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의 고전 임꺽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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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강영주
저서로 『한국역사소설의 재인식』, 『벽초 홍명희 연구』, 『벽초 홍명희 평전』, 『그들의 문학과 생애, 홍명희』가 있으며, 편저(공편)로 『벽초 홍명희 『임꺽정』의 재조명』, 『벽초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가 있다. 논문으로는 「국학자 홍기문 연구」1~4, 「홍기문의 학문과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을 향한 30년의 대장정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민족 해방과 평화 통일에 헌신하고자 했던 벽초의 삶과 식민지 치하에서 상실되어가는 ‘조선 정조’를 살리고자 했던 『임꺽정』의 창작정신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분단 이후 70년이 지나는 동안 남북한의 언어와 문학은 심각하게 이질화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이질성을 극복하고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대에 『임꺽정』은 민족의 고전으로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 점에서 우리 문학이 나아갈 길을 찾아가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_책 머리에 중에서
2015년은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이 사계절출판사에서 다시 간행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1928년부터 1940년까지 벽초碧初 홍명희는 『조선일보』와 『조광』지에 『임꺽정』을 연재하며 식민지 조선 민중의 민족정신과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다. 하지만 홍명희가 해방 후 월북해 북한에서 부수상을 지낸 이유로 남한에서 이 책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다.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그리고 1954년 평양 국립출판사, 1982년 평양 문예출판사에서 『임꺽정』이 간행되었지만 원고의 상당부분이 누락된 상태였다. 1985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출간된 초판본도 「화적편」 ‘자모산성’장이 누락된 상태였다. 이후 1991년 재판이 출간 때 ‘자모산성’장이 추가되면서 대작의 전모가 드러났다.
『통일시대의 고전 『임꺽정』 연구』의 지은이인 상명대학교 강영주 교수는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 연구의 권위자로, 평생에 걸친 연구는 한국 국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지은이는 1986년 박사논문 「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에서 홍명희와 『임꺽정』에 대해 최초로 본격적인 연구를 시도했다. 이어서 1988년에는 박사논문 중 『임꺽정』을 논한 부분에 벽초의 생애에 대한 고찰을 덧붙여 「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근대 역사소설 연구의 불을 당겼다.
이번 책에는 강영주 교수가 최근까지 집필한 아홉 편의 주요 논문을 모았다. 그리고 30년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는 한편, 논문에 담기 어려웠던 『임꺽정』의 독특한 매력을 전하고자 ‘가상 좌담’ 형식으로 집필한 새 글을 서두에 추가했다. 평생의 연구와 20년 이상 대학에서 학생들과 수업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구성한 이 가상 좌담은 쉽고 편안한 방식으로 『임꺽정』의 핵심을 꿰뚫으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벽초 홍명희 연보]와 현재까지 발표된 [홍명희와 『임꺽정』 연구 논저 목록]을 수록하여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목차
우리 역사소설의 최고봉, 『임꺽정』 에 오르다
- 신세대 독자들과의 가상 좌담
1부. 대하 역사소설의 탄생
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
1. 머리말
2. 야사의 소설화 -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3. 민중성과 리얼리즘의 성취 - 「의형제편」
