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악마들
- 2875
• 지은이 : 피터 홉커크
• 옮긴이 : 김영종
• 가격 : 16,800원
• 책꼴/쪽수 :
210*148mm, 364쪽
• 펴낸날 : 2000-07-25
• ISBN : 9788971969007
• 십진분류 : 역사 > 유럽 (920)
• 추천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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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 추천도서
• 태그 : #역사 #중앙아시아사 #실크로드 #영국도서상
저자소개
지은이 : 피터 홉커크
『더 타임스』에서 20년 동안 아시아 관련 전문기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저술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두루 답사한 후 영국과 미국의 왕립지리학회에서 강의했다. 중앙아시아를 다큐 멘터리식으로 정리한 저서 『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이 1981년 영국 도서상의 논픽션상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와 Setting the East Ablaze 등이 있다.
저서로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와 Setting the East Ablaze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영종
1955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고, 전남대학교와 한국신학대학에서 수학하였다. 다년간 내륙 아시아의 답사를 통하여 우리 나라 정신문화유산의 뿌리와 문명의 대전환에 대한 탐색에 몰두해 왔다.
지은 책으로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한 발해 건국기를 다룬 역사소설 『빛의 바다』(상·하, 1998)와 현대 문명의 전환과 우리 문화의 뿌리에 천착한 여행기 『티벳에서 온 편지』(1999), 마지막 달동네 난곡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소리체 소설로 엮은 사진 소설집 『난곡 이야기』(2004) 등이 있다. 사비나 미술관에서 <난곡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진 99점을 전시하는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를 다룬 『실크로드의 악마들』(2000)이 있다.
지은 책으로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한 발해 건국기를 다룬 역사소설 『빛의 바다』(상·하, 1998)와 현대 문명의 전환과 우리 문화의 뿌리에 천착한 여행기 『티벳에서 온 편지』(1999), 마지막 달동네 난곡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소리체 소설로 엮은 사진 소설집 『난곡 이야기』(2004) 등이 있다. 사비나 미술관에서 <난곡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진 99점을 전시하는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 중앙아시아 탐험의 역사를 다룬 『실크로드의 악마들』(2000)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이 책은 사상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의 탐험사를 정리한 것이다. 피터 홉 커크(Peter Hopkirk)의 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옥스퍼드대학 출판부, 1989)를 번역한 이 책은 중앙아시아 탐험사에 대해 가장 재미있고도 심도 깊게 다룬 책으로 평가받아 1980년 초판이 나온 후 영국 도서상의 논픽션상에 선정되었다. 저자는 『더 타임스』에서 20년 동안 아시아 관련기사를 써온 전문기자로, 아시아 관련 서적을 여러 권 펴 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두루 답사했으며, 영국과 미국의 왕립지리학회에서 강의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이다.
목차
1. 역자 서문 ...4
2. 프롤로그 ...15
3. 실크로드의 성쇠 ...23
4. 사라져버린 도시들 ...54
5. 고문서 발굴의 대경쟁 ...70
6. 스벤 헤딘-개척자 ...83
7. 오렐 스타인-비범한 유물 탐사가 ...104
8. 엄청난 유물을 발견하게 된 스타인 ...121
9. 위조자의 가면을 벗기다 ...147
10.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 ...163
11. 폰 르콕이 동전을 굴리다 ...183
12. 투르키스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 ...194
13. 쓰레기 더미에 숨겨진 비밀 ...209
14. 돈황-숨겨진 고대의 서고 ...224
15. 펠리오-품위 잇게 적을 만드는 기술 ...253
16. 실크로드의 스파이들 ...274
17. 랭던 워너가 위업에 도전하다 ...303
18. 중국이 문을 걸어잠그다 ...322
19. 참고문헌 ...346
20. 찾아보기 ...353
2. 프롤로그 ...15
3. 실크로드의 성쇠 ...23
4. 사라져버린 도시들 ...54
5. 고문서 발굴의 대경쟁 ...70
6. 스벤 헤딘-개척자 ...83
7. 오렐 스타인-비범한 유물 탐사가 ...104
8. 엄청난 유물을 발견하게 된 스타인 ...121
9. 위조자의 가면을 벗기다 ...147
10. 본격적인 경쟁의 시작 ...163
11. 폰 르콕이 동전을 굴리다 ...183
12. 투르키스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 ...194
13. 쓰레기 더미에 숨겨진 비밀 ...209
14. 돈황-숨겨진 고대의 서고 ...224
15. 펠리오-품위 잇게 적을 만드는 기술 ...253
16. 실크로드의 스파이들 ...274
17. 랭던 워너가 위업에 도전하다 ...303
18. 중국이 문을 걸어잠그다 ...322
19. 참고문헌 ...346
20. 찾아보기 ...353
편집자 추천글
1. 이 책의 기획 의도
과거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의 기나 긴 통로인 실크로드는 수많은 물품들의 교역과 문화교류의 장이 되어왔다. 실크로드는 오늘날의 북경을 출발하여 난주, 돈황을 거쳐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탄)과 카프가즈, 이란 북부 지역을 통과하여 소아시아의 이스탄불 및 유럽에 이른다. 이러한 실크로드의 주변지역은 오리엔트와 스키타이, 메소포타미아 등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가 태동한 지역으로서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신라의 혜초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 축국전』을 썼으며, 당나라의 현장도 이 길을 통해 서역을 다녀온 후 『대당서역기』를 썼다. 실로 세계의 문화를 이 끌었던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길 주변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족적은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모래 바다 속에 묻힌 이래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 있었다.
