』의 계보를 잇는다.”
_『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Pittsburgh Post-Gazette』
눈을 뗄 수 없는 용감한 사연. 참혹한 경험을 딛고 끝내 승리하다.”
_지넷 월스Jeannette Walls,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더 글라스 캐슬The Glass Castle』의 저자
[출판사 서평]
윌리엄스버그의 유대인 소녀, 데버라 펠드먼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는 데버라 펠드먼이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자 그곳에서 탈출한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데버라는 출애굽 시기의 종교 교리를 현대 뉴욕에서 답습하고 있는 공동체의 생활과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졌던 무거운 운명을 담담하게 읊는다. 어린 주인공을 방치하는 가족과 맹목적 신앙에 빠진 공동체,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요하는 문화 등은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동시에 매우 익숙하게 들린다. 바로 지금 수많은 여성이 살고 있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출간 당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초정통파 유대 사회는 “자신들의 성스러운 삶을 밖으로 드러낸 데버라 펠드먼은 나치의 괴벨스나 다름없다”라고 비난하며 이 책이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는 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을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나였을 뿐이다”라는 지은이의 말에 반응하였고, 이후 수많은 유대인이 데버라가 간 길을 따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책은 전 세계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20년 3월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로 극화되었다.
기괴하지만 낯설지 않은 삶
현대의 사람들은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데버라가 속한 초정통파 유대인ultra-orthodox Jews은 이스라엘 바깥에 존재하며, 오히려 이스라엘과 시온주의를 경멸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책의 주요 배경인 하시딕 사트마 종파이다. 이들은 유대인 대학살을 동화주의와 시온주의에 대한 벌이라고 믿으며 이스라엘 국가 창설에 반대하고, 나치의 박해로 인해 줄어든 유대인 인구를 회복한다는 사명을 갖고 히틀러에 대한 궁극의 복수를 위해 인구 성장에 몰두하고 있다. 사트마 여성의 삶에 어떤 고난이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뉴욕 윌리엄스버그 지역에 모여 사는 사트마는 아이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는 대신 자신들이 세운 종교 학교에 보낸다. 남자아이는 예시바라 불리는 종교 학교에서 결혼 전까지 탈무드와 율법을 공부하고 여자아이는 사트마 탈무드 아카데미에 모여 11년간 생활한 뒤 곧바로 중매결혼을 한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탈무드 속 유대인의 모습으로 사는 법만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언어는 이디시어이다. 영어도,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기술도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동체의 규율을 따르며 그것이 제공하는 재화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데버라 펠드먼은 그럴 수 없었다.
데버라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공동체에서 추방당했고(그 이유는 책의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정신장애가 있는 아빠는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데버라는 처음에는 큰어머니에게, 나중에는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멋대로 결정하는 족쇄였다. 자신에게 쏟아진 냉소와 날카로운 말들, 엄마 없는 아이라는 편견을 피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율법에 따라 제사용 공중목욕탕 미크바에서 성인식을 치른 날 성추행을 당했어도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다. 사실은 성에 관해 배운 바가 없었기에 그것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도 없었다. 공동체는 여성의 ‘정결’만을 강조하며 매월 생리가 끝났다는 사실을 남성 랍비에게 검사받도록 강요했을 뿐이다.
열일곱 살에 가족이 맺어준 남자와 결혼한 데버라는 관습에 따라 결혼식 다음 날에 삭발을 하면서도 결혼을 자유를 찾을 기회라 여겼다. 그러나 결혼은 남편의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족쇄가 채워지는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족쇄는 출산이라는 굴레를 강요했다.
