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요술 텃밭 (사계절 동시집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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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시문학회 '2015 올해의 좋은 동시집'
저자소개
지은이 : 김바다
그린이 : 이영림
책정보 및 내용요약
한 편 한 편 읽는 동안 도시의 옥상 텃밭, 시골의 논밭 등 농사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동시집에는 벼, 밀, 콩처럼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물과 황각다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등 다양한 곤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상적입니다.
시인은 특유의 꼼꼼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단순히 ‘풍경’으로 보는 자연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현실 가까이 자연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따스하게 전합니다. 간결하게 표현된 이영림 화가의 그림들은 동시 읽는 재미에 발랄한 상상력을 더합니다.
목차
1부. 마술 주전자
마술 주전자│조롱박 형제│생명의 손│겨우내 토닥토닥│빗물 받을 그릇이 모자라!│마술 주전자│오르락내리락│까치는 알지│꼬마 논│영천 감자 옥천 감자│빗방울 총알│노란 꽃│영양 밥│우렁이 농부
2부. 춤추는 허수아비
노들 텃밭의 참새들│수수밭에 가거들랑│춤추는 허수아비│오리 농부│탈곡기│매통 방아 │흙 이불│요즘은│벌들도│손님 까마귀│두꺼비 친구│물닭│소나무│나무의 울음
3부. 햇볕이 쨍쨍
암꽃의 지혜│내 자식 어때요?│콩 타령│선비잡이콩│콩네 식구들│감자│밀사리│밀껌│햇볕이 쨍쨍│햇과 묵은│앉은뱅이 밀 1│앉은뱅이 밀 2│누구 이름일까?
4부. 위장술의 천재
목화 다래│세상 여행│지열│왕사마귀 애벌레│모래톱│모래로 만든 실타래│황각다귀│위장술의 천재│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에게 경고함│캥거루 방귀│부분 일식│바람꽃│죽방 멸치
편집자 추천글
날마다 신기한 요술이 펼쳐지는 텃밭으로 놀러 오세요!
누구에게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명장면’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어떤 이에게는 셋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순간, 어떤 이에게는 강렬한 감동을 느낀 영화나 책, 음악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 김바다에게는 농사짓는 부모님과 자연을 벗 삼아 살았던 어린 시절이 그러하다.
경남 합천에서 나고 자란 김바다 작가는 다양한 식물과 곤충을 가까이 살펴보고, 철 따라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유로이 자랐다. 그동안 작가가 여러 작품을 통해 전해 온 건강하고 유쾌한 정서는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번 동시집 『수리수리 요술 텃밭』을 통해 한층 더 깊은 시선으로 풍요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역시 작가의 실질적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살다가 옥상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간 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작은 텃밭을 하나둘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고무통, 스티로폼 상자, 아기 목욕통에 흙을 담고 씨앗을 뿌리고 채소와 곡식을 기르며 도시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던 일상을 보낸다.
빈 화분, 상자 텃밭, 조그만 땅에서라도 씨앗을 심고 가꿔 보세요. 사람의 땀과 정성, 자연의 힘, 즉 흙과 햇빛, 물이 합해지면 텃밭은 요술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텃밭이 부리는 요술 구경을 하다 보면 우리의 발은 풍선 신발을 벗어 던지고 힘껏 땅을 딛고 서 있을 거예요. _‘시인의 말’에서
이렇듯 『수리수리 요술 텃밭』은 작가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자연과 사람이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모습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총 4부로 구성된 『수리수리 요술 텃밭』은 공간과 소재를 달리하며 살아 숨 쉬는 자연의 풍경을 그려 낸다. 1부 ‘마술 주전자’가 도시에서 만들 수 있는 작은 텃밭들을 중심으로 한다면 2부 ‘춤추는 허수아비’는 남쪽 지방 어느 텃밭의 농사짓는 모습을 넉넉하게 담는다. 3부 ‘햇볕이 쨍쨍’은 벼, 밀, 콩 등 식재료가 되는 식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4부 ‘위장술의 천재’에서는 황각다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등 텃밭을 찾아온 생소한 이름의 곤충들을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을 읽은 뒤 아이와 함께 작품 속 식물과 곤충들을 찾아보는 것도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자, 그럼 우리 함께 텃밭으로 놀러 가 볼까?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명장면들
1부 ‘마술 주전자’에서는 옥상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을 만날 수 있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엄마의 모습은(「오르락내리락」) 농사짓는 게 정성과 인내를 꾸준히 필요로 하는 일임을 보여 주고, 분홍색 아기 목욕통에 꼬마 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짓자 동네 할머니들이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는 장면은(「꼬마 논」) 살며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추운 겨울, 눈이 내려 텃밭의 곡식과 채소를 따스하게 감싸 주는 모습은 참으로 고즈넉하다.
꽁꽁 언 / 옥상 텃밭 위에 / 함박눈이 쌓여 / 겨우내 토닥토닥 / 겨울잠 재우고 있다 // 봄부터 곡식과 채소 / 잘 길러 내려면 / 겨울 동안이라도 / 푹 쉬어야 한다면서 / 두꺼운 이불 덮어 준다 // 함박눈은 / 온몸에 담아 온 / 하늘 기운 / 사르락사르락 내려 주며 / 겨우내 토닥토닥 / 자장가 불러 준다 (「겨우내 토닥토닥」 전문)
2부 ‘춤추는 허수바이’에서는 청량한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남쪽 지방 야외 텃밭의 풍경이 펼쳐진다.
