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의 인생론을 읽고 - 황태 콩나물국을 들이킬 그★날을 위하여 : 김진영

2011 1318 독후활동대회 글쓰기 부문 장려상
잠실고등학교 2학년 김진영

 
 
때는 중학교 2학년 때, 새 학년이 시작된 지 3일 후였다. 그 지역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반에 아는 친구가 없었던 나는 책상에 단어장을 펴고 구부정하게 앉아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자 아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가 무엇을 내게 말했는지 나는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허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내 앞에는 동그란 눈에 뚜렷한 이목구비, 갸름한 얼굴과 어깨 너머로 풀어진 생머리, 그리고 새하얀 살결을 지닌 한 여자 아이가 호기심 많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헉’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그 날 인간에게서 후광이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녀의 질문에 얼떨떨하게 답해준 뒤, 정신없는 내 시야에서 사라진 그녀를 떠올리며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이름이 궁금하다.”
 
그 후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도 그녀와 같은 반이 되어 2년 동안 그녀와 함께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나는 그녀에게 고백 한 번도 못 해보고 중학교 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다른 여자애한테 차여 그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터이기도 했지만 그녀와 사귀게 되더라도 말주변 없는 내가 그녀를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나는 칼 한 번 못 빼보고 남고로 유배되어 2년을 외로움 속에 살아야만 했다.
 
아직도 미니홈피와 카페에 오른 그녀의 사진을 보며 가슴앓이하고 있는 나에게 불현 듯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라는 책이 다가왔다. 현지 철학 교사가 쓴 이 책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열다섯 가지 물음과 이에 대한 솔루션들이 작가의 경험과 그것과 관련된 철학자들의 충고가 함께 어우러져 제시되고 있다.
 
얇지만 뼈대 있는 이 책을 보며 나의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짝사랑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쿵쾅거리는 나에게 이 사랑이 ‘마음을 지배하는 감정’, 즉 ‘핵심 감정’에 의해 끌려 다니고 있다고 충고하는 정신 의학자들의 말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빠에게 학대를 받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상한 사람만을, 집안 사정이 안 좋았던 사람은 부잣집 아들, 딸에게 애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조건들이 낫지 않더라도.
 
돌이켜 보면, 그녀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는데 특히 수학은 항상 90점을 넘었다. 수학에서 만큼은 만날 60~80점 초반 대를 오가던 나에게 그녀는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그녀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그녀는 남자애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낼 정도로 친화력이 좋아, 낯가림이 심하고 숫기가 없었던, 특히 여자애들 앞에서는 몸이 맞부딪힐까봐 벌벌 떨며 말 한 마디도 못 건넸던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체육시간에도 그녀는 다른 여학생들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피구를 하며 활기차게 지내곤 하였다. 나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휘날리며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를 보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할 때마다 항상 반에서 제일 운동을 못하는 애들이 선다는 최종 수비수 자리를 전담했고, 그나마 공격수 아이들이 쏘는 괴력의 슈팅이 무서워 항상 골을 내주고는 미안한 나머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나의 이런 어둡고 우울한 모습은 체육 시간을 넘어 학교생활에서도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너무도 부러울 따름이었다.
 
핵심 감정의 관점으로 그녀를 짝사랑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고 분석하면서 이 사랑이 그녀를 통해 내 결핍을 채우려는 나의 집착이었음을 깨닫고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하지만 이걸 다르게 말해보자.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나 스스로가 그녀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거울처럼 나 자신에게 비춰 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그걸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알았다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여지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한 직후 한 장을 넘겼을 때 책에서 나온 에리히 프롬의 말은 내 자신이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하는 확고한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사랑을 하려면 혼자 설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면서 알게 된 내 결점들을 고치기 위해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우선 항상 90점대를 넘지 못했던 수학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문제 풀이보다는 개념 이해 중심의 학습으로 이번 여름 방학동안 수학 공부법을 바꿨으며, 그 결과 이번 중간고사에서 나는 88점이라는 고등학교 수학 시험 점수 신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이번 학기부터 되던 안 되던 다른 친구들에게 최대한 말을 많이 걸며 절박한 심정으로 내 마음을 열고 사교성을 키우려 애썼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나의 움직임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교나 쉬는 시간에 나는 항상 3명 이상의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저녁을 먹을 때도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집에서 치킨마요덮밥을 함께 먹는다. 그리고 나를 좀 더 밝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해 나는 매일 조깅을 하거나 체육시간에 농구를 적극적으로 하며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힘도 기르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한 ‘핵심 감정’이론과 에리히 프롬이 말한 참된 사랑을 조건을 보며 나는 그녀와 같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나 자신에 대한 편견과 집착에서 벗어난 후에야 그 사람만을 위한 진정하고도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짝사랑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윤리 과목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돼 신과 신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을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유일한 계기라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왜냐고? 예배당 오른쪽 셋째 줄 끝 편에는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있는 천사 같은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짝사랑이 집착이었다고 해서 그녀를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 가슴 속에서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들라는 뜨거운 진군의 북소리가 울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 덕분에 많은 것을 고쳐 온 만큼 그리고 아직 그녀에 대한 애정이 불같이 솟아오르고 있는 만큼 나는 오늘도 교회 고등부 예배당에서 신께 빌어본다. “그녀와 내가 건강하고 진정한 사랑을 조만간 할 수 있기를, 그리고 20년 후 내 아침 밥상에는 그녀가 끓여 준 황태 콩나물국이 매일 같이 올라올 수 있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