문학이라는 탈출구
데버라에게 바깥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문학뿐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할아버지의 감시를 피해 도서관에 가고, 친척들의 아이를 돌봐준 대가로 받은 돈을 모아 몰래 서점에 가서 로알드 달의 『마틸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등을 읽었다.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놓은 책이 늘어날수록 데버라의 세계도 점점 더 넓어졌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문학 작품에서는 어느 순간 무엇인가가 나처럼 이상하고 불운한 아이들에게 나타나서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환상의 세계로 데려갔다. … 나는 어느 날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이나 옷장 뒤 나니아를 발견하게 되기를 남몰래 기다렸다. 다른 가능성은 고려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때로 독서는 데버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윌리엄스버그 사트마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읽으며 브루클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프랜시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프랜시가 이곳을 탈출한다면 자신도 “이 초라하고 지저분한 세계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펄 에이브러햄의 『로맨스 리더』는 자신보다 앞서서 유대 공동체를 탈출한 여성이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여성의 독서가 금지되어 있던 『탈무드』를 읽은 날에는 신이 유대 민족에게 내린 은총이 사실은 여성을 남성에게 복종시키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 나는 탈무드에서 다윗왕의 잘못을 확인했다. 나는 다윗이 수많은 아내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도 거느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첩을 두는 것에 비하면 내가 숨겨둔 영어 책 몇 권 정도는 새 발의 피가 아닌가. 바로 이 생각을 한 순간, 내 안에서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이때부터 나는 고분고분한 아이인 척하기가 힘들어졌다.”
밖으로 나온 아이
만약 데버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다른 정통파 유대인처럼 삶의 모든 문제를 신앙 뒤로 미루어놓고 선택과 결정을 신의 뜻에 맡겼다면 그녀는 역경과 고난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버라 펠드먼은 그럴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질문뿐이었던 그녀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자유를 바랐다. 아이의 출산은 그 바람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아니라면 누가 하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는가?’ 마침내 데버라는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윌리엄스버그를 떠나 에어몬트로 간 것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새라로렌스대학에 지원한 것도, 그리고 남편과 이혼하고 소송을 거쳐 아이의 양육권을 지켜낸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미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고, 그로 인한 결과까지 온전히 책임지는 삶.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이다. 현대의 초정통파 종교 공동체에서 태어난 데버라는 격렬한 투쟁을 거쳐 자신의 삶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서 이 과정을 거쳐 발견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기진실성authenticity’이었다고 밝힌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가족의 무관심, 남편의 냉대, 공동체의 억압에도 ‘나’를 잃지 않고 마침내 더 이상 하시딕 유대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독자들은 데버라 펠드먼이 곧 우리였으며 이 선언의 다음 주인공 또한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아빠가 나를 집에 내려주고 가면 나는 한동안, 어떨 때는 몇 주나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아빠가 나를 불러서 주변에 소개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체했다.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동정의 눈길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자네 딸인가?” 그들은 손가락으로 내 볼을 꼬집거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정말 이 남자의 자식이라는 표식을 찾으려는 듯이 내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 불쌍한 것. 태어난 게 어디 걔 잘못이겠나? 얼굴에 확실히 모자란 티가 나더군.” _19~20쪽
큰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나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갔다. … 나는 이 치료의 이유를 이해했다. 나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일 테지. 언젠가 에스터 할머니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날이 올 것이다. 큰어머니가 정신병은 우리 엄마 집안의 내력이라고 암시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 정신도 멀쩡할 리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만약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된다면 내 부모님은 왜 치료받지 못한 것일까? 만약 치료를 받았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면
내가 받는 치료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_32쪽
내가 읽은 책에는 가장 절망적 순간에 뜻밖의 희망을 발견하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나도 언젠가 숨어 있던 초능력을 발견하게 될까? 그 힘이 내 안에 잠자고 있을까? ‘나도 마틸다처럼 허니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동화책은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 어른들을 위한 책을 읽어본 적 없던 나는 이 공식을 굳게 믿었다. 동화 속 세상은 아이가 오직 공정한 세상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나는 동화처럼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벗겨진 유리 구두를 집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나는 절망이라는 심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_34~35쪽
