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 3)
- 1707
• 지은이 : 박한제
• 가격 : 18,000원
• 책꼴/쪽수 :
223*152mm, 335쪽
• 펴낸날 : 2003-06-13
• ISBN : 9788971969519
• 십진분류 : 역사 > 아시아 (910)
• 추천기관 :
문화체육관광부, 교보문고, 한국출판문화상
교보문고 5월 인문권장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추천, 제36회문화관광부추천도서
교보문고 5월 인문권장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 추천, 제36회문화관광부추천도서
• 태그 : #역사 #중국사 #선비족 #대당제국 #중화 #제국
저자소개
지은이 : 박한제
1946년 경남 진주(진양)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년간 일본학술진흥회 초청으로 오차노미즈お茶の水 여대에서, 그리고 대만 교육부 초청으로 한학연구중심漢學硏究中心에서 연구했다. 1996~1997년에는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한 바 있다. 1985년 이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1~2002년에는 한국중국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중국중세호한체제연구』(1988), 『인생-나의 오십 자술』(1997),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가 있으며, 중국 중세 민족 관계 논문을 주로 쓰고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제아무리 큰 강이라도 그 발원지는 작은 옹달샘이듯, 세계 제국의 발원지도 조그만 동굴이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조 대당 제국을 열었던 사람들은 바로 선비족. 그들의 원류는 조그만 동굴에서 시작되었다. 그 석실 기행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그들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까지의 긴 여정과 제국 체제가 갖는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대당 제국. ”세계의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을 낳았던 장안의 봄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역사는 장안의 봄을 재현하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짧았던 장안의 봄은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장안의 봄을 건설했던 사람들은 중화민족으로 자처했던 한족이 아니었다. 그들이 오호의 하나로 폄하했던 선비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남조 이후 북조를 거쳐 고구려를 침략했던 수나라와 당나라가 건설되기 까지, 중원에 얽혀든 유목민과 농경민의 투쟁과 화합의 드라마, 그 역사의 현장에서 호한체제가 만들어낸 중국사의 큰 강물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까지의 긴 여정과 제국 체제가 갖는 의미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대당 제국. ”세계의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을 낳았던 장안의 봄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역사는 장안의 봄을 재현하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짧았던 장안의 봄은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장안의 봄을 건설했던 사람들은 중화민족으로 자처했던 한족이 아니었다. 그들이 오호의 하나로 폄하했던 선비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남조 이후 북조를 거쳐 고구려를 침략했던 수나라와 당나라가 건설되기 까지, 중원에 얽혀든 유목민과 농경민의 투쟁과 화합의 드라마, 그 역사의 현장에서 호한체제가 만들어낸 중국사의 큰 강물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序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북조수초당 시대
一
선비족 발상의 비밀을 간직한 천년 동굴의 신비
호륜패이呼倫貝爾 평원과 알선동?仙洞 선비 석실 기행
二
석굴 속에 새겨진 중생들의 끝없는 욕망
대동大同 운강雲崗 - 낙양洛陽 용문석굴龍門石窟 기행
三
문명태후文明太后의 치마폭과 효문제孝文帝의 낙양 천도
북위 수도 평성平城:大同 - 낙양 기행
四
영화 「뮬란」의 주인공 목란木蘭은 누구인가?
