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9 - 조선생활관 1
- 1673
• 지은이 :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 가격 : 28,000원
• 책꼴/쪽수 :
297*235mm, 104쪽
• 펴낸날 : 2003-07-20
• ISBN : 9788971966907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추천기관 :
어린이도서연구회, 책으로따뜻한세상을여는교사들, 열린어린이
2003년 청소년책읽기운동 추천도서, 제1회 한국출판문화대상 특별상, 책따세 청소년 2004년 겨울방학 권장도서
2003년 청소년책읽기운동 추천도서, 제1회 한국출판문화대상 특별상, 책따세 청소년 2004년 겨울방학 권장도서
• 태그 : #역사 #한국사 #생활사 #박물관 #조선 #종묘제례악 #조선전기
저자소개
지은이 :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편집인
강응천 : 『문명 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사계절출판사), 『세계사신문』(사계절출판사) 등 인문 교양서 기획, 편집 및 집필.
▶연구·편집
김향금 : 전통 문화 작가. 『아무도 모를거야 내가 누군지』(보림) 등 집필. 한솔 인물 이야기 시리즈 집필 디렉터 .
김영미 : 한국역사연구회 생활사 연구팀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생활사 프로젝트 참가. 현재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집필
염정섭 (조선실) : 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조선 농업사 전공.
이희중 (조선실) : 서울대학교 강사. 조선 사상사 전공.
김향금 (특별전시실·가상체험실) : 전통 문화 작가.
김봉렬 (특별전시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학.
김 호 (가상체험실) : 서울대학교 강사. 한국과학사 전공.
정재훈 (특강실1) : 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조선 사상사 전공.
박진호 (특강실2) : 서울대학교 강사. 한글세계화재단 책임연구원. 언어학 전공.
▶책임디자인
백창훈 : 디자인 기획 ‘보빙사’ 책임디자이너 역임.
이정민 :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웅진 미디어, 웅진 출판등 근무. 시각디자인 전공.
▶편집디자인
이동준 : 시각디자인 전공.
▶일러스트레이션 디렉터
곽영권 :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한겨레 일러스트 학교 교사.
▶그림
김동성, 김병하, 백남원, 이선희, 이수진, 이은홍, 임은영, 정지윤
▶사진
정주하 : 백제예술대학 교수.
지중근 : 사진 작가.
▶전시관디자인
김도희 : 인테리어 디자이너.
▶내용 감수
이태진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기획 감수
최준식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종교학. 국제한국학회 회장.
오주석 :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미술사.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학.
김소현 : 배화여자대학교 교수. 복식사.
주영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민속학.
강응천 : 『문명 속으로 뛰어든 그리스 신들』(사계절출판사), 『세계사신문』(사계절출판사) 등 인문 교양서 기획, 편집 및 집필.
▶연구·편집
김향금 : 전통 문화 작가. 『아무도 모를거야 내가 누군지』(보림) 등 집필. 한솔 인물 이야기 시리즈 집필 디렉터 .
김영미 : 한국역사연구회 생활사 연구팀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생활사 프로젝트 참가. 현재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집필
염정섭 (조선실) : 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조선 농업사 전공.
이희중 (조선실) : 서울대학교 강사. 조선 사상사 전공.
김향금 (특별전시실·가상체험실) : 전통 문화 작가.
김봉렬 (특별전시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학.
김 호 (가상체험실) : 서울대학교 강사. 한국과학사 전공.
정재훈 (특강실1) : 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조선 사상사 전공.
박진호 (특강실2) : 서울대학교 강사. 한글세계화재단 책임연구원. 언어학 전공.
▶책임디자인
백창훈 : 디자인 기획 ‘보빙사’ 책임디자이너 역임.
이정민 :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웅진 미디어, 웅진 출판등 근무. 시각디자인 전공.
▶편집디자인
이동준 : 시각디자인 전공.
▶일러스트레이션 디렉터
곽영권 :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한겨레 일러스트 학교 교사.
▶그림
김동성, 김병하, 백남원, 이선희, 이수진, 이은홍, 임은영, 정지윤
▶사진
정주하 : 백제예술대학 교수.
