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야만바 할머니 (사계절 중학년문고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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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도미야스 요코
옮긴이 : 김정화
그린이 : 오시마 다에코
책정보 및 내용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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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존재가 전하는 상상의 즐거움
미지의 세계, 미지의 존재는 오랜 세월 ‘재미있는 이야기’의 단골 소재로 쓰여 왔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 아무도 만난 적 없는 존재이니 상상의 폭이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미지의 존재는 주로 옛이야기에 많이 등장한다. 요정, 천사, 도깨비, 귀신, 괴물 등이 바로 그 주인공 들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없는 존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과학적·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곧잘 벌어지는데, 그런 일들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의해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경험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죽음, 그 이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알 수 없다는 건 두려움을 함께 가져온다. 요정이나 천사처럼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존재 옆에 도깨비, 귀신, 괴물처럼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미지의 세계와 미지의 존재, 이 둘은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상상으로 그려지고 전달되는가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미지의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통해 현실을 떠나는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미지의 존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들을 상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미지의 존재란 결국 사람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거기에 이야기하는 사람의 상상이 덧씌워지면서 누가 누구에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다양한 상상에 빠지는 일은 독서가 주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이다.
‘사계절 중학년문고’에서 나란히 세 권을 장식한 야만바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바로 이것이다. 『천하무적 야만바 할머니』, 『야만바 할머니의 좌충우돌 바다 탐험』, 『야만바 할머니와 시끌벅적 운동회』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 권의 책 모두 야만바 할머니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일본의 옛이야기에서 흔히 요괴로 그려지는 야만바가 얼마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사뭇 남다르다. 동시에 이렇듯 사람들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또 다른 상상이 더해지면 어떤 매력이 생기는지 잘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새롭게 태어난 요괴, 야만바
일본에는 신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독특한 종교 관념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반드시 초월적인 존재만을 신으로 믿지 않는다. 일상의 공간과 사물마다 신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여러 가지 사물에 깃든 혼령, 즉 정령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령이 꼭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요괴의 모습을 한 혼령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상상력을 입히면 어떻게 될까? 숲의 정령 ‘토토로’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
야만바 할머니의 경우가 그렇다. 야만바는 일본의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산에 사는 요정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요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래는 대지의 여신이었으나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지면서 요괴로 지위가 낮아진 것이다. 큰 키에 길고 하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빛으로 묘사되며 엄청난 속도로 날거나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리는 초능력도 발휘하는 야만바는 옛이야기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무서운 존재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동화작가 도미야스 요코에 의해 어린아이들의 시선에 맞춘 새로운 상상의 옷을 입어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되었다. 웬만한 운동선수보다 힘이 세고 어떤 험한 곳도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은 고스란히 가져왔지만, 그것을 호기심 많고 놀기 좋아하는 캐릭터에 잘 녹여내어 천진하고 사랑스럽게 표현했다. 이렇게 해서 아주 특별하고 매력적인 할머니가 어린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도토리산 꼭대기에 사는, 자그마치 296살이나 먹은 야만바 할머니는 매일매일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 온 산을 휘젓고 다닌다. 그 신 나고 유쾌한 시간 속으로 다 함께 들어가 보자.