사트마 렙베는 반시온주의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바요엘 모세Vayoel Moshe』라는 책에서 시온주의의 극악한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렙베의 책에 따르면 시온주의자들은 사악한 목표를 이루려는 시도를 거듭했으나 오직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후에야 실제로 권력을 쟁취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을 이용했으며, 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도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분개를 감추지 않았다. … 학교에서는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을 구타하고 학대해서 신앙을 포기하고 시온주의에 영원히 헌신하도록 만든다고 가르쳤다.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는 다른 부류였다. 나는 진짜 유대인은 하시딕뿐이라고 생각했다. _80~81쪽
할아버지는 영어는 영혼에 스며드는 독약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어를 읽고 말할 때마다 영혼이 더럽혀져서 더 이상 신성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신이 허락하신 우리 조상의 언어인 이디시어로만 말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하지만 이디시어는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그 밖의 다양한 지역어가 섞인 언어의 잡탕이다. 이 중 대부분은 한때 영어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언어였다. 그런 이디시어가 어떻게 갑자기 순수하고 지당한 언어가 되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머릿속 생각조차 이디시어로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요사한 뱀과 같다고 묘사한 책들이 나의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미 타락했다. _123~124쪽
결혼이 이렇게 복잡한 일인 줄은 몰랐다. 나의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최고의 살림꾼, 최고의 요리사, 최고의 아내가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혼 수업 선생님은 월경이 끝난 후 일주일간 하루 두 번씩 천으로 아래를 닦아 피의 흔적이 없는지 검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7일 연속 ‘하얀 날’이 계속된 후에는 미크바에 가서 정결 의식을 치러야 했다. 나는 결혼한 내 사촌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_190쪽
하시딕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에게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끔찍한 범죄자에게도 이토록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측은지심이라니, 얼마나 관대한가? 바로 이 무차별적인 사랑, 정당하지 않은 사랑이 하시딕 유대인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처벌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그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힘쓸 뿐이다. ‘네 이웃에게 대접받고자 한다면 너희도 그를 대접해주어라. 상대방이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거든 나머지는 신에게 맡겨라.’ _263쪽
내가 점점 더 무신론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신을 착실하게 믿었고 좀 커서는 신을 믿으면서 증오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시딕 유대인이 아니어도 다들 잘만 살고, 누구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다. _288쪽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낡아 허물어지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 이상 돈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건물을 관리할 기력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브라운스톤이 이렇게 방치된 모습을 보니 슬펐다. 내 신앙이 완전한 붕괴에 직면한 이때 내가 자란 집이 와해되어가는 모습을 마주하다니, 우연 같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또 다른 계시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내가 나보다 더 큰 힘에 이끌려 가고 있다는 계시였다. 신은 내가 떠나기를 원한다. 신은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음을 안다. _308쪽
수치심이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놀랍게도 그 밑바닥에는 자부심이 존재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스카프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채 마침내 윌리엄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나는 이제 이곳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곳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옛 동네를 거닐었다. 마침내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불현듯 나의 과거가 다채롭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때 견딜 수 없이 지루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풍요롭고 신비한 역사로 탈바꿈했다. 나는 자라면서 늘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을 동경했다. 이제는 평범하게 자란 미국 소녀들이 자신을 남다르게 만들어줄 경험을 찾아 헤매면서 좌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 로알드 달조차도 나와 같은 여정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과거와 결별하지는 않았다. 나를 있게 한 시간과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내가 살아낸 삶이니까. _321쪽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 뉴욕 전역의 소녀들은 이 책을 매트리스 밑에 숨겨놓고 읽으며 자신의 탈출구를 찾고 있을 것이다.”
_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
“한 여성의 해방뿐 아니라, 극단주의로부터의 해방이 어떤 의미인지 들려주는 다층적 보고서이다.”
_『슈피겔Der Spiegel』
“무덤덤한 글 속에 세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 담겨 있다.”
_『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라면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책을 펼치는 순간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다.”
_조앤 리버스Joan Rivers, 스탠드업 코미디언
“엄격한 유대 공동체에서 자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빛나는 재능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 감각적인 성장기는 안지아 예지에르스카의 『브레드 기버스Bread Givers』와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A Tree Grows in Brooklyn』의 계보를 잇는다.”
