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울다 잠든 숲 (사계절 아동문고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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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2012 겨울방학 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최나미
그린이 : 정문주
책정보 및 내용요약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걱정쟁이 열세 살』 등 초등 고학년 아이들의 다채로운 심리를 생생하게 그려 내는 최나미 작가의 첫 책 『바람이 울다 잠든 숲』(2004)의 개정판이다. 2012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뜻깊은 이유는 그동안 작가가 쌓아 온 시간이 독자들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그려 내는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덤덤하면서도 담백하다. 더 빨리 커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고 더 높이 날아야 한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이 책은 버거운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이 아이답게 마음껏 자라나는 너른 벌판이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 추천글
열한 살 주하의 마음속으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슬프고 속상한 감정은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거나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 건 왠지 부끄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분위기가 점차 변화하는 추세다.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는 게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철든 척하는 것보다 철없이 사는 게 훨씬 행복하다고 말이다. 철든 척 살아가지만 유년기의 슬픔과 두려움을 여전히 간직한 채 사는 어른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뒤늦게 자기 안의 ‘아이’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과정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마음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아이들은 제 나이에 맞게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자라는 게 옳다.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의 주인공 주하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아팠고 아빠는 엄마를 돌보느라 항상 바쁜 터라 엄살 한 번 제대로 부려 보지 못했다. 거의 혼자 지내면서 스스로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했다.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하면 아빠는 “우리 주하, 믿어도 되지?”, “주하는 잘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딱하게 생각할까 봐, 일찌감치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런 주하가 강원도 인제에 있는 외갓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하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웃고 화내고 속상해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묵묵히 주하를 보듬고 이해해 주는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이 작품의 백미다. 의젓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사실 여물지 않은 외로움과 슬픔이 많았던 주하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성장하기까지, 그해 가을과 겨울의 시간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난 울지 않을 거야!
오늘은 엄마 병문안을 가는 날, 웬일인지 주하의 표정이 영 좋지가 않다. 병원에 가는 내내 아빠가 주하를 설득 중에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병세가 안 좋아져서 속초에 있는 요양원에 머물게 되었으니 그동안 인제 외갓집에 가면 어떻겠느냐는 것. 어릴 적부터 엄마가 아파서 함께 지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빠와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어림없다고 마음먹은 주하다. 하지만 주하는 병실에 있는 초췌한 모습의 엄마를 보고 마음이 약해져서 인제에 가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고 만다. 자신은 인제에 가서 씩씩하게 지내고 있을 테니 엄마도 속초 요양원에 가서 얼른 나으라고 말이다.
아빠가 가져갈 수 없다고 못 박은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책상, 침대. 들고 갈 수만 있다면 내 방을 통째로 가져가고 싶었다.
“주하야, 빨리 나와. 안 갈 거야?”
아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가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나간 뒤,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 콧등이 시큰해져 얼른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엄마가 입원한 뒤, 난 누구 앞에서도 울어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울고 나면 내가 더 불쌍해질 것 같아서 아무리 속상해도 꾹꾹 눌러 참았다.
이까짓 일로 울 수는 없다.
‘곧 다시 올 거야. 이주하, 넌 잘할 거야. 금방 오면 되지 뭐.’
나는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을 하며 아빠를 따라 차에 올랐다. - 본문 14쪽에서
산속 외갓집은 주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낯설고 불편한 것투성이다. 서울에서 지낼 때와는 모든 게 다르다. 컴퓨터도 없고, 침대도 없고, 텔레비전도 잘 안 나온다. 주하는 인제에서의 하루하루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식구가 생긴다. 방앗간 집에서 키우던 멍구라는 개가 할아버지 댁에 있는 빈 개집에서 새끼를 낳은 것이다. 할머니는 팔자에도 없는 개를 보살펴야 하냐며 투덜거리지만, 할아버지는 멍구와 멍구 새끼 돌보는 일을 주하에게 맡긴다. 멍구와 멍구 새끼 ‘달주’의 끼니를 챙겨 주게 된 주하는 엄마와 함께 있는 달주가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자기보다는.
