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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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 (2012)
저자소개
지은이 : 강신주
책정보 및 내용요약
“관중, 공자부터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번영이나 사회의 평화라는 정치철학적 주제를 숙고하지 않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자백가로 통칭되는 중국의 모든 고대 철학자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항상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후대에 만들어진 공자의 후광을 지우고, 제자백가 철학사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 시대 대표 인문학자 강신주의 본격 인문 저작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2권은 『관중과 공자』다. 프롤로그 격인 1권 『철학의 시대』에서 제자백가 철학이 태동했던 시대적 사상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2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자백가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는 관중과 공자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에 대한 통념은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 나아가 중국철학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강신주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 관중의 정치철학적 통찰을 높이 평가하고 공자의 철학은 관중으로부터의 영향과 관중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또 관중과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양분한 두 가지 사유 경향, 법가 계열의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유가 계열의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로 평가된다. 강신주에 이르러 관중과 공자의 위상은 역전되고 이제 제자백가에 대한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목차
프롤로그·14
I. 관중: 패자가 되는 방법
1. 제나라와 관중
_ 강족의 화려한 부활·30
_ 지금 제나라는 안개 정국!·34
_ 논란이 많았던 관중의 변명·44
_ 숱한 좌절에서 얻은 현실감각·50
2. 제나라 환공을 패자로 만든 방법
_ 패자가 지배하던 춘추시대·58
_ 먼저 내부 조직을 정비하라!·62
_ 정치란 먼저 주어야 얻는 것!·74
_ 군주답지 못한 군주와 신하답지 못한 신하·80
3. 민중에 대한 새로운 통찰
_ 관중, 민중을 직시하다!·88
_ 마침내 발견한 군주의 고독·94
_ 배가 불러야 예의도 차리는 법!·101
_ 관중의 정치철학적 중요성·110
4. 국가주의 논리를 넘어서
_ 목민의 내적 논리, 혹은 목축의 상상력·120
_ 반국가주의, 혹은 아나키즘이라는 은밀한 전통·128
_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서·134
_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의 가능성·142
II. 공자: 중국철학의 시작
5. 공자와 그의 시대
_ 공자 출생의 비화, 야합과 주례 사이에서·156
_ 새로운 이미지의 유학과 시·162
_ 경대부 시대의 정치경제학·168
_ 계손씨와 공자의 악연·176
6. ‘예’라는 등불
_ 어둠을 깨우는 목탁이 되려고 했던 공자·184
_ 국가 속에서 가족을 보다!·191
_ 수치심의 정치학을 발견하다·198
_ 민중의 자발적 복종·202
7. ‘인’에 대한 해묵은 오해와 진실
_ ‘인’이 보편적인 사랑이 아닌 이유·208
_ 인간의 내면 속에 자리 잡은 예·214
_ 현실로부터의 초연함·220
_ 예와 인 중 어느 것이 핵심인가?·226
8. 공자 사유의 논리와 한계
_ 재판이라는 사유 이미지·236
_ 공자의 유아론과 타자들·244
_ 공자, 귀족 편에 서다!·254
_ 유학, 정치적 좌절로부터 승화된 고상한 철학·261
에필로그·270
미주·276
참고문헌·294
찾아보기·298
편집자 추천글
죽고 죽이는 야만의 시대를 고민한 정치철학의 정수, 관중과 공자를 다시 읽는다.
“관중, 공자부터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번영이나 사회의 평화라는 정치철학적 주제를 숙고하지 않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자백가로 통칭되는 중국의 모든 고대 철학자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항상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후대에 만들어진 공자의 후광을 지우고, 제자백가 철학사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 시대 대표 인문학자 강신주의 본격 인문 저작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2권은 『관중과 공자』다. 프롤로그 격인 1권 『철학의 시대』에서 제자백가 철학이 태동했던 시대적 사상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2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제자백가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 첫 번째는 관중과 공자다. 일반적으로 제자백가에 대한 통념은 공자를 제자백가의 시작, 나아가 중국철학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강신주는 이런 통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 관중의 정치철학적 통찰을 높이 평가하고 공자의 철학은 관중으로부터의 영향과 관중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으로부터 탄생했다고 평가한다. 또 관중과 공자는 춘추전국시대를 양분한 두 가지 사유 경향, 법가 계열의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유가 계열의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로 평가된다. 강신주에 이르러 관중과 공자의 위상은 역전되고 이제 제자백가에 대한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치철학의 정수, 관중의 국가주의 철학
수많은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권 국가로 만든 관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이자 출중한 정치가로 기억된다. 입신양명을 꿈꾸던 당시의 지식인들은 관중의 성공을 선망했고 관중을 롤모델로 삼았다. 강신주는 관중에게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급변하는 당시 정국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국가과 민생에 대한 냉철한 현실주의 철학을 보여준 정치철학자로서의 위상을 부여한다. 상인과 군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의 비밀을 꿰뚫고,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국가의 역량으로 조직해나갔다는 점에서 관중 정치철학의 힘이 평가된다. 패업을 꿈꾸던 제자백가 지식인들에게 관중의 정치철학은 숙고하고 넘어서야 할 필수 과목이었다. 다만 강신주는 관중이 보여준 국가주의 철학을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목민牧民’의 논리로 비판하며 관중의 반대편에서 자유를 옹호하며 반국가주의 철학을 펼친 양주와 장자 등 아나키즘 계열의 철학자들을 부각시킨다.
