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예찬 - 『미리 쓰는 방학 일기』를 읽고 : 장석범

제1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
장석범


 
만화를 보거나 동화를 읽으면 나는 언제나 동심이 된다.

어렵게 살던 시절 모든 것이 귀하고 부족했던 초등학교 때는 책 한 권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그러니 어쩌다가 아주 어쩌다가 동화책 한 권을 가진 친구를 보면 그 덕을 보려고 얼마나 조바심을 냈던지 모른다. 그리고 운수가 대통하여 그것을 빌려오게 되면 밤늦게까지 앉아 다 읽어 버린다. 그러고도 미련이 남아 조금 남은 것 마저 읽고 주겠다고 거짓말을 한 후 한 번을 더 읽고 다음 날에야 돌려주었던 기억이라니. 동화는 우리 모두의 이상향일진대 왜 그것을 어린이만의 전유물인양 하는가. 성인들의 편견이며 오만이 아니겠나. 성인이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하는데는 꿈과 젊음이 약동하는 동화의 세계에 빠져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번에 펼친 『미리 쓰는 방학 일기』는 추억의 장을 다시 한번 열어 보는 가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중에서 방학이란 말만큼 신나는 어휘가 또 있던가. 소풍이나 운동회보다도 더 가슴 설레게 하고 마냥 자유로울 수 있었던 방학의 의미라니……. 그런데 거기에는 바로 '숙제'라는 복병이 있었으니, 이것이 방학의 방학 다음에 티가 되곤 했다. 공부를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누구에게나 공통된 일이 바로 숙제에 대한 부담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학교가 존재하고 방학이 있는 한 이것은 영원한 문제이기도 할 듯하다.

숙제가 맘에 걸려서 방학이 시작되면 갖가지의 묘안을 만든다. 그 가운데서도 단시일 안에 모든 숙제를 끝내고 신나게 놀자는 쪽으로 결정이 난다. 그리곤 부푼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계획대로 실천을 하지 못한 것 역시 추억 속에 뚜렷하다. 그런데 숙제 가운데에 제일 귀찮은 존재는 일기 쓰기였다. 거의 모든 친구들의 공통된 얘기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걱정은 하면서 뚜렷한 해결책은 누구도 찾지 못했다. 때때로 신경을 쓰면서 어쩌지 못하고 하루하루 미루다간 개학을 며칠 앞둔 때가 되면 비상수단을 써야 했다.

 
솔직한 얘기지만 나는 일기 숙제를 미리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일이 없다. 결국은 한 달 이상이나 밀린 일기를 쓰면서 날마다 쓰지 아니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던가. 여름방학 때나 겨울방학 때나 학년이 올라가서나 조금도 고치지 못했던 것이 일기 숙제의 양태였다. 믿어 두었다가 한 번에 쓰는 일기는 결국 거짓말이며 창작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날씨 때문에 한 고민은 일기의 내용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나중에는 그것마저 맘대로 쓰거나 그려 넣었다. 날씨마저 거짓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실제로는 아주 맑은 날에다가 우산을 그려 넣은 때가 있었는가 하면 비가 억수같이 내린 날에 수영을 했다는 기록도 있었으니 어찌 웃다뿐이었으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기특하고 흐뭇한 일은 거의 완전히 꾸며 낸 엉터리 일기라고 하더라도 나는 일기 숙제를 거른 적이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한 일은 선생님의 태도였다. 왜 날씨가 엉터리냐거나 내용이 거짓말이란 것을 빤히 아셨을 텐데 그런 점은 전혀 지적해 주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써 오지 아니한 친구들에게만 벌로 잡초 제거, 화장실 청소 등을 시키셨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선생님의 노고를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제자들에게 일기 쓰기의 습관을 기르도록 하셨던 큰 마음으로 거짓말 일기를 보고 흐뭇해하셨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잔머리 굴려 가며 날씨마저 조작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던 지난날 동심 속의 치기가 그리워진다.
동화는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영원한 젊음의 세계가 아닌가. 순수를 떠올리고 아름다움과 더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는 길로 동화의 세계는 영원한 희망봉이 아닐까. 더러는 실수도 하고, 꾸며 보기도 하며 크게 거슬리지 아니하는 가운데에서 티격태격하면서 성장하는 동화의 세상. 

동화는 벽을 허물고 가슴을 여는 매력이 있다. 

좋은 동화와의 만남은 세대차를 뛰어넘을 수 있고 젊음을 영접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가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