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1282
• 지은이 : 천자오루
• 옮긴이 : 강영희
• 가격 : 17,000원
• 책꼴/쪽수 :
140×210mm, 324쪽
• 펴낸날 : 2020-01-28
• ISBN : 979-11-6094-536-2
• 십진분류 : 사회과학 > 사회과학 (300)
• 도서상태 : 정상
• 태그 : #장애인 #사랑 #천자오루 #대만 #타이완
저자소개
지은이 : 천자오루
타이완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수도신문사, 자립조간, 슈퍼텔레비전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CALL IN! 지하 방송국』, 『역사의 농무에 갇힌 집단』, 『물신숭배의 우주를 살다』, 『포르모사의 사랑에 관한 책』, 『망각된 1979년 - 타이완 식용 기름 중독사건 30년』, 『침묵: 타이완 특수학교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이 있다. 이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로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강영희
읽고 쓰고 번역하며 사유하고 실천하면서 살려 한다. 옮긴 책으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마지막 연인』, 『인간의 피안』, 『시간의 서』, 『뭇 산들의 꼭대기』, 『사랑하는 안드레아』, 『나는 하버드 심리상담사입니다』, 『조막손 투수』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세상에는 수없이 많고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젊은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나이, 계급, 국적,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나아가 성소수자들의 사랑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에 속해 있으면서도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었던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性과 사랑 이야기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인데, 마치 그 손상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까지 제거되었다는 듯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타이완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와 특수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 전방위적인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를 색안경을 낀 채 본 적은 없는가? 부모가 되려 하는 지적장애인 부부를 지지할 수 있는가? 장애인 자녀의 성 문제를 막기 위해 성기나 자궁을 적출하는 부모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는 국가나 기관이 제공해야 할 복지인가, 아니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모욕인가?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가 여기 있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인데, 마치 그 손상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까지 제거되었다는 듯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타이완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와 특수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 전방위적인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를 색안경을 낀 채 본 적은 없는가? 부모가 되려 하는 지적장애인 부부를 지지할 수 있는가? 장애인 자녀의 성 문제를 막기 위해 성기나 자궁을 적출하는 부모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는 국가나 기관이 제공해야 할 복지인가, 아니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모욕인가?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가 여기 있다.
목차
읽기 전에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 – 김원영
1. 오명
2. 깊은 잠에 빠진 아이
생명의 빛과 그림자 / 아직 열리지 않은 수문 / 그들이 법정에 설 때
3. 사랑할 권리
도라, 욕망에 눈뜨다 / 몸을 둘러싼 첨예한 질문들 / 책임과 윤리
4. 자기만의 방
단지 살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 경계를 뛰어넘는 쾌감 / 이토록 험난한 사랑
5. 장애, 여성, 연애
갈망하고 상상하고 말하는 여성들 / 다들 성욕은 어떻게 해결해요? / 내 몸에 맞는 엄마 되기
6.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이라니
쇠 신발을 신은 소년 / 손천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 인간됨에 대한 도전
7. 욕망의 출로
성 서비스, 복지인가 모욕인가 / 실험과 논쟁, 그리고 해방
추천의 글
암흑을 걸어 나오면서 – 황즈젠
옮긴이의 말
용기 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성에 관한 이야기 – 김원영
1. 오명
2. 깊은 잠에 빠진 아이
생명의 빛과 그림자 / 아직 열리지 않은 수문 / 그들이 법정에 설 때
3. 사랑할 권리
도라, 욕망에 눈뜨다 / 몸을 둘러싼 첨예한 질문들 / 책임과 윤리
4. 자기만의 방
단지 살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 경계를 뛰어넘는 쾌감 / 이토록 험난한 사랑
5. 장애, 여성, 연애
갈망하고 상상하고 말하는 여성들 / 다들 성욕은 어떻게 해결해요? / 내 몸에 맞는 엄마 되기
6.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이라니
쇠 신발을 신은 소년 / 손천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 인간됨에 대한 도전
7. 욕망의 출로
성 서비스, 복지인가 모욕인가 / 실험과 논쟁, 그리고 해방
추천의 글
암흑을 걸어 나오면서 – 황즈젠
옮긴이의 말
편집자 추천글
추천의 글
이 책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와 쟁점을 망라한다. 나아가 우리에게 사랑과 성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성적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실현이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정상적인 성과 비정상적인 성은 누가 규정짓는지 등 여러 근본적인 질문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수많은 우려와 편견, 냉대와 무시를 뚫고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의지해 자유를 찾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성소수자이면서 장애인인 즈젠의 말처럼 “용감하게 자기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더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_ 김원영(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출간 의의