내면의 철학자 공자의 맨얼굴
동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공자는 강신주에게 불운하고 시대착오적인 한 명의 사상가일 뿐이다. 강신주는 공자가 춘추시대에 아무런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며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에 이르러서야 후대의 역사가들에 의해 공자의 사상이 통치 이데올로기로 동원되면서 지금의 위상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공자의 철학은 관중의 성공에 대한 선망과 정치적 좌절로부터 승화된 것이고, 당시 격동하던 정치경제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완성되었다. 공자 철학의 핵심인 ‘예’는 과거 서주 시대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복고적인 시도였고, 입신양명을 기대하고 공자의 문하에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은 공자의 관념 철학에 빠져들게 된다. 강신주는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인 ‘예’와 ‘인’의 핵심적 내용과 사상사적 맥락을 짚어내며 공자 철학의 보편성과 한계를 설명한다. 또 공자 철학의 자기 재판의 이미지, 타자를 배제하는 유아론적인 사유를 비판하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던 철학적 의도가 수양론이라는 현실 초월의 논리로 왜곡되어 발전하는 것을 지적하며 공자와 유학 사상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관중과 공자』 주요 내용
1부 ― 관중: 패자가 되는 방법
1부는 춘추시대 최초의 패권국가가 되었던 제나라의 역사와 관중의 개인사가 관중 정치철학의 핵심적 내용들과 맞물리며 전개된다. 주나라에 의해 축출당했던 강족의 제나라를 중심으로 춘추시대 역사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관중의 파란만장했던 개인사를 설명하며 관중의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시대를 평정한 관중의 정치 행위 속에 담겨있는 정치철학적 통찰력과 그 한계를 되짚어보며, 춘추전국시대를 선도한 관중 정치철학의 의의를 평가한다.
2부 ― 공자: 중국철학의 시작
2부는 평생 예를 받들고 살았던 공자의 출생 비화부터 시작해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사회상과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을 연계하여 설명한다. 성공한 지식인이었던 관중에 대해 선망과 부정이라는 양가감정을 지녔던 공자는 관중과 마찬가지로 패업의 꿈을 꾸며 천하를 주유한다. 공자는 과거 시대인 서주 시대 귀족층의 가족 질서의 논리이자 사회 체제였던 ‘주례’를 뼛속 깊이 내면화하고 그것을 체계화하고 완성하는 데 평생을 바친다. 전쟁과 혼란으로 현실주의 정치철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뒤떨어진 ‘예’의 현실 적용이 좌절되자 공자 사상은 내면의 논리를 세우는 철학으로 승화된다.