지중근 : 사진 작가.
▶전시관디자인
김도희 : 인테리어 디자이너.
▶내용 감수
이태진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기획 감수
최준식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종교학. 국제한국학회 회장.
오주석 : 연세대학교 겸임교수. 미술사.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학.
김소현 : 배화여자대학교 교수. 복식사.
주영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민속학.
책정보 및 내용요약
조선 전기는 위인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우리 나라 지폐에 초상이 실린 세종, 이이, 이황 모두
이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토록 많은 위인이 활약한 시대였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유산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특히 조선 전기의 생활 문화에 관해서는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오해도 많다.
「조선생활관1」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조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을 찾아 색다른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조선의 모습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과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여기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남녀를 차별하는 호주제가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악습이라고.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말합니다.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전통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라고.「조선생활관1」을 보십시오. 호주제가 유교 문화의 유산도 아니려니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도 우리의 뿌리 깊은 전통이기는커녕 조선 전기만 해도 오히려 요즘보다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혼인을 하면 오히려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부모가 죽으면 딸 아들 구별없이 고루 재산을 물려받고, 제사도 돌아가며 지내던 사회. 당당했던 여성들 만큼이나 생소하고 신선한 모습으로 조선이 다가옵니다.
우리 나라 지폐에 초상이 실린 세종, 이이, 이황 모두
이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위대하기는 하지만
그 시대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토록 많은 위인이 활약한 시대였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유산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특히 조선 전기의 생활 문화에 관해서는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오해도 많다.
「조선생활관1」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조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을 찾아 색다른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조선의 모습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과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여기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남녀를 차별하는 호주제가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악습이라고.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말합니다. 호주제를 폐지하는 것은 전통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라고.「조선생활관1」을 보십시오. 호주제가 유교 문화의 유산도 아니려니와 가부장적 가족 제도도 우리의 뿌리 깊은 전통이기는커녕 조선 전기만 해도 오히려 요즘보다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혼인을 하면 오히려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부모가 죽으면 딸 아들 구별없이 고루 재산을 물려받고, 제사도 돌아가며 지내던 사회. 당당했던 여성들 만큼이나 생소하고 신선한 모습으로 조선이 다가옵니다.
목차
ㅁ야외전시
ㅁ조선실_향촌의 생활
- 양반가의 생활
- 읍성의 생활
- 민촌의 생활
ㅁ특별전시실
ㅁ가상체험실
ㅁ특강실
ㅁ국제실
ㅁ찾아보기_연표_도서실_자료제공 및 출처
ㅁ조선실_향촌의 생활
- 양반가의 생활
- 읍성의 생활
- 민촌의 생활
ㅁ특별전시실
ㅁ가상체험실
ㅁ특강실
ㅁ국제실
ㅁ찾아보기_연표_도서실_자료제공 및 출처
편집자 추천글
1. 기획 의도
조선은 14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존재했다. 이 기간에 세계는 일찍이 겪지 못한 변화를 맞으며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조선이 건국될 무렵에는 몽골 세계 제국이 쇠퇴하면서 동서양 여러 세력이 각개 약진을 시작했다. 특히 장원제의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던 서양인은 바깥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하여 조선 건국 100년 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유럽 각국의 세계 진출이 뒤를 이었다. 서양이 동양을 먹어 들어가는 ‘서세동점’의 도도한 기운은 인도, 중국에 이어 일본의 문을 열어젖히고 여세를 몰아 조선의 숨을 거두어 갔다. 세계사의 거친 흐름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기 쉽다. “그동안 조선은 도대체 뭘 했지?” 그리고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가 유교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다 고지식한 유학자들 때문이야!”라며 흥분하기 쉽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런 핀잔과 비난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단일 왕조가 유교라는 단일 사상을 중심에서 내려 놓지 않은 채 500년이 넘도록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 ― 그 밑에는 만만치 않은 저력이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시시각각 주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화’ 시대. 우리에게는 조선이 패배한 후 100년 동안 쏟아진 호들갑과 격정만큼이나 조선 500년간 곰삭고 농익었던 전통의 핵심을 찾는 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그런 생각 아래 조선이 500년 동안 하고 있던 그 ‘무언가’를 찾아 세 권에 걸친 역사 탐구를 시작한다.