내 사랑이 이상한가요?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을 힘차게 밀어 찾아 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완벽한 교감의 순간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을 필두로 차별과 억압, 배제의 구조 속에 놓인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힘을 얻으며, 장애인들도 고유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자 권리의 주체로서 사회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수의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교육을 받으며 참정권을 행사하는 장애인의 삶이 공적 담론의 장에 진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랑과 욕망의 주체로서 타인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아직 많지 않다. “남자, 여자 분간도 못 하는데 관심은 무슨 관심”(39쪽)이라며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처럼 여기는 편견이 한쪽에 있고, “잘 먹고 잘 자면 그것으로 됐지. 또 무슨 행복과 즐거움을 바라겠다고?”(74쪽)라며 생존 이상을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니냐는 질타가 다른 한쪽에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꺼내는 용기와 짜릿한 교감의 순간,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과 슬픔, 신체의 손상에서 오는 한계와 도전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과 정도의 장애인들은 저마다 자기 신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사랑을 펼쳐 나간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저절로 자위를 알더라고요. 가르쳐준 사람이 없는데도 할 줄 알았어요.” _ 황리야(지적장애인 위위의 어머니, 사랑과 연애 교육 전문가)
“사회복지사는 최선을 다해 도울 뿐, 주제넘게 나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돼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두 사람을 가장 부모다운 부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 그들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부모죠!” _ 류쥔웨이(지적장애인 부부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저에게 사랑은 신앙과 같아요. 몸을 던져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사랑이 없으면 장애 없는 환경이 갖추어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랑이 없으면 완벽한 평생 돌봄 시스템이 갖추어진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_ 샤오치(루게릭병으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사회운동가)
“두 번째 남자친구도 지체장애인이었어요. 그 사람과 성관계를 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세요? 모든 지지대를 다 풀기까지 기다리는 데만 엄청 오래 걸려요, 하하하!” _ 후이치(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여성)
“진짜 안타까워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동성애자 그룹에 합류했어요. 아름다운 육체를 누군가에게 선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잖아요. 저 자신에게 정말 미안해요. 젊고 팔팔할 때의 몸은 정말이지 자랑스럽잖아요!” _ 황즈젠(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성소수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혐오와 무지, 논란의 한가운데서 이들의 욕망과 필요, 절망과 체념의 심연을 오롯이 전하겠다는 저자의 뚜렷한 의지다. 섣부른 비난이나 옹호에 앞서 일단 말하고 듣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둠 속에 방치해두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놓았다. 덕분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하는 용감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말로 분류하지만, 만 명의 장애인에게는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성性은 양다리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아를 탐색하고, 관계를 맺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다
저자는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연인, 돌봄 노동자, 사회복지사, 특수학교 교사, 활동가 등을 폭넓게 만나고, 국내외 제도와 법률, 사회문화적 환경까지 두루 검토하며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제시한다. 다른 시급한 문제도 많은데 왜 ‘그런’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비난도 적지 않지만,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더 깊고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성은 양다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고, 관계를 맺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 혹은 성교육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그룹 섹스, 동성애, 근친상간, 원 나잇 스탠드, 수간 등을 떠올리면서 성적 욕구를 전적으로 문제시하고 불안해하는 태도야말로 더 넓고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음의 문턱이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과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 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 303쪽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 논의는 고상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와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지하철로 이동하고, 수어나 문자통역을 제공받으며,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기쁨과 슬픔, 욕망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한 교감을 나누며,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일도 중요하다. 이 책에는 세상의 모든 계단이 사라지고, 완벽한 돌봄이 제공된다 해도 누군가의 신체를 만지며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하는 장애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런 목소리가 없다는 듯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장애인들이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이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꺼내 보일 수 없는 건 단지 손상된 신체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을 ‘이상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사회의 편협한 시각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좁은 범위 안에서 높은 장벽을 쳐두고 사랑과 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말처럼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273쪽)이기도 하다.
“몸이야말로 내 싸움터이자 가장 큰 무기죠!”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도착한 사랑 이야기
이 책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논란과 쟁점을 소개하고 있다.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성별 혹은 성 정체성에 따라, 어떤 제도와 문화 속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장애인들이 맞닥뜨리는 장벽의 모습도 갖가지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돌봄이나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 이들의 문제를 공적인 장으로 끌고 나오려는 활동가나 연구자들 사이의 입장 차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무수한 결을 보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쟁점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성생활,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해도 되는가?