탈곡기는 밀, 보리, 콩, 벼 등 곡식들을 멍석 위에 터느라 바쁘고(「탈곡기」), 매통에 벼를 부으니 덩실덩실 엉덩이춤을 추며 벼의 겉옷을 벗기는 매통 방아(「매통 방아」)도 농사의 흥을 맘껏 느끼는 중이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다는 건 결코 이상적인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참새들이 논밭을 오가며 애써 농사지은 곡식을 자꾸 훔쳐 먹자(「노들 텃밭의 참새들」) 좀 더 그럴듯한 허수아비로 바꿔 세운다.
논두렁에 서 있는 허수아비 / 번쩍 펄럭거리고 깔깔대며 춤춘다 // 가만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 속지 않는 참새들 때문에 / 번쩍 펄럭거리고 깔깔대며 웃는 / 납작이 허수아비가 / 임무 교대하러 나왔다 //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 논두렁에서 앞뒤로 돌고 / 위로 번쩍 펄럭 뛰어오르고 / 깔깔대며 춤추는 허수아비 / 벼 따 먹으러 오는 참새들 / 춤추는 허수아비 보고 놀래서 / 한동안 접근 못 하겠다 / 배 쫄쫄 굶어도 / 벼 못 따 먹겠다 (「춤추는 허수아비」 전문)
그럼에도 모든 일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 다시 고요하게 흘러간다. 흙 속에 씨앗 심고 물을 뿌려 보살펴 주니, 얼마 뒤 새싹들이 연둣빛 머리를 슥 내밀고(흙 이불」), 오리들은 논을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해충을 잡아먹고 벼를 지켜 주며(흙 이불」) 든든한 역할을 해 준다.
이토록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에도 적잖은 고충이 자리 잡고 있다. “벌들도 젊은이처럼 / 도시로 떠나 버리면/ 농촌의 채소와 과일나무 / 꽃가루받이는 누가 하나요?”(「벌들도」) 묻는 안타까운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고, 농사철을 몰라도 돈만 있으면 도시 마트나 시장에서 한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사 먹는 현실을 꼬집는 대목에서는 가슴 한쪽이 뜨끔해진다(「요즘은」).
3부 ‘햇볕이 쨍쨍’은 벼, 밀, 콩 등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물들을 중심으로 꾸며진다. 뜨거운 햇살을 머금고 밀과 보리, 오이, 감자 등이 자라나는 신기한 순간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자연의 목소리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선다.
햇곡식 햇밤 햇사과 햇감자 / 갓 수확해서 싱싱한 / 햇살이 만든 작품들 // 묵은지 묵은쌀 묵은닭 묵은해 / 오래되어 나이가 많은 / 시간이 만든 작품들 (「햇과 묵은」 전문)
또한 작가는 거뭇하게 익은 밀 껍질을 벗겨, 마치 껌을 씹듯이 꼭꼭 씹어 먹던 어릴 적을 추억하고(「밀껌」), 돈이 안 된다고 밀 농사를 짓지 않던 시절, 누룩을 만들려고 앉은뱅이 밀을 가꾸다 발견한 전통술 ‘막걸리’(「앉은뱅이 밀 2」)의 유래를 전하며, 홍미, 은조, 백석, 각시찰, 흑대구 등 우리 땅에서 자라던 토종 벼(「누구 이름일까?」)의 흥미로운 이름을 알려 주기도 한다.
4부 ‘위장술의 천재’에서는 무엇보다도 황각다귀,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등 텃밭을 찾아온 다양한 곤충들을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제대로 날지도, 물지도 못한다는 황각다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게 되고(「황각다귀」), 몰래몰래 즙을 빨아먹어 콩 농사를 힘들게 하는 주범,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에게는 레드카드를 꺼내 보이며 ‘퇴장!’이라고 외치고 싶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애벌레는 / 개미와 똑같이 생겼어 / 개미처럼 기어 다니며 / 콩밭 주인을 속이네 // 다 자라서는 / 노린재처럼 딱딱한 갑옷 입고 / 잘록한 개미허리 하고서 / 이 콩 저 콩 콩밭 위를 날아다니네 // 잘록한 허리 보면 개미 같고 / 딱딱한 갑옷 보면 노린재 같고 / 개미야? 노린재야? / 위장술의 천재답게 / 알쏭달쏭 구분이 안 되네 (「위장술의 천재」 전문)
더불어 4부에서는 바람결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바람꽃」), 파도가 드나들며 새겨 놓은 바다 풍경(「모래톱」), 달과 해가 잠깐 동안 서로를 뜨겁게 감싸 안는(「부분 일식」) 장면이 하나둘 펼쳐진다.
철 따라, 시간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변주하는 ‘자연의 명장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숨 쉬고 살아가는 이 순간, 이 땅, 가장 크게는 ‘지구’를 소중히 여기고 바르게 지켜 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동시가 필요한 시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낯선 아이들…….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은 ‘체험 학습’으로서 기능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바다나 논밭, 산과 꽃과 나무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가뭄이 너무 심해 쌀 생산량이 극심하게 감소했다’거나 ‘홍수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고 가축과 지역 주민이 고립되어 있다’는 등의 뉴스도 그렇다. 안타까운 감정은 들겠지만 그것을 심각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무지한 까닭이다.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살고 있어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난 지방의 많은 소식은 도시 아이들에게 낯선 세상의 먼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동시의 울림은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것이 강하고 나지막한 소리가 더 멀리 가 닿듯, 동시 한 편 한 편이 전하는 진심은 든든하게 꽉 차 있다. 『수리수리 요술 텃밭』은 세상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자연의 모든 순간을 유쾌하게 그려 낸다. 그 기운이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니 빽빽한 학습서와 교과서를 잠시 내려놓고 이 책을 펼쳐 보자. 동시를 읽자. 아이들과 함께 땅을 디디고, 한 발 한 발 씩씩하게 걸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