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칸들의 역사 (라시드 앗 딘의 집사 4)
- 1213
• 지은이 : 라시드 앗 딘
• 옮긴이 : 김호동
• 가격 : 32,000원
• 책꼴/쪽수 :
153x225mm, 368쪽
• 펴낸날 : 2018-11-02
• ISBN : 9791160944051 93910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도서상태 : 정상
저자소개
지은이 : 라시드 앗 딘
라시드 앗 딘(Rash d ad-D n, ?-1319)
이란 중부의 도시 하마단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익힌 제약과 의술 지식을 바탕으로 몽골 군주 일 칸의 궁정에 출사하여 문관으로서는 최고직인 재상(vaz r)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 칸국의 군주를 시해했다는 정적들의 모략으로 처형당했다. 역사학을 비롯해 신학, 식물학, 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저작들을 남겼으며, 재상 시절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집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최초의 세계사”로 칭해지고 있다. 중세 이슬람권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집사}의 몽골사 관련 부분은 오늘에도 그 독보적인 사료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란 중부의 도시 하마단에서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익힌 제약과 의술 지식을 바탕으로 몽골 군주 일 칸의 궁정에 출사하여 문관으로서는 최고직인 재상(vaz r)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 칸국의 군주를 시해했다는 정적들의 모략으로 처형당했다. 역사학을 비롯해 신학, 식물학, 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저작들을 남겼으며, 재상 시절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집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최초의 세계사”로 칭해지고 있다. 중세 이슬람권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집사}의 몽골사 관련 부분은 오늘에도 그 독보적인 사료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옮긴이 : 김호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1860~70년대 신강 무슬림 반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귀국 후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중앙아시아학회 회장, 동양사학회 회장 및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국내 중앙유라시아사 분야의 선구자로 주요 1차 사료의 역주서를 다수 펴냈다. 『몽골비사』, 『원사』와 함께 몽골제국사 연구의 3대 기본 사료라 할 수 있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 5부작 『부족지』(2002), 『칭기스 칸기』(2003), 『칸의 후예들』(2005), 『일 칸들의 역사』(2018),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2023)를 완간했고, 그 밖에 팍스 몽골리카 시대의 여행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과 『몽골제국 기행: 마르코 폴로의 선구자들』(2015) 등을 펴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Holy War in China’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2002), 『몽골제국과 고려』(2007),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2010),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2016) 등이 있다. 『유목사회의 구조』(1990), 『칭기스 칸』(1992),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공역, 1998), 『이슬람 1400년』(2001) 등 번역서를 출간하여 해외 학계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국내에 소개했다. 그 밖에 중국 내 소수민족 탐방기인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와 서구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세계사상을 모색한 문명 비교 탐사기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The Cambridge History of the Mongol Empire』의 책임 편집과 집필을 맡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의 간행은 몽골제국사가 세계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이자 시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내 중앙유라시아사 분야의 선구자로 주요 1차 사료의 역주서를 다수 펴냈다. 『몽골비사』, 『원사』와 함께 몽골제국사 연구의 3대 기본 사료라 할 수 있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 5부작 『부족지』(2002), 『칭기스 칸기』(2003), 『칸의 후예들』(2005), 『일 칸들의 역사』(2018),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2023)를 완간했고, 그 밖에 팍스 몽골리카 시대의 여행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과 『몽골제국 기행: 마르코 폴로의 선구자들』(2015) 등을 펴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Holy War in China’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2002), 『몽골제국과 고려』(2007),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2010),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2016) 등이 있다. 『유목사회의 구조』(1990), 『칭기스 칸』(1992), 『유라시아 유목제국사』(공역, 1998), 『이슬람 1400년』(2001) 등 번역서를 출간하여 해외 학계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국내에 소개했다. 그 밖에 중국 내 소수민족 탐방기인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와 서구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세계사상을 모색한 문명 비교 탐사기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를 집필했다.