20세기 초반 이 방대한 세계에 숨겨져 있던 고대의 오아시스 폐허들에서 문명사에 획을 긋는 유물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20세기 초반부터 1930년 중국이 유물 반출을 금지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서양 열강들과 일본의 탐험가들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그곳의 오아시스 도시에 묻힌 수많은 유물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빼내갔다.
이 책은 중앙 아시아의 유물들을 발굴한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진정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이들 탐험가들이 발굴해 낸 유물들을 중심으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벽화 60점을 비롯하여 조각, 공예품 등 1천7백여 점의 중앙아시아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의 손에서 옮겨온 것이다. 또한 미추왕릉에서 발굴된 금제감장보검(5~6세기),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수형 유리병(5~6세기)도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아시아의 패자를 꿈꾼 일본이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연구한 것에 반해, 우리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최근에야 비로소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그 기반은 허술하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소 뒤진 우리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 이 책의 의의와 특징
▶ 이 책은 사상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의 탐험사를 정리한 것이다.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의 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옥스퍼드대학 출판부, 1989)를 번역한 이 책은 중앙아시아 탐험사에 대해 가장 재미있고도 심도 깊게 다룬 책으로 평가받아 1980년 초판이 나온 후 영국 도서상의 논픽션상에 선정되었다. 저자는 『더 타임스』에서 20년 동안 아시아 관련기사를 써온 전문기자로, 아시아 관련 서적을 여러 권 펴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두루 답사했으며, 영국과 미국의 왕립지리학회에서 강의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이다.
▶ 이 책은 20세기의 첫 사반세기 동안 외국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저 후미진 오지에 줄을 이으며 행했던 고고학적 침략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여 그들의 경로와 숨겨진 일화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등 유물 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 여섯 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930년 중국이 유물 반출에 대한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각국의 탐험가들은 경쟁적으로 실크로드의 사라진 도시들에서 벽화, 고전 필사본, 조상(彫像) 등의 유물을 말 그대로 톤 단위로 빼내갔다. 이 책은 그들이 왜 죽음을 무릅쓰고 험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무모한 탐험을 감행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 유물을 빼내갔던 탐험가들의 행위가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유물을 반출한 탐험가들의 행위는 ‘약탈’임에 분명 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유물을 그대로 두었다면 원주민들과 이교도들에 의해 더 많은 훼손이 가해졌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정부가 근 30년 동안 외국인들의 유물 밀반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사항이다.
▶ 역자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도판 자료를 실었다. 87, 107, 150, 65(아래 사진), 223, 230, 250쪽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원서에는 없는 사진들이다. 70여 컷의 도판 자료들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 이다.
▶ 이 책이 서양 열강의 유물 약탈 행위에 대해 판단을 보류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화하고 있지만, 역자는 서문과 역주를 통해 이러한 행위가 부당함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역자의 입장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 유물들에 대한 반출 행위가 약탈이든 구제든, 원래 중국의 소유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책의 주무대가 되고 있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로 사실은 위구르인들의 땅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유물은 원칙적으로 위구르인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이다. '실크로드’란 이름은 중국의 장안과 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는 비단의 길이란 뜻이다. 비단의 수요자가 로마이고 생산지는 중국이므로,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들은 중개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으로는 그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정신 세계를 주체적으로 볼 수 없다. ”
역자는 저자가 잘못 이해 하고 있는 부분도 지적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저자가 벽화를 프레스코라고 지칭한 것은 잘못이다. 중앙아시아의 벽화는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 축축한 상태에서 그리는 것과는 달리 회반죽이 마른 뒤 그리는 세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카라호토의 멸망 연대를 바로잡았으며, 서하 왕국에 대한 저자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았다(본문 290 쪽 참조).
