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바라는 진짜 관심과 사랑을 담다!

어린이가 겁내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아무도 나를 봐 주지 않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는 언제나 어른을 향해 ‘날 좀 봐요’라고 간청한다. 어른이 다른 어른에게 자신을 봐 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잘못을 눈감아 달라’거나 ‘대충 너한테 매달리겠다’는 의존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을 향해 ‘나를 좀 잘 봐 달라’고 요청하는 것에는 글자 그대로 ‘보아 주세요’라는 건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물론 어린이는 가끔 자기를 봐 달라고 떼쓰거나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생존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몇몇 위험한 상황을 제외하면 이 행동의 본질은 대개 명랑한 수신호 같은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 먹는지, 얼마나 잘 자는지, 넘어져도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나 신 나게 노는지 엄마도 봐 주고 아빠도 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씩씩한 마음이 담긴 것이지, ‘돌보아 주세요’라는 징징거림으로만 해석할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이는 애당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른에게 의지할 뜻이 별로 없다. ‘내가 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나를 보아 주세요’는 ‘나를 보여 주고 싶어요’라는 자기표현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가 자신을 ‘날 봐 줘요’라고 하면 ‘돌보아 달라’는 의미로 착각한다. 관심이나 사랑은 아이에게 무엇을 ‘대신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이 대신해 줄 것이 많은 아이에게 지나칠 만큼 달려간다. 스스로 잘 해내고 말 없는 아이는 소외된다. 돌봐 줄 필요가 없다고 봐 줄 필요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닌 데도 말이다.

 
『나도 예민할 거야』의 주인공 정이는 어지간한 일은 돌봐 줄 필요가 없을 만큼 척척 해내는 자립적이고 무던한 아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봐 주지 않아서 서운한 아이다. 엄마와 아빠는 “정이는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정이는 맛있는 거면 다 풀리지”라고 말하면서 예민한 오빠만 지켜보느라 동동거린다. 정이는 억울하다. 정이는 사람들이 왜 날 봐 주지 않을까 내내 마음을 앓는다. 늘 잘 먹던 정이가 이런 고민으로 하루 종일 우유를 못 먹으니까 엄마는 그제야 정이의 배를 쓰다듬어 준다. ‘예민하니까 만지는 거다’, ‘나는 예민을 못 한다’라는 문장은 참 가슴 아픈 구절이다. 정이는 억지로라도 ‘돌봐 줄 필요가 있는 예민한 아이’로 변신하고 싶지만 그건 맘먹는다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어린이가 바라는 진짜 관심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솔직하면서도 정확하게 보여 준다. 유은실 작가 특유의 유쾌한 전개 때문에 읽는 내내 웃고 또 웃게 되지만 책 안에 담긴 비판과 풍자는 날카롭다. 정이처럼 털털한 아이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애교 어린 호소는 거꾸로 아이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행동에 하나하나 간섭하려 들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좌충우돌하는 정이의 예민해지기 대소동을 보면서 “우리 애는 예민해요”라는 말을 앞세우면서 지나친 돌봄을 자청하는 일도, “우리 애는 둔해요”라는 핑계로 시선을 거두는 일도 모두 아이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이는 어른 독자가 보기에 깜찍하지만 어린이가 보기에는 통쾌한 아이다. 억지로 예민해져서라도 진짜 사랑을 받겠다는 정이의 애처로운 결심은 그만큼 진지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이들은 정이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공감하고 속 시원해한다.
작가 유은실은 전작 『나도 편식할 거야』에서부터 정이라는 ‘순한 아이’를 등장시켜 아이들의 속마음 대변인으로 나섰다. 그가 고학년 동화 『만국기 소년』이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서 보여 주었던 것도 ‘아이들의 억울함’과 ‘진짜 관심’에 대한 정직한 고찰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이를 통한 ‘나도 …할 거야’ 시리즈의 행보는 일관된 것이다. 정이 연작의 제목이 ‘나도 할 거야!’로 이어지는 것은 흥미롭다. 아이의 행복은 억지 관심이 아니라 아이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여유로운 ‘지켜봄’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 제목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예민한 아이’와 ‘무던한 아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어른의 시선으로 평가한 아이가 아닌 진짜 아이의 목소리를 담고 있고 아이들은 그걸 스스로 너무나 잘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글 · 김지은(문학평론가)
 
 
* 이 글은 알라딘 온라인서점에서 추천하는 ‘전문가가 선택한 이달의 어린이책-3월’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