최근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역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The Cambridge History of the Mongol Empire』의 책임 편집과 집필을 맡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의 간행은 몽골제국사가 세계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이자 시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권위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명예교수의 역작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집사』의 페르시아어 원본을 번역
몽골제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카안의 울루스가 지배했던 동아시아와 몽골리아는 물론, 서방 삼왕가의 영역이 있던 중앙아시아, 킵차크 초원, 서아시아의 역사와 사회상을 고루 파악해야 최초이자 최대의 세계제국 몽골에 다가갈 수 있다. 훌레구 울루스의 7대 군주 가잔 칸 시대의 역사를 다룬 『집사』 제5권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는 몽골제국이 서아시아를 통치하며 이슬람 세계를 제국 안에 통합하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며, 문자 그대로 ‘세계제국’의 탄생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완역된 『집사』 한국어판 김호동 역주(譯註)본은 과거 낯선 지역으로 우리를 이끄는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현재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풍부하게 넓혀주는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집사』의 페르시아어 원본을 번역
몽골제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카안의 울루스가 지배했던 동아시아와 몽골리아는 물론, 서방 삼왕가의 영역이 있던 중앙아시아, 킵차크 초원, 서아시아의 역사와 사회상을 고루 파악해야 최초이자 최대의 세계제국 몽골에 다가갈 수 있다. 훌레구 울루스의 7대 군주 가잔 칸 시대의 역사를 다룬 『집사』 제5권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는 몽골제국이 서아시아를 통치하며 이슬람 세계를 제국 안에 통합하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며, 문자 그대로 ‘세계제국’의 탄생을 보여준다.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완역된 『집사』 한국어판 김호동 역주(譯註)본은 과거 낯선 지역으로 우리를 이끄는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현재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풍부하게 넓혀주는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목차
이 책을 내면서 5
『집사』의 구성표 12
훌레구 칸기 13
아바카 칸기 145
아흐마드 칸기 235
아르군 칸기 273
게이하투 칸기 319
부록
지도 342
참고문헌 344
찾아보기 350
훌레구 일족의 주요 인물들과 칸위 계승도
『집사』의 구성표 12
훌레구 칸기 13
아바카 칸기 145
아흐마드 칸기 235
아르군 칸기 273
게이하투 칸기 319
부록
지도 342
참고문헌 344
찾아보기 350
훌레구 일족의 주요 인물들과 칸위 계승도
편집자 추천글
세계제국 몽골이 집대성한 역사학의 고전. 13~14세기 최대 규모, 최초의 세계사!
최근 ‘몽골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13~14세기. 그 중심부를 점유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사’이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와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들에 기반을 둔 총합적 연구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중국 측 기록들은 중화 중심의 역사관과 세계관 때문에 몽골제국의 ‘세계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중국 전통 왕조의 하나로 ‘개조’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시드 앗 딘의 『집사』가 그리고 있는 제국의 역사성은 그 실체적 진실에 훨씬 더 육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자인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이란에서 칸의 최측근으로 재상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칸의 칙령과 후원을 받아 집필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원자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저술은 몽골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던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 서술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몽골 이외에도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유럽, 유대 등 여러 민족의 역사까지도 집대성하고 있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의 역사를 망라하여 서술한 이런 규모의 저술은 그때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은 『집사』를 가리켜 ‘최초의 세계사’라 부른다.
칭기스 칸의 손자 훌레구가 서아시아를 정복하는 과정과 그 후계자들의 역사를 밝히다
이미 번역·출간된 『부족지』, 『칭기스 칸 기』, 『칸의 후예들』이 각각 몽골제국의 준비기, 태동기, 세계제국의 최종적 완성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 네 번째로 출간된 『일 칸들의 역사』는 칭기스 칸의 손자인 훌레구를 비롯하여 아바카 칸, 아흐마드 칸, 아르군 칸, 게이하투 칸 등 다섯 명의 군주가 서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2세기 동안 구미 학자들은 라시드 앗 딘의 기록과 그 밖의 다른 역사가들이 남긴 연대기들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통해서 몽골 지배기 서아시아의 역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기울인 관심은 극히 미미했다. 근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극소수의 전문가들이 당시의 아랍・페르시아 사료에 천착하여 수준 높은 연구들을 발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제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 칸들의 역사』의 번역은 국내의 몽골제국사 연구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 수준의 완역
각국의 연구자들은 『집사』를 주저 없이 ‘불멸의 고전’으로 칭하면서도, 페르시아어 원본의 난해함과 그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선뜻 번역에 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번역본으로는 1858년 러시아에서 출간되고 1세기 후 소련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보완한 『부족지』의 완역본과, 김호동 교수가 『부족지』 역주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하버드대학교의 색스턴(W. M. Thackston) 교수가 내놓은 영역본이 있을 따름이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사 연구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에서조차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중국에서는 러시아 번역본을 다시 중국어로 옮겨 출간했을 뿐이다.
