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의 냄새』를 기억할 거야!

명불허전(名겘虛傳).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름날 만한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책이 명불허전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간일 때 반짝 알려지다가 서서히 잊혀지기 일쑤다. 편집자 연차를 거듭할수록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책들이 많아진다. 출간되고 몇 년 뒤 갑작스레 조명을 받는 책이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다. 그래서 마련했다. 나만의 명불허전을 새롭게 소개하는 자리를!
 
 
 
그 첫 번째의 주인공은 안미란 선생님의『너만의 냄새』이다. 이미 어린이 문학 작가들 사이에는 마니아 고전으로 통하는 작품이다. 몇 년 전 모 출판사 시상식에 나타난 안미란 선생님을 보고 일면식도 없는 작가들이 너나 할 것없이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 다들『너만의 냄새』의 팬이라며 선생님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그만큼 이 작품은‘아는 사람은 아는 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일독했는데 여전히 좋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속속 눈에 띈다. 예전에 못 봤던 부분까지 보인다. 안미란 선생님의 세심한 묘사를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같이실감이 난다.
첫 번째 단편「나무 다리」에는 다리를 다쳐 석고 붕대를 한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다리를 다쳐 내내 집 안에만 있다. 그래서 귀가 예민해졌다. 자장면 오토바이와 가스 배달 오토바이, 우체부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를 다 구분할 줄 안다. 늘 엄마가 퇴근해서 올 때까지 혼자 있어서 창밖 풍경, 동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다. 혼자 오랫동안 집에 있어 본 사람만이 아는 세심한 묘사가 돋보인다.「 병풍암산신령」에서김노인도혼자산다. 언제올지 모르는 딸을 기다리며 물잔디와 수세미, 구두약 등을 팔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번 전화할 때마다 그악스럽게 이자 안 갚는다고 닦달하는 금여사지만 자식새끼 불치병에 걸려 앓아누웠다는 소식 들으니 김 노인은 저도 모르게 금여사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사격장 독구」에서 주인공은 병든 개다. 사격장 주인에게 수시로 발길질을 당하지만 아르바이트하는 배우 총각이 가끔 주는 쥐포와 친절로 살아간다. 독구는 동물병원에서‘행복한 마침표’를 서비스한다는 소릴 듣고 안락사인지도 모른 채 행복이 뭘까 궁금해한다.「서울 아이」는 서울에서 온 아이의 유별난 복장을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걸을 때마다 하느작거리는 알록달록한 치마에, 목덜미에 난 수영복 자국, 두 갈래로 땋은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려 마치 <스타워즈>의 공주님처럼 보인다. 미지의 세계에서 왔을 것 같은 민아는 코로니 섬에서만 자라는 파닌쉴라꽃을 자랑하며 소꿉놀이도 공주처럼 했다. 그런 민아는 재혼할 엄마가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까 봐 두렵다. 제비가 두 번째 새끼를 깐 것을 보고 제비 엄마가 이혼하고 재혼했냐고 물으면서 새 남편 만날 때 자기 아기들 데리고 갔을까궁금해한다. SF단편「친구를 제공합니다」역시 혼자 있는 아이가 컴퓨터 세계 속의 친구와 아바타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이 책에 실린 단편 일곱 편 모두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외로움이다. 홀로 있는 자들의 외로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외로움. 그러한 외로움을 치유해 주는 존재는 예상 밖의 인물이거나 동물이거나 가상 세계의 아바타이다. 동류가 아닌 존재에게 받은 위안은 동류에게 소외된 만큼 값지고 따뜻할 듯하다. 기대치 못했던 일이라 더욱 고맙기도하다. 애잔하고 애틋한 정서가 작품 전체에 흐른다. 어쩌면 작가가 모든 생명체에게 가지는 아주 기본적인 연민인지 모른다.
그러한 연민이 빼어난 솜씨로 빛을 발한 작품은 말할 것도 없이 표제작「너만의 냄새」다. 고양이와 쥐는 앙숙을 넘어 먹이사슬의 관계를 본능적으로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새끼 밴 고양이가 다리를 다쳐 들어온 공간이 마침 쥐돌이의 아지트였다. 쥐돌이는 고양이의 다친 다리를 보고 바로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직감으로 안다.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느라 보금자리를 떠나지도 못하는 쥐돌이에게 고양이는 비록 몸을 못 가눈다 하더라도 아주 거슬리는 존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쥐돌이는 새끼를 밴 고양이가 굶을까 걱정이 되어 주워온 먹이를 슬쩍 밀어 준다. 고양이는 발이 다 나았지만 쥐돌이가 놀라 도망갈까 봐 아픈 척 가만히 있는다. 아주 추운 날 고양이는 쥐돌이에게 자신의 품을 내어 준다. 쥐돌이는 고양이 품이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나쁠 거라 생각했어?”
“네 냄새는 무서워. 그래도 따뜻해.”
새끼 낳을 때가 되자 쥐돌이는고양이에게 보금자리를 내주고 떠나려 한다.
‘그래. 나는 네 냄새를 기억하겠지. 다른 고양이하고 다른 너만의 냄새를.’
쥐돌이는 그 냄새를 무섭고 소름끼치는 고양이 냄새가 아니라 따스하고 그리운 냄새로 기억할 것이다. 다른 고양이 말고 바로 그 고양이만의 냄새를. 앙숙을 넘어 천적 관계에서도 발휘되는 타자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 특히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 요구되는 덕목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안미란 선생님의『너만의 냄새』는 숨겨진 보물 같다.
 
 
 
Tip :: 다시 봐도 좋은 문장
 
지금부터 엄마가 올 때까지 이곳은 내 세상이다. 오늘은 무슨 소리가 날까? 땅이 젖으면 이제까지 들리던 소리들이 새롭게 변주된다.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울림을 내던 소리들이 변한다. 나는 온몸으로 들을 준비를 한다. _29쪽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지었다는 영구 임대 아파트. 오래오래 빌려 준다는 그 뜻이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영구(永久)’가 ‘영구(靈柩)’차를 타게 될 날까지가 될지도 모른다. _54쪽

하몬은 순수하게 창조해 낸 캐릭터들이다. 조화를 뜻하는 하모니와 괴물을 뜻하는 몬스터를 붙여서 만든 말이다. 하몬은 자칫 아바타와 혼동되어 구별하기 어렵다. 하몬을 만든 사람이 이름이며 성격, 재능 나이 따위를 실제와 가장 가깝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하몬을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코를 후빈다든가 다리를 떠는 나쁜 버릇까지 합성하는 경우도 있다. 허점이 도리어 완벽함을 갖추는 조건이 되는 셈이다. _131쪽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