3. 이 책에 소개된 각국의 중앙아시아 탐험가들
스벤 헤딘(스웨덴)│중앙아시아 탐험의 개척자인 이 스웨덴 탐험가는 1890년 카쉬가르로 첫 여행을 떠난 이후 40년의 세월을 중앙아시아 탐험에 바쳤다. 1895년 2월 타클라마칸 탐험을 실시하였으나 사라진 도시를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타림 강을 따라가면서 서역 남도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롭 노르 호수가 전설 속의 ‘방황하는 호수’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1899년 2차 타클라마칸 탐험 때에 비로소 누란(樓蘭)에서 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를 다수 발견하였다. 1952 년 스톡홀름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렐 스타인(영국)│1862년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스타인은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인도로 건너갔다. 1900년 5월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에 탐험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단단윌릭, 니야, 미란, 돈황, 카라호토, 베제클릭 등을 조사, 많은 유물들을 취득하여 영국으로 보냈다. 두 번째 조사(1906∼8)에서는 돈황의 천불동에서 고문서를 다량 빼내갔다. 특히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으로 알려진 868년 인쇄본 『금강경』의 발견은 획기적인 것이었다(사실은 751년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 라니경』이 세계 최고의 것이다). 스타인은 또 사상 처음으로 만리장성의 서쪽 끝부분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알베르트 폰 르콕(독일)│1902년 독일인과 일본인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에서 고대 불교 유물을 발견하려는 국제 경쟁의 막이 올랐다.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 탐험대는 네 차례의 탐험을 실시했는데, 1차 탐험대의 대장인 알베르트 그룬베델 교수의 뒤를 이은 폰 르콕의 업적은 혁혁한 것이었다. 그는 카라호자에 서 8∼9세기 것으로 보이는 마니교의 경전과 네스토리우스교의 벽화를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이곳에서 불교와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가 공존했음을 밝혀졌다. 또한 그는 투르키스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들을 키질 석굴에서 발견했다.
폴 펠리오(프랑스)│1906∼8년까지 천산 남로를 조사한 프랑스 탐험대의 펠리오는 툼슉에서 크레코 불교 양식의 보살의 두상을 수집하고 쿠차에서는 불교의 희곡용 대본을 수집했는데, 스타인이 돈황에서 고문서를 수집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스타인이 필사본들을 가져감으로써 생긴 비좁은 공간에 앉아 3주일 동안 먼지투성이의 문서들을 검토했는데, 하루에 1천 개의 두루마리를 검토할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스타인 못지않게 많은 고문서들을 수집하여 프랑스로 간 펠리오는 돈황의 고사본들을 동료 누에트와 함께 수백 장의 흑백 필름에 담아 훗날 여섯 권의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이후에는 중앙아시아 탐험에 다시 나서진 않았으나, 프랑스에서 일류 중국학자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랭던 워너(미국)│1923년 가장 뒤늦게 중앙아시아 탐험에 나선 미국의 랭던 워너는 일본의 불교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로서 카라호토와 돈황을 방문하면서 보살좌상과 벽화 12 점을 떼어갔다. 그러나 미국 탐험대는 중국 당국이 곧 유물 반출을 금지했으므로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오타니 고즈이(일본)│일본의 정토진종의 교주인 오타니 백작은 종단의 기원을 중앙아시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조사단을 파견했다. 1902년에서 1910년 사이에 파견한 세 차례의 고고학 조사단 중 1차는 그들이 정신적 원류를 찾는 탐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키질의 풍부한 미술품을 처음 발견했으나 지진 때문에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1908년 2차 조사단은 우룸치와 투르판 지방에서 다수의 유적을 발굴했으며, 누란 주변의 유적을 발굴하고, 니야, 케리야, 호탄, 카쉬가르를 탐험했다. 이들이 출토한 복희여왜도 등 벽화 60여 점을 포함한 유물 1700여 점이 우리 국립중 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오타니는 탐험대 파견에 든 경비 때문에 저택과 수집품들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의 수집품은 곳곳에 흩어지고 말았다.