몽고 초원 기행
五
비단길 가에 흩어져 있는 균전제의 작은 흔적들
돈황敦煌 토로번吐魯番 기행
六
어느 권력자의 모정의 세월
북조판 이산가족 염희`閻姬:北齊와 우문호宇文護: 北周 모자의 기막힌 사연
七
화려한 대당 제국의 조촐한 태동
관롱집단關?集團과 부병제府兵制 창설의 주역 우문태宇文泰의 묘를 찾아서
八
수隋 양제煬帝 이발관과 수 양제 스낵
운하 도시 양주 기행
九
세계 제국의 심장 장안과 낙양의 빛과 그늘
장안의 봄은 길지 않았다
제국으로 가는 긴 여정
북조수초당 시대
一
선비족 발상의 비밀을 간직한 천년 동굴의 신비
호륜패이呼倫貝爾 평원과 알선동?仙洞 선비 석실 기행
二
석굴 속에 새겨진 중생들의 끝없는 욕망
대동大同 운강雲崗 - 낙양洛陽 용문석굴龍門石窟 기행
三
문명태후文明太后의 치마폭과 효문제孝文帝의 낙양 천도
북위 수도 평성平城:大同 - 낙양 기행
四
영화 「뮬란」의 주인공 목란木蘭은 누구인가?
몽고 초원 기행
五
비단길 가에 흩어져 있는 균전제의 작은 흔적들
돈황敦煌 토로번吐魯番 기행
六
어느 권력자의 모정의 세월
북조판 이산가족 염희`閻姬:北齊와 우문호宇文護: 北周 모자의 기막힌 사연
七
화려한 대당 제국의 조촐한 태동
관롱집단關?集團과 부병제府兵制 창설의 주역 우문태宇文泰의 묘를 찾아서
八
수隋 양제煬帝 이발관과 수 양제 스낵
운하 도시 양주 기행
九
세계 제국의 심장 장안과 낙양의 빛과 그늘
장안의 봄은 길지 않았다
편집자 추천글
:: 재미있는 이야기들
> 아들이 왕이 되면 그 어미를 죽여라
4세기부터 10세기 당나라가 멸망하기까지 중국에서는 소위 여성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중원을 정복한 유목 민족들이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사에 관여하는 여인들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했다. 유목 전통에서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특히 정치에서는 외척의 입김이 강했다. 북위는 외척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왕자 중에 세자가 정해지면 즉시 그 생모를 죽였다. 그러나 세자를 낳지 않은 황후가 황태후가 되어 결국 황제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3권 3장)
> '뮬란'은 누구인가?
디즈니의 영화로 잘 알려진 '뮬란'. 효성과 정절을 갖춘 여인인 동시에, 국가에 책임을 다하면서도 돈과 벼슬보다 인간다움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이상적인 여인. 그래서 아름다운 시 한 편으로 그 이름을 전하는 뮬란은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 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그녀는 영화에서 알려진 바와 달리 원래 유목 민족 출신으로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내지로 들어와 살면서 양쪽 풍습을 두루 익힌 호한 융합의 여인이다. 그녀의 고향과 그녀가 말을 타고 달렸던 이야기가 푸른 초원과 함께 펼쳐진다.(3권 4장)
> 12년을 같이 다녔건만, 목란이 여자인 줄 몰랐도다.
수토끼 뜀걸음 늦을 때 있고, 암토끼 분명치 못할 때 있거늘 두 마리 같이 뛰어 달리니, 그 누가 가려낼 수 있겠는가.(목란시 중에서) 균전제는 만민 평등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주민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주는 균전제는 일각에서 일찍이 공산주의 이념을 실시한 제도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실은 철저한 조세 제도를 통해 인민을 압박하기 위한 제도였다. 비단길 가에 흩어져 있는 균전제의 흔적들을 보면, 비단 생산을 위해 국가적으로 주민 할당 생산제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생산량은 노비는 물론 가축의 수에 따라서 철저하게 분배되었고, 현재와 같은 '00군 00리 아무개'라는 체제의 호적에 의해 관리되었다. 발굴된 당시의 호적 대장 사진이 실려 있다.(3권 5장)
> 수 양제 이발관과 수 양제 스낵
