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사다리 : 강나루

제2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대상
강나루
 

 
우리 모두 광대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아무도 받쳐주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그 위에 자유자재로 있을 수 없다. 사다리는 누군가 그것을 흔들리지 않게 든든히 지지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윤제와 태욱이, 혜미처럼.

윤제네는 강원도에서 서초동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으로 이사를 온다. 윤제는 이사 온 동네가 좋기는 했지만 학교에 가기보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기를 더 좋아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겉돌던 윤제는 태욱이에게 얻어터진 날 우연히 용호 형을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새대가리파였던 용호 일당에게 덜미가 붙들린 윤제는 결국 특수 절도죄로 소년 분류 심사원에 수감된다. 이 곳에서 윤제는 자꾸 면회 오는 엄마의 사랑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 다시는 이 곳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예전부터 동네를 철거한다는 말이 돌던 꽃마을은 결국 철거반원들에 의해 남김없이 무너지고 동네 사람들은 새 집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남은 윤제와 태욱이, 혜미는 푸른 사다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서초동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과 이곳 사람들의 삶은 우리 사회의 구정물 같은 속성을 잘 드러낸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결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빈민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잠을 자고 그날 그날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최대의 고민거리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끝네 할머니,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못 받아보고 일찍 세상을 뜬 지희 아버지, 목에 핏줄을 세우면서 이가 바스러져 깨물고 철거되는 집을 바라만 봐야 하는 영진이형, 꽃마을 사람들이다. 

이 책은 이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치부를 드러내고 가려졌던 생채기를 후벼 판다. 이 책의 배경인 서초동 법원 단지 앞은 이러한 상처를 더 씁쓸하게 한다. 이른바 잘 나가는 법관들의 일터에 이런 꽃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래서 법관들은 그렇게도 꽃마을을 없애도 싶어 했던 것일까? 땅 주인인 법관들이 꽃마을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철저히 무시한 채 그들의 집을 철거하는 모습은,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더 가지게 되는지를, 못 가진 사람이 어떻게 더 못 가지게 되는지를 어떠한 과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인다.

윤제와 기철이, 호성이 같은 아이들이 꽃마을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곳에서 태어나는가를 선택할 수 없으며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갈지는 우연일 뿐이다. 태어남과 환경은 애초에 내가 만들 수 있는 삶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윤제는 새대가리파에 더 쉽게 걸려들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윤제가 부잣집에 가진 것 많은 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다면 지금쯤 잘 나가는 학생회장이나 무슨 대회에서 큰 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온전히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우연히 어떤 환경에 태어났느냐는 사람의 일생을 크게 좌우하기도 한다. 내가 윤제처럼 변변한 집 한 채 못 구하는 가정에 태어났을 수도 있는 것이라면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해야 함은 당연하고 공평한 일이 아닐까?

윤제는 가족들과 꽃마을 사람들을 통해 이미 자기의 사다리를 버팀목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윤제의 사다리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다시 이러저리 휘청거릴 수 있다. 내가 지금 배부르게 먹고 등 따시게 잘 수 있는 것은 윤제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삶이 내 삶일 수 있고 또 나의 삶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윤제와 태욱이, 혜미는 풍족하지 못한 생황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혜미가 말한대로 이들은 푸른 사다리를 만들고 서로가 이쪽저쪽을 지탱하며 위로 오른다. 그리고 꽃마을 사람들 역시 밝은 얼굴은 아니지만 그들 모두 새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다. 이들 또한 삶의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다리가 있고 이것을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의 바탕이던 집마저도 모두 사라졌지만 끝내 사다리를 부여잡고 하늘로 고개를 향하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나는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따뜻하고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지금껏 사다리 위에 오르기만을 노력해 왔다. 누군가 내 사다리의 지지자가 되어 주기만을 바래왔다. 이제는 나만이 아니라, 윤제도 엄마도 꽃마을 사람들도 사다리에 올라봐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내가 어떤 이의 기둥이 되고 사다리의 이쪽저쪽이 되어보는 일이 얼마나 희망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느껴보는 것도 세상을 더 따뜻하게 하는 방법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