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기절했다 (사계절 동시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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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최수진
그린이 : 홍성지
책정보 및 내용요약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수진 시인은 기성 시인들의 흐름이나 방향을 좇아가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들여다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해 냅니다. 화려한 꾸밈이나 기발한 발견 없이도 아이들 눈에 맺힌 친숙한 세상과 천진한 동심을 펼쳐 보이고 있어, 마치 아이들의 일기장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간결하게 표현된 홍성지 화가의 그림은 친밀하고 유쾌한 상상력을 채워 가며 동시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합니다.
목차
1부. 귀신과 악수하기
반만 먹었다│멍!│왼손잡이│콜록콜록│지하철 물뱀│자동 파마│좌회전 우회전│아이스크림│집으로 가는 길│엄마 베개│반달│귀신과 악수하기│김
2부. 개미의 일기
낙엽 과자│꿀벌이 하는 말│개미의 일기│아기구름│비와 달│할미꽃│오르막길│부끄럼쟁이│가을 운동회│강아지│숨바꼭질│오리의 인사│무서운 손님│햇빛 가득 담긴 운동장에서│울보 개구리
3부. 웃음 충전
꽃게 가족│저울│키│조용한 친구들│횟집 어항│웃음 충전│방귀 가족│짜장도사 짜증도사│벌레가 기절했다│별 엄마│동물원 원숭이가 고향에 보내는 편지│차가운 아파트
4부. 다람쥐의 실수
무지개 기차│조용한 합창│산타야 천천히│아빠 손│무서운 꿈│솜달팽이│풍선 나무│지리산의 밤│다람쥐의 실수 1│다람쥐의 실수 2│주소
해설│ 천진한 아이가 쓴 일기 같은 동시_김이구 어린이문학평론가
편집자 추천글
랄랄라, 동시를 부르는 마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세계를 좀 더 넓고 깊게 알아 가는 동시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습득해 가는 언어 감각은 놀랍기만 하다. 눈으로만 인지하던 세계를 귀와 입을 통해 새로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들에게는 홀로 사유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이 생겨나고, 그렇게 자기만의 상상 세계로 한 걸음씩 내디딘다.
이때 아이들이 언어 감각과 상상력을 재미있게 익히며 생각의 확장을 이루도록 이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마트폰, 컴퓨터, 텔레비전, 게임으로 만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주변의 작은 사물, 친구, 가족, 동식물 등 생명력을 지닌 존재들을 아이들이 직접 보고 느끼고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나’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간과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동시는 간결하고 리듬감 있어 아이들이 소리 내어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또한 작품마다 한 편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명료한 서사를 읽어 나가는 동안 ‘왜’ ‘어떻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언어화했는지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도와준다. 동시를 눈으로 읽고 입으로 발음해 보면서 아이들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흡, 행과 연 사이의 흐름을 자기만의 속도로 이해해 간다. 그러면서 일상에 맞닿은 친숙한 상상을 시작으로 자기만의 생각을 풍부하게 꾸려 나간다.
최수진 시인의 『벌레가 기절했다』는 아이들에게 함께 동시를 읽어 보자고 권하기에 더없이 좋은 작품이다. 동시집에 실린 쉰한 편의 시는 대부분 소소한 일상을 노래한다. 친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느껴지고,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일들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공감하며 즐길 수 있다. 대체로 시들이 간결하면서도 운율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읽는 동안 노래 부르듯 절로 입을 흥얼거리게 된다. 자, 그럼 지금부터 즐거운 동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랄랄라~!
우리들 일상에 자박자박 다가오는 명랑한 동시 발자국
『벌레가 기절했다』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귀신과 악수하기’에서는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면서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려 낸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가다 접으면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를 포착한 시 「지하철 물뱀」은 흘러내리는 빗물을 “물방울이 똑똑 / 금세 / 물뱀이 되어 기어간다”고 표현하면서 읽는 이의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수업이 끝났다고 거침없이 환호하고 달려가다가 좁은 길에서 어른들을 맞닥뜨리니 장애물이라며 멈칫하고(「집으로 가는 길」), 한밤중 불을 끄고 자면 귀신이 나타나 손을 잡을까 봐 주먹을 꼬옥 쥐고 자는 장면에서는(「귀신과 악수하기」) 살며시 웃음이 어린다. 눈 감고 하품하다가 저도 모르게 엄마 베개를 물어, 슬쩍 맛보았다는 표현은 언제 읽어도 사랑스럽다.
