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희 작가의 『여우와 별』 번역 노트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볕 좋은 날 소르르 단잠에 빠진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햇살을 느꼈다. 새벽 녘 멀리 들려오는 기적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삼나무 아래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 반짝이는 별 하나.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그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가만히 들려온다. 우리 모두는 한때 나의 별을 지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나의 별을 찾고 있으므로, 조금은 다행이다.
이 이야기는 외롭다. 외로운 누군가의 이야기다. 홀로 어두운 밤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보았거나,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 적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어쩌면 당신은 외로웠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외롭지 않다.
이 이야기는 슬프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가련하다. 그 과정은 때로 가혹하다. 외로움과 어둠이 함께 오면 절망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절망은 때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잃어버린 것을 잊지 않는 것은 가장 나중에 남겨지는 용기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름답다.

마음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다면, 그것은 별이 된다.
나는 보통 볕이 드는 시간에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이 글은 해가 지고 밤이 이슥해지면 노트를 펼쳐놓고 한 자 한 자 적어 옮겼다. 왠지 그것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이 쳐지지 않은 약간 노르스름하고 거친 내 노트 위에 여우가 다니는 길이 지도처럼 조금씩 그려졌다. 깊은 숲과 작은 굴, 가시덤불과 풀숲, 그리고 숲 사이 작은 오솔길들. 고독하고 겁 많은 여우는 사박사박 길을 냈다. 여우가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때면 나는 베란다로 나가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짙고 어두운 밤이었다. 언젠가 사막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로등 불빛도,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도, 자동차도, 사람도 없었다. 마치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순간, 저만치 하늘 위로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반짝이며 고독한 여행자를 비추었다. 그것이 기억났다. 희미하게 반짝이던 그 빛. 고개를 들면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웅크려있던 여우가 주저하고 망설이던 끝에 다시 길을 나섰다. 당당한 걸음이 아니라 마음에 든다. 무언가의 시작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나의 첫사랑, 첫 등교, 첫 출근, 내 이름이 적힌 첫 책. 떨리고 불안했다. 그리고 설레고 두근거렸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나는 나의 첫 여우를 만났다. 내가 노트를 연필로 사각사각 채우는 동안 어둠 저편에서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혼자가 아니라는 듯, 별은 희미하게 어둠을 비췄다. 여우처럼,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
아마도 당신 역시, 혼자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 따스한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한 장 한 장 느리게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아껴 읽을 필요가 있다. 또는 잠들기 전 포근한 담요를 푹 뒤집어쓰고 웅크려 읽다 잠이 드는 것도 좋겠다. 오랜 만에 꿈을 꿀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작은 여우 한 마리와 반짝이는 별이 나오는 꿈일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깊은 숲속을 사박사박 걷는 소리도 아마 들릴 것이다. 어쩌면 잊었던 먼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신은, 당신의 별을 만날 것이다.
 
 
여우와 별
저자 코랄리 빅포드 스미스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