왜 나쁜 예감은 척척 맞는 걸까?
멍구와 달주에게 밥 주는 것도 잊은 어느 오후, 주하는 연 만들기 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설명서만 볼 때는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 온 재료는 이미 엉망이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속만 끓이고 있는 주하를 본 할아버지는 가는 나뭇가지들을 가져와서 쪼개고 다듬더니 단숨에 연을 만들어 준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항상 무언가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작업실’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허름한 창고에서 뚝딱뚝딱 못 박고 다듬고 칠하고 고치는 게 할아버지의 중요한 일과다. 얼마 전에는 낡은 오토바이를 얻어 오기도 했다.
문득, 작업실 한쪽에 쌓인 상자들이 주하의 눈에 들어온다. 엄마가 쓰던 장난감, 그림 일기장, 공책, 인형……. 엄마가 자라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소중한 보물들이다. 주하는 할머니가 버리지 못하게 일기장과 갈매기 인형을 얼른 챙긴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연 만들어 준 것, 엄마 물건 찾아 준 것, 할머니가 엄마 물건 버리지 못하게 한 것……. 하지만 정작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내 입에서는 또 엉뚱한 소리가 나왔다.
“할아버지, 나, 이 인형 좋아. 나도 이런 인형, 새걸로 갖고 싶어.”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할머니가 멍구 밥 주고 빨리 장에 가자는 소리에 나는 작업실을 나왔다.
뜻밖에 얻은 보물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가슴이 설렜다. 엄마가 나 태어나기 전에 세상에서 할아버지를 가장 좋아했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 본문 74~75쪽에서
연 만들기 숙제 덕분에 할아버지와 주하는 점차 가까워지고, 모든 걸 혼자 해 나가던 주하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없으면 심심함을 느끼고, 할아버지의 든든한 보살핌에 힘이 나는 거다. 추석을 앞두고, 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속초 요양원으로 엄마를 만나러 간다. 병실에 들어간 주하는 잠시 엄마를 알아보지 못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엄마는 훨씬 더 야위어 있다. 주하는 병실을 나오면서 엄마의 갈매기 인형을 침대 속에 감춰 두고 온다. 뒤늦게 인형을 찾아낸 엄마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요양원에 다녀온 며칠 후, 멍구가 사라진다. 그날따라 왠지 모든 게 귀찮아서 멍구 밥도 안 주고 게으름을 피우던 주하는 자책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집에 온 할아버지 할머니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마을을 찾아 헤매지만 멍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멍구를 보면 연락해 달라고 몇 군데 전화를 하고 나서, 저녁 내내 전화를 기다리는 주하. 때마침 전화벨이 울리지만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다. 주하가 다시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작은아빠를 따라 낯선 방에 들어가니 하얀 국화꽃 옆에 엄마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에서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아빠한테 다가가 손을 잡았지만, 아빠는 넋이 나간 듯 엄마 사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러고 있는 아빠가 낯설어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서울에서 온 엄마 친구들과 숙모는 나를 보고 더 슬피 울었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속초에 가면 엄마 병이 낫는다고 했잖아! 엄마 아빠랑 떨어지기 싫어도 꾹 참고 인제에 간 건데, 이게 뭐야? 엄마는 약속도 안 지키고…….’ - 본문 88~90쪽에서
주하는 열이 펄펄 끓어 까무러치듯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느라 엄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며칠이 지나 겨우 몸을 추스르고 학교 가는 길, 할머니에게 예전에 살던 집 마당에서 멍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할머니를 따라간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주하와 주하 엄마 이야기를 수군거리느라 바쁘다.
주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엄마가 그냥 곁에 없는 것뿐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싶지만 눈물이 쏟아질 듯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결국 주하는 답답한 인제를 벗어나 서울에 가기로 마음먹지만, 계획은 실패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더 큰 걱정을 안길 뿐이다.
“인제가 그렇게 답답했니?”
“…….”
할아버지는 내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그랬어?”