‧ 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왜 늘 유난스러운 주목을 감당해야 하는가?
‧ 성폭행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심문해도 되는가?
‧ 지적장애인은 성관계에서 늘 피해자이기만 할까?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옹호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적합한 성교육은 어떤 방식인가?
‧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나 활동지원인, 돌봄 노동자는 사생활의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피임이나 낙태를 권해야 하는가? 혹은 성생활을 돕는 일까지 해야 하는가?
‧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가?
‧ 중증 장애인에게 국가나 민간에서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한 복지인가? 오히려 장애인을 예외로 두는 차별적 시선인가? 왜 그 이용자는 거의 언제나 남성인가?
‧ 장애인 성소수자의 존재는 왜 언급조차 되지 않는가?
이 각각의 질문에도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 성별 등에 따라 미묘하게 갈라지는 여러 하위 질문들이 따라 붙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곁의 사람들은 세상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선택과 도전을 통해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휠체어를 타지만 자기 몸에 맞게 엄마 역할을 익혀가는 샤오위,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비난에 맞서 싸우는 린후이팡, 수년에 걸쳐 지적장애인 커플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류쥔웨이, 타이완 최초로 성 자원봉사 단체를 설립한 지체장애인이자 성소수자인 황즈젠, 성 자원봉사를 이용한 뒤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시작한 스티븐 등 각각의 사례는 독자를 인간의 신체가 던지는 첨예한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사랑을 말할 때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장애인에게는 성적 욕구가 없다는 아주 오래된 편견
“말도 안 돼! 남자, 여자 분간도 못 하는데 관심은 무슨 관심?”
이는 부모가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들은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자녀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착하지, 물 마셔”, “이리 와서 앉아”, “엄마한테 쪽쪽 해줘야지” 등의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이 ‘아이들’이 성별 개념이 있는지, 사랑과 애정 관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 39쪽
부모가 지적장애인의 신체의 자유,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뜻밖의 사고에서 아이가 하체를 부딪쳐 다쳤는데 그때 겸사겸사 거세했다는 이야기를 마지못해 해주었다. 음경 전체를 적출해 앞으로 발생할 ‘화근’의 싹을 미리 잘라 없앤 것이다. (중략) 아들이 나중에 성적 충동을 못 이겨 실수를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날에는 남에게 미안할 뿐 아니라 배상할 형편도 안 돼서 부득이하게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밝혔다. (중략)
“한번 생각해봐요. 당신 딸이 매달 그게 올 때마다 온몸을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요.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고. 그 아이 아빠,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떻게든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려 하지 않겠어요?” (중략)
“예전에는 부모들이 툭하면 제게 아이의 자궁을 들어내도 되는지 물었어요. 제 대답은 당연히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신체 기관을 없앨 권리는 없어요. 그것은 사람으로서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기본 권리입니다. 부모라 해도 안 됩니다.” - 59~84쪽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삶의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류쥔웨이는 평소 의식적으로 고도의 자기성찰을 하려 한다. 때때로 자신의 성장 배경과 인생관, 가치관 등이 당사자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아닌지 들여다본다. 자신은 성과 관련해 굉장히 보수적이라 고정 파트너를 고집하지만, 당사자도 그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한 선배는 “난 지적장애인이 연애를 어떻게 하든 전혀 상관없어. 하지만 임신은 안 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류쥔웨이는 생각이 다르다. 직업인으로서의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이 뒤섞이려 할 때 사회복지사는 최선을 다해 도울 뿐, 주제넘게 나서서 상대를 대신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략)
당시 기관의 책임자는 사회복지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고, 이런 문제는 지원과 복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일깨워주었다. 류쥔웨이는 이 말을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105~109쪽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장애인은 그저 ‘살아 있는 것’만을 원치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은 언제나 폄하되어 변방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마치 그들이 ‘건강하고 온전한’ 신체를 잃은 그 순간부터 성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함께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중략)
“너, 할 수 있겠니? 어떻게 할 건데? 너 살 수 있니? 어렸을 때부터 대학 1학년 때까지 사람들한테 지겹도록 들었던 질문이에요. 저는 자라는 내내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한테 구애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알았어요.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 116~134쪽
장애인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전체 돌봄 시스템에 관한 문제라고요. 도우미에게 자위하는 걸 도와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밖에서 기다려달라는 것뿐이잖아요. 이게 불가능한가요? 만약 그 사람이 싫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버리면 되는 걸까요? 새로 온 사람은 도와주고 싶어 할까요? 이런 일에 관해 토론할 여지는 있는 걸까요? 이 일은 해서도 안 되고, 언급해서도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죠. 정말이지 불합리해요!” (중략)
모두의 인생에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고, 그저 혼자 곱씹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돌봄상의 편의를 이유로 장애인의 생활은 수시로 사람들 앞에 노출된다. 그들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목하거나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혼자 있음의 목적이 굳이 성 때문이 아니어도 말이다.
