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하얼빈의 11일
- 1364
• 지은이 : 원재훈
• 가격 : 14,000원
• 책꼴/쪽수 :
205*140mm, 340쪽
• 펴낸날 : 2010-03-03
• ISBN : 9788958284550
• 십진분류 : 역사 > 역사 (900)
• 추천기관 :
아침독서신문
• 태그 : #역사 #안중근 #영웅 #애국 #식민지 #독립 #해방 #평화 #암살 #교양
저자소개
지은이 : 원재훈
1988년 『세계의 문학』 겨울 호에 시 「공룡시대」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102』, 『딸기』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바다와 커피』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는 오직 책 읽고 글 쓰는 동안만 행복했다』 등을 펴냈다. 『신동아』에 한국 현대 작가들을 다룬 「작가열전」과 『사기』 속 인물을 다룬 「21세기 사기열전」을 연재했다. 현재 문학 전문 프로그램인 국악방송 〈행복한 문학〉의 진행을 맡고 있으며, 출판기획집단 문사철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집필을 하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하려는 일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인가?'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안중근은 자신이 하려는 일의 당위성을 물었다. 평화주의자 안중근은 쓰러져 가던 조국과 동양 평화를 위해 총을 들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가 의거 전후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러 가지 정체성이 공존했던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토 저격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 당시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함께 다룬다. 1909년 10월 22일 하얼빈 도착에서부터 11월 1일 뤼순감옥 이송까지, 이 책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면서 안중근의 과거와 현재, 저자의 시점을 두루 넘나든다.
여러 가지 정체성이 공존했던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토 저격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 당시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함께 다룬다. 1909년 10월 22일 하얼빈 도착에서부터 11월 1일 뤼순감옥 이송까지, 이 책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면서 안중근의 과거와 현재, 저자의 시점을 두루 넘나든다.
목차
프롤로그 8
1895년 을미 10월 7일
전조 17
그해, 1909년 9월
황홀한 예감 29
1909년 10월 22일
대한군 참모중장 안중근, 하얼빈에 도착하다 59
1909년 10월 23일
동지들과 기념 촬영, 「장부가」를 짓다 83
1909년 10월 24일
차이자거우 도착, 유사시 통지 요망 107
1909년 10월 25일
12시 북행 열차를 타고 다시 하얼빈으로 119
1909년 10월 26일
심판의 날, 만주 벌판에서 이토의 화려한 죽음 129
1909년 10월 27일
안중근 가족 하얼빈 도착 157
1909년 10월 28일
미조부치 다카오 검사,안중근의 신병을 인도받다 167
1909년 10월 29일
고독한 장군 안중근 189
1909년 10월 30일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지하실, 안중근 1차 취조 207
1909년 10월 31일
의거 동지들, 취조를 받다 221
1909년 11월 1일
일본과 러시아 헌병대, 안중근을 뤼순감옥으로 이송하다 225
1909년 11월 3일~1910년 3월 25일
뤼순감옥에서 239
1910년 3월 26일
순국의 날 311
1910년 3월 26일 이후
동양 평화를 위하여 317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백주년 기념식장에서 323
에필로그 337
참고문헌 340
1895년 을미 10월 7일
전조 17
그해, 1909년 9월
황홀한 예감 29
1909년 10월 22일
대한군 참모중장 안중근, 하얼빈에 도착하다 59
1909년 10월 23일
동지들과 기념 촬영, 「장부가」를 짓다 83
1909년 10월 24일
차이자거우 도착, 유사시 통지 요망 107
1909년 10월 25일
12시 북행 열차를 타고 다시 하얼빈으로 119
1909년 10월 26일
심판의 날, 만주 벌판에서 이토의 화려한 죽음 129
1909년 10월 27일
안중근 가족 하얼빈 도착 157
1909년 10월 28일
미조부치 다카오 검사,안중근의 신병을 인도받다 167
1909년 10월 29일
고독한 장군 안중근 189
1909년 10월 30일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지하실, 안중근 1차 취조 207
1909년 10월 31일
의거 동지들, 취조를 받다 221
1909년 11월 1일
일본과 러시아 헌병대, 안중근을 뤼순감옥으로 이송하다 225
1909년 11월 3일~1910년 3월 25일
뤼순감옥에서 239
1910년 3월 26일
순국의 날 311
1910년 3월 26일 이후
동양 평화를 위하여 317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백주년 기념식장에서 323
에필로그 337
참고문헌 340
편집자 추천글
하얼빈의 11일, 안중근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과 순국 100주기를 맞은 작년과 올해, 이를 기념하는 많은 문화 행사와 학술 대회가 열렸고 관련 도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고 의거의 역사적 의의도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안 의사가 의거 전후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가지 정체성이 공존했던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토 저격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 당시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함께 다룬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쓴 책답게 딱딱하고 연대기적인 평전 형식을 취하지 않고,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면서 안중근의 과거와 현재, 저자의 시점을 두루 넘나드는 소설적인 구성과 인간적인 고뇌와 고독을 보여주는 섬세한 심리 묘사를 곁들여 독자에게 긴장감과 읽는 재미를 준다.
