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의 사상-시라카와 시즈카, 고대 중국 문명을 이야기하다
- 1847
• 지은이 : 우메하라 다케시
• 옮긴이 : 이경덕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223*152mm, 275쪽
• 펴낸날 : 2008-07-18
• ISBN : 9788958283034
• 십진분류 : 철학 > 동양철학, 사상 (150)
• 태그 : #역사 #중국사 #교양 #주술 #사상
저자소개
지은이 : 우메하라 다케시
梅原猛. 1925년 미야기 현에서 태어나 교토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1955년부터 리쓰메이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지만, 1970년 학내 분쟁에 휘말려 있던 리쓰메이칸 대학을 사직하고 불교를 연구했다. 저서로는 『숨겨진 십자가』, 『물밑의 노래』, 『일본 모험』 등이 있다.
옮긴이 :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힘을 배우고, 대학원에서는 세상의 실체를 만나기 위해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인류의 신화와 의례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신화와 의례, 종교 문화, 아시아 문화 등을 강의하며 학생들과 만나고,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 『유네스코가 선정한 한국의 세계 유산』 등이 있고, 번역서로 『고민하는 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등이 있다.
쓴 책으로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고대로 가는 길, 삼국유사』, 『유네스코가 선정한 한국의 세계 유산』 등이 있고, 번역서로 『고민하는 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시라카와 시즈카는 누구인가?
시라카와 시즈카는 주류 학계와는 거리를 둔 채 평생 동양적인 것의 근원을 밝히는 데 몰두했다. 어린 시절 대도시로 떠나와 국회의원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맛본 중국 고전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고대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고, 그는 고대에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로 갑골문과 금문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전개되던 1960년대 말 일본에서는 전공투(全共?) 학생운동이 대학가를 휩쓸었다. 그가 재직하던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역시 학내 분쟁으로 들끓었지만, 시라카와의 연구실은 늘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고, 그는 학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훗날 이 시기와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떠올리며 동양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광기와 폭력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한다(본문 270~271쪽 참조). 대학에서 퇴직한 후 오히려 그의 학문은 활짝 꽃을 피워 ‘자서(字書) 삼부작’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말년에는 대중 강연을 통해 일본 사회에 고대 문화와 한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자의 주술, 신과 인간이 소통하다
시라카와의 학문적 출발점은 한자이다. 대상의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로 인식되는 한자는 단순한 상형이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표현력을 지닌다. 시라카와는 한자가 지닌 상징성을 주술성으로 풀이한다. 예를 들어 ‘道(도)’의 갑골문과 금문을 분석한 결과, 이민족의 머리를 들고 걷는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한 민족의 영역 바깥에 있는 이민족 신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섬기는 영(靈)과 다른 영을 퇴치하기 위해 이민족의 머리를 베어 들고 다닌 모습에서 이 글자가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글자의 오른쪽에 있는 首(머리 수)에는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시라카와는 주술적 상징으로서의 문자 이해를 바탕으로 고대부터 유래한 구전과 기록은 신과 인간의 대화이며, 나아가 고대 세계는 주술적 세계였다고 말한다.
무녀의 사생아, 실패한 혁명가, 유랑하는 인간 공자
두 번째 대담에서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저서 『공자전(孔子傳)』(1973)에서 파격적인 주장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이,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다. 시라카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굳어진 성인으로서의 공자 해석을 부정한다. 시라카와는 공자가 무녀의 사생아이며, 공자를 비롯한 유가는 원래 장례와 제례 의식을 담당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자의 출신 배경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은 『논어(論語)』를 낳는 배경이 되고, 이상주의자로서의 공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공자는 고대 성왕 시대를 이상적인 시대로 상정하고, 여러 나라를 유랑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고자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시라카와는 공자를 ‘광자(狂者)’로 규정하는데, 광자는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이다. 시라카와는 공자에게서 유교의 비조(鼻祖)라는 권위를 탈색하고, 그를 한평생 유랑하며 끊임없는 실패를 밑거름으로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한 비범한 한 인간으로 복원한다.
