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 1746
• 지은이 : 박한제 외 3인
• 가격 : 16,500원
• 책꼴/쪽수 :
228*155mm, 288쪽
• 펴낸날 : 2002-05-27
• ISBN : 9788971968925
• 십진분류 : 역사 > 유럽 (920)
• 추천기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구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중앙일보, 교보문고,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추천도서, 교보문고 계층별 권장도서 · 중앙일보 선정 도서, 대한출판문화협회 2003년 2분기 이달의 청소년도서 선정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추천도서, 교보문고 계층별 권장도서 · 중앙일보 선정 도서, 대한출판문화협회 2003년 2분기 이달의 청소년도서 선정
• 태그 : #역사 #중앙아시아사 #유라시아 #몽골제국
저자소개
지은이 : 박한제 외 3인
박한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오호-북조시대 호한 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중세사(위진남북조, 수당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중국 중세 호한 체제 연구』(1988)가 있으며, 그 밖에 중국 중세 호한 민족 문제를 다룬 논문이 다수 있다.
김호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가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칭기스칸』(1992), 『유라시아 유목제국사』(1998),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 『이슬람 1400년』(2001) 등이 있다.
최갑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생시몽의 사회사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프랑스혁명과 ‘국민’의 탄생“(1999), “1789년의 ‘인권선언’과 혁명기의 담론”(2001)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굿모닝 밀레니엄』(1999), 『프랑스대혁명사』(1984), 『왕정의 몰락과 프랑스혁명』(1987), 『프랑스의 역사』(1998), 『1789년의 대공포』(2002) 등이 있다.
한정숙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동구및 러시아 역사전공)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동유럽형 농노제”(1998), “슬라브적인 것과 유라시아적인 것”(1999), “내전기 러시아 주민의 정치적 동향”(2000)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노동의 역사』(1982), 『비잔티움 제국사』(1999), 『봉건사회』(2001)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오호-북조시대 호한 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국 중세사(위진남북조, 수당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중국 중세 호한 체제 연구』(1988)가 있으며, 그 밖에 중국 중세 호한 민족 문제를 다룬 논문이 다수 있다.
김호동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1999), 『황하에서 천산까지』(1999)가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칭기스칸』(1992), 『유라시아 유목제국사』(1998),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2000), 『이슬람 1400년』(2001) 등이 있다.
최갑수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생시몽의 사회사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프랑스혁명과 ‘국민’의 탄생“(1999), “1789년의 ‘인권선언’과 혁명기의 담론”(2001)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굿모닝 밀레니엄』(1999), 『프랑스대혁명사』(1984), 『왕정의 몰락과 프랑스혁명』(1987), 『프랑스의 역사』(1998), 『1789년의 대공포』(2002) 등이 있다.
한정숙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동구및 러시아 역사전공)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동유럽형 농노제”(1998), “슬라브적인 것과 유라시아적인 것”(1999), “내전기 러시아 주민의 정치적 동향”(2000)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노동의 역사』(1982), 『비잔티움 제국사』(1999), 『봉건사회』(2001)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13세기의 몽골 제국의 현장인 유라시아의 이후 일상생활, 도시, 교통, 문화 등 세부 주제와 적합한 각 지역을 선정하여 중국-러시아-로마-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지역의 합동 답사 여행을 통한 결과물로서 동·서 문명의 상호 영향과 발전 양상의 역사적 맥락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21세기를 맞이한 인류가 문명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 문명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문명 비교 탐사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목차
1. 동서 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 ‘동양’이란 무엇인가?
- ‘서양’이란 무엇인가?
- ‘선(線)’이 아닌 ‘면(面)’으로서의 실크로드
- 동서 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2. 중세 사회의 세계 인식 : 유라시아 세계 형성 이전 각 문명권의 세계관
- 중화주의 : 중국인의 신화와 현실
- 유목민의 다원적 세계관
- 슬라브인들의 지리적 교류 범위
- 중세 사회의 세계 인식 : 유럽의 탄생
3. 중세의 도시들 : 일상의 삶과 정치, 중세 도시의 모습
- 모든 길은 장안으로 통하고 있었다.