14세기 초 페르시아어로 집필된 『집사』의 정확하고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사본(寫本)의 선택, 투르크-몽골 어휘에 대한 풍부한 지식, 그리고 몽골제국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앙아시아사 연구자인 김호동 교수의 『집사』 번역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호동 교수는 주석 작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 사본들을 대조하여 만든 페르시아어 교감본을 참조한 것은 물론, 몽골제국 당시의 관련 역사서, 『집사』와 몽골제국에 대한 전 세계의 다양한 최근 연구 성과들까지도 주석에 반영하였다. 또한 투르크-몽골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어 원문의 어휘와 문장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 주석까지 첨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원문이 갖는 의미의 난해함과 모호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최근 ‘몽골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13~14세기. 그 중심부를 점유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사’이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와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들에 기반을 둔 총합적 연구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중국 측 기록들은 중화 중심의 역사관과 세계관 때문에 몽골제국의 ‘세계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중국 전통 왕조의 하나로 ‘개조’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시드 앗 딘의 『집사』가 그리고 있는 제국의 역사성은 그 실체적 진실에 훨씬 더 육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자인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이란에서 칸의 최측근으로 재상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칸의 칙령과 후원을 받아 집필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져버린 ‘원자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다른 어떤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저술은 몽골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던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 서술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몽골 이외에도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유럽, 유대 등 여러 민족의 역사까지도 집대성하고 있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의 역사를 망라하여 서술한 이런 규모의 저술은 그때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은 『집사』를 가리켜 ‘최초의 세계사’라 부른다.
칭기스 칸의 손자 훌레구가 서아시아를 정복하는 과정과 그 후계자들의 역사를 밝히다
이미 번역·출간된 『부족지』, 『칭기스 칸 기』, 『칸의 후예들』이 각각 몽골제국의 준비기, 태동기, 세계제국의 최종적 완성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 네 번째로 출간된 『일 칸들의 역사』는 칭기스 칸의 손자인 훌레구를 비롯하여 아바카 칸, 아흐마드 칸, 아르군 칸, 게이하투 칸 등 다섯 명의 군주가 서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2세기 동안 구미 학자들은 라시드 앗 딘의 기록과 그 밖의 다른 역사가들이 남긴 연대기들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통해서 몽골 지배기 서아시아의 역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기울인 관심은 극히 미미했다. 근자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극소수의 전문가들이 당시의 아랍・페르시아 사료에 천착하여 수준 높은 연구들을 발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골제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 칸들의 역사』의 번역은 국내의 몽골제국사 연구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 수준의 완역
각국의 연구자들은 『집사』를 주저 없이 ‘불멸의 고전’으로 칭하면서도, 페르시아어 원본의 난해함과 그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선뜻 번역에 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번역본으로는 1858년 러시아에서 출간되고 1세기 후 소련 학자들의 공동 연구로 보완한 『부족지』의 완역본과, 김호동 교수가 『부족지』 역주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하버드대학교의 색스턴(W. M. Thackston) 교수가 내놓은 영역본이 있을 따름이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사 연구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에서조차 아직 번역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중국에서는 러시아 번역본을 다시 중국어로 옮겨 출간했을 뿐이다.
14세기 초 페르시아어로 집필된 『집사』의 정확하고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사본(寫本)의 선택, 투르크-몽골 어휘에 대한 풍부한 지식, 그리고 몽골제국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앙아시아사 연구자인 김호동 교수의 『집사』 번역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호동 교수는 주석 작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 사본들을 대조하여 만든 페르시아어 교감본을 참조한 것은 물론, 몽골제국 당시의 관련 역사서, 『집사』와 몽골제국에 대한 전 세계의 다양한 최근 연구 성과들까지도 주석에 반영하였다. 또한 투르크-몽골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이용하여 페르시아어 원문의 어휘와 문장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 주석까지 첨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원문이 갖는 의미의 난해함과 모호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다.