당신이 아는 안중근의 얼굴은 무엇인가
안중근은 우리에게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단 하나의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를 두고 애국지사라는 평가에서부터 영웅주의자, 테러리스트, 조선의 식민지화를 앞당긴 주범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의거가 이 한 장면으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총을 들었으나 평화를 사랑한 천주교 신자이자 동양의 평화를 제창한 평화주의자였으며, 지금도 일본에서 추앙받는 정치인을 저격한 암살범이었으나 일부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안중근을 추모한다. 특정한 정치사상을 가지지 않았으나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출중한 무예와 용맹을 지녔으나 의병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한 무력한 장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안중근의 여러 모습을 통해 의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안중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고독한 지사가 되기까지
안중근의 아버지는 개화파였으나 혼란한 정국과 부패한 관료들에게 실망하여 은둔한다. 평화롭고 유복한 환경에서 무예와 풍류를 즐기는 청년이었던 안중근이 조선의 현실을 깨닫게 된 계기는 천주교 입교이다. 천주교 신자가 된 안중근은 조국 근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한편, 외세의 틈바구니에 놓인 조선의 암울한 운명을 인식하게 된다. 천주교 신자로서 안중근은 평화주의자의 입장을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고, 외세를 배우되 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안중근 일가는 교육 사업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모색한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고 국내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자 상하이 등지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 무렵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기둥을 잃은 안중근은 이제 고독한 지사가 될 운명에 이른다.
일본의 근대화와 이토 히로부미
근대 일본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위대한 정치가로, 우리에게는 침략의 원흉으로 인식된다. 이토는 하층 계급 출신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와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입지전적 인물이자 조선 침략을 두고 벌어진 일본 정계의 논쟁에서 특유의 중재 능력을 발휘하여 급진적 정한론자들을 제압하고 전쟁 없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걸출한 정치가다. 이후 조선과 중국 침략이 그의 머리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안중근 연구에서도 이토가 당시 조선과 동아시아 정세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조선 침략, 여기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차지하는 비중을 균형 있게 서술함으로써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안중근은 왜 총을 들었나
안중근은 무력을 통한 항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주교 신자가 된 후 서양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재산을 모두 털어 학교를 세웠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무연탄 회사를 세우면서 교육, 경제 발전을 통해 국운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지자 연해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다. 그는 사로잡힌 일본 군인을 풀어주는 등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지켰다. 그러나 안중근은 이 모든 시도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이 책은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이러한 무수한 실패로부터 나온 최후의 결단이자 의병 참모중장으로서의 독립활동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 침략의 핵심인 이토를 저격함으로써 폭력을 통해 평화를 꿈꾼 안중근의 역설을 통해 단순한 의열 투사가 아니라 여러 정체성을 지닌 인간 안중근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안중근 후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립운동사에서 한 가문으로는 가장 많은 서훈자를 배출한 안중근 가문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생존 후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안중근의 둘째 아들인 안준생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토의 추모 행사에 참석하여 사죄하는 등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귀국 직후 효창원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안장했다. 그 삼의사묘 옆에 안 의사의 허묘를 만들었으며, 김구 선생 역시 효창원에 묻혔다. 돌아오지 못한 안 의사의 유해와 안 의사 후손들의 쓸쓸한 처지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와 기억, 제대로 자리 매김 되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과 순국 100주기를 맞은 작년과 올해, 이를 기념하는 많은 문화 행사와 학술 대회가 열렸고 관련 도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안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했고 의거의 역사적 의의도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안 의사가 의거 전후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가지 정체성이 공존했던 그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토 저격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든 당시 동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함께 다룬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가 쓴 책답게 딱딱하고 연대기적인 평전 형식을 취하지 않고,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따라가면서 안중근의 과거와 현재, 저자의 시점을 두루 넘나드는 소설적인 구성과 인간적인 고뇌와 고독을 보여주는 섬세한 심리 묘사를 곁들여 독자에게 긴장감과 읽는 재미를 준다.
