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군데다뒤져, X를 막아라 (사계절 중학년문고 24)
- 933
저자소개
지은이 : 허은순
그린이 : 박정섭
책정보 및 내용요약
주인공 ‘나’는 생쥐 ‘오만군데다뒤져’를 대신해 동물들의 비밀회의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들의 무분별한 욕심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들의 사연을 듣게 된다. 푸르딩딩형광등, 내유전자돌리도, 등골빼묵고죽고잡소……. 이름만큼이나 괴상한 생김새를 한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복제 실험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인간들의 음모를 막는 것이다. 그동안 동물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편집자 추천글
생명공학, 그 눈부신 빛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
21세기가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 오토쇼에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공개되어 화제를 낳았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접했던 세상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특히 생명공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 최대의 염원인 생명 연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생명공학은 그 어떤 과학기술 분야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생명공학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정작 그 안에 ‘생명’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가치의 관점이 아닌 지식과 정보의 대상으로서만 바라보는 듯하다. 세상 모든 현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물며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그런 생명을 과학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만군데다뒤져, X를 막아라』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을 생명윤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로,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삶과 죽음의 관계 등 진지한 문제의식을 동화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과학자 아빠를 둔 한 아이가 우연한 계기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하면서 겪는 충격과 갈등, 결국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침내 동물들의 반란이 시작되다!
주인공 ‘나’는 과학자 아빠를 둔 평범한 초등학생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빠가 이상해 보인다. 중요한 열쇠가 사라졌다며 아침부터 우왕좌왕. 잃어버린 열쇠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지만, 길길이 날뛰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꽤나 중요한 것임엔 분명하다. 태양도 하품을 할 만큼 따분한 그날 오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상한 일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멀쩡하던 뻐꾸기시계가 스물다섯 번을 울지 않나, 6월인데도 시계 날짜 표시판이 31일을 가리키고 있질 않나. 이번에는 집을 나서려는데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글쎄, 생쥐 한 마리가 편지함에서 우편물을 꺼내 읽는 게 아닌가! 나는 얼른 생쥐를 잡아 양파 자루에 가둔 뒤 편지를 읽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에 사는 생쥐 ‘오만군데다뒤져’에게 온 동물들의 비밀회의 초대장. 게다가 회의 날짜는 6월 31일 25시, 장소는 싸다싸 슈퍼 옆 몰래볼래 만화방 지하실 곰팡이 냄새 나는 두 번째 방이란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나는 생쥐 가면을 만들어 쓰고 ‘오만군데다뒤져’ 대신 동물회의에 참석하기로 한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도화지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슥슥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게임에서 가지고 싶었던 아이템을 하나 얻은 것보다 훨씬 짜릿했다. 내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도화지의 그림은 선명해졌다.
‘이 정도면 쓸 만한데?’
내가 그린 것은 쥐눈이콩같이 작고 까만 눈동자에 조그만 귀, 앞니 두 개가 삐죽 튀어나온 쥐 얼굴이었다. 뭐라고 중얼거리면 따라서 실룩거릴 것 같은 뾰족한 콧등이랑 주둥이에 수염이 길게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꼭 양파 자루에 가두어 놓은 쥐 얼굴이다.
나는 가위로 샤사삭 자르고 고무줄을 묶어 그럴 듯한 가면을 하나 만들었다. 가면을 쓰고 쥐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때, 이 정도면? 감쪽같이 속겠지?”