“성적 권리가 어떠니, 그렇게 거창하게 목소리를 높일 것까지도 없어요. 프라이버시만 놓고 이야기해도 충분하죠. 저는 자라는 과정에서 줄곧 이 부분이 결핍되었어요. 연애편지를 쓰고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프라이버시를 갖고 싶었던 것인데, 이게 불가능한 일인가요?” - 141~142쪽
장애 여성으로 산다는 것
장애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억압적인지, 섹스를 말할 수도 해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처녀의 몸을 유지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섹스하고 싶은 장애 여성은 그저 남몰래 비공식적으로 할 뿐 결혼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래
서 동거나 하룻밤의 섹스를 하는 장애 여성이 적지 않다. 만약 상대와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행운아인 셈이다. (중략)
의사들은 장애 여성들이 여태껏 성행위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라 가정하고는 산부인과 검사를 권유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의사들은 그들의 ‘장애’만 볼 뿐 그들에게도 여성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특질이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보조기구를 맞추기 위해서든 의료상의 필요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이 상하반신 옷을 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외부인 앞에 놓이는 순간, 그들은 ‘여자’가 아니라 성별이 없는 ‘신체’가 된다. 그 수치는 평생 그들에게 집요하게 들러붙어 떨어진 적이 없다. - 173~175쪽
여성 장애인은 위험한 생식자라는 인식
학자 추다신邱大昕은 여성 장애인이 가장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차별은 그들의 역할을 가정주부에 제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그들에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략)
출산과 양육의 능력에 따라 여성을 정의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은 위험한 생식자生殖者로 인식된다. 여성 장애인은 심지어 출산과 양육의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진영은 독신 여성이나 동성애 여성에게는 생식 관련 과학기술을 이용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여성 장애인의 능동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여성 장애인은 언제나 불임 계획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적장애 여성의 불임시술 비율은 지적장애 남성보다 줄곧 높았다. (중략)
엄마 역할은 꼭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지지와 협조가 있다면 강한 모성이 없다 해도 어떤 일보다 잘해낼 수 있다. (지체장애인인) 샤오위의 경험과 한탄은 우리 사회가 ‘엄마 역할’을 정의할 때 체력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서적 지지와 함께함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 - 210~219쪽
손천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손천사는 자위와 성욕 충족 등 순수하게 생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을 애매하게 보고 금기시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오직 이성적인 소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시켜야만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중략)
손천사는 신청만 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공식 사이트에서 “손천사의 서비스 신청은 한 장의 신청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들은 사전에 서비스 대상과 밀도 높게 소통하여 상대의 성격, 신체 상태, 가정환경, 성적 취향, 사회에 대한 이해 정도 등을 알아간다. (중략)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건 협조이지 시혜가 아니며, 공감이지 동정이 아니다. 한편 그들이 강조하는 ‘존중’의 원칙에 근거해 개별 사례에서 신청자가 자원봉사자에게 별 느낌을 받지 못하면 서비스 받기를 거절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도 서비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그만둘 수 있다. - 247~255쪽
손천사의 첫 여성 신청자
첫 번째 여성 신청자인 메이뉘의 등장은, 손천사가 그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기보다는 그녀가 우리와 이 사회에 여성 장애인의 욕망을 마주할 기회를 준 것이라 말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녀가 성에 대해 가졌던 동경, 상상, 기대, 나아가 그것을 실제로 해본 뒤에 알게 된 것과의 차이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 여성 장애인은 성장 경험에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어떤 것인지 사유할 기회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더러운 여자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너무나 깨기 힘든 죄책감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극소수의 여성 장애인이 문의는 했지만, 하나같이 이해의 단계에 머무를 뿐이다. 현재까지 두 번째로 신청한 여성 장애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중략)
손천사는 절박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장애인의 욕망에 주목한 뒤 도움의 손길을 뻗어 그들이 미쳐 날뛰는 맹수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굉장히 지난하고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들은 버텨냈다. ‘천사’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누가 감히 해낼 수 있겠는가? 손천사는 ‘천사’의 정의를 가장 급진적으로 해석해냈다. - 261~264쪽
성 서비스는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나는 비장애인이 성매매를 장애인의 인권이나 성적 표현 등과 관련된 의제로 취급할 때마다 화가 치민다. 이런 논점에는 잘못된 전제가 내포돼 있다. 일테면 장애인은 성적 매력이 없다든가, 그 누구도 무상으로 그들과 성관계하길 원치 않는다든가…… 장애인은 친밀한 관계나 친밀
한 성을 위해 매매춘 제도가 필요한 게 아니다. …… 장애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평등에 우선할 수는 없다. 파트너 식의 섹스가 인간의 권리라 할지라도 성매매 제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뿌리 깊은 불평등 제도다. …… 설령 장애 남성이 주도적으로 성관계 대상을 찾을 수 없다 해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그 가운데는 생리적, 지적 혹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다—통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정당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약자 집단이 서로 이익을 다투고 맞서게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받아들일 수 없다. (중략)
