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읽고 : 성낙영

제 1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우수상 수상작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겨울이다.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 온 도시가 옷을 갈아입는 이 때,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는 무척이나 여유롭고 행복하다. 또한 내가 읽는 책이 뜻밖으로 아주 훌륭하고 재미있기에 나는 더욱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임꺽정』에 대해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집필된 지 이미 반 세기는 족히 지났기에 만일 읽는다면 '흘러간 유행가를 다시 듣는 것'처럼 따분하고 지루할 것이며, 어떤 이질감마저 느껴질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착각은 책의 첫 장을 열면서부터 여지없이 깨어졌다. "진짜 보석은 몇십 년을 놔 두어도 그 빛이 퇴색되지 않는다."는 말이 단지 보석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텐데, 나는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벽초 선생에 대해 '단순한 월북 문학인'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 인식도 바뀌었다. 『임꺽정』을 통해 그분의 작가로서의 천재적인 면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까닭이다.

나는 지금까지 『임꺽정』만큼 옛 선인들의 문화와 풍습을 잘 묘사해 낸 글을 본 적이 없다. 더욱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 있는 언어는 그 시대 인물들과 분위기를 현재의 일처럼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박유복이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쫓기는 몸이 되었다가 최영 장군의 사당에서 최씨 처녀를 만나는 대목에서 민족 신앙의 하나인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전에 굿에 대한 약간의 공부를 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 부분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읽어 보았다. 과연 선생은 몇 장에 걸쳐 굿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해 놓았는데, 옆에서 보는 듯이 사실적이고 세밀하여 내가 알던 부분 외에 모르던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송악산 단오굿과 그네 타기 놀이, 혼인 풍습 등 민족 문화적인 것에 대한 묘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작가의 시각이 당시의 한 특정 계층에만 집중됐던 것이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는 하층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양반사회에서 궁중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이 '조선시대 중기를 살았던 상하 모든 계층의 생활상'을 총체적으로 그려 내고 있어 실제 그 시대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해 준다. 이제 『임꺽정』이 순 한국적 정서를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더 이상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벽초 선생의 『임꺽정』을 대하면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다. 선생의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상상해 온 임꺽정은 『홍길동전』이나『전우치전』의 주인공같이 탐관오리를 혼내 주고 힘 없는 백성을 보살펴 주는 전형적인 의적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서 임꺽정에게서는 세상을 바꾸어 놓을 영웅이라던가, 민중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의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임꺽정이는 힘은 천하장사였지만, 그 외 다른 모든 면에서는 가장 천대받고 그래서 세상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 찬 어찌 보면 '옹졸한 인물'의 모습이었다. 또한 그가 도적의 우두머리가 된 것도 그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친 세상의 풍파에 이끌려서였다. 그런 면에서는 박유복이, 이봉학이, 곽오주, 황천왕동이 등 청석골의 다른 모든 인물들도 같은 모습을 취한다.

그 중 한 사람인 이봉학이를 보자.

이봉학이는 청석골 인물 중에서는 가장 깨우쳤고 현감벼슬까지 한 지각 있는 인물이나 세도가 윤원형이에게 밉보여 좌천되고, 그 후 의형제인 임꺽정을 도와 준 일이 발각되어 서울로 압송되던 중 꺽정의 도움과 권유로 도적이 된다. 그는 처음에는 도적이 되는 것을 매우 꺼려했으나, 나라의 죄인인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볼 때 이들이 도적이 되어 청석골에 머문 이유는 극히 개인적인 동기와 그 외 약간의 사회적 요인 때문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의적의 형태가 아니었으며, 단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도적이 되었던 것이다. 꺽정이 자신의 아들 백손을 보며 하는 독백 중에 그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있다.

"저 자식은 도적으로 키우지 말아야 할 것이데……."

이 말에서 보듯이 임꺽정 자신조차 도적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겼고, 여기에는 사회에 대한 원망도 포함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강한 의문점이 생기지 않는가? 벽초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사람이고 더욱이 해방 후에는 월북하여 북한의 정계에 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작품에서 공산주의적인 계급 투쟁 의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백정 출신으로 사회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던 임꺽정이 도적이 되어 한 일은 '의적으로서 양반들과의 계급 투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주로 양민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구속된 동료들을 구출하는 등의 직접 이해가 얽힌 싸움이었다.

이것을 어떤 방향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작가의 문학적 리얼리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930년대는 순수문학보다도 식민지 현실에 대한 투쟁을 내세운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나 교조주의적 성향의 문학이 성행했던 시기였다. 만약 선생이 계급 투쟁 의식을 부각시킬 마음만 있었다면 『임꺽정』은 아주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식민 통치 상황 하의 일제의 압력? 그럴 듯한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부족한 것 같다. 시대적으로 "일본 제국주의가 만주사변(1931)을 시작으로 대륙 침략을 개시함에 따라 식민 통치가 더욱 강화되고 사상 통제도 극심해졌다."고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임꺽정』 같은 소재라면 계급 투쟁 의식의 형상화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상에서 같이 벽초 선생은 공산주의적 계급 투쟁 의식을 충분히 형상화시킬 수 있었음에도, 정작 선생이 『임꺽정』을 통해 형상화시킨 것은 한국적 정서였지 계급 투쟁 의식이 아니었다. 이 점으로 볼 때 선생의 의도는 '식민지 상황 하에 메말라 가는 한국적 정서의 표현', 곧 '민족 주체성의 회복'이었고, 이는 어떤 주의보다 앞선다고 믿는 민족주의자였던 것이다.

벽초 선생에 대한 평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잘못되어 왔다. 벽초 선생이 월북하였고, 북한에서 권력층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선생을 평가하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벽초 선생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걱정했던 순수 민족주의자라고 평가함이 올바르다.

『임꺽정』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역사와 좌익계 문학가들'에 대한 나의 많은 고정관념들을 깨뜨려 버린 소설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임꺽정』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 약점보다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는 보석'같이 밝고 아름다운 빛을 내어 나를 감탄시켰으므로, 나는 그 책 속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임꺽정』이 변하지 않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한국의 색깔, 즉 '반만 년을 꿋꿋이 이어져 내려온 민족 정서'를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의 어느 소설로도 느껴 불 수 없었고, 요즘 출판되어 나오는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내용의 일부 우리 나라 책들로는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꺽정』이란 책 내용의 재미 외에도, 책 자체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꼭 다시 한번 되짚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문학의 해를 맞이하는 새해 벽두부터 훌륭한 책을 접하게 되니 기쁨이 더욱 크다. 이 즐거움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