대운하를 건설했던 수 양제는 500만 명의 노역으로 건설한 운하를 오락시설로 사용했다. 양제가 운하에 띄운 배의 최상층에는 정전과 내전과 동서조당이 있었고, 중간의 양층에는 방이 120개 있었다. 최하층에는 내시가 거주했다. 1080명이 3개조로 나누어 배를 끌었다. 따로 왕후가 타는 배는 900명이끌었다. 미인, 수행 관료 등이 탄 배 9척을 포함해 당시 낙구를 출발한 선단은 모두 5191척으로 구성되었다. 그 뱃머리와 꼬리가 맞닿아 이어진 행렬이 200리에 뻗어 있었다. 환락에 빠진 그는 결국 반란을 막지 못했고, 양주에서 친위병들의 손에 죽었으며, 수나라를 이어 대당 제국은 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날 수 양제의 무덤을 기리는 이는 아무도 없고, 다만 무덤 앞에 수양제 이발관과 수양제 스낵만이 한가하게 서 있었다.(3권 7장)
> 아들이 왕이 되면 그 어미를 죽여라
4세기부터 10세기 당나라가 멸망하기까지 중국에서는 소위 여성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중원을 정복한 유목 민족들이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사에 관여하는 여인들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했다. 유목 전통에서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특히 정치에서는 외척의 입김이 강했다. 북위는 외척의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왕자 중에 세자가 정해지면 즉시 그 생모를 죽였다. 그러나 세자를 낳지 않은 황후가 황태후가 되어 결국 황제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졌다.(3권 3장)
> '뮬란'은 누구인가?
디즈니의 영화로 잘 알려진 '뮬란'. 효성과 정절을 갖춘 여인인 동시에, 국가에 책임을 다하면서도 돈과 벼슬보다 인간다움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이상적인 여인. 그래서 아름다운 시 한 편으로 그 이름을 전하는 뮬란은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 박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그녀는 영화에서 알려진 바와 달리 원래 유목 민족 출신으로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내지로 들어와 살면서 양쪽 풍습을 두루 익힌 호한 융합의 여인이다. 그녀의 고향과 그녀가 말을 타고 달렸던 이야기가 푸른 초원과 함께 펼쳐진다.(3권 4장)
> 12년을 같이 다녔건만, 목란이 여자인 줄 몰랐도다.
수토끼 뜀걸음 늦을 때 있고, 암토끼 분명치 못할 때 있거늘 두 마리 같이 뛰어 달리니, 그 누가 가려낼 수 있겠는가.(목란시 중에서) 균전제는 만민 평등을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주민들에게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주는 균전제는 일각에서 일찍이 공산주의 이념을 실시한 제도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실은 철저한 조세 제도를 통해 인민을 압박하기 위한 제도였다. 비단길 가에 흩어져 있는 균전제의 흔적들을 보면, 비단 생산을 위해 국가적으로 주민 할당 생산제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다. 생산량은 노비는 물론 가축의 수에 따라서 철저하게 분배되었고, 현재와 같은 '00군 00리 아무개'라는 체제의 호적에 의해 관리되었다. 발굴된 당시의 호적 대장 사진이 실려 있다.(3권 5장)
> 수 양제 이발관과 수 양제 스낵
대운하를 건설했던 수 양제는 500만 명의 노역으로 건설한 운하를 오락시설로 사용했다. 양제가 운하에 띄운 배의 최상층에는 정전과 내전과 동서조당이 있었고, 중간의 양층에는 방이 120개 있었다. 최하층에는 내시가 거주했다. 1080명이 3개조로 나누어 배를 끌었다. 따로 왕후가 타는 배는 900명이끌었다. 미인, 수행 관료 등이 탄 배 9척을 포함해 당시 낙구를 출발한 선단은 모두 5191척으로 구성되었다. 그 뱃머리와 꼬리가 맞닿아 이어진 행렬이 200리에 뻗어 있었다. 환락에 빠진 그는 결국 반란을 막지 못했고, 양주에서 친위병들의 손에 죽었으며, 수나라를 이어 대당 제국은 그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날 수 양제의 무덤을 기리는 이는 아무도 없고, 다만 무덤 앞에 수양제 이발관과 수양제 스낵만이 한가하게 서 있었다.(3권 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