_『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Pittsburgh Post-Gazette』
눈을 뗄 수 없는 용감한 사연. 참혹한 경험을 딛고 끝내 승리하다.”
_지넷 월스Jeannette Walls,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더 글라스 캐슬The Glass Castle』의 저자
[출판사 서평]
윌리엄스버그의 유대인 소녀, 데버라 펠드먼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는 데버라 펠드먼이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이자 그곳에서 탈출한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데버라는 출애굽 시기의 종교 교리를 현대 뉴욕에서 답습하고 있는 공동체의 생활과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졌던 무거운 운명을 담담하게 읊는다. 어린 주인공을 방치하는 가족과 맹목적 신앙에 빠진 공동체, 여성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결혼과 출산만을 강요하는 문화 등은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동시에 매우 익숙하게 들린다. 바로 지금 수많은 여성이 살고 있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은 출간 당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초정통파 유대 사회는 “자신들의 성스러운 삶을 밖으로 드러낸 데버라 펠드먼은 나치의 괴벨스나 다름없다”라고 비난하며 이 책이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는 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을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것이 나였을 뿐이다”라는 지은이의 말에 반응하였고, 이후 수많은 유대인이 데버라가 간 길을 따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탈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 책은 전 세계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20년 3월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그리고 베를린에서>로 극화되었다.
기괴하지만 낯설지 않은 삶
현대의 사람들은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데버라가 속한 초정통파 유대인ultra-orthodox Jews은 이스라엘 바깥에 존재하며, 오히려 이스라엘과 시온주의를 경멸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책의 주요 배경인 하시딕 사트마 종파이다. 이들은 유대인 대학살을 동화주의와 시온주의에 대한 벌이라고 믿으며 이스라엘 국가 창설에 반대하고, 나치의 박해로 인해 줄어든 유대인 인구를 회복한다는 사명을 갖고 히틀러에 대한 궁극의 복수를 위해 인구 성장에 몰두하고 있다. 사트마 여성의 삶에 어떤 고난이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뉴욕 윌리엄스버그 지역에 모여 사는 사트마는 아이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는 대신 자신들이 세운 종교 학교에 보낸다. 남자아이는 예시바라 불리는 종교 학교에서 결혼 전까지 탈무드와 율법을 공부하고 여자아이는 사트마 탈무드 아카데미에 모여 11년간 생활한 뒤 곧바로 중매결혼을 한다.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탈무드 속 유대인의 모습으로 사는 법만을 학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언어는 이디시어이다. 영어도, 그 밖에 생활에 필요한 기술도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동체의 규율을 따르며 그것이 제공하는 재화를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데버라 펠드먼은 그럴 수 없었다.
데버라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공동체에서 추방당했고(그 이유는 책의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정신장애가 있는 아빠는 아이를 양육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린 데버라는 처음에는 큰어머니에게, 나중에는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멋대로 결정하는 족쇄였다. 자신에게 쏟아진 냉소와 날카로운 말들, 엄마 없는 아이라는 편견을 피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율법에 따라 제사용 공중목욕탕 미크바에서 성인식을 치른 날 성추행을 당했어도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다. 사실은 성에 관해 배운 바가 없었기에 그것이 성추행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도 없었다. 공동체는 여성의 ‘정결’만을 강조하며 매월 생리가 끝났다는 사실을 남성 랍비에게 검사받도록 강요했을 뿐이다.
열일곱 살에 가족이 맺어준 남자와 결혼한 데버라는 관습에 따라 결혼식 다음 날에 삭발을 하면서도 결혼을 자유를 찾을 기회라 여겼다. 그러나 결혼은 남편의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족쇄가 채워지는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족쇄는 출산이라는 굴레를 강요했다.