이 책 9권에서는 천년 넘게 이어오던 기존 전통이 유교 중심으로 바뀌어 가던 조선 전기를 살핀다. 10권에서는 그 새로운 전통이 활짝 꽃핀 18세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를 조명하고, 11권에서는 전통과 근대가 맞부딪치던 개항기와 구한말을 다룰 예정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조선 전기는 이전의 고려나 삼국과도 다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와도 다른 시대였다. 우리는 조선을 사대에 찌들고 당쟁에 멍들었으며 공리공담만 무성했던, 왜소하기 짝이 없는 나라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남긴 천문도나 세계 지도, 그리고 학문의 자취를 보면 그들이 녹록치 않은 주체성과 사상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야외전시). 특히 훈민정음의 창제가 가진 주체적 의의, 그리고 이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문자가 세계의 문자 가운데 갖는 독보적 의미에 대해서는 어떤 찬사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특강실·국제실). 외곬수이고 가부장적이라는 조선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대부들이 장악한 16세기 조선의 향촌으로 들어가면, 뜻밖에 남녀 차별이 심하지 않고 농민을 중심으로 무속 전통이 살아 있는 유연한 조선 사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조선실). 한편, 한양에서 거행된 종묘 제례를 재현한 장면에서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인간 관계의 기본 규범인 예(禮)에 철저하고자 했던 조선 유교 정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숙연함마저 느낄 것이다(특별전시실). 한양과 향촌에서 사는 여러 계층의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다룬 ‘가상체험실’은 조선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는 이 책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2. 『한국생활사박물관』 9권 「조선생활관1」의 특징과 내용
▶ 또 다른 조선 - 전통을 보는 우리 시각의 교정 : 우리는 ‘전통’ 하면 유교 문화가 전부인 줄 알지만 그것은 긴 역사로 볼 때 최근인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야 형성된 전통이었다. 그 전까지 우리 조상은 천년 넘게 불교를 중심으로 한 다원적 전통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 책은 이전의 전통과 새로운 전통이 엇갈리며 공존한 조선 전기 사회를 생생하게 조명하면서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 준다.
▶ 순종적인 전통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선 전기의 여성상 : 신사임당은 혼인한 뒤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살았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남편은 새장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이처럼 당당한 여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선 전기 양반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여필종부의 여성상을 ‘현모양처’로 포장하며 그 근거를 조선 시대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은 「조선생활관1」에서 뒤통수를 맞는다.
▶ 초라한 사대주의 국가가 아닌 당당하고 주체적인 조선 :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조선도 중국 못지않은 문명국, 즉 ‘중화의 나라’였으며, 이것은 그들이 ‘조선’이라는 이름을 계승한 옛 조선, 즉 고조선 때부터 그러했다고 자부했다. 그들이 남긴 주체적 문화 유산이 이를 증명한다.
▶ 잘 알려지지 않았던 16세기 향촌 사회 대해부 - 이언적, 이황, 이이, 유희춘 등 걸출한 선비들이 살아 움직인다 : 조선의 이념적 기둥인 성리학은 향촌에 자리 잡은 사대부들에 의해 발전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16세기 향촌 사회의 이모저모를 처음으로 상세하게 살펴본다.
▶ 조선 시대 양반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눈에 잘 보이는 손’ 노비의 모든 것: 양반의 하루는 노비가 잠을 깨워 주면서 시작되고 노비가 잠자리를 깔아 주면서 끝난다. 오늘날의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처럼 양반가를 움직이던 노비들 - 그들은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 선비 정신을 담는 그릇, 조선 백자 열전 : 백자는 청자보다 기술적으로 발전했으면서도 조선 사대부의 취향에 따라 담백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 조선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둘러싼 수령과 선비들의 신경전 - : 선비〔士〕가 벼슬을 하면 대부(大夫)가 된다. 향촌 사회에서 선비는 향시를 통해 벼슬길에 발을 내딛고, 향회에서 대부인 사또와 만나 고을 운영을 논의하지만, 사또와 선비는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 조선 시대 관아의 행정·사법 시스템 : 조선 시대에도 합리적이고 법치주의적인 행정·사법 체계가 있었다. 고문은 합법적이었지만,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르지 않는 형벌과 세금 부과는 명백히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세금을 피하려는 사람과 세금 공무원의 숨바꼭질은 그 때에도 있었다.
