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 고구려사
- 1630
• 지은이 : 마다정 외
• 옮긴이 : 서길수
• 가격 : 38,000원
• 책꼴/쪽수 :
235*160mm, 822쪽
• 펴낸날 : 2006-02-27
• ISBN : 9788958281245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태그 : #역사 #한국사 #고구려 #동북공정 #중국
저자소개
지은이 : 마다정 외
마다정(馬大正)
1938년생.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학술위원회 위원이며,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연구원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저서로는 『변강과 민족―역사의 단면에 대한 연구와 고찰(邊疆與民族―歷史斷面硏考)』, 『이역에서 떠도는 민족(漂落異域的民族)』(공저), 『20세기 중국 변강 연구(二十世紀中國邊疆硏究)』(공저) 등이 있다.
리다롱(李大龍)
1964년생. 현재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한당(漢唐) 변강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양한 시기의 변경 정책과 변경 관리(兩漢時期的邊政與邊吏)』, 『당조와 변강 민족 사신의 왕래 연구(唐朝和邊疆民族使者往來硏究)』,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이 있다.
겅톄화(耿鐵華)
1947년생. 현재 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광개토대왕비 신고(好太王碑新考)』, 『중국 고구려사(中國高句麗史)』, 『고구려 사적 회요(高句麗史籍匯要)』(공저), 『고구려 와당 연구(高句麗瓦當硏究)』(공저), 『광개토대왕비―1580년 제(好太王碑―一千五百八十年祭)』가 있다.
권혁수(權赫秀)
1962년생. 중국 조선족인 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북사범대학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세기의 대심판(世紀大審判)』, 『19세기말 한중관계사 연구(十九世紀末韓中關係史硏究)』, 『당대 한국 인문사회과학(當代韓國人文社會科學)』(공저),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 등이 있다.
1938년생.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학술위원회 위원이며,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연구원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저서로는 『변강과 민족―역사의 단면에 대한 연구와 고찰(邊疆與民族―歷史斷面硏考)』, 『이역에서 떠도는 민족(漂落異域的民族)』(공저), 『20세기 중국 변강 연구(二十世紀中國邊疆硏究)』(공저) 등이 있다.
리다롱(李大龍)
1964년생. 현재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한당(漢唐) 변강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저서로는 『양한 시기의 변경 정책과 변경 관리(兩漢時期的邊政與邊吏)』, 『당조와 변강 민족 사신의 왕래 연구(唐朝和邊疆民族使者往來硏究)』,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이 있다.
겅톄화(耿鐵華)
1947년생. 현재 통화사범학원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겸 교수이다. 주요 저서로는 『광개토대왕비 신고(好太王碑新考)』, 『중국 고구려사(中國高句麗史)』, 『고구려 사적 회요(高句麗史籍匯要)』(공저), 『고구려 와당 연구(高句麗瓦當硏究)』(공저), 『광개토대왕비―1580년 제(好太王碑―一千五百八十年祭)』가 있다.
권혁수(權赫秀)
1962년생. 중국 조선족인 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동북사범대학 역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세기의 대심판(世紀大審判)』, 『19세기말 한중관계사 연구(十九世紀末韓中關係史硏究)』, 『당대 한국 인문사회과학(當代韓國人文社會科學)』(공저), 『고대 중국 고구려 역사 총론(古代中國高句麗歷史總論)』(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 서길수
1944년 전남 화순 출생. 단국대 대학원에서 한국경제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임원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경제사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6년에 중국을 처음 다녀오면서 고구려에 대한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열두 차례의 답사를 통해 자료가 빈약한 고구려사를 재정비하는 데 남다른 역할을 해왔다.
현재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사계절, 1998), 『대륙에 남은 고구려』(고구려연구회, 2003)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고구려 산성 연구」(1999), 「고구려 축성법 연구(1∼5)」(1999∼2005),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2005) 등이 있다.