문학이라는 탈출구
데버라에게 바깥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문학뿐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할아버지의 감시를 피해 도서관에 가고, 친척들의 아이를 돌봐준 대가로 받은 돈을 모아 몰래 서점에 가서 로알드 달의 『마틸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등을 읽었다.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놓은 책이 늘어날수록 데버라의 세계도 점점 더 넓어졌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문학 작품에서는 어느 순간 무엇인가가 나처럼 이상하고 불운한 아이들에게 나타나서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환상의 세계로 데려갔다. … 나는 어느 날 이상한 나라로 가는 토끼굴이나 옷장 뒤 나니아를 발견하게 되기를 남몰래 기다렸다. 다른 가능성은 고려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때로 독서는 데버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윌리엄스버그 사트마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읽으며 브루클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프랜시와 자신을 동일시했고, 프랜시가 이곳을 탈출한다면 자신도 “이 초라하고 지저분한 세계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펄 에이브러햄의 『로맨스 리더』는 자신보다 앞서서 유대 공동체를 탈출한 여성이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여성의 독서가 금지되어 있던 『탈무드』를 읽은 날에는 신이 유대 민족에게 내린 은총이 사실은 여성을 남성에게 복종시키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 나는 탈무드에서 다윗왕의 잘못을 확인했다. 나는 다윗이 수많은 아내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도 거느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첩을 두는 것에 비하면 내가 숨겨둔 영어 책 몇 권 정도는 새 발의 피가 아닌가. 바로 이 생각을 한 순간, 내 안에서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이때부터 나는 고분고분한 아이인 척하기가 힘들어졌다.”
밖으로 나온 아이
만약 데버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받아들였다면, 그리고 다른 정통파 유대인처럼 삶의 모든 문제를 신앙 뒤로 미루어놓고 선택과 결정을 신의 뜻에 맡겼다면 그녀는 역경과 고난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버라 펠드먼은 그럴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온통 질문뿐이었던 그녀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자유를 바랐다. 아이의 출산은 그 바람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아니라면 누가 하는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는가?’ 마침내 데버라는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윌리엄스버그를 떠나 에어몬트로 간 것도,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새라로렌스대학에 지원한 것도, 그리고 남편과 이혼하고 소송을 거쳐 아이의 양육권을 지켜낸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미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고, 그로 인한 결과까지 온전히 책임지는 삶. 이 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이다. 현대의 초정통파 종교 공동체에서 태어난 데버라는 격렬한 투쟁을 거쳐 자신의 삶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말미에서 이 과정을 거쳐 발견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자기진실성authenticity’이었다고 밝힌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가족의 무관심, 남편의 냉대, 공동체의 억압에도 ‘나’를 잃지 않고 마침내 더 이상 하시딕 유대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독자들은 데버라 펠드먼이 곧 우리였으며 이 선언의 다음 주인공 또한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아빠가 나를 집에 내려주고 가면 나는 한동안, 어떨 때는 몇 주나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아빠가 나를 불러서 주변에 소개하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체했다. 내가 아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동정의 눈길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자네 딸인가?” 그들은 손가락으로 내 볼을 꼬집거나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정말 이 남자의 자식이라는 표식을 찾으려는 듯이 내 얼굴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 불쌍한 것. 태어난 게 어디 걔 잘못이겠나? 얼굴에 확실히 모자란 티가 나더군.” _19~20쪽
큰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나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갔다. … 나는 이 치료의 이유를 이해했다. 나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일 테지. 언젠가 에스터 할머니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날이 올 것이다. 큰어머니가 정신병은 우리 엄마 집안의 내력이라고 암시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내 정신도 멀쩡할 리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만약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된다면 내 부모님은 왜 치료받지 못한 것일까? 만약 치료를 받았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면
내가 받는 치료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_32쪽