▶ 조선 시대 농업 기술 발전의 주역은 농민 자신이었다 : 이앙법, 시비법 등 농업 기술은 국가나 사대부 아닌 농민 자신이 발전시켰다.
▶ 윷놀이에서 토정비결까지 - 조선 시대 : 농민의 여가 생활 농민이라고 항상 일만 했으랴. 모여서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점도 봤다.
▶ 조선 시대 예악(禮樂) 1번지 종묘 대해부 : 종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그 품격과 독특함에서 세계적인 신전이다. 이 건물의 아름다움은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조선 시대의 기본 규범이던 예(禮)를 철저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빛난다.
▶ 15세기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 최초 완벽 재현 : 종묘 제례악은 유네스코 지정 무형 문화유산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왕실 제례악이다. 유교 국가 조선의 최고 의례였던 종묘 제례와 제례악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15세기 세조~성종 때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떤 시간 속에서 살았을까 - 조선 시대의 시간관과 시간 생활 체험 : “1각이 여삼추(3년)”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1각은 약 15분을 가리키는 조선 시대의 시간 단위. 농촌과 도시에서 서로 다른 시간 관념 속에 살아 가던 조선 사람들의 시간 생활을 체험한다.
▶ 자격루와 앙부일구를 비롯한 세종 때 천문 관측 ·시간 측정 시스템 대해부: 세종은 중국의 역법에 따라 매기던 시간을 조선에 맞도록 바꾸겠다고 마음 먹고, 대대적인 천문 관측 시스템을 정비하며 각종 시간 측정 기구를 발명하도록 했다. 조선의 천문과 시간 측정의 세계로 안내한다.
▶ 민족사의 자랑, 세종 시대의 문화 유산 총정리 - 한글, 음악, 과학기술 : 세종 시대는 우리글인 한글을 발명하고 우리 음악을 정비하고 우리 천문 과학을 일으킨 위대한 문화 진흥의 시대였다. 민족사의 큰 자랑인 이들 3대 문화 유산의 특징을 상세히 살펴 본다.
▶ ‘공공(公共)’ 성리학과 ‘퓨전’ 유교 문화 : 조선 전기 유교 문화는 이전의 전통 문화와 섞인 ‘퓨전’형이었다. 그 원인을 당대의 지도 이념이던 성리학의 성격과 한계에 비추어 살펴 본다. 이후 성리학이 변하면서 유교 문화도 변화를 맞는다.
▶ 세계의 문자는 크게 한자 계통과 ‘알파벳’ 계통으로 나뉜다 - 세계 문자의 계보와 역사 총정리 : 고대 이라크 쐐기문자에서부터 12세기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자까지, 역사 속의 주요 문자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그러나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은 그 두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조선은 14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존재했다. 이 기간에 세계는 일찍이 겪지 못한 변화를 맞으며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조선이 건국될 무렵에는 몽골 세계 제국이 쇠퇴하면서 동서양 여러 세력이 각개 약진을 시작했다. 특히 장원제의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던 서양인은 바깥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하여 조선 건국 100년 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유럽 각국의 세계 진출이 뒤를 이었다. 서양이 동양을 먹어 들어가는 ‘서세동점’의 도도한 기운은 인도, 중국에 이어 일본의 문을 열어젖히고 여세를 몰아 조선의 숨을 거두어 갔다. 세계사의 거친 흐름을 살피다 보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기 쉽다. “그동안 조선은 도대체 뭘 했지?” 그리고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가 유교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다 고지식한 유학자들 때문이야!”라며 흥분하기 쉽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런 핀잔과 비난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단일 왕조가 유교라는 단일 사상을 중심에서 내려 놓지 않은 채 500년이 넘도록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 ― 그 밑에는 만만치 않은 저력이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 지금은 시시각각 주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화’ 시대. 우리에게는 조선이 패배한 후 100년 동안 쏟아진 호들갑과 격정만큼이나 조선 500년간 곰삭고 농익었던 전통의 핵심을 찾는 일이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는 그런 생각 아래 조선이 500년 동안 하고 있던 그 ‘무언가’를 찾아 세 권에 걸친 역사 탐구를 시작한다.
