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카 히사시의 『내가 나인 것』을 읽고 : 권영하

제4회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대상
권영하
 

 
어쩌면 ‘화려한 가출’을 꿈꾸고 있을 우리 대권이에게
 
밤새 눈이 내렸더구나. 거실에서 내려다본 하얀 세상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새벽인 줄도 모르고 온 가족을 깨울 뻔하지 않았겠니. 유난히 눈을 좋아하는 대권이지만 동트기 전의 하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아직 잘 모를걸? 우리 대권이와 그 아름다운 세상을 같이 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곤히 잠든 너를 깨울 수 없었구나. 아마 언젠가는 엄마가 이렇게 감탄하는 이유를 알게 되겠지?

늘 네게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만 하던 엄마가 책을 한 권 읽었단다. 아빠께서 지난 연말에 네게 선물로 주신 일본 작가 선생님이 쓴 동화 『내가 나인 것』이 이번에 엄마가 읽은 책이란다. 별로 독서에 열의가 없어서 그런지―아니, 어쩌면 엄마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네가 읽지 않고 그냥 책꽂이에 꽂아 둔 그 책을 우연히 엄마가 너보다 먼저 읽게 되었어. 결론부터 말하면 참 잘 읽었다 싶어. 넌 또 “에이, 엄만 또 책 읽게 만드시려 거짓말하신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엄마는 많이 반성했단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 아들이지만 대권이는 분명 대권이지 엄마가 아닌데도 엄마의 잣대로 대권이를 키운 것에 대해 많이 뉘우쳤어. 어쩌면 이 책은 너희를 위해 만든 책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엄마들을 위해 만든 책이지 않을까 싶어. 우리 엄마들에게 꼭 한번 읽어 보라 권하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주인공은 ‘히데카즈’라는 남자 어린애란다.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대권이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라는 것도 그렇고, 엄마의 기대가 너무 커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늘 실수만 저지르는 것도, 그래서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늘 야단맞는 것도 너와 참 닮았어. 또 하나, 그 애 이름 ‘히데카즈’는 풀이하면 ‘빼어난(뛰어난) 하나’라는 멋진 뜻인데, 대권(大權)이도 한자어를 풀이하면 ‘큰 권세’라는 범상치 않은 뜻이니 그것도 공통점이지? 아마 대권이가 읽으면, 야 이거 내 이야긴데 할걸?

히데카즈는 엄마나 선생님으로부터 얼마나 혼이 많이 나는지 야단을 맞지 않으면 기운이 쭉 빠지는 듯 멍해질 정도야.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받고 늘 형제들과 비교되곤 하니 그 애가 느끼는 세상은 지옥 같지. 그래서 히데카즈는 가출을 하게 된단다. 가출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된 곳이 나츠요의 집이야. 히데카즈는 여기에서 집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많은 걸 경험하게 돼.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고 감싸 주는 나츠요을 만나게 되고, 이 집에 있으면서 자기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지. 또 그 집 할아버지로부터 난생 처음으로 일한 만큼의 대가도 받게 되고.

가출에서 돌아온 히데카즈는 많은 것이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그전 같으면 잔소리를 듣고 말 것을 자신의 주장을 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해. 물론 그런 히데카즈를 보고 가장 많이 놀란 건 엄마겠지? 왜냐하면 히데카즈는 변했는데 엄마는 변하지 않았거든. 단순하고 소극적이면서도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엄마는 히데카즈를 비롯한 형제들의 일탈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게지. 그러면서도 엄마는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과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모든 걸 합리화시키려고 해. 물론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잘못도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히데카즈가 옳은 일은 용기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거나 부정을 바로잡는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배운 것들이 집이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위기에 빠진 나츠요와 할아버지를 목숨 걸고 구해 내는 이야기와 불에 타 버린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나는 나라는 것’을 알려 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이 동화의 마지막 부분이야. 이런 걸 두고 어른들은 ‘자아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 동화를 지은 분은 어머니와 아들이 겪게 되는 외적인 갈등을 통해 어린이는 절대 어른들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과 어린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아.

대권아, 엄마는 이 책에 등장하는 히데카즈의 엄마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어. 늘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부터 대권이와 관련된 모든 걸 엄마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 너를 엄마의 소유물 정도로 생각하고 울타리 안에만 가두어 두려고 한 것까지 엄마는 히데카즈의 엄마와 꼭 닮은 것 같아. 히데카즈가 집에서 생활하기가 힘들었던 만큼 아마 우리 대권이도 힘들지 않았겠니? 지금도 물론 힘들 테고.

사실 엄마는 얼마 전 대권이에게 무척 놀란 적이 있었단다. 이번 겨울 방학에 네가 한 달 동안 필리핀에 있는 이모 댁에서 지내다 왔을 때야. 엄마는 한 달이나 떨어져 있어서 네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그런데 마중 나온 외삼촌에게 “외삼촌 집에서 며칠만 놀다가 내려가게 해 주세요.”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말문이 막히더구나. 처음에는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어. 나는 너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였겠지? 그러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네가 얼마나 집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으면 한 달이나 다른 나라에서 지내고도 집에 오기를 싫어할까 싶은 거야.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구나.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대권이도 지금 가출을 꿈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권아, 그 동안 엄마가 대권이를 많이 힘들게 했지? 엄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않겠니?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 엄마는 대권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할 생각이야. 최대한 대권이 의견을 존중해 주고, 대권이와 의견이 부딪칠 때는 최선을 다해 이해하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네 스스로 인생의 주체로서 네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생각이야.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노력할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게 달라서는 어떻게 대권이에게 모범이 되겠으며, 그러면서 어떻게 엄마이고 어른이라 할 수 있겠니?

이제 그만 줄일까 해. 대권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할게. 누구에게나 인생의 중심은 바로 ‘그 사람 자신’이란다. 우리 가족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나’의 가족이기 때문이고, 대권이가 다니는 학교가 의미 있는 이유도 바로 ‘내’가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이지. 즉 대권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 자신이라는 거야. 네가 어떻게 설계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대권이는 네 인생의 주인공으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네 삶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인으로 전락해 세상을 향해 불평과 푸념만 던지며 소극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수도 있을 거야. 엄마는 우리 대권이가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세상에서 주어진 네 몫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해. 그런 대권이를 기대하며 네 눈높이에 맞추어서 너와 함께 오래도록 하늘이 주신 모자간의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며 생활할 거야. 사랑해, 우리 아들-.

 
2004년 2월 8일, 엄마가 아들에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