“저는 장애인은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장애인을 특수화해서 타이완 전체에서 그들만 한정적으로 매춘을 할 수 있게 한다거나,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섹스 대리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에 대한 가장 큰 차별입니다!” - 291~301쪽
이 책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와 쟁점을 망라한다. 나아가 우리에게 사랑과 성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성적 자기결정권의 온전한 실현이란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정상적인 성과 비정상적인 성은 누가 규정짓는지 등 여러 근본적인 질문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수많은 우려와 편견, 냉대와 무시를 뚫고 자신의 신념과 욕망에 의지해 자유를 찾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성소수자이면서 장애인인 즈젠의 말처럼 “용감하게 자기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더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_ 김원영(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출간 의의
내 사랑이 이상한가요?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온몸을 힘차게 밀어 찾아 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완벽한 교감의 순간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을 필두로 차별과 억압, 배제의 구조 속에 놓인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힘을 얻으며, 장애인들도 고유한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자 권리의 주체로서 사회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다수의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교육을 받으며 참정권을 행사하는 장애인의 삶이 공적 담론의 장에 진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랑과 욕망의 주체로서 타인과 육체적, 정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아직 많지 않다. “남자, 여자 분간도 못 하는데 관심은 무슨 관심”(39쪽)이라며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처럼 여기는 편견이 한쪽에 있고, “잘 먹고 잘 자면 그것으로 됐지. 또 무슨 행복과 즐거움을 바라겠다고?”(74쪽)라며 생존 이상을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니냐는 질타가 다른 한쪽에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꺼내는 용기와 짜릿한 교감의 순간,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과 슬픔, 신체의 손상에서 오는 한계와 도전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과 정도의 장애인들은 저마다 자기 신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사랑을 펼쳐 나간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저절로 자위를 알더라고요. 가르쳐준 사람이 없는데도 할 줄 알았어요.” _ 황리야(지적장애인 위위의 어머니, 사랑과 연애 교육 전문가)
“사회복지사는 최선을 다해 도울 뿐, 주제넘게 나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돼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두 사람을 가장 부모다운 부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 그들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부모죠!” _ 류쥔웨이(지적장애인 부부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저에게 사랑은 신앙과 같아요. 몸을 던져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사랑이 없으면 장애 없는 환경이 갖추어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랑이 없으면 완벽한 평생 돌봄 시스템이 갖추어진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_ 샤오치(루게릭병으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사회운동가)
“두 번째 남자친구도 지체장애인이었어요. 그 사람과 성관계를 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세요? 모든 지지대를 다 풀기까지 기다리는 데만 엄청 오래 걸려요, 하하하!” _ 후이치(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여성)
“진짜 안타까워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동성애자 그룹에 합류했어요. 아름다운 육체를 누군가에게 선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잖아요. 저 자신에게 정말 미안해요. 젊고 팔팔할 때의 몸은 정말이지 자랑스럽잖아요!” _ 황즈젠(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성소수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혐오와 무지, 논란의 한가운데서 이들의 욕망과 필요, 절망과 체념의 심연을 오롯이 전하겠다는 저자의 뚜렷한 의지다. 섣부른 비난이나 옹호에 앞서 일단 말하고 듣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둠 속에 방치해두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놓았다. 덕분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하는 용감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말로 분류하지만, 만 명의 장애인에게는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성性은 양다리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아를 탐색하고, 관계를 맺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다
저자는 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연인, 돌봄 노동자, 사회복지사, 특수학교 교사, 활동가 등을 폭넓게 만나고, 국내외 제도와 법률, 사회문화적 환경까지 두루 검토하며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제시한다. 다른 시급한 문제도 많은데 왜 ‘그런’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비난도 적지 않지만,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해 더 깊고 장기적인 관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성은 양다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고, 관계를 맺고, 욕망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존 방식이기 때문이다.
