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이정형외과 출입금지 구역_ 사람들 사이에 방이있다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갈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다소 으쓱한 일이다. 남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어쨌든 특권이니까. 그러나 당당히 출입금지 구역 문을 밀치고 들어간 곳이 침침한 단칸방, 엄마와 아빠와 언니와 넷이서 함께 사는 방, 온갖 짐에 예전 살던 사람의 짐까지 어수선하게 늘어선 방이라면 심정은 달라지겠지. 게다가 그 전의 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면, 매일매일‘출입금지 구역’표지판 달린 문을 여닫아야 하는 마음은 쪼글쪼글할 것이다. 딱, 진솔이의 마음이 그렇다.

진솔이보다 좀 더 어렸을 때, 미술학원의 구석방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불을 펴면 가득 차는 좁은 방. 우리 세 모녀는 철없이 뒹굴뒹굴 놀았다. 내가 어려서였을까, 아니면 우리 가족들이 낙천적이었나.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밥은 엄마가 쥐여 주는 돈을 들고 적선시장에 가서 사먹곤 했다. 자장면 아니면 떡볶이였다. 학원과 방 이외에는 라면 끓여 먹을 곳도 없었다. 미니멀한 삶. 부엌과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집을, 사실 그 후로도 여러 번 보았고 살기도 여러 번 살았다.
그러한 불균형하고 결핍된 생활이 나는 그리 싫지 않았다. 사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나는 그 방들에서 얻었다. 그러나 진솔이는 다르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이제 갓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그 아이는 알고있다. 햇살이 내리비치는 마당이 내다보이는 똥내 나는 화장실, 배 깔고 엎드려 숙제하던 햇살 가득한 마루, 뒹굴기 좋은 따끈한 안방 아랫목, 아빠가 일 끝내고 돌아와 목물하던 마당, 앵두나무, 꽃밭, 대문을 열고 나서면 만나는 마을, 아기 때부터 살던 집의 친숙한 냄새.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없는 삶은, 얼마나 서늘한가.
이 책은 우리가 살던‘방’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진솔이와 진하는 새로운 방에서 부쩍부쩍 자라며 쉽지 않은 시기를 관통한다. 사춘기 진하의 두서없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솔은 일기장을 통해 훔쳐본다. 그러므로 이 책의 시각은 진솔이지만, 두 아이의 목소리는 너나없이 섞여 있다. 소심하게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아 두는 진솔이와, 성질부리고 발버둥치며 죽겠다고 공언하는 진하. 반응은 다르지만 그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실에 쓸리며 적응한다.
아이들은 낯선 도시의 낯선 방에서 주춤주춤 걸어나가 사람들 사이에 머물 곳을 만든다. 몸의 방과 마음의 방은 넓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겹쳐진다. 오해와 이해는 교차하고, 수줍던 아이들은 조금씩 곁을 준다. 진솔은 두고 온 집에서 눈길을 떼고 사람들 사이의 방에 있는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방을 찾아, 지금 이곳에 있다.
읽는 내내 낯설지 않아서 마음이 묵지근하다. 그렇게 자랐구나, 어느 날의 어린 나도. 지금 이 방에 오기까지 걸어왔던 사람들 사이의 미로 같은 길이 떠오른다. 내가 머물면 방이 되었던 곳. 우리들이 잡은 손바닥 사이의 둥근 틈 같았던 방들. 사실 이쯤 되니 알 것 같다. 그 방들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따뜻했는지.

하지만 어쩌면 난 그 방에서 너무 멀리 와,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집이 아닌 데서 사는 창피함, 얼굴의 점 때문에 생긴 마음의 상처, 좋아하는 감정들의 처치 곤란함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공부해야 한다고 한밤중에 불 켜고 설레발치는 딸아이에게 불 끄라고 소리치는 아버지의 피곤함이다. 살겠다고 버둥대는 어른들 사이에서 발버둥쳐 봤자 아무 반향도 얻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래서 더, 가엽다. 그렇게 아이들은 혼자 자라난다. 여기저기에 함부로 뿌리를 뻗고, 그렇게 만난 이들에게 위안을 받으며, 결국은 건강하게.
 
 

박사(북칼럼니스트)│대학에서 시와 인도철학을 배운 후, 책, 라이프스타일, 고양이, 여행 등 흥미를 끄는 것들을 주제로 다채로운 글쓰기를하고있다.‘ 훌륭한고양이’가되는게삶의목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연습 중이다. 책으로『여행자의 로망 백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나의 빈칸 책』,『 비포 컵 라이즈 뉴욕』등이 있다.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