현재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사계절, 1998), 『대륙에 남은 고구려』(고구려연구회, 2003)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송화강 유역의 고구려 산성 연구」(1999), 「고구려 축성법 연구(1∼5)」(1999∼2005), 「중국의 역사왜곡 현장에 관한 사례 분석」(2005)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동북공정’의 공식 결과물 최초로 번역 출간!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을 추진해온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의 고구려 연구 성과를 총망라해 내놓은 공식적인 최초의 ‘동북공정 종합 보고서’. 고구려는 중국의 동북 변경 지역에 있었던 하나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 그들은 과연 어떤 근거로 고구려 역사를 침탈하려는 것일까? 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 있던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와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을 추진해온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의 고구려 연구 성과를 총망라해 내놓은 공식적인 최초의 ‘동북공정 종합 보고서’. 고구려는 중국의 동북 변경 지역에 있었던 하나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 그들은 과연 어떤 근거로 고구려 역사를 침탈하려는 것일까? 소문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 있던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와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편집자 추천글
1. 기획의도
>> 동아시아 역사논쟁과 동북공정
한·중·일 간의 역사논쟁은 미국의 패권적 지배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동아시아의 세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과 중·일간의 역사논쟁은 과거 식민지 지배기간에 따른 배상과 사과를 중심으로 한다. 이는 식민지 지배 종식 이후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2003년 여름부터 시작된 한·중 간의 역사논쟁은 시간적으로도 먼 고대사에 관한 것이고 목적도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이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정치적 포석에 가깝다. 그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서술 프로젝트에 의해서였다.
>>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은 한족을 비롯하여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이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민족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기관으로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변경의 역사·지리·영토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91년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소련과 경계를 이룬 중국 서북부 변강지역의 동요가 감지되자 중국은 변경 지역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다. 그 결과 티벳을 중심으로 한 1기 서북공정과 운남성을 대상으로 2기 서남공정이 이루어졌다. 동북공정은 그 3기 프로젝트로서 한·중·미·일의 동아시아 역학관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동북변강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와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서북과 서남지역은 현재 그 역사적 모국이 독립된 주권국가가 아니지만 동북지역은 엄연히 한국과 북한이 강력한 역사적 연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반발이 매우 거셌다.
>> 동북공정 이후 2년 반…
결과물에 맞는 대응을 해야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최초로 알려진 것은 2003년 7월 14일 중앙일보 보도에 의해서였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의 패권주의를 질타하였고 정치권도 덩달아 역사왜곡중단촉구 결의안을 냈다. 학자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대응은 매우 감정적이고 일시적었으며 지금까지도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언론은 종합적인 자료를 가지고 보도한 것이 아니라 일부 논문이나 소식통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학계도 조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개별 사안에 대한 논문으로 반박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고토회복’이 불거져 무책임한 국수주의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동북공정은 그 의도가 아무리 비학술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 해도 결과물은 일단 책이다.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을 투입하여 한국 고대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작업을 벌였고 그 성과를 통해 동북지역의 역사적 주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대해 한국사회는 여론에 편승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이는 학술결과에 대한 대응은 오로지 학술행위로서만 반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한국사회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동북공정이 종료되고 그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원제: 『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는 그것을 넘어서는 저술이 나오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동아시아 역사 분쟁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 학술적 대응의 새로운 출발