“산에 둘러싸여 갇힌 것 같잖아. 텔레비전도 잘 안 나오고 인터넷도 학교나 마을에 가야 할 수 있고.”
“그럼 서울 가고 싶겠네.”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랑 심각하게 얘기하는 게 어색하고 싫었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예쁜 거 많이 만들어 주면 안 가고. 할머니 말대로 오토바이에 침대를 달아 주든가.”
할아버지는 내 말에 아기처럼 좋아했다.
“내가 만들어 주지, 많이 만들어 주지. 오토바이에 그깟 침대가 문제야? 날개도 달아서 비행기처럼 하늘도 날게 해 주지, 뭐. 빨리 들어가서 밥 먹자. 밥 먹고 힘내서 오토바이 고쳐야지.”
- 본문 121~122쪽에서
어느덧 겨울 방학이 되고, 할머니는 성탄절에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에 가야 한다고 성화다.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며 할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간 할머니가 다급하게 주하를 부른다. 작업실에 가 보니, 그동안 할아버지가 공들여 고친 오토바이가 놓여 있다. 바퀴가 두 개 달린 작은 트레일러를 뒤에 달아서 주하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거다.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주하와 읍내 한 바퀴 돌고 오면 교회에 가겠다고 약속한 뒤, (할머니의 표현대로라면) ‘괴상한 차’를 몰고 시내로 나온다.
오토바이를 타고 의기양양해진 주하와 할아버지는 내친 김에 속초까지 가기로 하지만,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결국 괴상한 차는 경찰차에 붙잡히고, 이날의 소동으로 인해 주하는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와 지내던 일들은 아득해져만 가고 어느덧 6학년이 된 주하. 브람스 곡을 감상하는 어느 지루한 5교시,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랴부랴 인제로 가는데……. 주하는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애써 참았던 그리움을, 만나서 하고 싶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할아버지와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마음의 벌판을 마련해 주자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의 주하는 잊고 싶은 게 많은 아이다. 엄마를 잃은 슬픔도, 혼자라고 느끼는 외로움도, 할 수만 있다면 마음속에서 지우고 싶다. 지금 겪는 일들은 별것 아니라고, 자신도 또래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위로가 오히려 주하를 혼자만의 세계에 가두었는지 모른다.
그런 주하에게 ‘마음의 벌판’을 마련해 준 할아버지의 존재는 독자들에게 진한 울림을 전한다. 할아버지가 있어 주하는 실컷 웃고 울면서 자기 안의 벽을 깨고 한층 성장한다. 많은 말을 건네기 전에 그저 가만히 주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 아직 서툴고 부족한 너일지라도 괜찮다는 깊은 눈빛, 사소한 고민일지라도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열린 귀, 일방적인 이해가 아닌 진심 어린 공감……. 사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아이들이 절실히 원하는 ‘위시 리스트’일지도 모른다. “잘할 수 있잖아” “조금만 더 힘내자” 등의 말로 아이를 격려하고 응원한다지만, 그것만큼 아이들을 가두고 얽매는 말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껏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의 지나친 기대와 응원에 갇혀 있는 모습은 나이답지 않게 무기력해 보일 정도다.
이 책을 쓴 최나미 작가는 아이들 마음속의 위시 리스트를 누구보다 따뜻하게 헤아리며, 그 시절 겪는 복잡 미묘한 상황들을 속 시원히 풀어 놓는 이야기꾼이다.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인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이 2012년을 맞아 개정판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반가운 것은 그동안 작가가 쌓아 온 시간이 독자들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그려 내는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덤덤하면서도 담백하다. 더 빨리 커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고 더 높이 날아야 한다고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웃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다가 툭툭 털어 낸다. 아이들의 다채로운 심리를 담아내는 데 이토록 탁월하면서도 ‘어른인 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내공이다.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의 주하 할아버지처럼, 최나미 작가 역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어깨를 빌려 주고 든든한 힘을 보탠다. 『바람이 울다 잠든 숲』은 버거운 현실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이 아이답게 마음껏 자라나는 너른 벌판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