4. 난숙한 세부 묘사와 닫힌 전망 - 「화적편」
5. 맺음말
『임꺽정』의 연재와 출판
1. 머리말
2. 장기간 연재된 대하 역사소설 『임꺽정』
1) 드디어 연재를 시작하다 -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2) 출옥 후 연재를 재개하다 - 「의형제편」
3) 「화적편」에 진입하다 - ‘청석골’장
4) 미완으로 끝난 「화적편」 - ‘송악산’부터 ‘자모산성’장까지
3. 『임꺽정』의 출판과 그 반향
1) 조선일보사본(1939~1940)
2) 을유문화사본(1948)
3) 평양 국립출판사본(1954~1955)
4) 평양 문예출판사본(1982~1985)
5) 사계절출판사본(1985)
4. 맺음말
홍명희의 사상과 『임꺽정』의 민족문학적 가치
1. 머리말
2. 홍명희의 사상적 지향
1) 선비정신의 소유자
2) 투철한 반봉건 의식
3)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
3. 홍명희의 문학관
4. 『임꺽정』의 민족문학적 가치
5. 맺음말
2부. 『임꺽정』의 심층 탐색
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임꺽정』
1. 머리말
2. 주체적인 여성상과 남녀평등사상
3. 작품 후반 여성의식의 변모와 여성의 타자화
4. 『임꺽정』의 여성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5. 맺음말
『임꺽정』의 창작과정과 『조선왕조실록』
1. 머리말
2. 『임꺽정』의 창작과정과 주요 사료
3. 『임꺽정』의 『조선왕조실록』 수용 양상
4. 『조선왕조실록』 수용의 성과와 한계
5. 맺음말
조선학운동의 문학적 성과, 『임꺽정』
1. 머리말
2. 학자 홍명희, 조선학운동에 동참하다
3. 조선학운동의 한 성과로 본 『임꺽정』
1) 역사학적 측면
2) 지리학적 측면
3) 민속학적 측면
4) 언어학과 구비문학적 측면
4. 작중에 나타난 오류와 고증상의 문제점
5. 맺음말
3부. 동서고금의 명작과 『임꺽정』
홍명희의 『임꺽정』과 쿠프린의 『결투』
1. 머리말
2. 쿠프린과 장편소설 『결투』
3. 『임꺽정』과 『결투』의 구성 방식
1) 23개의 독립적인 장으로 이루어진 『결투』
2) 편·장·절의 각 층위에서 독립성을 추구한 『임꺽정』
4. 맺음말
『임꺽정』과 연암 문학의 비교 고찰
1. 머리말
2. 벽초와 대산의 연암 문학 수용
3. 『임꺽정』과 연암 문학의 유사점
1) 민족문학적 개성의 추구
2) 양반 비판과 민중성
3) 리얼리즘과 해학성
4. 양자의 차이점과 그 시대적 의미
5. 맺음말
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
1. 머리말
2. 역사적 진실성의 추구
3. 민중성의 구현
4. 맺음말
주석
벽초 홍명희 연보
홍명희와 『임꺽정』 연구 논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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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
200자 원고지 1만 2,000매에 민중의 전사前史를 담다
‘1부_대하역사소설의 탄생’에는 벽초와 『임꺽정』에 대해 개괄적으로 논한 첫 논문과, 그 후 작가 연구의 일환으로 『임꺽정』의 창작과정을 실증적으로 고찰하고 벽초의 사상과 문학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시도한 논문들을 모았다. 그중 1986년에 발표된 「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은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인용되었으나, G. 루카치의 이론에 의거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학문적 유행이 바뀌면서 역사적 진실성을 중시한 루카치의 『역사소설론』은 낡은 이론서로 치부되었고, 그에 따라 이 논문도 시효가 다한 서양 이론에 의거했다고 비판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논문은 『임꺽정』을 루카치의 이론에 의거해서만 논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면서 중요한 특징들을 두루 거론한 것으로, 오늘날 『임꺽정』에 대한 학계와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현대사가 식민지와 분단의 파행적인 역사로 점철되면서 홍명희 같은 유형의 지식인은 한국 지성사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한 채 오히려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재발견하고 그들이 걸어간 길을 추적한 강영주 교수의 작업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핵심 과제인 통일된 민주국가 건설과 진정한 민족문화 창조에 커다란 시사를 던진다.