성 혹은 성교육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그룹 섹스, 동성애, 근친상간, 원 나잇 스탠드, 수간 등을 떠올리면서 성적 욕구를 전적으로 문제시하고 불안해하는 태도야말로 더 넓고 자유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마음의 문턱이다.
신체는 인류가 자아를 장악하는 도구이자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단지 육신이 존재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세계로 진입하는 중요한 통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감하고, 사회의 명과 암을 이해하는 일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의 성이 보장받거나 해방될 필요 없이 누구나 다 유일무이한 육체를 통해 사랑과 욕망의 한가운데서 속박이나 족쇄, 죄책감이 아니라 진실한 쾌락을 얻었으면 한다. - 303쪽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 논의는 고상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와 욕망을 정확히 알아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고,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지하철로 이동하고, 수어나 문자통역을 제공받으며,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기쁨과 슬픔, 욕망을 들여다보고, 타인과 신체 접촉을 통한 교감을 나누며,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일도 중요하다. 이 책에는 세상의 모든 계단이 사라지고, 완벽한 돌봄이 제공된다 해도 누군가의 신체를 만지며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하는 장애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런 목소리가 없다는 듯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장애인들이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자신의 신체를 혐오하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이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꺼내 보일 수 없는 건 단지 손상된 신체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을 ‘이상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사회의 편협한 시각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좁은 범위 안에서 높은 장벽을 쳐두고 사랑과 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레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말처럼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273쪽)이기도 하다.
“몸이야말로 내 싸움터이자 가장 큰 무기죠!”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도착한 사랑 이야기
이 책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논란과 쟁점을 소개하고 있다.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성별 혹은 성 정체성에 따라, 어떤 제도와 문화 속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장애인들이 맞닥뜨리는 장벽의 모습도 갖가지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돌봄이나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겪는 갈등과 선택의 순간들, 이들의 문제를 공적인 장으로 끌고 나오려는 활동가나 연구자들 사이의 입장 차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무수한 결을 보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몇 가지 쟁점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 부모가 장애인 자녀의 성생활,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해도 되는가?
‧ 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왜 늘 유난스러운 주목을 감당해야 하는가?
‧ 성폭행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심문해도 되는가?
‧ 지적장애인은 성관계에서 늘 피해자이기만 할까?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어떻게 옹호할 수 있는가? 그들에게 적합한 성교육은 어떤 방식인가?
‧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나 활동지원인, 돌봄 노동자는 사생활의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피임이나 낙태를 권해야 하는가? 혹은 성생활을 돕는 일까지 해야 하는가?
‧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가?
‧ 중증 장애인에게 국가나 민간에서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한 복지인가? 오히려 장애인을 예외로 두는 차별적 시선인가? 왜 그 이용자는 거의 언제나 남성인가?
‧ 장애인 성소수자의 존재는 왜 언급조차 되지 않는가?
이 각각의 질문에도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 성별 등에 따라 미묘하게 갈라지는 여러 하위 질문들이 따라 붙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곁의 사람들은 세상의 선입견을 뛰어넘는 선택과 도전을 통해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휠체어를 타지만 자기 몸에 맞게 엄마 역할을 익혀가는 샤오위,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비난에 맞서 싸우는 린후이팡, 수년에 걸쳐 지적장애인 커플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류쥔웨이, 타이완 최초로 성 자원봉사 단체를 설립한 지체장애인이자 성소수자인 황즈젠, 성 자원봉사를 이용한 뒤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시작한 스티븐 등 각각의 사례는 독자를 인간의 신체가 던지는 첨예한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사랑을 말할 때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장애인에게는 성적 욕구가 없다는 아주 오래된 편견
“말도 안 돼! 남자, 여자 분간도 못 하는데 관심은 무슨 관심?”