과거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유라시아의 기나 긴 통로인 실크로드는 수많은 물품들의 교역과 문화교류의 장이 되어왔다. 실크로드는 오늘날의 북경을 출발하여 난주, 돈황을 거쳐 중앙아시아 5개국(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탄)과 카프가즈, 이란 북부 지역을 통과하여 소아시아의 이스탄불 및 유럽에 이른다. 이러한 실크로드의 주변지역은 오리엔트와 스키타이, 메소포타미아 등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곳이며,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 등 여러 종교가 태동한 지역으로서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신라의 혜초가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 축국전』을 썼으며, 당나라의 현장도 이 길을 통해 서역을 다녀온 후 『대당서역기』를 썼다. 실로 세계의 문화를 이 끌었던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 길 주변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족적은 여러 오아시스 도시가 모래 바다 속에 묻힌 이래 오랫동안 신비에 싸여 있었다.
20세기 초반 이 방대한 세계에 숨겨져 있던 고대의 오아시스 폐허들에서 문명사에 획을 긋는 유물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20세기 초반부터 1930년 중국이 유물 반출을 금지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에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서양 열강들과 일본의 탐험가들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따라 그곳의 오아시스 도시에 묻힌 수많은 유물들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빼내갔다.
이 책은 중앙 아시아의 유물들을 발굴한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진정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이들 탐험가들이 발굴해 낸 유물들을 중심으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벽화 60점을 비롯하여 조각, 공예품 등 1천7백여 점의 중앙아시아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의 손에서 옮겨온 것이다. 또한 미추왕릉에서 발굴된 금제감장보검(5~6세기),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수형 유리병(5~6세기)도 있다. 그러나 19세기 이래 아시아의 패자를 꿈꾼 일본이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연구한 것에 반해, 우리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최근에야 비로소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그 기반은 허술하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가장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소 뒤진 우리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2. 이 책의 의의와 특징
▶ 이 책은 사상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의 탐험사를 정리한 것이다.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의 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옥스퍼드대학 출판부, 1989)를 번역한 이 책은 중앙아시아 탐험사에 대해 가장 재미있고도 심도 깊게 다룬 책으로 평가받아 1980년 초판이 나온 후 영국 도서상의 논픽션상에 선정되었다. 저자는 『더 타임스』에서 20년 동안 아시아 관련기사를 써온 전문기자로, 아시아 관련 서적을 여러 권 펴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지역을 두루 답사했으며, 영국과 미국의 왕립지리학회에서 강의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온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이다.
▶ 이 책은 20세기의 첫 사반세기 동안 외국인들이 중앙아시아의 저 후미진 오지에 줄을 이으며 행했던 고고학적 침략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여 그들의 경로와 숨겨진 일화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의 스벤 헤딘, 영국의 오렐 스타인, 독일의 알베르트 폰 르콕. 프랑스의 폴 펠리오, 미국의 랭던 워너, 그리고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등 유물 발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인물 여섯 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930년 중국이 유물 반출에 대한 금지령을 내릴 때까지 각국의 탐험가들은 경쟁적으로 실크로드의 사라진 도시들에서 벽화, 고전 필사본, 조상(彫像) 등의 유물을 말 그대로 톤 단위로 빼내갔다. 이 책은 그들이 왜 죽음을 무릅쓰고 험한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무모한 탐험을 감행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 유물을 빼내갔던 탐험가들의 행위가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 유물을 반출한 탐험가들의 행위는 ‘약탈’임에 분명 하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유물을 그대로 두었다면 원주민들과 이교도들에 의해 더 많은 훼손이 가해졌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 정부가 근 30년 동안 외국인들의 유물 밀반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사항이다.
▶ 역자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도판 자료를 실었다. 87, 107, 150, 65(아래 사진), 223, 230, 250쪽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원서에는 없는 사진들이다. 70여 컷의 도판 자료들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 이다.
▶ 이 책이 서양 열강의 유물 약탈 행위에 대해 판단을 보류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그들의 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화하고 있지만, 역자는 서문과 역주를 통해 이러한 행위가 부당함을 직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역자의 입장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중앙아시아 유물들에 대한 반출 행위가 약탈이든 구제든, 원래 중국의 소유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책의 주무대가 되고 있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로 사실은 위구르인들의 땅이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유물은 원칙적으로 위구르인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이다. '실크로드’란 이름은 중국의 장안과 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이어주는 비단의 길이란 뜻이다. 비단의 수요자가 로마이고 생산지는 중국이므로,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들은 중개 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으로는 그 지역의 독특한 역사와 정신 세계를 주체적으로 볼 수 없다. ”
역자는 저자가 잘못 이해 하고 있는 부분도 지적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저자가 벽화를 프레스코라고 지칭한 것은 잘못이다. 중앙아시아의 벽화는 회반죽 벽이 마르기 전 축축한 상태에서 그리는 것과는 달리 회반죽이 마른 뒤 그리는 세코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카라호토의 멸망 연대를 바로잡았으며, 서하 왕국에 대한 저자의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았다(본문 290 쪽 참조).