시대를 앞선 자주와 평등의 사상
‘2부_『임꺽정』의 심층 탐색’에는 강영주 교수가 홍명희 연구를 마무리한 뒤 본격적인 작품 연구에 들어가 소설을 다각도에서 심층 분석한 논문들을 모았다. 강영주 교수는 홍명희 연구 과정에서 그가 당대의 남성 작가로는 드물게 대단히 진보적인 여성관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임꺽정』 중 「화적편」에만 『조선왕조실록』의 영향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원인을 추적하던 중 작가가 「의형제편」 연재를 마칠 무렵에 실록을 열람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임꺽정』은 한국 근대 역사소설 가운데 여성주의 의식을 드러낸 최초의 작품이자 실록을 본격적으로 수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홍명희는 『임꺽정』의 작가이자 민족운동가일 뿐 아니라 식민지시기에 활동한 유수한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1930년대 정인보, 안재홍, 문일평 등과 함께 ‘조선학운동’에 동참했다. 강영주 교수는 『임꺽정』 자체가 조선학운동의 한 성과물이었음을 주장하며, 이 소설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풍부한 조선의 역사와 지리 지식을 담고 있으며 조선 고유의 풍속·제도·언어·설화 등을 다채롭게 보여준다고 평한다.
근대 세계를 품은 조선 최고의 역사소설
‘3부_동서고금의 명작과 『임꺽정』’에는 동서양 문학사의 명작들과 『임꺽정』을 비교하여 고찰한 논문들을 모았다. 「홍명희의 『임꺽정』과 쿠프린의 『결투』」는 러시아 작가 쿠프린의 작품에서 구성상의 힌트를 얻었다고 한 홍명희의 말을 단서로 하여 두 소설의 영향관계를 규명한 논문이다. 여기에서 강영주 교수는 종래의 연구에서 경시되어 왔던 『임꺽정』이 서양 근대소설의 예술적 성과를 흡수하여 창작된 탁월한 근대적 역사소설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벽초의 『임꺽정』과 연암 문학의 비교 고찰」은 홍명희가 조선시대 한문학 작가 중 연암 박지원의 작품을 민족문학적 견지에서 높이 평가한 점에 착안하여, 홍명희는 임꺽정을 집필하며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을 목표했고 근대 리얼리즘의 맹아를 담고 있는 연암 문학을 이어받아 전범에 도달했다고 평한다.
「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은 식민지시기와 해방 이후의 역사소설을 각기 대표하는 두 작품을 비교한다. 강영주 교수는 『임꺽정』을 역사소설 비평의 준거로 삼고 여기에 비추어 『장길산』의 예술적 성과와 한계를 논하면서 우리시대 역사소설들이 도달해야 할 지향점을 밝힌다.
[책 속에서]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는 작가로서보다는 주로 저명한 언론인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대하 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이 있을 뿐이므로, 그는 당시 문단에서도 대체로 직업적인 문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듯하다. 더욱이 해방 후의 정치적 행적으로 말미암아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문학사적인 논의에서 역시 거의 도외시되어 왔다. 그러나 그는 도쿄 유학시절부터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삼재三才이자, “우리 문학을 창조하신 (…) 세 분”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혀온 인물이다. _‘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장에서
서양의 역사소설처럼 과거 사실의 실증적인 재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전통 대신에, 과거의 언어, 풍속, 제도 등에 대해 자의적인 묘사를 서슴지 않는 우리 역사소설의 일반적인 풍토에서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보여준 이 방면의 노력이 각별하게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꺽정』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진정한 역사적 진실성과는 무관한 채 이색적인 풍속과 고어의 재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을 살아 있게 하고 당시의 현실을 현대의 전사前史로서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리라 본다. _‘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장에서
홍명희의 『임꺽정』은 이광수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식민지시기 대부분의 역사소설들과는 그 유형을 달리하는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다. 후자가 현실도피적인 의도에서나 교훈적인 이념의 제시를 위해 흔히 역사의 실상을 왜곡하는 낭만주의적 역사소설의 유형에 속한다면, 이 작품은 거의 유일하게 지나간 시대를 현대의 전사로서 진실되게 묘사하려는 리얼리즘 역사소설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식민지시기 역사소설의 주류가 봉건 지배층 내부의 시각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왕조사 중심의 역사소설인 데 반해, 민중의 동향을 통해 역사를 파악하려는 민중사 중심의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도 독특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_‘홍명희와 역사소설 『임꺽정』’장에서
