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문학길(예술기행 옛길, 새길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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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보 및 내용요약
● 새길에서 꽃피운 예술가의 작품
● 이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 문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 옛길 새길 예술여행이 시작된다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 한승원의 「목선」, 송기숙의 『자랏골의 비가』, 이승우의 「정남진행」, 위선환의 「탐진강」, 김영남의 「푸른 밤의 여로」, 이대흠의 「제암산을 본다」 등은 장흥을 무대로 한 작품들이다. 고단한 삶의 터전인 회진포 앞바다, 기암괴석과 억새평원으로 가득한 천관산, 한반도의 정남쪽 정남진, 물굽이의 한 자락을 끼고 돌아앉은 탐진강, 그리고 제암산, 억불산, 가슴앓이섬, 분홍나루에 이르기까지 장흥의 모든 곳은 숱한 문학작품의 배경이자 소재가 되었다.
지난 4월 이곳 장흥에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모였다. 장흥 출신 소설가와 시인이 안내하고 이끄는 장소들에서 예술가들은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 『장흥 문학길』은 그렇게 옛길과 새길 위에서 미술, 음악, 춤이 문학과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다. 거기에 故 이청준 작가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선두 작가가 그린 장흥 전체 문학지도 한 점과 세부 문학지도 일곱 점은 장흥만이 가진 문학의 아틀라스를 일궈냈다.
이 책의 문학가 7인 중 막내 격인 이대흠 작가는 짧지만 강렬한 어조로 선배 작가들을 호출한다. 예컨대 이청준의 소설은 탐욕 없는 흰색 같고, 한승원의 소설은 태양처럼 타오르는 정열의 붉은색이며, 송기숙의 소설은 다채로운 인간들이 모여 이루는 대동 세계를 지향하며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검은색이라고 평한다.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예술가들이 그려낸 세계는 어떠할까. 고향인 율산마을에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한승원 작가와 아내 임감오 여사와의 한때를 영상으로 담아내고(홍이현숙), 담장을 치며 집 마루 앞까지 들이치던 파도에 막막했다는 이승우 작가의 이야기에 <물이 밀려들곤 하던 집>(방정아)이 그려지고, 빗소리를 들으며 어느 선술집에서 이대흠 작가의 추임새에 맞춰 <장흥 주회도>(박문종) 한 점이 탄생한다. 심지어는 천관산 글무덤 전설을 수소문하여 찾아다니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래서 장흥은 멜랑콜리하다.(유영호)
이렇게 삶의 터전에 스며든 배경으로서의 자연은 모든 이야기의 출발이 된다. 예술의 모든 시작이 그렇듯 고향과 그곳의 소재들은 예술의 마지막까지 항상 곁에 머물러주는 이웃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고향으로 갈 수 없다. (……) 고향의 강과 산에, 길과 하늘에 사람들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고향의 강과 산, 길과 하늘이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고향의 강과 산, 길과 하늘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서 강과 산 앞에 마주 선 사람들이 보는 것은 물과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기억들이다.”(서문 중에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기획한 ‘옛길, 새길’ 프로젝트 첫 번째가 장흥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목차