가면을 쓴 나를 보고 쥐가 어찌나 놀라는지 쥐눈이콩같이 새까만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 본문 30?31쪽에서
만화방 지하실 두 번째 방에는 희한하게 생긴 동물들이 다 모여 있다. ‘푸르딩딩형광등’, ‘나자마자여섯살’, ‘내유전자돌리도’, ‘내가넌지네가난지아무도모르지’, 그리고 ‘내가널까네가날까그누가알까’까지…….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생김새만큼이나 특이한 이름 때문에 웃음을 참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씩을 갖고 있다. 아기 양 ‘나자마자여섯살’은 체세포 복제로 태어나 조로증에 걸렸고, 돼지 ‘푸르딩딩형광등’은 유전자 결합으로 해파리의 유전자를 몸 안에 갖게 되었다. 심지어 소 ‘등골빼묵고죽고잡소’는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한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자신의 종족으로 만든 사료를 먹고 말았다. 다들 인간들의 실험 때문에 몸과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은 것 같다. 이들의 목적은 최 박사의 실험실 열쇠를 찾아 그의 실험실 문을 영영 잠그는 것. 또 인간 복제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X의 음모를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과 동물, 모두가 위험에 처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인간의 입장에 서서 대변도 하고 변명도 늘어놓지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간들을 향한 그들의 분노를 막긴 역부족이다.
“그런데…… 인간들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모조리 망가뜨리고 나면…… 우리 속이 시원할까?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있을까?”
푸르딩딩형광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나면 인간들은 끝장이 나겠지. 하지만 인간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우리들도 살 수 없는 세상이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 수 없는 세상에서는 인간들도 살 수 없어.”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비록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삶이지만, 우리는 운명을 한 번도 거부한 적이 없어. 그럴 능력도 없고.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야. 예전처럼 인간들과 더불어 자연의 섭리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거라고. 그냥 옛날처럼 우리도 시집 장가가고 새끼 낳고 살다가 때가 되면 누구의 음식이 되든, 그건 우리 할 일을 다 한 거라 여길 수 있어.”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 112?113쪽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생명 연장이라는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하려는 아빠를 마음속 영웅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는 오랜 고민 끝에 동물들을 위해 아빠의 실험실 열쇠를 찾아 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진짜 ‘오만군데다뒤져’의 도움을 받아 동물 친구들과 함께 X의 무시무시한 음모를 막아내기로! 왜? 숨 쉬는 모든 것은 다 똑같이 고귀한 생명이니까! 과연 우리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딸깍! 순간 실험실은 환하게 불이 커졌다. 나와 가까운 문 쪽에는 어떤 남자가 스위치에 손을 댄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저쪽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던 것은 푸르딩딩형광등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실험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갇혀 있는 동물 우리를 부수고 있었다. 그 사이 동물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게 등을 보이고 있던 사내가 소리쳤다.
“뭐 하는 짓들이지?”
X의 목소리였다. 검은 망토를 벗은 X의 체구는 생각보다 볼품없었다. - 168쪽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은 생명이다
이 책을 쓴 허은순 작가는 작고 여린 존재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품들로 어린이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집단 따돌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6학년 1반 구덕천』이나 남들과 다른 색을 지녔다는 이유로 각자의 무리에서 차별당하는 물고기들의 이야기 『하늘로 날아간 물고기』, 풀숲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와의 교감을 그린 『까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어요』 등 그의 작품에는 늘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오만군데다뒤져, X를 막아라』 역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작가는 능숙한 솜씨로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특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 기법, 개성 넘치는 동물 캐릭터와 그들의 독특한 말투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검정 빨강 파랑 등 강렬한 원색을 위주로 한 박정섭 화가의 그림은 텍스트에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아 준다. 텍스트의 이면을 정확히 꿰뚫어 읽어내는 그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대체 그 누가 살아 숨 쉬는 권리를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는가,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다른 생명은 얼마든지 희생당해도 된다는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라고. 역지사지(易地思之). 오롯이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심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것. 이것은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이다. 작가는 가면의 도움을 받아 쥐로 변신한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 또한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해결의 열쇠를 손에 쥔 주인공 아이의 마지막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그 어떤 타협이나 조건 없이 ‘살아 숨 쉬는 것은 모두 똑같은 생명이다’라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진실 하나만을 믿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과학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생각해 보고 나 아닌 다른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이다. 나아가 미래 사회의 주인으로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저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제게는 날마다 새로운 날입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살아 숨을 쉬는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살아 숨 쉬는 권리를, 이 행복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 ‘글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