- 사마르칸드의 영광
- 샹파뉴 지방의 정기시들
- 키예프 시대의 도시들
4. 몽골 제국의 출현과 그 충격
- 몽골 세계 제국의 탄생
- 몽골의 중국 지배가 남긴 것
- 모노마흐의 왕관
- 몽골 제국의 출현과 로마 교회의 대응
5. 유라시아를 잇는 교통망의 변화 : 13세기의 세계 체제
- 몽골 제국의 출현과 해상 교통
- 몽골의 역참제, 유라시아를 연결한 ‘점(點)’의 네트워크
- 공간의 확대와 연결
- 중세 유럽에서 지리적 지식과 지도
6. 일상생활의 변화와 도시 문화 : 유라시아 도시들의 과거와 오늘
- 사라진 초원 도시 카라코룸
- 대원 제국의 수도권 운영과 상도(上都)와 대도(大都)
- 부역(附逆)과 저항 사이 : 모스크바와 노브고로드
- 아드리아 해의 여왕, 베네치아
7. 동서를 이어 준 사람들 : 장벽을 넘은 수도사와 상인, 정복자들
- 카르피니와 루브룩, 아시아를 찾은 첫 유럽인들
- ‘팍스 몽골리카’의 산물『동방견문록』
- 정화(鄭和)의 남해 원정과 명 제국 질서
- 시베리아의 정복자들 : 스트로가노프 가문과 예르마크
8. 전쟁과 사회 변동
- 장성(長城)과 명의 쇄국주의
- 유목민과 기마전
- 군제 변화와 러시아 농민의 농노화
- 서구에서 총포·화약의 등장과 사회 변동
9. 종교적 대립과 교류 : 유라시아의 여러 종교들과 그 상호 관계
- 신유학의 전개와 외래 종교의 수용
- 이슬람 세계의 확대
-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 : 정교의 발전
- 서구 기독교 교회의 변화
10. 유라시아 세계의 변화와 발전 : 새로운 정치·사회·경제 체제, 새로운 삶의 방식들
- 중화 세계의 폐쇄적 세계관
- 몽골 제국과 세계 인식의 변화
-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제국의 형성
- 서구인들의 해양 진출과 새로운 세계 체제의 형성
- ‘동양’이란 무엇인가?
- ‘서양’이란 무엇인가?
- ‘선(線)’이 아닌 ‘면(面)’으로서의 실크로드
- 동서 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2. 중세 사회의 세계 인식 : 유라시아 세계 형성 이전 각 문명권의 세계관
- 중화주의 : 중국인의 신화와 현실
- 유목민의 다원적 세계관
- 슬라브인들의 지리적 교류 범위
- 중세 사회의 세계 인식 : 유럽의 탄생
3. 중세의 도시들 : 일상의 삶과 정치, 중세 도시의 모습
- 모든 길은 장안으로 통하고 있었다.
- 사마르칸드의 영광
- 샹파뉴 지방의 정기시들
- 키예프 시대의 도시들
4. 몽골 제국의 출현과 그 충격
- 몽골 세계 제국의 탄생
- 몽골의 중국 지배가 남긴 것
- 모노마흐의 왕관
- 몽골 제국의 출현과 로마 교회의 대응
5. 유라시아를 잇는 교통망의 변화 : 13세기의 세계 체제
- 몽골 제국의 출현과 해상 교통
- 몽골의 역참제, 유라시아를 연결한 ‘점(點)’의 네트워크
- 공간의 확대와 연결
- 중세 유럽에서 지리적 지식과 지도
6. 일상생활의 변화와 도시 문화 : 유라시아 도시들의 과거와 오늘
- 사라진 초원 도시 카라코룸
- 대원 제국의 수도권 운영과 상도(上都)와 대도(大都)
- 부역(附逆)과 저항 사이 : 모스크바와 노브고로드
- 아드리아 해의 여왕, 베네치아
7. 동서를 이어 준 사람들 : 장벽을 넘은 수도사와 상인, 정복자들
- 카르피니와 루브룩, 아시아를 찾은 첫 유럽인들
- ‘팍스 몽골리카’의 산물『동방견문록』
- 정화(鄭和)의 남해 원정과 명 제국 질서
- 시베리아의 정복자들 : 스트로가노프 가문과 예르마크
8. 전쟁과 사회 변동
- 장성(長城)과 명의 쇄국주의
- 유목민과 기마전
- 군제 변화와 러시아 농민의 농노화
- 서구에서 총포·화약의 등장과 사회 변동
9. 종교적 대립과 교류 : 유라시아의 여러 종교들과 그 상호 관계
- 신유학의 전개와 외래 종교의 수용
- 이슬람 세계의 확대
-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 : 정교의 발전
- 서구 기독교 교회의 변화
10. 유라시아 세계의 변화와 발전 : 새로운 정치·사회·경제 체제, 새로운 삶의 방식들
- 중화 세계의 폐쇄적 세계관
- 몽골 제국과 세계 인식의 변화
- 러시아의 영토 확장과 제국의 형성
- 서구인들의 해양 진출과 새로운 세계 체제의 형성
편집자 추천글
1. 기획 과정과 의도
*** 역사학계의 최대 행사인 올해 역사학대회(2002. 5.31 ~ 6.1)의 중심주제는 ‘문명간의 상호인식’이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문명간의 충돌과 공존이 이슈로 떠오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주제이며, 동시에 그간 학계에서 문명들의 성격과 의미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교하고 종합하는 연구가 간과되어 왔기 때문에 9·11 테러 이후 문명간의 상호 인식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대중에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없었다는 역사학계의 자기비판의 산물이다.