한국사회가 그동안 동북공정에 대해 이처럼 ‘목소리’만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동북공정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원자료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의 공식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중국에서 나온 지 2년이 지난 이제야 그것도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고구려연구재단이 아닌 고구려 연구자 한 개인의 손을 거쳐 비로소 번역되었다. 고구려연구에만 15년 넘게 매달려온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길수 교수가 한국 역사학계의 정확하고 구체적 대응을 촉구하면서 소개하는 이 책은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의 대응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시금 학계는 온 힘을 다해 학술적 논리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며, 국가 역시 국가 안보와 국경문제라는 측면에서 중국과 설득력 있는 외교 정책을 적극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2. 주요 내용
>> 한국 고대사 총망라하여 결국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
이 책은 824쪽의 방대한 분량인데 핵심논리를 제시하는 ‘이론편’, 한국의 고대사 전반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모두 중국에서 발현하였음을 주장하는 ‘역사편’,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총망라하여 평가하는 ‘연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고대사의 이론과 역사를 거의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그 결론은 오직 고구려사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데 모아져 있다. 이론편 - 현대판 화이사상(華夷思想)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본문의 서두를 이루는 「이론편」에서 “몇 백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년이라고 해도 좋다. 이 범위(청나라 영토)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수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며, 소수민족과 연관된 주변 국가의 역사도 중국 역사가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에 고구려 역사도 중국에 귀속된다는 결론을 낸다. 다음 「역사편」에서 고구려 귀속문제를 언급하면서 첫째로 고구려의 연원을 중국 상인(商人)으로 보고, 둘째로 중국의 강역 형성에 고구려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평을 한다. 셋째로 중국은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예속시킨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에 두었다고 주장한다. 옮긴이는 이런 말들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힘의 논리에 바탕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 역사편(상·하) - 기존 연구 무시한 채 정치 논리에 따라 한국 고대사 재단
옮긴이에 따르면 「역사편」은 이 책의 모든 연구와 마찬가지로 남북한과 일본 등 외국의 연구성과를 전혀 참고하고 있지 않다. 이는 학문적 ‘화이사상’으로서 이 책의 저자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중국 학자들처럼 주변국의 연구성과에 대한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멸망까지의 시기를 다루면서, 고구려의 건국이 이미 고조선이 멸망하고 들어선 한사군의 현도 땅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귀속문제는 자명하다는 논리를 편다. 옮긴이는 이러한 내용이 사료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서기전 37년 홀본 땅은 한나라 현도가 아니라 이미 부여의 영역이었으며, 예속관계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존속한 705년 동안 중국이 35개 나라로 이합집산한 것을 볼 때 고구려가 대체 어느 나라의 지방정권이었느냐고 반문한다.
>> 연구편 - 한·중·일 3국의 기존 연구 결과를 분석
이 부분 역시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학설을 선별·취합한 것이다. 자국의 연구를 정리하면서 고조선부터 부여까지 북방지역의 모든 역사를 조사해야 함을 강조하고 고조선도 선진 시기 분봉제 아래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강역(疆域) 이론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국토 범위는 물론, 이 범위 내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사의 민족이며 이 범위 내에서 건립된 정권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으로 여겨야 한다”는 1980년대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옮긴이는 이 논리가 바로 소수민족 역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며 고구려사 침탈까지 이어져온 정치적 학술행위의 근본 인식이라고 진단한다. 더불어 백산학회와 고구려연구회의 저서, 학회활동내역, 주요 인사에 대한 조사가 자세히 덧붙여져 있다.
>> 동아시아 역사논쟁과 동북공정
한·중·일 간의 역사논쟁은 미국의 패권적 지배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동아시아의 세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과 중·일간의 역사논쟁은 과거 식민지 지배기간에 따른 배상과 사과를 중심으로 한다. 이는 식민지 지배 종식 이후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2003년 여름부터 시작된 한·중 간의 역사논쟁은 시간적으로도 먼 고대사에 관한 것이고 목적도 ‘과거사를 정리’하는 것이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정치적 포석에 가깝다. 그 갈등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서술 프로젝트에 의해서였다.
>> 동북공정의 배경
중국은 한족을 비롯하여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이다. 이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소수민족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1983년 사회과학원 직속기관으로 ‘중국변강사지 연구중심’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하여 변경의 역사·지리·영토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91년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으로 소련이 해체되고 소련과 경계를 이룬 중국 서북부 변강지역의 동요가 감지되자 중국은 변경 지역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한다. 그 결과 티벳을 중심으로 한 1기 서북공정과 운남성을 대상으로 2기 서남공정이 이루어졌다. 동북공정은 그 3기 프로젝트로서 한·중·미·일의 동아시아 역학관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동북변강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와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서북과 서남지역은 현재 그 역사적 모국이 독립된 주권국가가 아니지만 동북지역은 엄연히 한국과 북한이 강력한 역사적 연고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반발이 매우 거셌다.
