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붓 (사계절 그림책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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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2012 겨울방학 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권사우
그린이 : 권사우
책정보 및 내용요약
『신기한 붓』을 쓰고 그린 권사우 작가는, 『나쁜 어린이표』, 『오줌 멀리싸기 시합』,『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수일이와 수일이』 등에 그린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가 그림 기법을 달리하여, 채색화로 처음으로 붓을 든 그림책이 바로 『신기한 붓』입니다. 작가는 『신기한 붓』을 완성하는 데에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과 공을 들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할 만큼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옛이야기로 전해지던 작품입니다. ‘신기한 붓’은 중국과 우리나라 북부 지역에서 전해내려 오던 옛이야기입니다. 이 옛이야기를 홍쉰타오가 『신필마량』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시켰고, 더욱 널리 알려져 중국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붓’은 옛이야기지만 『신필마량』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기에, 『신필마량』에 대한 원작 계약을 체결하고,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작가가 다시 쓰고 그리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붓』은 10년 동안 최고의 장면을 그려내려고 애쓴 작가의 공이 담긴 작품이면서 한편으로는 긴 시간 동안 널리 사랑받은 옛이야기의 단단한 힘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편집자 추천글
반복과 점층으로 살려낸 옛이야기의 즐거움
마량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붓 한 자루도 살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마량은 원님을 그리고 있는 화공을 보다가 쫓겨난 뒤로, 더욱 붓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러다가 마량은 꿈에서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한테 신기한 붓을 건네받습니다.
마량의 붓 끝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바위에 그린 수탉은 ‘꼬기오오!’ 하면서 살아나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그려 준 밥은 ‘와 밥이다!’ 하는 아이들의 외침을 이끌어 냅니다. 힘겹게 밭을 갈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그려 준 황소는 ‘움머어!’ 하고 살아납니다. 이렇게 마량은 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도와주고, 곧 원님도 신기한 붓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욕심 많은 원님은 마량을 잡아 오게 합니다. 마량은 그림을 그려 달라는 원님에게 두꺼비를 그려 줍니다. 이번에도 두꺼비는 ‘펄쩍!’ 하고 살아납니다.
마량이 그린 그림은 반복적으로 살아납니다. 반복의 즐거움은 옛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층층이 이야기를 쌓아가는 즐거움에서 독자들은 점점 더 흥미로운 상황을 기다리게 됩니다. 또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의성어, 의태어 등으로 집약적으로 표현하여, 읽는 맛을 살려 주었습니다.
마량이 감옥에 갇히고, 탈출을 시도하는 부분에서 이야기 흐름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붉은색 배경은 긴장감을 고취합니다. 감옥에서 빠져나와 숨 가쁘게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긴 설명이 없습니다. ‘저놈 잡아라!’ 하는 한 문장으로 모든 상황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마량에게서 신기한 붓을 빼앗은 원님은 제 손으로 원하는 것을 그립니다. 원님이 그림을 그리는 대목에서도 다시금 반복의 재미가 드러납니다. 황금덩이로 그린 것은 똥 덩이가 되고, 돈 나무로 그린 것은 뱀 나무가 되어 버립니다. 이 대목에서도 ‘아이쿠 냄새야!’, ‘에그머니나!’ 같은 추임새를 넣어 읽는 맛을 배가하였습니다.
종국에 욕심 많은 원님은 파국을 맞습니다. 원님이 황금산으로 나아가는 장면과 큰 파도가 이는 장면은 극적으로 연출됩니다. 클로즈업된 원님의 얼굴은 욕심과 불안으로 뒤엉켜 있어, 긴장감이 극에 달합니다. 또한 전체 화면을 꽉 채우며 산처럼 높이 일어난 파도는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더 세게, 더 세게 바람을 그려라!’ 하며 목청을 돋우던 원님은 결국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 버립니다.
『신기한 붓』에서는 반복의 재미와 클라이맥스의 고조를 통해, 변화무쌍한 화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이러한 연출 덕분에, 마량이 욕심 많은 원님과 싸워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맑고 고운 그림 안에 살아 있는 생생한 디테일과 캐릭터
낱낱이 그림을 보면 볼수록, 섬세한 선과 고운 색에 눈길이 떠나지 않습니다. 작은 나뭇잎 하나에도 작가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곱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한지를 여려 겹 포개어 붙였습니다. 얇은 한지를 포개어 붙여서 두툼하게 만들어, 그림의 농도를 자유자재로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배접한 한지에 물감을 여러 번 칠해서 색깔을 올렸습니다. 한 번에 색을 입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체감을 살리고 디테일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섬세한 디테일과 함께 생생한 캐릭터 연출은 작품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한몫했습니다. 마량의 귀여운 표정과 몸짓은 올곧은 마량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또한 원님의 표정은 압권입니다. 두꺼비를 떠올리듯 뒤룩뒤룩 살이 붙은 얼굴, 신기한 붓을 잡고 시시덕거리는 입매, 깜짝 놀라는 눈, 신 나서 손을 활짝 펴 들고 있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악인이지만 그 욕심도 귀엽게 봐 주는 작가의 마음이 살짝 드러난 듯합니다.
선한 삶을 지지하는 보편타당한 주제 의식
『신기한 붓』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요? 현실에서 누군가 신기한 붓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원님처럼 갖고 싶은 물건부터 그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마량에게 공감하고, 욕심 사나운 원님이 물속에 빠졌을 때 통쾌하다고 느낄까요?
옛이야기의 힘은 교훈성을 넘어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원님과 같은 욕심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끝없이 선한 사람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공존합니다. 그러한 기대감은 욕심 많은 원님과 싸우는 힘이 되고, 현실에서 부조리에 맞서는 힘이 됩니다. 옛이야기는 선하고 바른 삶에 대한 강한 믿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옛이야기가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퍼져 나가는 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