내가 읽은 책에는 가장 절망적 순간에 뜻밖의 희망을 발견하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나도 언젠가 숨어 있던 초능력을 발견하게 될까? 그 힘이 내 안에 잠자고 있을까? ‘나도 마틸다처럼 허니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동화책은 언제나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 어른들을 위한 책을 읽어본 적 없던 나는 이 공식을 굳게 믿었다. 동화 속 세상은 아이가 오직 공정한 세상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나는 동화처럼 누군가가 나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렸다. 벗겨진 유리 구두를 집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나는 절망이라는 심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_34~35쪽
사트마 렙베는 반시온주의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바요엘 모세Vayoel Moshe』라는 책에서 시온주의의 극악한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 렙베의 책에 따르면 시온주의자들은 사악한 목표를 이루려는 시도를 거듭했으나 오직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후에야 실제로 권력을 쟁취할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이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에 대한 동정 여론을 이용했으며, 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도 시온주의자들에 대한 분개를 감추지 않았다. … 학교에서는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을 구타하고 학대해서 신앙을 포기하고 시온주의에 영원히 헌신하도록 만든다고 가르쳤다. 유대인과 시온주의자는 다른 부류였다. 나는 진짜 유대인은 하시딕뿐이라고 생각했다. _80~81쪽
할아버지는 영어는 영혼에 스며드는 독약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어를 읽고 말할 때마다 영혼이 더럽혀져서 더 이상 신성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신이 허락하신 우리 조상의 언어인 이디시어로만 말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하지만 이디시어는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그 밖의 다양한 지역어가 섞인 언어의 잡탕이다. 이 중 대부분은 한때 영어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언어였다. 그런 이디시어가 어떻게 갑자기 순수하고 지당한 언어가 되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 머릿속 생각조차 이디시어로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요사한 뱀과 같다고 묘사한 책들이 나의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미 타락했다. _123~124쪽
결혼이 이렇게 복잡한 일인 줄은 몰랐다. 나의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최고의 살림꾼, 최고의 요리사, 최고의 아내가 될 작정이었다. 하지만 결혼 수업 선생님은 월경이 끝난 후 일주일간 하루 두 번씩 천으로 아래를 닦아 피의 흔적이 없는지 검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7일 연속 ‘하얀 날’이 계속된 후에는 미크바에 가서 정결 의식을 치러야 했다. 나는 결혼한 내 사촌들이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_190쪽
하시딕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에게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끔찍한 범죄자에게도 이토록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측은지심이라니, 얼마나 관대한가? 바로 이 무차별적인 사랑, 정당하지 않은 사랑이 하시딕 유대인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처벌은 하늘에 맡기고 우리는 그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힘쓸 뿐이다. ‘네 이웃에게 대접받고자 한다면 너희도 그를 대접해주어라. 상대방이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거든 나머지는 신에게 맡겨라.’ _263쪽
내가 점점 더 무신론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신을 착실하게 믿었고 좀 커서는 신을 믿으면서 증오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시딕 유대인이 아니어도 다들 잘만 살고, 누구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다. _288쪽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낡아 허물어지고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 이상 돈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건물을 관리할 기력이 없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브라운스톤이 이렇게 방치된 모습을 보니 슬펐다. 내 신앙이 완전한 붕괴에 직면한 이때 내가 자란 집이 와해되어가는 모습을 마주하다니, 우연 같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또 다른 계시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내가 나보다 더 큰 힘에 이끌려 가고 있다는 계시였다. 신은 내가 떠나기를 원한다. 신은 내가 이곳에 속하지 않음을 안다. _308쪽
수치심이 사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놀랍게도 그 밑바닥에는 자부심이 존재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스카프와 선글라스로 무장한 채 마침내 윌리엄스버그를 방문했을 때, 나는 이제 이곳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곳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며 옛 동네를 거닐었다. 마침내 내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불현듯 나의 과거가 다채롭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한때 견딜 수 없이 지루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풍요롭고 신비한 역사로 탈바꿈했다. 나는 자라면서 늘 전형적인 미국식 가정을 동경했다. 이제는 평범하게 자란 미국 소녀들이 자신을 남다르게 만들어줄 경험을 찾아 헤매면서 좌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 로알드 달조차도 나와 같은 여정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과거와 결별하지는 않았다. 나를 있게 한 시간과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내가 살아낸 삶이니까. _3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