『임꺽정』은 ‘조선 정조情調’를 적극 표현함으로써 민족문학적 개성을 탁월하게 성취한 작품이다. 홍명희는 ‘작가의 말’에서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임꺽정』은 서양 리얼리즘 소설의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흡수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투의 문체를 취하여 구수한 옛날이야기의 한 대목을 듣는 듯 한 친숙한 느낌을 준다. _‘홍명희의 사상과 『임꺽정』의 민족문학적 가치’장에서
태백산본을 원본으로 하여 사진판으로 실록 전체를 축쇄한 한장漢裝영인본 888책이 『이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에 걸쳐 경성제국대학에서 간행되었다. (…) 1934년 9월 4일 「의형제편」 연재를 마치고 9월 15일부터 「화적편」 연재를 시작하기까지 열흘 남짓 쉬는 동안 홍명희는 실록의 내용을 적극 수용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향으로 구상을 가다듬었던 듯하다. 당시 『조선일보』 연재를 통해 독자들이 읽은 「의형제편」 말미의 시간적 배경은 1560년이 되는 셈이었는데, 홍명희는 아마도 나중에 수정할 요량으로 슬그머니 작중의 시간을 앞당겨놓고, 실록의 기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화적편」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_‘『임꺽정』의 창작과정과 『조선왕조실록』’장에서
홍명희는 월북 인사인데다가 뚜렷한 학문적 저서를 남기지 않은 까닭에, 아직까지 학자로서의 그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홍명희의 저서로는 역사소설 『임꺽정』을 제외하면 칼럼집 『학창산화』가 있을 뿐이며, 그 밖에 신문과 잡지에 실린 단편적인 논문, 구술문, 칼럼, 대담 등이 산견된다. 그런데 이러한 저술들을 검토해보면 홍명희는 『임꺽정』의 작가일 뿐 아니라 조선의 언어, 문학, 역사, 풍속에 정통한 학자로서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월북 이후 홍명희가 북한 학계를 총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의 초대 원장으로 선임된 것은 그와 같은 학자로서의 수준과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_‘조선학운동의 문학적 성과, 『임꺽정』’장에서
식민지시기 대부분의 역사소설들이 흥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든 교훈적 이념을 제시하기 위해서든 역사의 실상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과는 달리, 『임꺽정』은 과거의 역사를 현대의 전사前史로서 진실하게 묘사하려는 리얼리즘 역사소설에 속한다. 그 점에 뚜렷한 사관을 지니고 역사적 진실성을 추구하려 한 작가이자 역사학자로서의 홍명희의 역량과 특징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_‘조선학운동의 문학적 성과, 『임꺽정』’장에서
분단 이후 남한에서 창작된 역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황석영의 『장길산』은 식민지시기 최고의 역사소설인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과 종종 비교되어 왔다. 사실 조선시대 의적의 활약상을 다룬 소재면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체는 지배층이 아니라 민중이기 때문에 민중들의 삶을 통해서만 역사의 움직임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민중사관에서, 그리고 해당 시대의 풍속과 사회상을 광범하고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리얼리즘의 정신과 수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장길산』은 『임꺽정』을 연상시킨다. _‘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장에서
장길산 일당은 활빈도를 자처하고 명실상부한 의적활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봉건왕조를 타도하고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이상 국가를 수립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을 규합하기 위해 미륵신앙이라는 민중적 이념까지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장길산』에서 장길산 일당이 미래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가지고 봉건체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그리고 있음은 분명 이 작품이 『임꺽정』에 비해 진일보한 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이처럼 장길산 일당을 확고한 전망을 가지고 반봉건 투쟁에 나선 혁명적 집단으로까지 묘사한 것이 과연 역사적 진실성을 올바로 구현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_‘홍명희의 『임꺽정』과 황석영의 『장길산』’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