이는 부모가 보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들은 성인이 된 지적장애인 자녀들을 어린아이 취급한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착하지, 물 마셔”, “이리 와서 앉아”, “엄마한테 쪽쪽 해줘야지” 등의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이 ‘아이들’이 성별 개념이 있는지, 사랑과 애정 관계가 필요한지 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는지도 모른다. - 39쪽
부모가 지적장애인의 신체의 자유, 출산과 양육의 권리를 대신 결정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뜻밖의 사고에서 아이가 하체를 부딪쳐 다쳤는데 그때 겸사겸사 거세했다는 이야기를 마지못해 해주었다. 음경 전체를 적출해 앞으로 발생할 ‘화근’의 싹을 미리 잘라 없앤 것이다. (중략) 아들이 나중에 성적 충동을 못 이겨 실수를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날에는 남에게 미안할 뿐 아니라 배상할 형편도 안 돼서 부득이하게 이런 방법을 택했다고 밝혔다. (중략)
“한번 생각해봐요. 당신 딸이 매달 그게 올 때마다 온몸을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요.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고. 그 아이 아빠,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떻게든 자궁과 난소를 들어내려 하지 않겠어요?” (중략)
“예전에는 부모들이 툭하면 제게 아이의 자궁을 들어내도 되는지 물었어요. 제 대답은 당연히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신체 기관을 없앨 권리는 없어요. 그것은 사람으로서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기본 권리입니다. 부모라 해도 안 됩니다.” - 59~84쪽
사회복지사는 장애인 삶의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류쥔웨이는 평소 의식적으로 고도의 자기성찰을 하려 한다. 때때로 자신의 성장 배경과 인생관, 가치관 등이 당사자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아닌지 들여다본다. 자신은 성과 관련해 굉장히 보수적이라 고정 파트너를 고집하지만, 당사자도 그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한 선배는 “난 지적장애인이 연애를 어떻게 하든 전혀 상관없어. 하지만 임신은 안 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류쥔웨이는 생각이 다르다. 직업인으로서의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이 뒤섞이려 할 때 사회복지사는 최선을 다해 도울 뿐, 주제넘게 나서서 상대를 대신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략)
당시 기관의 책임자는 사회복지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돌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고, 이런 문제는 지원과 복지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일깨워주었다. 류쥔웨이는 이 말을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105~109쪽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장애인은 그저 ‘살아 있는 것’만을 원치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은 언제나 폄하되어 변방의 변방으로 밀려난다. 마치 그들이 ‘건강하고 온전한’ 신체를 잃은 그 순간부터 성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함께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중략)
“너, 할 수 있겠니? 어떻게 할 건데? 너 살 수 있니? 어렸을 때부터 대학 1학년 때까지 사람들한테 지겹도록 들었던 질문이에요. 저는 자라는 내내 내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한테 구애하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알았어요. 나한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 116~134쪽
장애인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전체 돌봄 시스템에 관한 문제라고요. 도우미에게 자위하는 걸 도와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저 밖에서 기다려달라는 것뿐이잖아요. 이게 불가능한가요? 만약 그 사람이 싫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버리면 되는 걸까요? 새로 온 사람은 도와주고 싶어 할까요? 이런 일에 관해 토론할 여지는 있는 걸까요? 이 일은 해서도 안 되고, 언급해서도 안 된다고 하면 안 되죠. 정말이지 불합리해요!” (중략)
모두의 인생에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고, 그저 혼자 곱씹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돌봄상의 편의를 이유로 장애인의 생활은 수시로 사람들 앞에 노출된다. 그들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에 주목하거나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혼자 있음의 목적이 굳이 성 때문이 아니어도 말이다.