주요 내용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 대하여
가잔 칸이 즉위하던 1295년은 칭기스 칸이 몽골을 통일한 지 9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고, 그의 증조부 훌레구가 서아시아에 원정하여 훌레구 울루스의 기초를 놓은 것도 반세기 전의 일이었다. 처음에 원정대를 지휘하며 그곳에 왔던 몽골의 지휘관들은 대부분 이미 타계했고, 그 후예들은 서아시아의 무슬림들 위에 군림하며 조상들이 일궈 놓은 성과를 향유하면서 자신들의 뿌리조차 잊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가잔 칸은 몽골 귀족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군주에 대해 곧잘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역사에 대한 무지와 몽골 정체성의 상실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몽골제국의 탄생 과정을 분명히 알려주고, 조상의 뿌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다시 한 번 인식시킴으로써, 몽골 유목부족민들의 분권적 경향을 억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통합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가잔 칸은 세계 각 민족의 역사가 아닌 몽골제국사의 집필을 재상 라시드 앗 딘에게 명하였던 것이다. 가잔 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울제이투는 몽골족의 역사적 뿌리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가잔 칸의 의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민족과 지역을 포괄하는 세계제국의 경영자로서 그에 합당한 세계사의 편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확대 편찬을 지시했으며, 이렇게 해서 『집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본서 『일 칸들의 역사』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Jāmi‛ al-tawārīkh)』의 제1부에 해당되는 『가잔의 축복사(Tārīkh-i mubārak-i Ghāzānī)』(일명 『몽골사』) 가운데 훌레구와 그의 후계자들의 역사를 기록한 부분을 역주한 것이며, 김호동 교수가 기왕에 번역한 『부족지』, 『칭기스 칸 기』, 『칸의 후예들』의 뒤를 이어 제4권을 이루고 있다. 가잔 칸 치세의 연대기와 그가 발포한 칙령들을 수록한 제5권 『이슬람의 제왕』(가제)은 2019년 하반기에 출간할 예정인데, 그러면 라시드 앗 딘의 집사의 국내 번역본이 완간되는 셈이 된다.
『일 칸들의 역사』의 주요 구성
훌레구 칸기
칭기스 칸의 손자이자 톨루이의 아들인 훌레구 칸의 일대기이다. 훌레구가 서방 원정을 나서서 훌레구 울루스의 기초를 형성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이때 서아시아의 칼리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바그다드 성을 둘러싼 공방전과 함락 과정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바그다드 주변에는 돌이 없었기 때문에 잘룰라와 자발 함린에서 〔돌을〕 가져왔다. 야자나무를 잘라서 돌 대신 쏘아 던지기도 했다. … 군주가 있던 그 방향에서부터 아자미 망루를 마주하여 몽골군이 서로 경쟁하듯 성벽 위로 올라갔고, 성벽 위에서 사람들을 몰아내었다. 수키 술탄 〔성문〕 방향에는 〔주치 울루스의 장군들인〕 발라가와 투타르가 있었는데 아직 성벽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훌레구 칸은 그들을 질책하였다. 그들의 누케르들도 올라갔다. 밤에 동쪽 방향의 성벽 위 모두를 장악하였고, 부교를 맬 때 군주는 바그다드의 위와 아래에 부교를 매고, 배들을 준비하고, 만자니크를 배치하고, 수비병들을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부카 티무르는 1투만의 병사와 함께 마다인과 바스라로 향하는 도로상에 주둔하며, 만약 누군가 배를 타고 도망치면 그것을 제지할 태세로 있었다. 바그다드 전투가 격렬해지고 상황이 주민들에게 어렵게 되자, 다와트다르는 배를 타고 아래쪽으로 도망치려고 하였다. 알 우카브 마을을 지났을 때 부카 티무르의 군대가 만자니크의 돌덩이와 화살과 나프타가 든 유리병들을 던져서 배 3척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였다. 다와트다르는 패배하여 돌아갔다. _91~92쪽, 바그다드 공방전의 한 장면.
아바카 칸기
훌레구 칸의 아들 아바카 칸의 일대기이다. 특히 차가다이 울루스의 지배자 바락과 치열한 승부 끝에 승리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바락이 패배를 당하고 강을 건넜을 때 그는 당황하고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여러 일족들을 책망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질책하고 징계할 방책에 대해서 고심했다. 그러다가 그는 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려서 말에 오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를 두려워하던 일족과 아미르들은 모두 각자 구실을 대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그런 무리들 가운데 차가다이의 아들인 부리의 아들 아흐마드 오굴이 반기를 들고 자기 군대와 함께 〔비시〕발릭 방면으로 가버렸다. 바락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나쁜 일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한동안 나의 행운의 그늘 아래서 열락을 누리고 많은 재화를 모았다. 그리고 일족과 아미르들이 모두 상의하여 우리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항상 ‘이렇게 혹은 저렇게 힘을 다 바치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전투의 날에 자신의 말을 어기고 도망쳐버렸다. 나를 적군 가운데 말(馬)도 없이 남겨두었고, 이제 내가 병에 걸리니 나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만약 내가 병에서 완쾌되면 그들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_193쪽, 아바카 칸에게 패하여 퇴각하는 바락.