감사의 말 7
서문 새길은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승우 9
이청준 이청준의 문학관 이청준의 소설길은 흰색이다 이대흠 19
이청준 작품 속 옛길을 찾아서 이청준 22
김선두 작가노트 유천재 가는 길 25
정정엽 작가노트 쓸쓸하지 않은 풍경은 모두 가짜다 30
안정주 작가노트 조율 35
한승원 한승원의 문학관 한승원의 소설길은 붉은색이다 이대흠 41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 이야기 한승원 44
이인 작가노트 장흥行 54
김지원 작가노트 수채화로 그린 글 59
황재형 작가노트 당신의 세숫물은 장흥 갯물이었습니다 63
홍이현숙 작가노트 아내에게 들켰다 67
송기숙 송기숙의 문학관 송기숙의 소설길은 검은색이다 이대흠 73
민초들의 삶의 현장에서 송기숙 76
박문종 작가노트 _ 선술집 기행 1 장흥 홍탁 주회도 81
작가노트 _ 선술집 기행 2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86
박건 작가노트 _ 랩 삶과 예술을 하나로 93
이승우 이승우의 문학관 이승우의 소설길은 초록색이다 이대흠 99
고향, 문학적 유전자의 원천 이승우 102
방정아 작가노트 가슴앓이 데칼코마니 106
윤광준 작가노트 장흥이 말해준 것들 111
위선환 위선환의 문학관 위선환의 시의 길은 직선이다 이대흠 117
걸음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다 위선환 120
김범석 작가노트 장흥, 빛과 소금과 같은 곳 126
서용 작가노트 장흥은 나와 남다른 인연이 있다 130
주호석 작가노트 자연에 대한 이해 134
김영남 김영남의 문학관 김영남의 시의 길은 곡선이다 이대흠 139
내 詩의 원천 또는 창작의 길에서 김영남 142
장현주 작가노트 1 동백 147
작가노트 2 분토리 옛 돌담 147
작가노트 3 푸른 밤의 여로 149
박수만 작가노트 시의 목소리 150
이대흠 이대흠의 문학관 이대흠의 시의 길은 동그라미다 이대흠 157
이대흠의 옛글과 새글 이대흠 160
안국주 작가노트 온통 붉은 푸른 길 167
유영호 작가노트 1 장흥 천관산 글무덤 170
작가노트 2 멜랑콜리 173
후기 장흥 문학길은 축제다 175
참여작가 약력 178
문학작품 출처 182
편집자 추천글
● 장흥의 잊힌 옛길에서 끌어올린
문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소통과 교감의 축제
장흥은 2008년 문체부로부터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받은 문학의 고장이다. 장흥이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광기행 특구로 지정된 데에는 이청준이나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 우리 문학계의 큰 별들을 배출한 문향이라는 배경이 있다. 또한 장흥은 조선조에 가사문학, 한시학이 활짝 개화되었던 전통의 문림고을이었다. 실제 조선시대 기행가사 문학의 효시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 선생을 비롯해 옥봉 백광훈, 청사 노명선, 존재 위백규 등이 장구한 가사 문학의 맥을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현대문학 등단작가도 120여 명이나 된다. 그만큼 장흥은 문학 자원이 풍부한 곳이며, 첫 전국문학인대회를 개최하는 등 한국문학의 메카라는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역사의 장을 써가고 있다.
장흥 곳곳이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마을마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서편제>, <축제>, <천년학> 등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영화 촬영지도 많다. 천관산 문학공원을 비롯해 천관문학관, 한승원 문학산책로와 해산토굴, 이청준 생가 등 문학 자원 인프라 또한 풍부하다.