*** 동·서양사학자 4인으로 구성된 이 책의 집필진은 국내 역사학계에서 “문명충돌론”과 “문명공존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동·서양 문명의 교류와 충돌, 상호 영향이란 주제를 역사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이들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서구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세계사상(像)을 모색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따라, 유럽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이전인 13세기 유라시아 세계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집중 탐색이 가장 긴요하리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13세기의 몽골 제국의 현장인 유라시아를 현지 탐사의 중심 대상으로 결정하였고, 이후 일상생활, 도시, 교통, 문화 등 세부 주제와 적합한 각 지역을 선정하여 중국-러시아-로마-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지역의 합동 답사 여행을 2000년 여름에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미흡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각 필자가 이후 개별적으로 추가 답사를 진행하였다. 이처럼 문제의식에 대한 집필진의 전폭적인 공감과 치밀한 탐사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13세기 몽골 대제국의 건설을 계기로 동·서양이 조우하고 충돌했던 현장의 역사 탐사가 가능하였다. 이런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서 동·서 문명의 상호 영향과 발전 양상의 역사적 맥락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21세기를 맞이한 인류가 문명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 문명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문명 비교 탐사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2. 유라시아 역사 탐사의 결실
서구중심주의가 거대한 패러다임으로 정형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주의적 관점, 그리고 차이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거둬 내고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유라시아를 바라본 ‘초점의 이동’을 통해 얻어낸 것들
-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새로운 인식
아프리카의 서북단인 모로코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만주에 이르는 사막의 거대한 연쇄는 인간들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이어 주고 만남을 자극하는 “육지의 바다”였다. 사막을 불모 지대로 바라보는 태도야말로 “대항해 시대”가 만들어낸 편견의 산물이다. 2500년 간의 기간(BC 800-Ad 1700)에 사막의 모래 바람을 타고 홀연히 나타나 거대 농업 문명들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수많은 유목민은 유라시아 대륙에 일종의 문화적 평형 상태를 빚어 주었던 문명의 매개자이자 전달자였다.
- ‘세계사의 탄생’에 대한 새로운 시기 매김
흔히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을 통해 참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했다고 운위되곤 한다. 고립 분산적이었던 지구상의 사회와 문화가 유럽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이미 몽골 제국에 의해 13세기에 이룩되었던 ‘세계사의 탄생’을 간과한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낳은 오류이다. 몽골이 낳은 “13세기의 세계 체제”는 제국의 이름 아래 차이와 공존을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포용할 수 있었던 진정한 파천황의 세계, 즉 ‘몽골인의 평화(Pax Mongolica)'였던 것이다.
- 유럽이 만들어 낸 ‘역사학’ 자체에 대한 반성
역사학은 ‘과거를 길들이기’ 위한 학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인 과거는 그곳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학에서 과거란 대상적 존재일 뿐 주체는 아니다. 과연 과거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국제 질서의 단위 주체인 ‘국민 국가’이다. 즉 근대 역사학이란 유럽에서 근대 국민 국가가 등장하면서 ‘국민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하였던 학문이다. 이런 의도를 가진 ‘역사학’은 현재의 요구에 따라 과거를 상당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국가 통제력의 범위를 상당히 벗어나 있는 유라시아의 다양한 문명 탐사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강력한 틀에서 벗어난 진정한 ‘역사’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의 길은 여는 작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끔 한다.