아흐마드 칸기
훌레구 칸의 아들 아흐마드 테구데르 칸의 일대기이다. 아바카 칸의 아들 아르군과의 권력투쟁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왕자들과 아미르들은 왕위에 관해서 상의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부카는 아르군에게 기울었지만 아룩은 주시켑을, 테게네는 훌라추를 지지했다. 테게네가 말했다. “훌라추는 훌레구 칸의 아들이다. 아들이 있으니 손자들에게 〔왕위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자 아룩과 쿠룸시가 말하기를 “대유르트는 주시켑이 보유하고 있으며, 나이로 볼 때에도 그가 형이니 그가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했다. 이에 부카는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의 군주이자 칭기스 칸 일족 전체의 형이신 카안께서는 이란땅의 여러 지방의 왕위를 자기 형제인 훌레구 칸의 다음에 그의 큰아들이자 특별히 총명하고 완벽한 아바카 칸에게 위임하셨다. 그 뒤로는 상속의 관례에 따라 그의 진정한 후계자인 아르군에게로 가야 마땅하다. 만약 말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왕관과 보좌를 그의 자식들에게 주었을 것이며 이 모든 분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이 이 분란의 끝이 어디로 갈지 아실 것이다.”
테게네가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기〕 시작하자 부카는 칼을 빼들고 “내 손이 이 칼에 머물고 있는 한 아르군 이외에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앉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미르들이 텡기즈 쿠레겐에게 “아바카 칸의 유언은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 식투르 아카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뭉케 티무르를 임금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르군을 임금으로 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테게네는〕 그에게 “너는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_267쪽, 왕위 계승에 관한 논쟁.
아르군 칸기
아바카 칸의 아들 아르군 칸의 일대기이다. 다른 왕실 세력과 공신 세력을 숙청하면서 훌레구 울루스 정권의 안정을 다져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688년 주마다 알 아히르월 초(1289년 6월 말경) 아르군 칸은 수구를룩의 하영지에서 사아드 앗 다울라를 재상으로 임명하였고, 말릭 잘랄 앗 딘 〔심나니〕의 형제 샤라프 앗 딘 심나니는 바그다드의 미수 세금을 이유로 감금시켰다. 아침에 〔말릭 잘랄 앗 딘은〕 그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아미르 볼라드 아카와 마주쳤다. 그는 말릭에게 안부를 물었고 그(샤라프 앗 딘 심나니)가 해임된 정황과 그 이유에 대해서 캐물었다. 말릭은 “소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임금께서 한 유태인을 저보다 더 중용하시고 그를 후원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즉각 군주의 귀에 들어갔고 〔군주는〕 볼라드 아카에게 그것을 캐물어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주었다. 군주는 “그를 왜 살려두었는지, 그 잘못은 바로 내게 있다.”라고 말하고, 당번을 서던 테케첵에게 명령하여 가서 말릭을 야사에 처하도록 하였다. 688년 라잡월 18일(1289. 8. 6) 시야흐 쿠흐의 사라이 무자파리야에서 생긴 일이었다. _301~302쪽, 아르군 칸의 공신 숙청.
게이하투 칸기
아바카 칸의 아들 게이하투 칸의 일대기이다. ‘차우’의 발행으로 인한 혼란, 훌레구 칸의 손자 바이두의 반란 등을 주로 다룬다.
샤반월 27일 금요일(7. 23) 아크 부카와 타가차르와 사드르 앗 딘과 탐마치 이낙 등이 차우의 실시를 위하여 타브리즈 방면으로 갔다. 라마단월 19일(8. 13) 그곳에 도착하여 칙령을 공포하고 많은 양의 차우를 준비하였다. 693년 샤발월 19일 토요일(1294. 9. 12) 타브리즈 시내에서 차우를 내놓고 통용시켰다.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야사에 처할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차우)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받기만 했지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어려웠다. 타브리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시장에서는 옷감과 식료품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과일을 먹기 위해서 과수원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도시가 완전히 텅 비게 되었고, 깡패들과 부랑배들은 골목에서 누구라도 붙잡으면 발가벗겨 놓았다. 대상(隊商)도 거기서 끊어지게 되었다. 깡패들은 밤에 과수원으로 가는 골목들 끝에 매복하고 있다가, 만약 어떤 불쌍한 사람이 나름대로 술수를 써서 집에 가서 먹으려고 나귀에 곡식을 싣고 오거나 광주리에 과일을 담아 오는 것을 보면, 그것을 강제로 빼앗곤 하였다. _333~334쪽, 차우 발행으로 인한 혼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