“성적 권리가 어떠니, 그렇게 거창하게 목소리를 높일 것까지도 없어요. 프라이버시만 놓고 이야기해도 충분하죠. 저는 자라는 과정에서 줄곧 이 부분이 결핍되었어요. 연애편지를 쓰고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프라이버시를 갖고 싶었던 것인데, 이게 불가능한 일인가요?” - 141~142쪽
장애 여성으로 산다는 것
장애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억압적인지, 섹스를 말할 수도 해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처녀의 몸을 유지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섹스하고 싶은 장애 여성은 그저 남몰래 비공식적으로 할 뿐 결혼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래
서 동거나 하룻밤의 섹스를 하는 장애 여성이 적지 않다. 만약 상대와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행운아인 셈이다. (중략)
의사들은 장애 여성들이 여태껏 성행위를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라 가정하고는 산부인과 검사를 권유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의사들은 그들의 ‘장애’만 볼 뿐 그들에게도 여성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특질이나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보조기구를 맞추기 위해서든 의료상의 필요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이 상하반신 옷을 벗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외부인 앞에 놓이는 순간, 그들은 ‘여자’가 아니라 성별이 없는 ‘신체’가 된다. 그 수치는 평생 그들에게 집요하게 들러붙어 떨어진 적이 없다. - 173~175쪽
여성 장애인은 위험한 생식자라는 인식
학자 추다신邱大昕은 여성 장애인이 가장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차별은 그들의 역할을 가정주부에 제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가 그들에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략)
출산과 양육의 능력에 따라 여성을 정의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은 위험한 생식자生殖者로 인식된다. 여성 장애인은 심지어 출산과 양육의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진영은 독신 여성이나 동성애 여성에게는 생식 관련 과학기술을 이용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여성 장애인의 능동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여성 장애인은 언제나 불임 계획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적장애 여성의 불임시술 비율은 지적장애 남성보다 줄곧 높았다. (중략)
엄마 역할은 꼭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지지와 협조가 있다면 강한 모성이 없다 해도 어떤 일보다 잘해낼 수 있다. (지체장애인인) 샤오위의 경험과 한탄은 우리 사회가 ‘엄마 역할’을 정의할 때 체력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서적 지지와 함께함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된 상황을 반영한다. - 210~219쪽
손천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손천사는 자위와 성욕 충족 등 순수하게 생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성을 애매하게 보고 금기시하는 주류 사회의 태도에 도전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오직 이성적인 소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시켜야만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여긴다. (중략)
손천사는 신청만 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공식 사이트에서 “손천사의 서비스 신청은 한 장의 신청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알아가고 이해해가는 과정 그 자체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들은 사전에 서비스 대상과 밀도 높게 소통하여 상대의 성격, 신체 상태, 가정환경, 성적 취향, 사회에 대한 이해 정도 등을 알아간다. (중략)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건 협조이지 시혜가 아니며, 공감이지 동정이 아니다. 한편 그들이 강조하는 ‘존중’의 원칙에 근거해 개별 사례에서 신청자가 자원봉사자에게 별 느낌을 받지 못하면 서비스 받기를 거절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도 서비스 제공을 거절하거나 그만둘 수 있다. - 247~255쪽
손천사의 첫 여성 신청자
첫 번째 여성 신청자인 메이뉘의 등장은, 손천사가 그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기보다는 그녀가 우리와 이 사회에 여성 장애인의 욕망을 마주할 기회를 준 것이라 말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녀가 성에 대해 가졌던 동경, 상상, 기대, 나아가 그것을 실제로 해본 뒤에 알게 된 것과의 차이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 여성 장애인은 성장 경험에서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어떤 것인지 사유할 기회가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더러운 여자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너무나 깨기 힘든 죄책감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때문에 극소수의 여성 장애인이 문의는 했지만, 하나같이 이해의 단계에 머무를 뿐이다. 현재까지 두 번째로 신청한 여성 장애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중략)
손천사는 절박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장애인의 욕망에 주목한 뒤 도움의 손길을 뻗어 그들이 미쳐 날뛰는 맹수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굉장히 지난하고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들은 버텨냈다. ‘천사’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누가 감히 해낼 수 있겠는가? 손천사는 ‘천사’의 정의를 가장 급진적으로 해석해냈다. - 261~264쪽
성 서비스는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나는 비장애인이 성매매를 장애인의 인권이나 성적 표현 등과 관련된 의제로 취급할 때마다 화가 치민다. 이런 논점에는 잘못된 전제가 내포돼 있다. 일테면 장애인은 성적 매력이 없다든가, 그 누구도 무상으로 그들과 성관계하길 원치 않는다든가…… 장애인은 친밀한 관계나 친밀
한 성을 위해 매매춘 제도가 필요한 게 아니다. …… 장애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평등에 우선할 수는 없다. 파트너 식의 섹스가 인간의 권리라 할지라도 성매매 제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는 뿌리 깊은 불평등 제도다. …… 설령 장애 남성이 주도적으로 성관계 대상을 찾을 수 없다 해도 가장 소외된 여성들을—그 가운데는 생리적, 지적 혹은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다—통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정당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두 약자 집단이 서로 이익을 다투고 맞서게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받아들일 수 없다. (중략)
“저는 장애인은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장애인을 특수화해서 타이완 전체에서 그들만 한정적으로 매춘을 할 수 있게 한다거나,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섹스 대리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에 대한 가장 큰 차별입니다!” - 291~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