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작품해설 : 삶의 두 갈래 길 (1) 미야자와 겐지의 생애

삶의 두 갈래 길
-‘구스코 부도리의 길’과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길’
 
1 .미야자와 겐지의 생애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일생을 알아보도록 하지요. 겐지는 1896년 일본의 이와테 현 하나마키 시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와테 현은 일본에서도 몹시 척박한 곳으로 예부터 가뭄이나 냉해가 자주 일어난 곳이었다고 합니다. 겐지의 집안은 이 지역에서 재벌에 가까운 부자였다고 하지요. 겐지는 1909년 소학교를 졸업하고 모리오카 중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때 광물 채집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요.
미야자와 겐지는 1911년 불교 강습회에서 시마지 다이토의 설법을 처음 들었는데, 그 뒤 시마지 다이토는 겐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겐지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1914년, 가업을 이어받으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겐지의 상급 학교 진학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겐지가 몹시 상심하자 결국 진학을 허락하지요. 겐지는 입시를 준비하는 도중 시마지 다이토의 『법화경』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습니다. 이후 『법화경』의 사상은 겐지의 모든 작품의 밑바탕이 되고 있으니, 이 경험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야자와 겐지는 일 년 뒤인 1915년, 모리오카 농업고등학교 농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문학에 흥미가 있어 ‘아자리아’ 동인 활동을 하기도 했지요. 1918년 겐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에 연구생으로 남아 연구를 계속합니다. 이 때부터 겐지는 후에 사망의 원인이 되는 결핵을 앓기 시작합니다. 1919년 군립 농잠 강습소 강사가 되어 광물·토양·비료 분야를 담당하기도 한 겐지는 이듬해에 모리오카 고등학교 연구생 과정을 마칩니다.
겐지는 1920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합니다. 겐지에게 동화란 화엄경의 사상을 쉽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일이었지요. 이 때 쓴 작품이 「조개불」, 「펜넨넨넨넨 네네무의 전기」입니다. 1921년 겐지는 도쿄에 상경하여 법화경 포교 단체인 고쿠추카이(국주회)에서 봉사 활동을 합니다. 같은 해에 아에누키 농업고등학교(1923년에 하나마키 농업고등학교로 바뀜)의 교사가 되지요. 이 때 쓴 작품이 「은하수」, 「사슴 춤의 시작」, 「도토리와 살쾡이」, 「주문이 많은 요리점」, 「눈길 걷기」 등입니다. 1922년에는 시도 쓰기 시작하는데요, 이 해 11월에 가장 아끼는 누이 도시가 병으로 죽고 맙니다. 1923년에는 「돌배」, 「빙하쥐의 털가죽」을 발표하고, 1924년에는 시집 『봄과 아수라』를 자비 출판했습니다. 또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도 같은 해에 자비로 출판합니다. 그뒤 겐지는 1925년, 시인 구사노 신페이의 권유로 잡지 『도라』의 동인이 됩니다.

1926년 겐지는 농민을 위한 ‘농민 예술론’을 강연하고, 고등학교 교사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농촌 봉사 단체인 ‘라스치진 협회’의 정기 집회를 시작하게 되지요. 그러나 이 활동이 문제가 되어 1927년에는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겐지는 계속해서 비료 설계와 벼농사 지도를 하기도 하고, 1928년에는 가뭄으로 도열병이 발생하자 구제와 예방을 위해 동분서주하게 됩니다. 이 때 과로하는 바람에 다시 결핵이 도져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지요.

1931년에는 병이 약간 회복되어 쇄석 공장 기사로 취직을 하기도 합니다만, 석회 제품 선전을 위해 도쿄에 상경해 있다가 다시 결핵을 앓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1931년에 발표한 작품이 동화 「호큐슈 장군과 의사 삼형제」, 시 「비에도 지지 않고」 등입니다. 1932년 겐지는 병상에서 쇄석 공장과 비료 설계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작품을 쓰는데, 이 때 발표한 작품이 바로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입니다. 1933년에도 겐지는 병상에서 비료 상담을 계속하다가 급성폐렴이 악화되어 37세의 젊은 나이로 죽게 됩니다.
 
 
 
글 - 엄혜숙 (아동청소년문학 기획·번역·평론가, 그림책 작가)
 
※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에 실린 작품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