이 책 9권에서는 천년 넘게 이어오던 기존 전통이 유교 중심으로 바뀌어 가던 조선 전기를 살핀다. 10권에서는 그 새로운 전통이 활짝 꽃핀 18세기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를 조명하고, 11권에서는 전통과 근대가 맞부딪치던 개항기와 구한말을 다룰 예정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조선 전기는 이전의 고려나 삼국과도 다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이미지와도 다른 시대였다. 우리는 조선을 사대에 찌들고 당쟁에 멍들었으며 공리공담만 무성했던, 왜소하기 짝이 없는 나라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남긴 천문도나 세계 지도, 그리고 학문의 자취를 보면 그들이 녹록치 않은 주체성과 사상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야외전시). 특히 훈민정음의 창제가 가진 주체적 의의, 그리고 이 창조적이고 과학적인 문자가 세계의 문자 가운데 갖는 독보적 의미에 대해서는 어떤 찬사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특강실·국제실). 외곬수이고 가부장적이라는 조선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유교적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대부들이 장악한 16세기 조선의 향촌으로 들어가면, 뜻밖에 남녀 차별이 심하지 않고 농민을 중심으로 무속 전통이 살아 있는 유연한 조선 사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조선실). 한편, 한양에서 거행된 종묘 제례를 재현한 장면에서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인간 관계의 기본 규범인 예(禮)에 철저하고자 했던 조선 유교 정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숙연함마저 느낄 것이다(특별전시실). 한양과 향촌에서 사는 여러 계층의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다룬 ‘가상체험실’은 조선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는 이 책의 백미 가운데 하나이다.
2. 『한국생활사박물관』 9권 「조선생활관1」의 특징과 내용
▶ 또 다른 조선 - 전통을 보는 우리 시각의 교정 : 우리는 ‘전통’ 하면 유교 문화가 전부인 줄 알지만 그것은 긴 역사로 볼 때 최근인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야 형성된 전통이었다. 그 전까지 우리 조상은 천년 넘게 불교를 중심으로 한 다원적 전통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 책은 이전의 전통과 새로운 전통이 엇갈리며 공존한 조선 전기 사회를 생생하게 조명하면서 전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조선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내 준다.
▶ 순종적인 전통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선 전기의 여성상 : 신사임당은 혼인한 뒤 남편과 함께 친정에서 살았고 그녀가 죽은 뒤에도 남편은 새장가 갈 엄두를 못 냈다. 이처럼 당당한 여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조선 전기 양반가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였다. 여필종부의 여성상을 ‘현모양처’로 포장하며 그 근거를 조선 시대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은 「조선생활관1」에서 뒤통수를 맞는다.
▶ 초라한 사대주의 국가가 아닌 당당하고 주체적인 조선 : 조선의 건국 주체들은 조선도 중국 못지않은 문명국, 즉 ‘중화의 나라’였으며, 이것은 그들이 ‘조선’이라는 이름을 계승한 옛 조선, 즉 고조선 때부터 그러했다고 자부했다. 그들이 남긴 주체적 문화 유산이 이를 증명한다.
▶ 잘 알려지지 않았던 16세기 향촌 사회 대해부 - 이언적, 이황, 이이, 유희춘 등 걸출한 선비들이 살아 움직인다 : 조선의 이념적 기둥인 성리학은 향촌에 자리 잡은 사대부들에 의해 발전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16세기 향촌 사회의 이모저모를 처음으로 상세하게 살펴본다.