치유의 노래 주술의 노래, 『시경』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은 오경(五經)의 하나로, 공자가 편집했다고 알려져 문학작품임에도 유교 경전의 하나로 연구되었으며, 동아시아 시가문학의 규범이 되었다. 시라카와는 『시경』이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노래로 불리던 시기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시경』의 시들은 악사 집단이 연회나 제사 때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로 불러 전승되었고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시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서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편집되는 과정에서 시의 배열과 순서가 조정되고 시편 간의 조합이 일어나면서, 노래의 주술성이 약화되고 그 역사적 배경이 간과되었다고 한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시경』의 시편들은 시적 대상의 내적인 생명력을 불러일으켜 노래하는 사람을 치유하는 주술의 노래이다. 또한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노래하고 지배층의 폭정을 풍자하는 강력한 정치?사회 비판의 노래였다고 해석한다. 시라카와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만엽집(萬葉集)』과 『시경』의 비교를 통해, 둘의 역사적 배경이 유사함에도 그 표현이 다른 것에 주목하고, 중국과 일본 고대 사회의 차이를 유추한다. 중국이 격심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그 양상이 문학작품에 반영된 것에 비해 일본은 고대 사회의 성격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중국 문학작품의 비판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주류 학계와는 거리를 둔 채 평생 동양적인 것의 근원을 밝히는 데 몰두했다. 어린 시절 대도시로 떠나와 국회의원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맛본 중국 고전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고대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고, 그는 고대에 다가가는 방법의 하나로 갑골문과 금문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전개되던 1960년대 말 일본에서는 전공투(全共?) 학생운동이 대학가를 휩쓸었다. 그가 재직하던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역시 학내 분쟁으로 들끓었지만, 시라카와의 연구실은 늘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고, 그는 학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훗날 이 시기와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떠올리며 동양의 정신과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는 광기와 폭력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한다(본문 270~271쪽 참조). 대학에서 퇴직한 후 오히려 그의 학문은 활짝 꽃을 피워 ‘자서(字書) 삼부작’을 통해 명성을 얻었고, 말년에는 대중 강연을 통해 일본 사회에 고대 문화와 한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자의 주술, 신과 인간이 소통하다
시라카와의 학문적 출발점은 한자이다. 대상의 형상을 본뜬 상형문자로 인식되는 한자는 단순한 상형이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표현력을 지닌다. 시라카와는 한자가 지닌 상징성을 주술성으로 풀이한다. 예를 들어 ‘道(도)’의 갑골문과 금문을 분석한 결과, 이민족의 머리를 들고 걷는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한 민족의 영역 바깥에 있는 이민족 신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섬기는 영(靈)과 다른 영을 퇴치하기 위해 이민족의 머리를 베어 들고 다닌 모습에서 이 글자가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 글자의 오른쪽에 있는 首(머리 수)에는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시라카와는 주술적 상징으로서의 문자 이해를 바탕으로 고대부터 유래한 구전과 기록은 신과 인간의 대화이며, 나아가 고대 세계는 주술적 세계였다고 말한다.
무녀의 사생아, 실패한 혁명가, 유랑하는 인간 공자
두 번째 대담에서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저서 『공자전(孔子傳)』(1973)에서 파격적인 주장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듯이, 시라카와는 공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갖고 있다. 시라카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굳어진 성인으로서의 공자 해석을 부정한다. 시라카와는 공자가 무녀의 사생아이며, 공자를 비롯한 유가는 원래 장례와 제례 의식을 담당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자의 출신 배경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은 『논어(論語)』를 낳는 배경이 되고, 이상주의자로서의 공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공자는 고대 성왕 시대를 이상적인 시대로 상정하고, 여러 나라를 유랑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치고자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시라카와는 공자를 ‘광자(狂者)’로 규정하는데, 광자는 단순히 ‘미친 사람’이 아니라 부조리한 현실 체제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이다. 시라카와는 공자에게서 유교의 비조(鼻祖)라는 권위를 탈색하고, 그를 한평생 유랑하며 끊임없는 실패를 밑거름으로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한 비범한 한 인간으로 복원한다.
치유의 노래 주술의 노래, 『시경』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은 오경(五經)의 하나로, 공자가 편집했다고 알려져 문학작품임에도 유교 경전의 하나로 연구되었으며, 동아시아 시가문학의 규범이 되었다. 시라카와는 『시경』이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노래로 불리던 시기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시경』의 시들은 악사 집단이 연회나 제사 때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로 불러 전승되었고 후대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시가 남녀 간의 사랑이나 서정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편집되는 과정에서 시의 배열과 순서가 조정되고 시편 간의 조합이 일어나면서, 노래의 주술성이 약화되고 그 역사적 배경이 간과되었다고 한다. 시라카와에 따르면 『시경』의 시편들은 시적 대상의 내적인 생명력을 불러일으켜 노래하는 사람을 치유하는 주술의 노래이다. 또한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노래하고 지배층의 폭정을 풍자하는 강력한 정치?사회 비판의 노래였다고 해석한다. 시라카와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시집인 『만엽집(萬葉集)』과 『시경』의 비교를 통해, 둘의 역사적 배경이 유사함에도 그 표현이 다른 것에 주목하고, 중국과 일본 고대 사회의 차이를 유추한다. 중국이 격심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 그 양상이 문학작품에 반영된 것에 비해 일본은 고대 사회의 성격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중국 문학작품의 비판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