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을 노래한 작곡가 김순남 (사계절 아동문고 23)
- 1891
• 지은이 : 김별아
• 그린이 : 한병호
• 가격 : 8,800원
• 책꼴/쪽수 :
210*148mm, 190쪽
• 펴낸날 : 2004-11-20
• ISBN : 9788971968062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도서상태 : 절판
• 추천기관 :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어린이도서연구회, 책읽는교육사회실천협의회
어린이도서연구회 권장도서, 책읽는교육사회실천협의회 추천도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권장도서
어린이도서연구회 권장도서, 책읽는교육사회실천협의회 추천도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권장도서
• 태그 : #초등 #고학년 #인물 #위인 #김순남 #예술 #음악 #청소년
저자소개
지은이 : 김별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3년 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주요 작품으로는 「끝나지 않는 노래」 등이 있습니다.
그린이 : 한병호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동양화과에서 공부했고, 초등 학교 적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30년째 그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아이일지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책을 만들고 싶답니다. 민물에 사는 고기들을 좋아해서 계곡에서 야영을 하며 십 년 가까이 준비한 끝에 민물고기 그림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서울 테헤란 국제 그림 원화전에 출품하였고, 제6회 어린이 문화 대상 미술 부문 본상을 수상하였으며, 1998년에는 한병호 일러스트레이션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현재 한국출판미술가협회, 무지개 일러스트레이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황소와 도깨비』『도깨비 방망이』『혹부리 영감』『해치와 괴물 사형제』『바우와 까꾸까꾸』등의 그림책과 동화책『내 푸른 자전거』『염라대왕을 잡아라』, 김유정 단편집『봄봄』등에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주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를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과 가까운 경기도 현리의 작업실에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황소와 도깨비』『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토끼와 늑대와 호랑이와 담이와』『내가 좋아하는 자동차 시리즈』 등을 그렸습니다.
『황소와 도깨비』『도깨비 방망이』『혹부리 영감』『해치와 괴물 사형제』『바우와 까꾸까꾸』등의 그림책과 동화책『내 푸른 자전거』『염라대왕을 잡아라』, 김유정 단편집『봄봄』등에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주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를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업을 시도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과 가까운 경기도 현리의 작업실에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황소와 도깨비』『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토끼와 늑대와 호랑이와 담이와』『내가 좋아하는 자동차 시리즈』 등을 그렸습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어린 시절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일본 유학 시절부터 가장 주목받는 조선의 음악가로 뽑힌 김순남은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 겨레의 음악을 되찾기 위해 애썼고, 해방 뒤에는 자유 평등의 독립국가를 세우는 데 자신을 모두 바친 민족 음악가입니다. 우리 음악의 선구자이자 우리 나라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 김순남의 삶을 통해 진정한 음악 세계와 나라 사랑의 길을 배웁니다.