3. 이 책에 소개된 각국의 중앙아시아 탐험가들
스벤 헤딘(스웨덴)│중앙아시아 탐험의 개척자인 이 스웨덴 탐험가는 1890년 카쉬가르로 첫 여행을 떠난 이후 40년의 세월을 중앙아시아 탐험에 바쳤다. 1895년 2월 타클라마칸 탐험을 실시하였으나 사라진 도시를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타림 강을 따라가면서 서역 남도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롭 노르 호수가 전설 속의 ‘방황하는 호수’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1899년 2차 타클라마칸 탐험 때에 비로소 누란(樓蘭)에서 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를 다수 발견하였다. 1952 년 스톡홀름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렐 스타인(영국)│1862년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난 스타인은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인도로 건너갔다. 1900년 5월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에 탐험의 첫발을 내디딘 그는 단단윌릭, 니야, 미란, 돈황, 카라호토, 베제클릭 등을 조사, 많은 유물들을 취득하여 영국으로 보냈다. 두 번째 조사(1906∼8)에서는 돈황의 천불동에서 고문서를 다량 빼내갔다. 특히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으로 알려진 868년 인쇄본 『금강경』의 발견은 획기적인 것이었다(사실은 751년에 제작된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 라니경』이 세계 최고의 것이다). 스타인은 또 사상 처음으로 만리장성의 서쪽 끝부분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알베르트 폰 르콕(독일)│1902년 독일인과 일본인이 무대에 등장하면서 타클라마칸과 고비 사막에서 고대 불교 유물을 발견하려는 국제 경쟁의 막이 올랐다. 1902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 탐험대는 네 차례의 탐험을 실시했는데, 1차 탐험대의 대장인 알베르트 그룬베델 교수의 뒤를 이은 폰 르콕의 업적은 혁혁한 것이었다. 그는 카라호자에 서 8∼9세기 것으로 보이는 마니교의 경전과 네스토리우스교의 벽화를 발견했는데, 이를 통해 이곳에서 불교와 마니교, 네스토리우스교가 공존했음을 밝혀졌다. 또한 그는 투르키스탄에서 가장 뛰어난 벽화들을 키질 석굴에서 발견했다.
폴 펠리오(프랑스)│1906∼8년까지 천산 남로를 조사한 프랑스 탐험대의 펠리오는 툼슉에서 크레코 불교 양식의 보살의 두상을 수집하고 쿠차에서는 불교의 희곡용 대본을 수집했는데, 스타인이 돈황에서 고문서를 수집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황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스타인이 필사본들을 가져감으로써 생긴 비좁은 공간에 앉아 3주일 동안 먼지투성이의 문서들을 검토했는데, 하루에 1천 개의 두루마리를 검토할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스타인 못지않게 많은 고문서들을 수집하여 프랑스로 간 펠리오는 돈황의 고사본들을 동료 누에트와 함께 수백 장의 흑백 필름에 담아 훗날 여섯 권의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이후에는 중앙아시아 탐험에 다시 나서진 않았으나, 프랑스에서 일류 중국학자로서 입지를 굳혀나갔다.
랭던 워너(미국)│1923년 가장 뒤늦게 중앙아시아 탐험에 나선 미국의 랭던 워너는 일본의 불교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로서 카라호토와 돈황을 방문하면서 보살좌상과 벽화 12 점을 떼어갔다. 그러나 미국 탐험대는 중국 당국이 곧 유물 반출을 금지했으므로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오타니 고즈이(일본)│일본의 정토진종의 교주인 오타니 백작은 종단의 기원을 중앙아시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조사단을 파견했다. 1902년에서 1910년 사이에 파견한 세 차례의 고고학 조사단 중 1차는 그들이 정신적 원류를 찾는 탐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키질의 풍부한 미술품을 처음 발견했으나 지진 때문에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1908년 2차 조사단은 우룸치와 투르판 지방에서 다수의 유적을 발굴했으며, 누란 주변의 유적을 발굴하고, 니야, 케리야, 호탄, 카쉬가르를 탐험했다. 이들이 출토한 복희여왜도 등 벽화 60여 점을 포함한 유물 1700여 점이 우리 국립중 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오타니는 탐험대 파견에 든 경비 때문에 저택과 수집품들을 처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의 수집품은 곳곳에 흩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