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토끼 데일리 비가 토끼 세계에서 영웅이 된 사연!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물고 있는 데일리 비를 보면 궁금증이 확 일어납니다. 데일리 비는 누가 봐도 토끼인데,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답니다. 자신이 원숭이인지 코알라인지 산미치광이인지 묻습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묻는 것 같은데, 질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나름 기준이 있습니다. 나무를 중심으로 사는 곳을 나무 위, 나무줄기, 나무 아래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지요. 데일리 비는 생태적으로 관찰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 토끼들이 겁에 질려 데일리 비에게 달려옵니다. “재지 디가 나타났어!” 하고 외치며 토끼들은 굴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데일리 비는 그 난리 통에도 꼼짝 않지요. 데일리 비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위험천만한 재지 디에게 먼저 말을 겁니다. 재지 디가 자신이 족제비라고 일러 주지만 여전히 태연합니다. 족제비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니까요. 이번에 데일리 비는 재지 디의 정체를 알아가고자 합니다. 어디서 사냐고 물어볼 때에도, 역시 물에서 사는지, 물가에서 사는지, 땅에서 사는지, 물과 땅을 나누어 묻습니다. 채소를 먹는지, 과일을 먹는지, 그도 아니면 곤충을 먹는지 묻지요. 그때 재지 디가 “난 토끼를 먹어. 바로 너 같은 토끼!” 하고 말하자, 답답한 데일리 비는 “내가 토끼야?” 하고 반문을 합니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재지 디는 데일리 비를 잡아먹으려고 와락 달려듭니다. 어이없게 당하는 걸까? 싶은데 데일리 비는 본능적으로 몸을 휙 돌려 그 큰 발로 재지 디를 냅다 걷어찹니다.
숨었던 토끼들이 굴 밖으로 나와 “넌 영웅이야, 데일리 비!” 하고 외칩니다. 읽는 이도 마음이 놓이고 흐뭇해집니다. 얼떨떨하지만 재지 디도 물리치고 드디어 데일리 비가 자신이 누군지도 알게 되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데일리 비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내가 영웅이라고? 난 토낀 줄 알았는데…….” 데일리 비는 정말 정말 못 말리지요.
좀 모르면 어때? 좀 엉뚱하면 어때? 천천히, 천진하게 나와 세상을 알아가는 법
데일리 비는 순순한 눈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는 아이와 닮았습니다.
집과 밖의 차이는 무엇인지, 어떤 것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 등, 아이는 매순간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익혀야 합니다. 적절한 판단을 얻기까지 아이는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나름의 질문을 던지고, 실수도 하면서,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 갑니다. 다양한 경험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아이들의 특징이 데일리 비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데일리 비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질문을 할 때 보면 데일리 비 나름대로 세상을 관찰하고 해결책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도 합니다. 재지 디가 위험한지 아닌지 알 수 없었던 것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천진함 때문이겠죠.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해결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자기 발이 왜 이리 큰지 고민하던 데일리 비는 족제비를 뻥 차 버릴 때 큰 발이 쓸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영웅이라고?』는 세상을 향해 질문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어린아이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데일리 비를 통해 ‘엉뚱하면 어때? 틀에 박힌 결론을 따라하지 말고 순수하게 질문해 봐!’ 하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순수함에서 나오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따라옵니다.
데일리 비처럼 아이들은 ‘나 누구지?’ ‘나 어디 살아야 할까?’ ‘오늘 저녁으로는 뭘 먹지?’ ‘내 얼굴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겁니다. 발랄하게 말하는 아이에게 진지하게 대답하는 재미없는 어른이라면, 데일리 비를 한번 흉내라도 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