자다가 눈을 감은 채 / 하품을 했다 / 아~흡! / 엄마 베개를 조금 먹어 버렸다 / 베개 모퉁이를 물고 냠냠 / 딱 엄마 맛이다 (「엄마 베개」 전문)
2부 ‘개미의 일기’에서는 가족, 집 안팎의 동물들, 철마다 바뀌는 자연 현상을 마주하는 아이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에 슬며시 귀 기울인다.
화자인 아이는 눈에 들어오는 존재들에게 말을 건네거나 이름을 부르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청하기도 한다. 맑은 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에게 ‘아기 구름’이라고 부르며 “오늘은 / 네가 주인공이야”라고 말해 주고(「아기 구름」), 시끄럽게 지저귀던 딱새가 조용해지자 “내가 쳐다보니까 / 왜 갑자기 조용한 척하니?” 하고 물어본다(「부끄럼쟁이」). 이러한 말 걸기는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아이들의 관심과 애정을 자연스레 나타낸다. 그 친밀한 관심과 세밀한 관찰력을 시상으로 좀 더 재미있게 발전시킨 작품도 있다.
낙엽이 푹 / 커다란 발이 쿵 / 꽃잎이 살짝 / 절레절레, 휴~ / 그래도 과자 하나는 들고 / 집으로 왔다 (「개미의 일기」 전문)
「개미의 일기」는 주어와 의성어? 의태어만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며 재치 있게 상황을 전하는 작품이다. 무척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개미는 다행히도 과자 하나를 잘 챙겨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접속어 ‘그래도’의 효과로 장황한 설명이나 감정의 피력 없이도 개미의 상황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드러낸다.
3부 ‘웃음 충전’에서는 청량한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일상의 풍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작품 대부분에서 유머 감각과 위트가 발휘되는데, 「웃음 충전」이나 「방귀 가족」 에서는 가벼운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엄마가 아이 콧구멍에 두 손가락을 꽂아 웃음을 충전한다거나(「웃음 충전」), 아빠 방귀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니 회사에서 다 뀌는 것 같다는(「방귀 가족」) 발상이 그러하다.
꽃게는 옆으로만 간다면서요? / 우리 집에도 꽃게가 두 마리 있어요 / 아빠는 밤늦게 오면서 / 벽을 타고 옆으로 슬슬 와요 / 형도 오락실에 갔다 오면서 / 벽을 타고 옆으로 슬슬 들어오는 걸 / 나는 봤어요 (「꽃게 가족」 전문)
「꽃게 가족」은 ‘벽을 타고 들어오는 아빠와 형의 걸음’에서 ‘옆으로 걷는 꽃게 걸음’을 연상시키며 웃음을 자아낸다. 빵 터지는 웃음은 아니지만, 사태를 관찰하는 아이의 눈을 통해 공감을 자연스레 이끈다. 이는 자기만의 감각과 발상으로 시상을 전개해 가는 최수진 시인의 장점이기도 한데, 「벌레가 기절했다」에서는 그러한 면모가 더욱 돋보인다.
내 머리에 / 혹이 생겼어요 / 도망치는 친구를 쫓아가다가 / 부딪혔거든요 / 유리는 너무 투명해서 / 꼭 없는 것 같아요 / 창밖을 보니 / 벌레가 전속력으로 날아와요 / 역시나 창문에 ‘퍽’ 부딪히더니 / 스르륵 힘없이 떨어져요 / 난 혹시나 / 벌레도 혹이 났나 싶어 / 자세히 들여다봤어요 / 기절했어요 / 아니, /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아요 / 잠시 후에 다시 보니 / 벌레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해요 / 그러고는 하르르 다시 날아가요 / 죽었다고 생각한 게 / 미안했어요 (「벌레가 기절했다」 전문)
「벌레가 기절했다」는 날벌레가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다시 날아가는 것을 관찰해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혀 혹이 났던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킨다. 작디작은 벌레에게 일어난 일임에도 화자인 아이는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며 사물의 상태와 움직임에 감응하고 공감과 위로를 느낀다. 읽는 이는 한 발짝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4부 ‘다람쥐의 실수’에서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 활달하고 풍성한 상상을 놀이처럼 펼쳐 놓은 작품들이 이어진다.
