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다 : 하신하

제1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하신하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곳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모퉁이. 부모님을 졸라 샀지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없어 유치원으로 쫓겨 왔고, 유치원에서도 감당이 안 됐는지 처마 밑에 토끼 두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 토끼를 보기 위해 아이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매일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 봄, 이름도 없는 토끼 두 마리는 토끼장만 남겨 두고 사라졌다. 토끼가 왜 없어졌느냐고 아이가 묻자 소홀한 관리로 죽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풀이 많은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댔다. 나에게 토끼는 토끼장 안에서 가져다 준 풀이나 배춧잎을 부지런히 갉아먹는 온순한 동물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대고도 머쓱했는데 진짜 모험을 떠난 토끼들을 만났다.

겨우 모험을 떠나는 토끼 이야기가 영국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라니 시시한 감이 들었다. 일단 소재부터 어딘가 어색했다. 기왕 모험담의 주인공을 동물로 설정할 거라면 사자나 표범, 여우처럼 활동적인 동물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니?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이야기도 이제 밑천이 다했으니 읽어 두었다가 아이가 조르면 자장가용으로 쓰자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러나 카우슬립네 마을에서 파이버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대목까지 숨을 꼴딱거리며 읽고 있는데 아이가 졸음에 겨웠는지 엄마가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아이를 재우고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락한 카우슬립네 마을에 있던 파이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섰다. 헤이즐 일행이 워터십 다운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아이 곁에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삼십대 중반의 아줌마가 1318문고를 읽는다. 아이 때문도 아니고 예전부터 1318문고를 읽어 왔다. 13세에서 18세까지 읽는 문고라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1318문고 안에서 만났다는 것이 조금 아까웠다. 아무래도 독자층이 청소년으로 한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나부터 1318문고를 밤새워 읽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같은 취향의 기성세대가 많을 듯싶다. 작가의 말에 “나이가 찬 아이들은 토끼 이야기라서 유치하다고 싫어할 테고, 어린이들은 어른 책처럼 씌어 있어서 어렵다고 싫어한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전전한 배경이 담겨 있다. 아마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제목과 서두만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린 편집자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진 선입견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줄도 고치지 않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던 작가의 자신감 덕분에 우리는 아동문학의 성숙한 경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피곤에 겨워 쓰러지듯 잠들던 아줌마를 불러 세웠던 이 책의 힘은 무엇보다 박진감이었다. 그저 토끼를 의인화한 우화였다면 잠 못 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른에게도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토끼들의 성격 설정이 완벽하다. 겸손하면서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재난을 예언하고 토끼들에게 새로운 마을을 찾게 도와주는 예언자 파이버, 단순하면서 강인한 투사 빅윅, 총명하지만 힘든 일은 남에게 미루는 블랙베리, 헤이즐 일행을 괴롭히는 나쁜 토끼지만 전략적 지도자로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운드워트 장군. 주인공 토끼 열한 마리뿐만 아니라 조연 토끼까지 여느 대하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 못지않게 생생하다. 하나의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영웅 토끼 한 마리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일을 풀어 나가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또 헤이즐 일행의 모험에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는 엘-어라이라의 이야기는 신화적 상상력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의 깊이를 더해 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신화와 역사가 담긴 영웅 토끼들의 이야기이다. 토끼의 생태와 맞물려 우리가 그 동안 읽어 왔던 그리스ㆍ로마 신화와는 색다른 맛을 준다. 양장본 768페이지면 아주 긴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헤이즐 일행에 끼어 엔본 강을 뛰어넘고 천의 적을 피해 워터십 다운으로 가는 토끼가 되었다.

헤이즐 일행이 안락한 워터십 다운에 정착하고도 이야기는 끝을 맺지 않는다. 워터십 다운에 정착했어도 암토끼가 없어 번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가 협상을 하지만 결국 전투를 통해 암토끼를 얻게 된 헤이즐 일행. 사실 이 안에 동물의 생존 방식이 담겨 있다. 자립과 자손 번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동물도 피해 갈 수 없는 중대하고도 영원한 과제이다.

“동물은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죽여야 할 때는 죽이지.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려 가며 다른 동물의 삶을 망치고 상처를 주진 않아. 동물은 존엄성과 동물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암토끼를 두고 협상을 하기 위해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간 사절단은 이렇게 연설했다. 그러나 이 말은 운드워트 장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하는 말로 다가온다. 인간만이 최고라는 자만을 버리고 동물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더불어 인간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사회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주장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운드워트 장군이, 토끼가 너무 많아 스스로 수정된 태아를 체내로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암토끼를 보내지 않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감행하는 것처럼, 인간도 부작용을 알면서도 동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 들꽃과 자연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노력 속에서 좀더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자연과 만나자는 다짐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판타지 문학 하면 기상천외하고 주술적인 내용이 담긴 문학을 생각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신화와 종교, 역사에 바탕을 둔 단단한 판타지 문학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마법 같은 내용이 전혀 없지만 읽는 사람은 판타지 문학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내가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모퉁이 토끼를 보러 갈 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아이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이는 갇힌 토끼를 보고도 더 많은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는 잠자리에서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다. 작가의 두 딸이 아빠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듯이 우리 아이도 꿈 속에서 토끼들이 펼치는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모험을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