이 울창한 문림의 향기를 한껏 향유할 수 있는 장흥에서 ‘장흥 문학길’ 축제가 열린다. ‘장흥 문학길’은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장흥 물축제(7.29~8.4)와 함께한다. 8월 2~3일 1박 2일간 ‘한승원 문학길’과 ‘이청준 길’을 걸으며 작가도 만나고 화가도 만나고 뮤지션도 만나는 한바탕 대동제가 열릴 예정이다. 장흥문화원과 복합문화공간 에무가 함께 기획한 이번 축제는 ‘옛길, 새길’ 프로젝트의 첫 번째 여정이다. 그 일환으로 출간된 『장흥 문학길』에서는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의 소설과 위선환, 김영남, 이대흠의 시, 그리고 김선두, 이인, 김범석, 장현주, 서용, 안국주, 박문종(이상 동양화), 정정엽, 박정아, 박수만, 김지원, 황재형(이상 서양화), 박건, 주호석, 유영호, 윤광준 안정주, 홍이현숙(사진, 영상 등) 등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옛길을 걷는 것은 잊어버린 기억을 회복하는 일이고 잃어버린 관계망을 회복하는 일이다. 옛길에서 초월과 자유를 만나면 새길이 된다. 옛길 예술여행의 목적이다. 이는 지역성을 살리며, 가치의 획일성을 뚫고, 다양성을 획득하고, 통합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세대 간을 비롯한 문화 격차가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_ 인사말 중에서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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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은 옛길 위에 놓였다. 옛길을 덮고 가리고 대신하기 위해 새로 닦인 길은 그러나 옛길을 지우지 못한다. 나는 옛길 위에 놓인 새길 위에 서서 지워지지 않은 옛길을 본다. 새길은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마땅하다. 기억이야말로 자기동일성의, 아마 유일한 근거다. 기억(만)이 존재의 동일성을 담보한다. 기억은 흩어진 시간을 이어 내가 나인 것을 증거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불러 그대가 그대인 것을 선언한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의 모음이 아니라 개별 존재들의 DNA다. 그러니까 새길이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
길들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길이다. 발자국들이 모여 된 것이 길이다. 발자국의 주인들이 달리고 사랑하고 싸우고 울부짖고 환호하며 만든 것이 길이다. 저 길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러니까 사랑하고 싸우고 울부짖고 환호하는 사람들이다. _ <새길은 옛길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서문) 중에서(11~12쪽)
글과 시 속에 끼어 있는 과거의 시간은 그대로 켜켜이 소설가와 시인의 드로잉이 되었다. 소설가의 ‘색 글’은 글로 수채화를 빠르게 그린 듯하다. 소설도 시도 산문도 결국은 자신의 흉터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 시와 소설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욕망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사랑도 어머니도 주변 인물도 풍경도 바람도 길도 보인다. 하여 ‘장흥 땅’의 아직 없어지지 않은 산의 모퉁이나 가슴앓이섬, 산등성이 돌아가는 풍경 속 옛길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답사길에서 마주친 녹슨 철 대문과 삭은 슬레이트 지붕에서 스산한 세월을 본다. 오래된 집은 녹아내리고 나무는 더욱 거대하게 자라고 인적은 드물다. 집은 쇠락했어도 소설가의 집에서 마셔본 물은 그 집의 생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과천 내 고향집 모습과 물맛이 어떠했는지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본다. _ <수채화로 그린 글> 중에서(62쪽)
풍광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장흥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때문이다. 현대문학의 걸출한 작가 셋과 한국 화단의 특별한 존재인 친구를 배출한, 인물의 산실은 과연 달랐다. 장흥이란 땅과 바다의 기억은 예술로 승화되기에 충분했다. 풍광과 인물을 동시에 머금은 고장의 풍요는 이 나라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장흥에서 살아보지 못한 도시인은 인상밖에 말할 수 없다. 바라보았던 바다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을 펼쳐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도 괜찮다. 눈앞의 풍광은 과거와 현재를 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난 바다를 보기로 했다. 이전의 작가가 햇살에 반짝이는 장흥 앞바다 물비늘을 보고 느꼈을 아름다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_ <장흥이 말해준 것들> 중에서(111~112쪽)
이 길은 내가 외지에서 돌아올 때 ‘야, 고향이구나’ 하고 포근함을 느끼지 시작하는 곳부터다. 그 지점은 읍의 정류장이고 여기서부터 집 대문까지 이르는 길이다. 나는 출생지가 장흥이기 때문에 장흥읍에서부터 집까지일 것 같지만, 그건 아니다. 강진읍에서부터 칠량, 대구, 마량을 거쳐 집에 이르기까지의 길이 모두 고향길이다. 내겐 환경적으로 여기가 편했고, 정서적으로도 유대가 깊었다.
나는 이 길을 오가며 많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집을 나설 땐 이 길 위에서 꿈을 펼쳤고, 돌아올 땐 고향의 풍광과 풍물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내 문학적 감수성은 여기에서 싹텄고 성숙해졌다. _ <내 詩의 원천 또는 창작의 길에서> 중에서(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