>> 동북공정 이후 2년 반…
결과물에 맞는 대응을 해야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최초로 알려진 것은 2003년 7월 14일 중앙일보 보도에 의해서였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의 패권주의를 질타하였고 정치권도 덩달아 역사왜곡중단촉구 결의안을 냈다. 학자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당시 한국사회의 대응은 매우 감정적이고 일시적었으며 지금까지도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언론은 종합적인 자료를 가지고 보도한 것이 아니라 일부 논문이나 소식통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학계도 조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개별 사안에 대한 논문으로 반박하는데 그쳤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고토회복’이 불거져 무책임한 국수주의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동북공정은 그 의도가 아무리 비학술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 해도 결과물은 일단 책이다.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을 투입하여 한국 고대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작업을 벌였고 그 성과를 통해 동북지역의 역사적 주권을 가지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에 대해 한국사회는 여론에 편승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이는 학술결과에 대한 대응은 오로지 학술행위로서만 반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한국사회의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동북공정이 종료되고 그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원제: 『古代中國高句麗歷史續論』)는 그것을 넘어서는 저술이 나오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동아시아 역사 분쟁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 학술적 대응의 새로운 출발
한국사회가 그동안 동북공정에 대해 이처럼 ‘목소리’만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동북공정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원자료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의 공식 결과물인 “동북공정 고구려사”는 중국에서 나온 지 2년이 지난 이제야 그것도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고구려연구재단이 아닌 고구려 연구자 한 개인의 손을 거쳐 비로소 번역되었다. 고구려연구에만 15년 넘게 매달려온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서길수 교수가 한국 역사학계의 정확하고 구체적 대응을 촉구하면서 소개하는 이 책은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의 대응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다시금 학계는 온 힘을 다해 학술적 논리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며, 국가 역시 국가 안보와 국경문제라는 측면에서 중국과 설득력 있는 외교 정책을 적극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2. 주요 내용
>> 한국 고대사 총망라하여 결국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
이 책은 824쪽의 방대한 분량인데 핵심논리를 제시하는 ‘이론편’, 한국의 고대사 전반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모두 중국에서 발현하였음을 주장하는 ‘역사편’,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총망라하여 평가하는 ‘연구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고대사의 이론과 역사를 거의 모두 망라하는 포괄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그 결론은 오직 고구려사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데 모아져 있다. 이론편 - 현대판 화이사상(華夷思想)인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본문의 서두를 이루는 「이론편」에서 “몇 백년이라고 해도 좋고 몇 천년이라고 해도 좋다. 이 범위(청나라 영토)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소수민족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며, 소수민족과 연관된 주변 국가의 역사도 중국 역사가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에 고구려 역사도 중국에 귀속된다는 결론을 낸다. 다음 「역사편」에서 고구려 귀속문제를 언급하면서 첫째로 고구려의 연원을 중국 상인(商人)으로 보고, 둘째로 중국의 강역 형성에 고구려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평을 한다. 셋째로 중국은 고구려를 일방적으로 예속시킨 것이 아니라 고구려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중국에 두었다고 주장한다. 옮긴이는 이런 말들이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해치는 힘의 논리에 바탕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 역사편(상·하) - 기존 연구 무시한 채 정치 논리에 따라 한국 고대사 재단
옮긴이에 따르면 「역사편」은 이 책의 모든 연구와 마찬가지로 남북한과 일본 등 외국의 연구성과를 전혀 참고하고 있지 않다. 이는 학문적 ‘화이사상’으로서 이 책의 저자들 역시 대부분의 다른 중국 학자들처럼 주변국의 연구성과에 대한 공부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조선에서 고구려 멸망까지의 시기를 다루면서, 고구려의 건국이 이미 고조선이 멸망하고 들어선 한사군의 현도 땅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귀속문제는 자명하다는 논리를 편다. 옮긴이는 이러한 내용이 사료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서기전 37년 홀본 땅은 한나라 현도가 아니라 이미 부여의 영역이었으며, 예속관계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존속한 705년 동안 중국이 35개 나라로 이합집산한 것을 볼 때 고구려가 대체 어느 나라의 지방정권이었느냐고 반문한다.
>> 연구편 - 한·중·일 3국의 기존 연구 결과를 분석
이 부분 역시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학설을 선별·취합한 것이다. 자국의 연구를 정리하면서 고조선부터 부여까지 북방지역의 모든 역사를 조사해야 함을 강조하고 고조선도 선진 시기 분봉제 아래의 지방정권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강역(疆域) 이론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 국토 범위는 물론, 이 범위 내에서 활동한 민족은 모두 중국사의 민족이며 이 범위 내에서 건립된 정권은 모두 중국 역사상의 정권으로 여겨야 한다”는 1980년대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옮긴이는 이 논리가 바로 소수민족 역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며 고구려사 침탈까지 이어져온 정치적 학술행위의 근본 인식이라고 진단한다. 더불어 백산학회와 고구려연구회의 저서, 학회활동내역, 주요 인사에 대한 조사가 자세히 덧붙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