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사계절문학상 수상 소감 : 독수리 5형제의 날개


어렸을 때 ‘독수리 5형제’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다. 독수리 동욱, 콘돌 창수, 백조 유미, 제비 철수, 수리부엉이 용이. 독수리 5형제라고 해 놓고 왜 각기 다른 생김새와 날개를 가진 조류를 한데 엮어 놓았을까? 뭐 그런 궁금증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참 욕심 많고 꿈 많은 여자아이였다.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엔 늘 두 가지의 꿈이 적혀 있었다. 전투기 조종사 + 작가, 국가 대표 + 작가, 의사 + 작가, 군인 + 작가, 화가 + 작가, 경호원 + 작가, 외교관 + 작가……. 꿈이 많아 행복한 시절이었다. 신기하게도 앞에 내세웠던 꿈들은 계속 바뀌어 갔지만 뒤에 남은 작가라는 꿈만은 늘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내 안에 차고 넘치던 수많은 욕심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둘 사라져 갔지만 글을 쓰는 일만큼은 여태껏 고집스럽게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버리지 못할 욕심이 하나 있다면 기왕이면 즐겁고 유쾌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사계절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오래도록 간직해 온 내 꿈과 호주 시드니 하늘을 날아다니던 무수한 새들을 떠올렸다. 달링 하버의 어느 나무그늘 아래에서 난생 처음 본 매서운 눈매와 잿빛 날개를 지닌 이름 모를 새부터, 산책 나간 공원 나무에 잘 익은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새까만 과일 박쥐들까지. 원고를 마치고 떠난 그곳에서는 백과사전에서나 봤을 법한 새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새’로 시작해서 ‘새’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새’ 덕을 본 작품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새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 보거나 애정을 가진 적이 있던가. 부끄럽게도, 없다.
 
스무 살 무렵, 집에서 잉꼬 한 쌍을 키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몫이었다. 사이좋은 잉꼬 부부는 알을 낳아 놓고도 돌보지 않았다. 새끼도 외면한 채 서로의 부리만 물고 있는 잉꼬 부부를 보고 정나미가 떨어졌던 것 같다. 그런 내가‘매’와 우리나라 전통 매사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찮게 본 외국 다큐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그건 운명이었고,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처럼 내게 날아든 행운이었다. 그날 이후로 매는 나에게 더 이상 단순한 날짐승이 아니었다.
 
고백건대 나는 대단한 애국자가 아니다. 그래서 전통문화 보존이니 무형 문화재 계승이니 하는 어려운 말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는 않다. 주인공인 보로와 동준이 내게 박씨를 물어다 준 행운의 존재이듯, 이 작은 이야기가 유쾌함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가벼워 팔랑팔랑 떠다니는 낱장의 깃털이 아닌, 단단하고 힘찬 날개로 창공을 누비길 희망한다.
 
“제각각 생긴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이런 상황에서는 얘가 좋고 저런 상황에서는 쟤가 좋고…… 그래야 재밌지. 다 똑같으면 심심하잖아?”
 
꿈이 늘 쌍으로 붙어 다니던 시절, 엄마는 내게 알 듯 말 듯한 소리를 했다. 독수리 5형제가 각기 다른 모습이라 다행이다. 똑같은 생김새의 독수리 다섯 마리였다면 별로 재미없었을 텐데, 제각각이라서 고맙다. 『내 청춘, 시속 370㎞』도 많은 청소년소설들 틈에서 저만의 날갯짓으로 씩씩하게 내일을 향해 날아가길! 재미있게 날아가길!
 
 

이송현 李松炫
1977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영국 런던에서 공부했다. 장편 동화 『아빠가 나타났다!』로 제5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았고,「호주머니 속 알사탕」으로 2010 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부문에 당선되었다.
꽤 쓸 만한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농담과 수영, 수구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캔디캔디』의 테리우스와 안소니를 놓고 싸울 때 혼자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앨버트를 사모할 만큼 조숙한 여자애였다. 으랏차차, 무슨 일을 하든 힘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늘 유쾌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인생 목표는 기똥차게 재미난 작가가 되는 것! 오랫동안 킥킥 소리 내어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길 소망한다.
지은 책으로 『아빠가 나타났다!』, 『천둥치던 날』(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