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쌈싸름함 뒤에는 달콤함이 : 김유진

제3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우수상
김유진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주 시골이다. 그래서 봄이면 할머니께서는 밭에다 고추며 콩이며 이것저것 심으셔서 시골에 가면 어김없이 밥상에는 언제나 싱싱한 무공해 채소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봄에만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다. 할머니께서는 가을이 되면 고구마를 캐고 난 밭에 고랑을 만들고 배추나 무를 파종했다. 그리고는 한 겨울이 되기 전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갔다. 하지만 몇 포기의 배추와 무는 꼭 밭에 그대로 남겨 두셨다.

“할머니, 이건 왜 그냥 둬?”

호기심 많은 나는 할머니 치맛자락을 졸졸 따라다니며 앵두 같은 작은 입술을 연신 놀려댔다. 

“씨를 받으려고 그러는 거란다.”

한겨울에 얼어 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듬해 봄이 되면 얼어 죽는 것만 같던 배추와 무에는 어김없이 새순이 돋았다. 그 새순에서 꽃줄기가 자라는데 할머니께서는 그것을 ‘장다리’라 했다. 장다리꽃잎을 하나 따 입에 넣고 씹으면 매콤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가도 한참 후면 달콤함이 느껴진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흰나비, 노랑나비 모여드는 장다리꽃은 소박함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숙연히 고개를 숙이고 찬사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 꽃이 지고 열매를 맺으면 생명의 존엄성을 간직한 씨앗이 영그는 것이다.

이러한 장다리꽃과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복실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양조장을 하는 영아네 집에서 엄마와 함께 남의 집살이를 했고, 광복군인 아버지의 사랑은 받아 보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엄마마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전쟁 통에는 영아를 데리고 다니며 고아가 된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그러면서 이념의 대립 속에서 무자비 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동행하던 어린 석주마저 배고픔에 못 이겨 독버섯을 먹고 초라한 볏단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복실이는 피난 도중 경주에 살고 있는 황 부잣집에 들러 한 끼 밥을 얻어먹고 서로 남으라고 떠미는 아이들 속에서 복실이는 아직 어린 영아에게 피난길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영아를 남겨놓고 고아원으로 간다.

아마 복실이 자신도 남고 싶었을 것이다. 장국이 말마따나 영아보다는 복실이가 훨씬 더 일을 잘하고, 고향에서 포항으로 그리고 경주로 오는 그 피난길이 무척이나 무섭고 수만 리 길처럼 길게 느껴졌을 테지만 어릴 적부터 의젓했던 복실이는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주인집 딸 영아를 위해 자신의 고생을 감수한다. 만약 그 아이들 중 한명이 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내 몸부터 챙기고, 남보다 조금 더 편하길 바라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비겁한 나는 그러한 극한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며 잽싸게 “제가 남을 게요”라고 외쳤을 지도 모른다. 내 동생뻘 되는 복실이의 너무나 참한 행동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복실이가 찾아간 고아원의 소장은 예전 복실이의 아버지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굶주림에 떨고 있는 집에 남몰래 보리쌀을 퍼다 준 그 집의 딸이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위해 몰래 집을 떠나던 날 복실이 아버지가 쥐여 준 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 소장은 복실이에게 그 은혜를 갚기라도 하듯 서울로 가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미국에 유학까지 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복실이와 달리 좀더 편안한 삶을 살 것만 같았던 영아는 고약한 황 부잣집 마님에게 구박을 당하고, 빨래, 물 긷기 등 힘에 부대끼는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어리광만 부리며 귀하게 자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영아 역시 철이 들었는지 현실을 인정하고 꿋꿋이 인내하며 삶을 살아간다. 운명인지 우연이었는지 전쟁이라는 아픔이 지나고 난 후에 영아와 복실이의 인생은 완전 뒤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게 권선징악처럼 누구는 착해서 복을 받고 누구는 악해서 벌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니…….

복실이나 영아처럼 사람들은 운명이건 우연이건 자신 앞에 들이 닥친 고통에 대해서는 그것을 감내하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때론 고통이 복실이에게서처럼 한 발 더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되는 데 반해 영아의 경우 같이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는 늪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삶이란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도 제 나름의 모양과 빛깔을 가지고 소박하고 수수하게 피어나는 장다리꽃과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복실이의 삶에 비추어 나름의 의미를 하나 더 붙여보고 싶다. 장다리꽃을 씹을 때 느껴지는 맛이 처음에는 맵고 쌉싸름하지만 한참 지나고 나면 달콤해지듯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 때
장다리꽃은 가장 짙다.

- 도종환의 「장다리꽃」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