목차
세번쩍 선생네 경사
피아노 치는 소년
교장 선생님과 운동장 두 바퀴
두 갈래 길
한 걸음 더 세상 안으로
어른이 되고픈 소년들
음악은 나의 운명
고도모 대장
사랑하는 어머니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우리 음악을 살리자
꿈을 묻은 도쿄 고등음악학원
슬픈 이별
돌아오는 사람들
민족 음악의 새 빛
해방의 날
아버지 김순남
날개 달린 음악가
도피 생활
북으로 간 김순남
민족의 비극 6.25
천재 음악가의 죽음
글쓴이의 말
김순남 선생님의 일생
피아노 치는 소년
교장 선생님과 운동장 두 바퀴
두 갈래 길
한 걸음 더 세상 안으로
어른이 되고픈 소년들
음악은 나의 운명
고도모 대장
사랑하는 어머니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우리 음악을 살리자
꿈을 묻은 도쿄 고등음악학원
슬픈 이별
돌아오는 사람들
민족 음악의 새 빛
해방의 날
아버지 김순남
날개 달린 음악가
도피 생활
북으로 간 김순남
민족의 비극 6.25
천재 음악가의 죽음
글쓴이의 말
김순남 선생님의 일생
편집자 추천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는 우리 시대의 인물 이야기” 시리즈는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 내려고 애썼던 분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특히 역사의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애썼던 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동안 인물 이야기를 통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해방 이후까지 살았던 현대사의 새로운 분들의 이야기이지요. 또한 인물 이야기의 구성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의식 있는 젊은 작가들이 썼으며, 그분들과 함께 살았거나 호흡을 직접 나누었던 유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인터뷰를 함으로써 그분들의 실제 삶에 가깝게 사실적으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삽화는 물론 당시의 사진을 가능한 한 많이 보여 줌으로써, 읽는 우리들이 그분들의 삶을 훨씬 생동감 있게 나눌 수 있도록 했으며, 그분들이 일생을 바쳐 이루려 했던 올바른 삶의 목표를 어떻게 이루어 가려고 했던가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 민족을 노래한 작곡가 김순남에 대하여
1917년 서울의 한복판 낙원동에서 화장품 회사 '렛또 분'의 사장인 김종식과 덕수보통학교 교사인 이보경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난 김순남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일본 유학 시절부터 가장 주목받는 조선의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고등음악학원 작곡부에 입학한 그는 스승 하라 타로를 만나 음악과 인생에 대해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 조국이 해방을 맞이하자, 일본의 엔카와 비슷한 뽕짝이 우리 가락이 아님을 대중에게 일깨우며 우리 고유 음악을 대중을 위해 연주, 작곡하였습니다. 또 우리 국토가 남과 북으로 갈리는 불행한 역사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 통일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조국문화예술단체총연맹'의 음악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탑골공원 야외 음악과, 3·1기념 연극대회, '예술의 밤' 등 각종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미군정의 압력으로 인해 해주로 월북한 뒤 평양음악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순남은 소련을 방문하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과 교류하면서 음악 세계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소환령으로 유학을 포기한 그는, 모든 창작 권리를 빼앗긴 채 함경남도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폐병과 싸우며 일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우리 현대 음악사의 그늘속에 묻혀 남쪽에서도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북쪽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지만,「산유화」「진달래 꽃」등 주옥 같은 명곡과 함께 김순남은 우리 음악의 선구자이자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음악가의 길을 뿌리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곁에 희망의 노래를 심은 김순남의 삶을 보면서 조국의 소중함과 어두운 역사와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 민족을 노래한 작곡가 김순남에 대하여
1917년 서울의 한복판 낙원동에서 화장품 회사 '렛또 분'의 사장인 김종식과 덕수보통학교 교사인 이보경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난 김순남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일본 유학 시절부터 가장 주목받는 조선의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고등음악학원 작곡부에 입학한 그는 스승 하라 타로를 만나 음악과 인생에 대해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 조국이 해방을 맞이하자, 일본의 엔카와 비슷한 뽕짝이 우리 가락이 아님을 대중에게 일깨우며 우리 고유 음악을 대중을 위해 연주, 작곡하였습니다. 또 우리 국토가 남과 북으로 갈리는 불행한 역사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조국 통일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조국문화예술단체총연맹'의 음악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탑골공원 야외 음악과, 3·1기념 연극대회, '예술의 밤' 등 각종 행사를 주관했습니다. 미군정의 압력으로 인해 해주로 월북한 뒤 평양음악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김순남은 소련을 방문하여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 등과 교류하면서 음악 세계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소환령으로 유학을 포기한 그는, 모든 창작 권리를 빼앗긴 채 함경남도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폐병과 싸우며 일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우리 현대 음악사의 그늘속에 묻혀 남쪽에서도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북쪽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지만,「산유화」「진달래 꽃」등 주옥 같은 명곡과 함께 김순남은 우리 음악의 선구자이자 우리나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화려한 음악가의 길을 뿌리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곁에 희망의 노래를 심은 김순남의 삶을 보면서 조국의 소중함과 어두운 역사와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지켜 나가는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