*** 역사학계의 최대 행사인 올해 역사학대회(2002. 5.31 ~ 6.1)의 중심주제는 ‘문명간의 상호인식’이다. 이는 9·11 테러 이후 문명간의 충돌과 공존이 이슈로 떠오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주제이며, 동시에 그간 학계에서 문명들의 성격과 의미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교하고 종합하는 연구가 간과되어 왔기 때문에 9·11 테러 이후 문명간의 상호 인식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대중에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없었다는 역사학계의 자기비판의 산물이다.
*** 동·서양사학자 4인으로 구성된 이 책의 집필진은 국내 역사학계에서 “문명충돌론”과 “문명공존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부터 동·서양 문명의 교류와 충돌, 상호 영향이란 주제를 역사학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이들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서구중심주의를 뛰어넘는 세계사상(像)을 모색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따라, 유럽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이전인 13세기 유라시아 세계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집중 탐색이 가장 긴요하리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13세기의 몽골 제국의 현장인 유라시아를 현지 탐사의 중심 대상으로 결정하였고, 이후 일상생활, 도시, 교통, 문화 등 세부 주제와 적합한 각 지역을 선정하여 중국-러시아-로마-이스탄불-우즈베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지역의 합동 답사 여행을 2000년 여름에 다녀왔다.
이 기간 중 미흡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각 필자가 이후 개별적으로 추가 답사를 진행하였다. 이처럼 문제의식에 대한 집필진의 전폭적인 공감과 치밀한 탐사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13세기 몽골 대제국의 건설을 계기로 동·서양이 조우하고 충돌했던 현장의 역사 탐사가 가능하였다. 이런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서 동·서 문명의 상호 영향과 발전 양상의 역사적 맥락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21세기를 맞이한 인류가 문명의 장벽을 넘어 보편적 문명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심도 있게 모색하는 ‘문명 비교 탐사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2. 유라시아 역사 탐사의 결실
서구중심주의가 거대한 패러다임으로 정형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주의적 관점, 그리고 차이에 드리워진 차별의 그림자를 거둬 내고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유라시아를 바라본 ‘초점의 이동’을 통해 얻어낸 것들
-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새로운 인식
아프리카의 서북단인 모로코에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인 만주에 이르는 사막의 거대한 연쇄는 인간들의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이어 주고 만남을 자극하는 “육지의 바다”였다. 사막을 불모 지대로 바라보는 태도야말로 “대항해 시대”가 만들어낸 편견의 산물이다. 2500년 간의 기간(BC 800-Ad 1700)에 사막의 모래 바람을 타고 홀연히 나타나 거대 농업 문명들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수많은 유목민은 유라시아 대륙에 일종의 문화적 평형 상태를 빚어 주었던 문명의 매개자이자 전달자였다.
- ‘세계사의 탄생’에 대한 새로운 시기 매김
흔히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을 통해 참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했다고 운위되곤 한다. 고립 분산적이었던 지구상의 사회와 문화가 유럽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이미 몽골 제국에 의해 13세기에 이룩되었던 ‘세계사의 탄생’을 간과한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낳은 오류이다. 몽골이 낳은 “13세기의 세계 체제”는 제국의 이름 아래 차이와 공존을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포용할 수 있었던 진정한 파천황의 세계, 즉 ‘몽골인의 평화(Pax Mongolica)'였던 것이다.
- 유럽이 만들어 낸 ‘역사학’ 자체에 대한 반성
역사학은 ‘과거를 길들이기’ 위한 학문이다. 그러나 그 대상인 과거는 그곳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학에서 과거란 대상적 존재일 뿐 주체는 아니다. 과연 과거의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국제 질서의 단위 주체인 ‘국민 국가’이다. 즉 근대 역사학이란 유럽에서 근대 국민 국가가 등장하면서 ‘국민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도입하였던 학문이다. 이런 의도를 가진 ‘역사학’은 현재의 요구에 따라 과거를 상당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국가 통제력의 범위를 상당히 벗어나 있는 유라시아의 다양한 문명 탐사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의 강력한 틀에서 벗어난 진정한 ‘역사’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의 길은 여는 작업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