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반성문 : 강예진

제6회 어린이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대상
강예진
 

 
오늘도 아이들의 얼굴이 엉망이다. 언제쯤 밝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며 수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찡그린 아이들의 표정처럼 일기장도 내가 지겨운지 같은 말만 반복하며 나를 원망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참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아이들의 일기, 나는 뭔가 지치는 기분이다. 막 쓰기를 마친 듯 달리기를 하는 글씨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을 이야기에 한숨이 흐른다. 언제쯤 아이들이 일기에 흥미를 가지게 될까. 나는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저 반복되는 일기를 보고 반복되는 잔소리를 늘어 놓으며 오늘도 발전 없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에서 아이가 써낸 독후감을 읽고 있는데, 난 아이의 글을 보고 너무나 당황해 손끝의 떨림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일기 도서관』이란 책을 읽고 쓴 아이의 독후감이었는데, 그 동안 벌어졌던 일기 전쟁의 원인이 아이들이 아닌 교사인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일기가 쓰기 싫은 것은 글쓰기가 싫어서도 아니다. 귀찮아서도 아니다. 선.생.님.이.내.일.기.를. 검.사.하.기.때.문.이.다.’

아이의 글씨 하나하나가 머리에 엉켜오고, 난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서점에 들러 『일기 도서관』이라는 책을 허겁지겁 읽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아이는 무엇을 본 것일까?’

나는 책을 펴기가 두려웠다. 나의 잘못을 모두 알고 있는 듯, 책 속의 글자들은 너무나 정당한 모습으로 내 머리끝을 두드려 댔다. 민우와 벼리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지고 나는 그들을 짓누르는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민우는 일기 쓰기를 힘들어하는 학생으로 항상 세 줄을 넘기지 못하여 도서실을 청소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거짓으로라도 일기를 채워 내려고 해도 그것이 되지 않아 오늘도 도서실을 청소하는 민우. 잔뜩 웅크러져 청소를 하고 있는 아이의 초라한 뒷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일기의 의미가 벌과 형식으로 이어져 나가다니. 일기장 검사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아이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고 하나의 두려움이 된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은 아이가 벌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 일기장 검사의 의마가 무엇이었더라. 나는 내가 그 동안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의 일기장을 보아 왔는지를 생각하여 본다. 아이들의 찡그린 얼굴이 눈앞에 아른댄다.

민우는 도서실에서 지우개로 낙서를 지우다 일기 도서관에 입장하게 된다. 일기 도서관이 열릴 때의 웃음소리는, 아이들에게는 해방의 웃음소리로 교사에게는 비웃음의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일기 검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되고, 교사에게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죄책감을 심어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민우는 일기 도서관에서 일기를 베끼게 됨으로써 일기 검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웃으며 일기장을 건넬 수 있게 된다. 일기에서 해방됨으로써 웃으며 등교할 수 있었던 민우를 보며 나는 일기가 아이들을 그토록 괴롭혀 왔다는 사실에 못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동안 나는 그 못으로 아이들을 찔러 대었던 것이었다.

‘난 너희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그것을 너희의 책임으로 여겼구나.’

나는 이 고통스러운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벼리와 민우가 베낀 일기장이 교사가 어렸을 적 써 내었던 거짓 일기였다는 결말은 더 이상 내가 나의 문제로부터 도망칠 수 없게 하였다. 내가 잊고 살던 기억의 상자를 다시 열어가며 아이들이 썼던 일기를 하나하나 펼쳐 놓으며,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이야기 속의 선생님처럼 나 역시 십 년 전에는 일기를 너무너무 싫어했던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왜 난 한 번도 아이들의 입장에 서 보지 않았던 것일까?’
‘왜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그 상황을 내가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공허해진 머릿속에서 일기를 낼 때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쭉 내미는 아이들의 모습과 일기가 쓰기 싫어 예전에 썼던 일기를 찢어다가 일기장에 붙였던 어린 나의 모습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아아, 그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꽉 막혀오는 듯하였다. 거짓으로 쓴 일기가 선생님의 일기였다는 유쾌한 결말이 교사인 내게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창경원에서 본 동물원……. 뭐가 ‘참 재밌었다’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들에게 일기를 그만 쓰게 할 수는 없다. 일기는 아이들이 삶의 소중함과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훗날 지우개 가루를 흠뻑 뒤집어쓰고서라도 되찾고 싶은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식에 불과한 일기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푸는 학생처럼 속만 탈 뿐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손에 들린 『일기 도서관』 역시 정답을 알려 주지 않은 채 마무리되고 있었다. 열려진 결말에 나는 막막하기만 하다. 정답은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분명 후회할 결정을 내린다. 나는 아이들을 믿어 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일기에 흥미를 잃은 것은 교사가 바람직한 이야기를 선호하며 쓰여진 일기의 내용으로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일기에 진심을 담아 내지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교사는 평가자의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이들에게 평가자가 아닌 친구 같은 상담자로 서기를 결심한다.

‘상담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기를 읽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일기를 가지고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 그럼 아이들은 일기의 화젯거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되므로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거야.’

민우가 많은 일기를 경험해 본 후에 ‘김밥’이란 글자만 보고도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었듯이 우리 아이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확신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아이들이 매우 신이 나 있다. 만화영화 이야기, 친구 이야기,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 정신이 없다. 그들의 일기도 매우 신이 나 있다.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만화영화 이야기뿐이기도 하고, 낙서와 그림으로만 일기장이 채워지기도 한다. 무척이나 소란스럽지만 그들이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아냈다는 것에 스스로가 자신의 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웃으면서 일기를 쓸 수 있었는데도, 미안, 선생님이 미안. 내가 너희를 그토록 우울하게 했었구나.’

아무리 가르쳐도 틀리는 띄어쓰기를 보며 오늘도 아이들과 전쟁을 시작하지만 기분은 맑게 개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