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엔진

저는 지금부터 상상과 상상력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 볼 참입니다. 그런데 그전에, 상상이란 단어는 너무 많이 또 쉽게 쓰이는 것 같아요. 우리, 그 단어를 듣게 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 물어나 봅시다. “대체 상상이란 게 뭐죠?” 그러면 열에 일고여덟은 얼굴이 빨개진 채 말을 더듬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상상은 현실 이외의 것을 떠올리는 일입니다. 지금-여기에 없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숙제를 안 했을 때, 성적이 형편없을 때, 휙 사라지고 싶어지는 거지요. 우리는 두 가지에 주목해 봅시다. 숙제를 안 했거나, 성적이 안 좋을 때라는 현실과 사라진 이후의 세계. 가능하지 않은, 그러나 가능하면 좋을 ‘어떤 것’. 이것이 상상의 실체입니다. 우리에겐 상상이 필요합니다. 한계적 생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 낸 상상의 뒤에 ‘힘력(?力)’ 자를 붙여 봅니다. 이때 ‘력’은 없음에서 있음,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가는 ‘엔진’이지요. ‘날고 싶다’에서 ‘날 수 있다’로, 혹은 ‘날아가고 있다’로 변해 갑니다. 그러니 상상력은 중요한 것이 분명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니까요. 저기 비행기가 날아갑니다.
 
그러나 꿈꾼다고 해서, 모두 상상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죠. 요즘 ‘우리’에게 유행하는 스마트폰은 놀랍도록 편리한 ‘가상현실’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건 실제가 아니죠. 다시 말해, 척하는 것입니다. 있는 척, 가능한 척. 우리는 이 ‘있는 척하는 없음’에 아주 빠르게 도취됩니다. 너무 쉽고 재미있고 편리하니까요. 그리 쉽게 찾았으니 우리들은 이 불가능한 가능이 사라질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아야 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에불과하니까요. 현실은 돌보아야 할 지금입니다. 그리고 꿈은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하죠. 지금을 외면할때 꾸는 꿈은 ‘공상’에 불과합니다. 그 뒤에는 ‘력’을 붙이지 못합니다. 없으니까요. 다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전직 교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사기꾼이었지요. 왜 과거형이냐고요?두 사람은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나란히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무엇을 했던 간에 그들은 지금 갇혀 있는 신분인 거죠. 감옥에 대해서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색무취, 온통 회색으로 가득한 세계. 두 사람은 그곳에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 신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가 한 대 도착합니다. 버스의 옆구리에는 이렇게 붙어있지요. 유랑극단.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지, 버스에서 광대들이 내리고 한 트럭 실린 무대 장비가 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지크프리트 렌츠의 소설 『유랑극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클레멘스와 하네스는 이 유랑극단의 버스를 훔쳐 탈출을 하죠. 몇몇 동료들과 함께 말입니다. 탈출이란 언제나 짜릿하지요. 그리고 대개, 그 뒤엔 환상적이고 아슬아슬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클레멘스와 하네스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패랭이꽃의 도시 ‘그뤼나우 시’에 당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곳의 시민들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지요. 정말 유랑극단이 된 것처럼 말예요. 아니, 이제 그들이 유랑극단입니다. 즐거움이 가득한, 노래와 술과 음식 걱정이 없는 그곳에서 그들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두 남자의 활기 넘치는 모험의 끝은 어딜까요. 그것이 여러분의 짐작과 맞을는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합니다. 세상에 정답이란 없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 아니겠어요.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인공들과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현실에서의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모험은 그저 일탈일 뿐이라는 사실이죠. 이를 배우게 된 우리의 친구 하네스는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예전에 난 무척 초조했었소. 기다릴 줄도 몰랐지. 그런 초조함으로 고통스러워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 그런 상태는 끝났소. 난 우리가 함께하기를 소망했소.”
 
 
『유랑극단』은 탈주 혹은 일탈이라는 상상적 세계와 현실 사이, 아슬아슬 스릴 넘치는 경계에 대한 거대한 은유입니다. 주인공인 죄수 클레멘스와 하네스처럼 우리는 어쩌면 현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요. 이때 우리가 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실을 외면한 채 막연히 감행하는 탈옥은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그건 너무 쉽고 간편한 선택이잖아요. 그런 선택 뒤에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이 찾아올지라도, 그것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오래갈 리도 없지요. 탈옥수들은 체포되기 마련이니까요. 식물을 키우는 시간을 생각해 봅시다. 예쁜 꽃과 과실의 맛을 상상하는 일. 좋은 흙과 물과 볕이 필요한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상상력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얻을 그 많은 것들을 『유랑극단』의 클레멘스와 하네스는 배우게 됩니다.
 
이제 작가가 마련한 유랑극단의 버스에 올라탈 시간입니다. 환상적인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더 망설이겠어요? 아! 잊지 마세요. 모험이 전부는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는 돌아와야 한다고요. 패랭이꽃 축제는 끝나기 마련이고, 유랑극단은 언제고 다시 돌아오니까요. 자, 그럼 떠나 보자고요.
 
 
 
글 · 유희경(시인,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