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서평 - 하룻밤, 한 생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룻밤,
한 생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룻밤, 하룻밤, 하룻밤.
최면을 걸듯 되뇌어 본다.
무엇이 상상되는가?
하룻밤, 무엇을 상상하든 작가는 그 상상 이상의 감동을 선물한다.

  아동청소년작가 이금이가 오랜만에 저학년 창작을 들고 나타났다. 사실 최근 작까지 그녀는 줄곧 청소년소설에 천착해 왔다. 초기 이금이 동화를 읽고 자란 독자 중에는 어느새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 있기도 하다. (1984새벗문학상1985소년중앙문학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작품성 뛰어난 동화들로 많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이금이 동화를 읽으며 웃고 울던 뭉클한 날들의 기억을 지금의 내 아이에게도 전해 주고 싶은데 요즘 동화는 안 쓰나? 이런 생각을 한 독자라면 『하룻밤』이 반갑고 고마워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읽고 난 뒤의 첫마디는? 다른 말은 몰라도 이 말은 꼭 하지 않을까?
  ‘역시!’
  시간은 흘렀지만 감동의 무게는 여전한 이금이 동화에 실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때 맛보지 못한 이 넘치는 상상의 맛은 뭘까? 곱씹고 되새기며 요즘 동화의 맛은 이런 건가? 흥분을 금치 못하고 있으리라. 나 또한 그런 독자 중의 한 명으로 지금, 『하룻밤』의 새로운 맛에 빠져 있으니 말이다.
 
  『하룻밤』을 살짝 엿보면 현재의 하룻밤과 과거의 하룻밤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액자 구성을 띠며 흘러간다. 출장 간 엄마를 대신해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 아빠는 잠들기 전 엄마가 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지만 오히려 타박만 받는다. 엄마는 그렇게 재미없게 읽지 않았다고. 거실에 텐트를 치고 나름 열과 성을 다하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던 아빠는 책읽기를 접고 어린 시절 특별한 하룻밤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기로 한다.

“아빠가 용궁에 간 이야기 해 줄까?”

  용궁이라니? 잠을 재우려는 것일까? 밤을 새우자는 뜻일까? ‘옛날 옛적, 30년 전 일이야. 우리 집안엔 전통이 하나 있었어. 아이들은 열 살이 되면 할아버지와 함께 밤낚시를 가야 했지.’로 시작되는 아빠의 하룻밤은 그 전통을 깨는 사건이었다. 열 살이 아니라 여덟 살인 자신을 할아버지가 밤낚시에 데려갔으니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왜 할아버지는 전통을 깨면서까지 를 낚시터에 데려갔을까?’에 물음표를 던질 것이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작가가 걸어 놓은 용궁 최면에 빠져 금방 관심 밖이 되고 용궁을 정말 다녀온 걸까?’ ‘용궁에 가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그 소원이 뭘까?’ ‘용궁에서 가져온 초록색 하트 보석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런 궁금증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러는 동안 맨 먼저 던진 물음의 답을 알게 된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다 아차, 다시 생각났을 때 그 일이 영원한 이별인 죽음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작가는 죽음이 삶을 다한 뒤에 오는 선물이라는 말로 손자를 위로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을 남겨 두고 『하룻밤』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깨닫는다. 용궁을 다녀온 하룻밤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함께한 하룻밤에서 우리는 한 생애를 살다 간 어떤 삶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강물을 바라보면서 기다림이 무언지를 알게 되는 하룻밤, 소리가 귀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몸으로, 냄새로, 맛으로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하룻밤, 어디 그뿐인가. ‘시간은 강물과 같아서 한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다는 가르침과 하찮은 물건도 추억이 담기면 보물이 되는 법을 알게 하는 하룻밤, ‘기억을 통해 영원히 산다는 유언 같은 할아버지의 말이 오가던 하룻밤을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하룻밤에서 조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룻밤의 한 생애에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하룻밤, 그 짧은 시간이 깊고도 크다. 내 아이에게도 이런 하룻밤의 추억을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여름밤, 더위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하룻밤 이야기, 아빠 어렸을 적 어느 날…. 그리고 말문이 막힌다면 그냥 이 『하룻밤』을 읽어 주자. 용궁을 다녀온 어린 아빠의 경험을 지금 이 책을 읽어 주고 있는 당신의 경험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초록색 하트 보석을 할아버지 무덤에 묻어 주는 장면을 읽을 때에는 어린 손이 당신의 어깨를 토닥여 줄 것이다.  

| 박혜선(동화작가)


 
 
하룻밤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