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달 5월에 읽는 가슴 따뜻한 가족 이야기 『그리운 메이 아줌마』

MAY엔 Missing May, 그리운 메이 아줌마(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변영미 그림)를 추천합니다. 『돌 씹어 먹는 아이』 『나의 진주 드레스』 등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송미경 작가의 서평(열린어린이 2015년 5월호 수록)을 작가의 허락을 받아 옮겨 옵니다.

밤 같은 정적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우리 삶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만남의 처음을 돌아보게 하고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게 하며 결국 내 안에 숨어 있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냅니다. 서머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더부살이를 하던 중 친척집에 방문했던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부부의 눈에 띄어 가족이 되었습니다. 서머는 나이 든 아저씨 아줌마 손에 이끌려 곧 쓰러질 것 같은 녹슨 트레일러에 도착했을 때 마치 천국을 경험한 것처럼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낡은 집은 마치 오래전부터 서머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아늑했고 아저씨가 만든 수많은 바람개비들은 아줌마가 선풍기를 틀자 힘차게 돌아갔지요. 찬장에는 눈치 보지 않고 먹어도 좋은 쿠키와 감자칩과 초콜릿 봉지들과 늘 한 번만 먹어봤으면 했던 종이 곽 주스들이 진열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서머를 사랑으로 돌봐주시던 메이 아주머니가 밭을 가꾸다 돌아가시며 6년간의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남겨진 아저씨와 서머는 혼돈과 슬픔의 시간에 묶여 버립니다. 아줌마가 돌아가신 지 여섯 달이 되어가지만 아줌마의 빈자리를 메꾸고 생활을 꾸려 나가는 일은 막막하기만 합니다.
 
  메이 아줌마 앞에서 두 사람은 아름답고 강했습니다.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해군 출신의 상이군인인 아저씨는 볼품없이 나이 든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엄마를 잃은 뒤 이집 저집을 떠돌며 천덕꾸러기로 살아온 서머도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 준 것은 메이 아줌마의 사랑의 힘이었어요.
 
  우리도 살다 보면 비루하고 쓸쓸한 생에 주어진 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모든 부끄러움을 끌어안아 주는 존재, 비천함을 존귀함으로 느끼게 하는 존재 말이에요. 제게도 그런 만남이 있었습니다. 때론 그것이 책이었고 때론 사람이었고 때론 어떤 순간이었고 때론 어떤 환상과 꿈이었습니다. 내 자신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 내 삶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망의 순간, 내 손을 잡아 준 존재들이요. 이상하게도 그것은 연약하고 상처받은 존재들이었지요. 메이 아줌마가 그랬던 것처럼요.
 
  메이 아줌마는 아홉 살에 홍수로 가족을 잃었습니다. 메이 아줌마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은 물난리에서 구하려고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려 낡은 양철통에 집어넣던 모습입니다. 메이 아줌마는 그렇게 떠내려갔고 혼자 살아남았지요. 물론 상처가 있는 존재들이 늘 다른 존재에게 빛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상처로 남의 상처를 찌르는 경우가 훨씬 많죠. 메이 아줌마는 상처를 지녔지만 다른 이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아픔을 뛰어넘은 치유자들은 상처 입은 영혼을 잘 알아보고 또 그 상처가 가진 빛을 스스로 발견토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서머는 메이 아줌마를 만나며 자신을 낳아주셨던 엄마가 서머의 몸 어딘가에 숨겨둔 사랑의 기억들을 다시 발견합니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 안의 귀한 것들을 일깨워 주는 사람을 잊지 못하지요. 내가 소중한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하며 행복해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존재를 우리는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지요. 서머에게 메이 아줌마는 바로 그런 존재였어요. 그런데 메이 아줌마가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서머는 산마을의 혹독한 겨울을 오로지 상실감에 사로잡혀 보냅니다. 오브 아저씨는 아직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메이 아줌마가 아직 여기에 있다고까지 말하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모든 것을 인정하며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준비해도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슬픔이지요. 하물며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가족과의 이별은 혼돈과 고통뿐일 수밖에요. 무엇보다 서머와 아저씨에겐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그리워할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러나 서머는 위태로운 아저씨를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는 두 사람 앞에 클리터스라는 소년이 나타납니다. 서머의 눈엔 정말 최악의 남자아이죠. 클리터스는 늘 기름기 쩔어 있는 머리에, 잡다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떠들어 대기나 하는 눈치 없는 애거든요. 저도 서머처럼 열두 살 소녀였던 적이 있어서 아는데요. 뭔가 쓸모없는 잡다한 것을 모으거나 세상의 온갖 일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남학생을 싫어하는 건 정말 당연하죠. (저와 서머는 취향이 같은가 봅니다.) 클리터스네 식구가 이사 온 뒤 클리터스와 함께 일 년 간 통학 버스를 타고 다닌 서머는 오죽하면 클리터스를 ‘미친 놈’이라고까지 생각했을까요. 그런데요. 이야기는 꼭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필이면 그런 클리터스가 오브 아저씨의 고물차 주위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는 거죠. 늦가을부터 사진 모으기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 클리터스는 결국 오브 아저씨의 눈에 띄게 되고 함께 집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클리터스는 꼬박 일곱 시간이나 서머의 집에 진득이처럼 머물다가 갑니다. 당연히 서머는 클리터스를 더 싫어하게 되지만 희한하게도 오브 아저씨는 그 애를 아주 좋아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제집인 양 죽치고 앉아 여행 가방 속에 든 사진들을 보여 주며 떠들어 대는 클리터스를 말이죠.
 