본문 속으로
관중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출중한 정치가였다. 관중은 급변하는 당시의 정국에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생에 대한 현실주의적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춘추시대만이 아니라 그 이후 전국시대 지식인들 대부분에게 관중은 하나의 이상향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관중의 성공을 몹시 부러워했고, 그 성공의 비밀을 파헤쳐 자신도 제2의 관중이 되기를 열망했다. _ 17~18쪽
삶의 모습 혹은 사상적 면모에서 공자는 관중과 너무도 달랐던 사상사다. 그는 자신이 생존했던 춘추시대에는 정치적 사상적으로 거의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며, 심지어 시대착오적인 사상가로 조롱받기까지 한 불운한 삶을 영위했다. 춘추시대나 전국시대 사람들은 그의 위대함을 간과했던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공자가 지닌 한계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사실 공자는 당시에는 아련한 옛 추억에 불과한 주나라의 문명과 그 정신을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하려고 동분서주한 사상가였다. _ 18쪽
관중과 공자의 사상을 꼼꼼히 검토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심대한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째는 결과적으로 볼 때 공자의 철학이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한 일종의 오독으로부터 탄생했다는 점이다. (…) 관중과 공자는 각각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사유 경향, 즉 현실주의적 사유 경향과 보수주의적 사유 경향의 원류라는 것이다. 관중이 동시대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그 자체의 논리로 통찰하려고 했다면, 공자는 과거 서주 시대의 찬란했던 전통을 매개로 춘추시대를 사유하려고 했다. 이 점에서 관중 계열에 선 법가 사상가들과 공자 계열을 따른 유가 사상가들이 춘추전국시대 내내 격렬하게 대립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제자백가에 대한 긴 이야기는 관중과 공자를 함께 아우르면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_ 18~19쪽
공자로부터 고대 중국 철학사를 이해하는 관례는 두 가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첫째, 제자백가의 사상에서 공자를 대표로 하는 유학 사상이 주류였다는 그릇된 인상을 주기 쉽다. 유학 사상은 예나 지금이나 주류라기보다는 새로운 사유에 대한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대응으로 철학사에서 기능해왔다. 물론 공자도 여기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공자의 사상이 지성계의 헤게모니를 잡게 된 것은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라 한 제국에 들어서야 가능했을 뿐이다. _ 25쪽
제자백가의 사상이 정치철학적 관심을 통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할 수 있다. 사실 공자에서부터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번영이나 사회의 평화라는 정치철학적 주제를 숙고하지 않았던 철학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제가백가로 통칭되는 중국의 모든 고대 철학자들의 일차적 관심사는 항상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_ 25쪽
관중의 현실감각은 자신의 힘으로 곤궁한 삶을 탈피하려던 발버둥, 그리고 숱한 좌절로부터 길러진 것이다. 나중에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을 때, 이때 길러진 탁월한 현실감각은 환공을 패자로 만드는 데 확실한 밑거름이 된다. 관료로서의 생활과 전쟁에 복무했던 경험은 그가 제나라에 구현한 부국강병 정책으로 바로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상인으로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상인은 단순히 그가 인생 역정에서 거쳤던 하나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정치가 혹은 정치철학자로서 관중의 사유의 특징을 규정하는 핵심적 계기로서 작동하게 된다. _ 52쪽
그래서 아직도 관중의 정치철학적 통찰은 유효하다. 국가를 지상의 가치로 긍정하는 국가주의가에게도 그렇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형식을 대신하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인문주의자에게도 그렇다. 국가주의자는 관중의 정치철학을 통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시혜와 자발적 복종의 논리가 국가를 유지하는 첩경이라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 반면 인문주의자는 시혜와 복종의 논리 이면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다시 말해 분배하는 자와 분배받는 자라는 원초적 불평등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직도 국가가 하나의 불가피한 형식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의 착각을 바로 잡기 위해, 우리는 관중의 정치철학을 인문학적 시선에서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_ 121쪽
비록 어떤 군주도 자신의 정치 이념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정치권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신처럼 따르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다. 군자란 예를 학습해서 귀족적인 고상함을 항상 잃지 않는 인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인한 사람이 언젠가 사회의 인정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을 제자들에게 심어주었다. _ 181~182쪽
노나라의 주류 귀족층이 주나라의 문명에 따라 가부장제를 선택하고 있다면, 공자 자신은 가부장제와는 다른 모계제 성격이 강한 토착 문명 속에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나라의 세련된 문명을 맹목적으로 동경했던 어린 공자의 무의식적 취향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토착 문명의 삶보다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주류 문명 속으로 편입되고 싶었던 것이다. _ 187쪽
위대한 공자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하나가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피지배층, 즉 ‘소인’이라면 다른 하나는 육체적 관계를 통해서 자식들을 생산하는 ‘여자’였다. 바로 이 소인과 여자라는 존재들이 공자가 자랑하는 서의 윤리 원칙에 손쉽게 적용되지 않는 존재, 다시 말해 공자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타자들이었던 셈이다. 이것은 물론 소인과 여자가 절대적 규범으로 간주된 공자의 예라는 규범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들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_ 247~248쪽
그러나 공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학파를 학파로서 유지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을 계속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제자들을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로부터 이념적 사변적 공간으로 옮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_ 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