당신이 아는 안중근의 얼굴은 무엇인가
안중근은 우리에게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단 하나의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를 두고 애국지사라는 평가에서부터 영웅주의자, 테러리스트, 조선의 식민지화를 앞당긴 주범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의거가 이 한 장면으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총을 들었으나 평화를 사랑한 천주교 신자이자 동양의 평화를 제창한 평화주의자였으며, 지금도 일본에서 추앙받는 정치인을 저격한 암살범이었으나 일부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안중근을 추모한다. 특정한 정치사상을 가지지 않았으나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출중한 무예와 용맹을 지녔으나 의병 전투에서 번번이 패배한 무력한 장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안중근의 여러 모습을 통해 의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안중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고독한 지사가 되기까지
안중근의 아버지는 개화파였으나 혼란한 정국과 부패한 관료들에게 실망하여 은둔한다. 평화롭고 유복한 환경에서 무예와 풍류를 즐기는 청년이었던 안중근이 조선의 현실을 깨닫게 된 계기는 천주교 입교이다. 천주교 신자가 된 안중근은 조국 근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한편, 외세의 틈바구니에 놓인 조선의 암울한 운명을 인식하게 된다. 천주교 신자로서 안중근은 평화주의자의 입장을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고, 외세를 배우되 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안중근 일가는 교육 사업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모색한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고 국내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자 상하이 등지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 무렵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큰 기둥을 잃은 안중근은 이제 고독한 지사가 될 운명에 이른다.
일본의 근대화와 이토 히로부미
근대 일본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는 위대한 정치가로, 우리에게는 침략의 원흉으로 인식된다. 이토는 하층 계급 출신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와 일본의 근대화를 주도한 입지전적 인물이자 조선 침략을 두고 벌어진 일본 정계의 논쟁에서 특유의 중재 능력을 발휘하여 급진적 정한론자들을 제압하고 전쟁 없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걸출한 정치가다. 이후 조선과 중국 침략이 그의 머리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안중근 연구에서도 이토가 당시 조선과 동아시아 정세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조선 침략, 여기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차지하는 비중을 균형 있게 서술함으로써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안중근은 왜 총을 들었나
안중근은 무력을 통한 항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주교 신자가 된 후 서양 신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재산을 모두 털어 학교를 세웠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무연탄 회사를 세우면서 교육, 경제 발전을 통해 국운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지자 연해주에서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선다. 그는 사로잡힌 일본 군인을 풀어주는 등 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지켰다. 그러나 안중근은 이 모든 시도에서 실패를 거듭한다. 이 책은 안중근의 이토 저격이 이러한 무수한 실패로부터 나온 최후의 결단이자 의병 참모중장으로서의 독립활동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 침략의 핵심인 이토를 저격함으로써 폭력을 통해 평화를 꿈꾼 안중근의 역설을 통해 단순한 의열 투사가 아니라 여러 정체성을 지닌 인간 안중근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이 책은 마지막 부분에서 안중근 후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립운동사에서 한 가문으로는 가장 많은 서훈자를 배출한 안중근 가문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생존 후손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안중근의 둘째 아들인 안준생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이토의 추모 행사에 참석하여 사죄하는 등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귀국 직후 효창원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안장했다. 그 삼의사묘 옆에 안 의사의 허묘를 만들었으며, 김구 선생 역시 효창원에 묻혔다. 돌아오지 못한 안 의사의 유해와 안 의사 후손들의 쓸쓸한 처지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와 기억, 제대로 자리 매김 되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