  서머와 아저씨가 클리터스에게 조금씩 익숙해져 갈 무렵 아저씨는 클리터스가 7살 때 강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것을 알게 됩니다. 메이 아줌마를 잃고 사후 세계에 관심이 쏠려 있던 아저씨는 잠시 천국에 다녀온 체험을 했다는 클리터스를 더 의지합니다. 마치 클리터스가 하늘나라에 있는 메이 아줌마와 자신들을 연결해줄 안테나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죠. 서머는 그런 아저씨를 근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아저씨는 클리터스에게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 놓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수다스럽고 눈치 없어 보이던 클리터스는 아저씨가 하는 그 긴 이야기들을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모두 들어 주지요. 클리터스가 진득하게 아저씨의 말을 듣는 장면은 제게도 큰 감동을 주었고 서머에게도 그러했습니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아저씨와 서머는 트레일러 안에서 실컷 울었어야 했지만 분주한 장례 절차를 따르는 동안 통곡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클리터스가 장의사도, 목사도, 친척들도 하지 못한 일들을 해주고 있었던 거예요. 클리터스는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는 아이였던 거죠. 서머는 클리터스를 통해 무엇이든 곧 잃을 것만 같아 전전긍긍하는 자신 안의 불안을 발견합니다. 그래요. 클리터스는 알면 알수록 정말 멋진 아이였죠.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존재 말이에요. 클리터스는 메이 아줌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법을 이들에게 알려 줍니다. 결국 서머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횃불을 클리터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메이 아줌마가 남긴 너무나 미더운 기억들, 아줌마가 남겨 놓은 빈자리 때문에 아저씨와 서머는 클리터스가 알아 온 죽은 자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심령술사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 여행은 순조롭지 못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통해 진심으로 슬퍼할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정말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에 없으며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진실과 직면하게 된 거죠. 완벽한 절망의 대단원이 그들을 새로운 전환점에 세웠습니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뒤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한 서머는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야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울고 또 울어도 그치지 않는 울음 뒤에 서머는 꿈속에서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드디어 서머는 상실과 결핍으로 가득한 삶의 의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들이 자신 안에서 또 다른 빛이 되었음을 알게 되지요. 밤 같은 정적 속에서요.
 
  나는 『그리운 메이 아줌마』를 읽는 내내 지나온 삶의 정적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고 힘든 계절에 이 책을 끌어안고 새벽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삶도 바라보았지요. 쉽게 써가기 어려운 말들이 가슴에 차오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더군요. 언젠가 나도 서머처럼 한없이 울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길 기다리신 거야.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넌 아마도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지.” 거센 바람과 추위의 광야를 헤매던 우리의 영혼은 바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바로 그 이야기를 만났을 때, 바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겠지요. 왜 그토록 쓸쓸해야 했는지, 왜 울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캄캄한 어둠을 버텨 내어야 했는지.
 
  나는 절실하고 목마르다 해도 절망하지 않을 겁니다. 진심으로 절실할 때에 반드시 어떤 일이 일어날 테니까요.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가 서머를 만난 것처럼 강하게, 혹은 오브 아저씨와 서머가 클리터스를 만난 것처럼 뜬금없고 천천히 말이에요.



 
 
그리운 메이 아줌마

저자 신시아 라일런트

출판 사계절

발매 200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