기억력이 나빠 자신이 묻어 둔 도토리를 한 개밖에 못 찾고, 도토리를 주워 가면서도 한 알을 남겨 놓고 간다는 「다람쥐의 실수」 1, 2는 남의 실수를 재미있어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 전반에 흐르는 따스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지리산의 밤」은 산마을에 밤이 오자 온갖 아기 동물들이 찾아와 빨랫줄에 걸린 옷을 입고 노는 광경을 그렸다. “토끼는 귀에 아빠 양말을 걸치고 / 아기곰은 내 팬티를 입”고, “오소리는 누나의 보들보들한 블라우스를 입고 / 다람쥐는 엄마 모자를 꼬리에 걸치고 / 아기멧돼지는 할머니 통치마를 입”은 채 서로 마주 보며 웃어 댄다. 이 모습은 곧 동화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다.
눈앞에 어떤 장면이 그려지면서 가슴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건 최수진의 동시를 읽는 동안 자주 겪게 되는 경험이다. 갑자기 푸드덕거리는 오리를 보고 “아기 오리도 무서운 꿈을 꿨나 봐요/엄마 오리가 꼭 안아 줄 거예요”(「무서운 꿈」)라고 한다든가, 크리스마스 날 교회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를 보고 돌아오던 길에 “아빠가 감싸 안은 내 어깨는 / 솜이불을 덮은 것 같아요 // 까만 아빠 손 위에 / 흰 눈이 사락사락 내려요”라고 할 때면 읽는 이의 마음도 포근히 감싸 주는 것만 같다.
「풍선 나무」나 「무지개 기차」도 시로 그린 동화라 할 법하다. 풍선을 잡고 둥실둥실 하늘을 나는 아이들과 아기 새의 모습, 무지개를 타고 달려가는 아이와 동물 들의 모습은 동심 한가운데 어우러지는 평온과 행복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닐까. 거짓과 위선 없는 그 세계에 한없이 머물고 싶어서, 마지막 장을 덮기가 아쉽기만 하다.
아는 척 하지 않는, 순도 백퍼센트의 맑은 동시집
사계절출판사는 권오삼, 권영상, 김은영, 신현득, 유미희, 위기철, 이수경 등 문단과 독자의 사랑을 두루 받는 시인들의 작품으로 재기 넘치는 동시 세계를 탄탄히 구축해 왔다. 아이들의 일상 풍경과 그 너머에 자리한 상상의 세계를 한 권 한 권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며 독자적인 색깔을 꾸려 온 것이다.
그동안은 별도의 시리즈 없이 주 독자층에 따라 저학년문고나 중학년문고에 포함되어 반가운 소식을 이어 왔다. 김은영의 동시집 『아니, 방귀 뽕나무』는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정완영의 동시조집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은 2,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권영상 시인의 동시집 『구방아, 목욕 가자』는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분기 마다 발표되는 문학나눔 도서에 꾸준히 선정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좋은 동시문학상 수상작 『짝꿍이 다 봤대요』(유미희 동시집)를 비롯해 2015년 올해의 좋은 동시집 에 『갑자기 철든 날』(이수경 동시집)과 『수리수리 요술 텃밭』(김바다 동시집)이 함께 선정되며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사계절출판사는 독자들과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사계절 동시집’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사계절 동시집의 첫 번째 책 『벌레가 기절했다』는 국내 동시 문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뜻깊은 동시집이 되기에 충분하다. 『벌레가 기절했다』는 2010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수진 시인의 첫 동시집으로, 아이들의 일상을 소박하게 그려 내면서도 현실과 상상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동심 본연에 가 닿는다는 점에서 기존 동시집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최수진 시인은 천진한 아이로서 시를 쓰지만 천진한 아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망이 배어 있지 않다는 데서 그의 동시는 어린이 시와 닮았지만, 세상을 그려 내고 싶은 바람이 받쳐 주고 있어 공감과 웃음과 평화를 풍요롭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어린이 시를 넘어선다. 그의 동시가 샘물처럼 맑으면서도 봄바람처럼 다사로운 이유이다. -‘해설’에서
평범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 꿈틀대는 아이들의 세계는 끝없이 넓고 찬란하다. 최수진 시인은 가만히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고는 똑똑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 귀 기울인다. 시인이 전하는 동시의 힘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없이 친밀하고 따스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말한다. 어른이 되면 잊고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아이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새로운 것들이 느껴진다고. 그러니 어른이 되어도 그때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를 바란다고. 그 가치를 이끌고 일깨우는 것이 문학이 걸어 나가는 길이기에, 이제 막 한 발 내디딘 최수진 시인의 다음 행보를 열렬히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