나보다 더 사랑스러운 할머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천하무적 야만바 할머니』
첫 번째 이야기 「아기 돌보기는 너무 어려워」에서는 야만바 할머니네 집 바로 옆 계수나무에 사는 까마귀, 반들이 부인이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면서 야만바 할머니에게 세 아이를 맡긴다. ‘궁금이’, ‘먹보’, ‘훌쩍이’. 이름처럼 세 아이는 끝없는 질문을 쏟아놓거나 배가 고프다고 떼를 쓰고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기 일쑤. 아이들의 등쌀에 지친 야만바 할머니는 점심거리를 찾으러 잠시 자리를 비우는데, 그사이 구렁이가 나타나 어린 까마귀들을 노린다. 야만바 할머니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구렁이가 마지막으로 ‘먹보’를 꿀꺽 삼키고 난 뒤. 그러나 그대로 보고만 있을 야만바 할머니가 아니다. 이미 구렁이의 배 속으로 들어간 세 어린 까마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어지는 「야만바 구조대 너구리 구출 작전」에서 야만바 할머니는 위험에 빠진 너구리를 만난다. 천둥이 치고 비구름이 억수 같은 비를 쏟아 붓는 날을 좋아하는 야만바 할머니는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배의 선장이 되어 혼자 ‘난파선 놀이’를 한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리는 살려 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따라가니, 그곳엔 불어난 강물 속에서 한 너구리가 쓰러진 나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을 위급한 상황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구조대 놀이’라 여긴 야만바 할머니. 과연 할머니는 너구리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까?
「알밤 도둑을 잡아라!」에서는 가을이 되어 알밤을 따러 간 야만바 할머니가 누군가 먼저 밤을 다 따버린 것을 보고 낯선 발자국을 쫒아 범인을 찾는 이야기이다. 범인은 바로 마을에서 올라온 어린 남매. 남매는 야만바 할머니를 피해 숲에 숨어서 범인을 잡으러 이리저리 다니는 할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서움에 떨다 가까스로 마을로 도망을 친다. 뒤늦게 도망가는 남매를 발견한 할머니는 인간이 사는 마을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이야기 「야만바 할머니의 유별난 마을 구경」에서 마침내 그 결심이 이루어진다. 마을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상가 광고 전단지를 자신에게 보낸 초대장으로 착각한 야만바 할머니가 마을로 내려간 것이다. 야만바 할머니는 자동차와 경주도 하고, 어린아이의 풍선을 터뜨리기도 하고, 솜사탕의 달콤함에 빠지기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 마지막으로 시계탑 꼭대기에 올라가 춤추며 노래를 부르고는 다시 도토리산으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은혜 갚은 야만바 할머니」에서는 나뭇가지에 뿔이 걸린 사슴을 구해 준 야만바 할머니가 사슴에게서 ‘우라시마타로’에게 은혜를 갚은 거북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그보다 더 멋지게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야만바 할머니는 은혜를 갚기 위해 우선 은혜를 입어야겠다고 판단하고 마을로 내려가 눈 속에서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을 기다린다. 야만바 할머니의 머리를 시든 배추인 줄 알고 뽑아버리려고 했던 한 할머니를 은혜 갚기 놀이에 당첨시킨 야만바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헤어지기 전 조각 대나무를 선물하며 자신들만의 암호를 알려준 야만바 할머니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다.
삐삐보다 엉뚱하고 앤보다 속 깊은 야만바 할머니
야만바 할머니는 도토리산의 터줏대감이면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겐 최고의 해결사다.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책임감은 아니지만 야만바 할머니에겐 세상 모든 일들이 즐겁고 신 나는 것투성이다.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나면 야만바 할머니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은 사라지고 위험에 처한 이는 목숨을 구하고 지루한 일들은 금세 흥미로워진다. 이렇게 무한 긍정의 힘을 가진 동화 속 인물들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만나 왔다. 엉뚱함과 놀이에 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말괄량이 삐삐와 속 깊은 성품으로 누구에게나 진심을 전하는 빨강머리 앤. 여기 그들 못지않은 인물이 나타났다. 또래 친구도 아니다. 게다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또래 친구들보다 더 노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보다 마음씨도 더 따뜻하다. 야만바 할머니와 함께 산으로 바다로 마을로 정신없이 여행하다 보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미지의 존재가 기발한 상상 속에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야만바 할머니는 말해요. 나이 먹은 동물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안다고, 동물은 사람보다 눈과 귀가 몇 십 배나 더 밝으니까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고요. 이 말 한마디로 야만바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알 것 같지 않나요? 아마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할 거예요. - ‘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