▶ 조선 시대 양반가를 실질적으로 움직였던 ‘눈에 잘 보이는 손’ 노비의 모든 것: 양반의 하루는 노비가 잠을 깨워 주면서 시작되고 노비가 잠자리를 깔아 주면서 끝난다. 오늘날의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처럼 양반가를 움직이던 노비들 - 그들은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 선비 정신을 담는 그릇, 조선 백자 열전 : 백자는 청자보다 기술적으로 발전했으면서도 조선 사대부의 취향에 따라 담백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 조선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둘러싼 수령과 선비들의 신경전 - : 선비〔士〕가 벼슬을 하면 대부(大夫)가 된다. 향촌 사회에서 선비는 향시를 통해 벼슬길에 발을 내딛고, 향회에서 대부인 사또와 만나 고을 운영을 논의하지만, 사또와 선비는 향촌 사회의 주도권을 놓고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 조선 시대 관아의 행정·사법 시스템 : 조선 시대에도 합리적이고 법치주의적인 행정·사법 체계가 있었다. 고문은 합법적이었지만, 정당한 법 절차에 따르지 않는 형벌과 세금 부과는 명백히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세금을 피하려는 사람과 세금 공무원의 숨바꼭질은 그 때에도 있었다.
▶ 조선 시대 농업 기술 발전의 주역은 농민 자신이었다 : 이앙법, 시비법 등 농업 기술은 국가나 사대부 아닌 농민 자신이 발전시켰다.
▶ 윷놀이에서 토정비결까지 - 조선 시대 : 농민의 여가 생활 농민이라고 항상 일만 했으랴. 모여서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점도 봤다.
▶ 조선 시대 예악(禮樂) 1번지 종묘 대해부 : 종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그 품격과 독특함에서 세계적인 신전이다. 이 건물의 아름다움은 건축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조선 시대의 기본 규범이던 예(禮)를 철저하게 구현했다는 점에서 빛난다.
▶ 15세기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 최초 완벽 재현 : 종묘 제례악은 유네스코 지정 무형 문화유산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왕실 제례악이다. 유교 국가 조선의 최고 의례였던 종묘 제례와 제례악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15세기 세조~성종 때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떤 시간 속에서 살았을까 - 조선 시대의 시간관과 시간 생활 체험 : “1각이 여삼추(3년)”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1각은 약 15분을 가리키는 조선 시대의 시간 단위. 농촌과 도시에서 서로 다른 시간 관념 속에 살아 가던 조선 사람들의 시간 생활을 체험한다.
▶ 자격루와 앙부일구를 비롯한 세종 때 천문 관측 ·시간 측정 시스템 대해부: 세종은 중국의 역법에 따라 매기던 시간을 조선에 맞도록 바꾸겠다고 마음 먹고, 대대적인 천문 관측 시스템을 정비하며 각종 시간 측정 기구를 발명하도록 했다. 조선의 천문과 시간 측정의 세계로 안내한다.
▶ 민족사의 자랑, 세종 시대의 문화 유산 총정리 - 한글, 음악, 과학기술 : 세종 시대는 우리글인 한글을 발명하고 우리 음악을 정비하고 우리 천문 과학을 일으킨 위대한 문화 진흥의 시대였다. 민족사의 큰 자랑인 이들 3대 문화 유산의 특징을 상세히 살펴 본다.
▶ ‘공공(公共)’ 성리학과 ‘퓨전’ 유교 문화 : 조선 전기 유교 문화는 이전의 전통 문화와 섞인 ‘퓨전’형이었다. 그 원인을 당대의 지도 이념이던 성리학의 성격과 한계에 비추어 살펴 본다. 이후 성리학이 변하면서 유교 문화도 변화를 맞는다.
▶ 세계의 문자는 크게 한자 계통과 ‘알파벳’ 계통으로 나뉜다 - 세계 문자의 계보와 역사 총정리 : 고대 이라크 쐐기문자에서부터 12세기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문자까지, 역사 속의 주요 문자는 크게 두 범주로 나뉜다. 그러나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은 그 두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