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뻥 뚫렸으면 좋겠어 (사계절 저학년문고 28)
- 1980
저자소개
지은이 : 장수경
그린이 : 윤정주
책정보 및 내용요약
”할머니…….”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다가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방 천장에서 물이 새서 방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색종이와 피아노 가방까지 물에 젖었다.
”또 샌 거야?”
비에 젖은 천장을 올려다보니 아찔해서 어지럽기까지 했다. 두두두……. 빗방울은 축축해진 천장을 뚫어 버릴 것처럼 세차게 내리쳤다.
편집자 추천글
1. 작품 소개
요즘 아이들의 삶은 예전보다 많이 삭막해졌습니다. 빽빽한 아파트 숲에 살면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를 놀이터 삼아 뛰노는 아이들이 자연의 여유와 풍성함을 느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어떤 차를 모는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가 아이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거리감과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특히 집은 제 또래들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과시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인 공간입니다. 때문에 집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다면 친구들 한 번 맘 놓고 데려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지붕이 뻥 뚫렸으면 좋겠어』에 나오는 경모도 바로 그런 곤란함에 처해 있습니다. 경모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빨간 기와집에 사는 게 창피합니다. 여기저기 금이 간 담장, 낡은 철 대문, 게다가 2년 전 길을 넓힐 때 한쪽 귀퉁이가 잘려나가 시멘트로 대충 때운 지붕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지요. 차라리 지붕이 뻥 뚫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둠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경모는 선뜻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괜히 집 주위만 뱅글뱅글 맴돕니다.
작품 속에는 그런 경모의 위축되고 불편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혼자 얼굴이 빨개져 땀을 뻘뻘 흘리고, 마치 나방이 들어간 것처럼 귓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런 경모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경모의 속을 태웁니다. 그 중에서도 코끼리 다리 종수는 경모의 아픈 곳을 골라가며 찌르는, 경모와는 모든 면에서 대조되는 캐릭터이지요. 경모가 갖고 싶어하는 것을 다 가진 종수는 도시 아이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세은이와 도연이가 낯선 경모네 집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서서히 친해지고 익숙해지는 것과는 달리 종수는 영 적응할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렇듯 작가는 서로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을 등장시켜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옛 집을 만나게 하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아무리 허물어내도 꼭 다시 그 자리에 집을 짓는 까치 얘기 역시 ?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하는 장치지요. 또 마당으로 인해 자연이 늘 가까이에 있었던 우리 옛 집이 얼마나 지혜로운 공간이었는지도 깨닫게 해줍니다.
『지붕이 뻥 뚫렸으면 좋겠어』는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아이들의 눈으로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게 하지 않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독자가 마치 경모네 집에 들어와 있는 듯 느껴지게 하는 집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2. 줄거리
경모는 빨간 기와집에 삽니다. 어릴 때는 마당에서 흙장난도 하고 신나게 놀았지만 지금은 종수네처럼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합니다. 동네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자 빨간 기와집이 폭 파묻혔고, 지은 지 30년이 넘어 군데군데 깨진 기와에서 빗물이 새는 이 집이 아파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둠 아이들을 집에 데려가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꾀병도 부려 봤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경모는 종수와 도연, 세은이를 이끌고 집으로 갑니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할머니가 반갑게 경모를 부릅니다. “아이고, 우리 귀한 장손 왔는가!” 마당에 들어선 아이들은 집 안 곳곳을 재빠르게 훑습니다. 대춧잎이 떨어진 수돗가와 손잡이가 반쯤 떨어져 나간 삽, 다 닳아빠진 싸리비, 이끼 낀 담벼락에는 호미와 낫이 걸려 있고 수세미와 호박덩굴이 어지럽게 휘감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거실 마루에 들어서자 할머니가 미숫가루를 내오고, 다른 아이들은 다 그냥 마시는데 종수는 미숫가루가 톡 쏘지도 않고 달지도 않다며 그냥 물을 달라고 합니다. 보리차를 갖다 주자 떨떠름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정수기 물을 달라고 합니다. 집에는 콜라나 사이다는커녕 정수기도 없는데 트집만 잡는 종수가 경모는 은근히 얄밉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기 전 춤을 한번 추자면서 삐걱거리는 마루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가 “아이야, 마룻바닥 무너지며 안 된께 방으로 들어가 놀아라잉.” 하시는 할머니 호통에 방으로 들어갑니다. 방에 들어서자 비가 새서 천장이 거뭇거뭇합니다. 경모는 혼자 중얼거립니다. “새까만 천장, 차라리 구멍이나 뻥 나버려라!” 숙제를 하는데 마침 할머니가 들어와 경모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갑니다. 가래침 뱉는 소리, 걸레 빠는 소리, 오줌 누는 소리……. 혼자 얼굴이 빨개진 경모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욕실에서 나온 할머니는 “아이고, 정신사납게 어지르지 말고 후딱 나가들 놀아라잉!” 하며 소리를 칩니다. 마침 비가 쏟아지고 아이들은 서둘러 집에 돌아갑니다.
다음날 아이들은 종수네 집에 놀러 갑니다. 종수네 엄마가 챙겨준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은 경모는 그만 배탈이 나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가 없어서 종수를 부릅니다. “짜식, 촌스럽기는!” 종수는 성가시다는 듯 화장실로 들어와 변기 옆의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자 물줄기가 쏴아아 하고 나오면서 휴지처럼 뒤를 닦아줍니다. 집에 돌아온 경모는 종수네서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파트가 정말 좋다고, 우리도 이사 가자고 졸라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꿈쩍도 않습니다. 오히려 경모를 위해 죽는 날까지 이 집에서 살 거라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며칠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리고, 경모는 내내 우울합니다. 우산에 구멍까지 나서 말썽인 날, 경모가 집에 돌아오자 집은 텅 비어 있습니다. 자기 방에 들어선 경모는 깜짝 놀랍니다. 천장에서 물이 새서 방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습니다. 두두두……. 빗방울은 천장을 뚫어버릴 것처럼 더욱 세차게 내립니다. 시장 한복집에 가 있는 할머니에게 빨리 오시라고 전화했지만 할머니가 오려면 20분은 걸릴 테고, 빗줄기는 갈수록 거세집니다. 경모는 서서히 겁에 질립니다. 욕실에서 양동이를 가져다놓고, 수건으로 물을 닦아보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에는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결국 홑이불까지 꺼내 펼쳐놓고 하수구로 물이 넘칠까봐 집 안 곳곳의 구멍을 다 막으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옵니다. 갑자기 할머니 목소리를 듣자 긴장이 탁 풀리면서 울음이 터집니다. “불쌍한 내 새끼, 월매나 놀랬으면…….” 할머니는 치맛자락으로 경모 눈물과 콧물을 닦아줍니다. “천장이 뻥 뚫리는 줄 알았어. 지붕이 있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경모가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데 할머니가 창 밖을 가리킵니다. “빌어먹을 장대비 같으니! 다 그쳤네그랴. 저 해 나오는 것 좀 봐라잉.” 어둡던 방이 점점 환해지고 벽 위에 걸린 가족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할아버지 환갑 때 마당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온 가족이 웃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