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구별 소년_열두 살, 우주소년의 지구별 정착기



열두 살, 우주소년의 지구별 정착기


최은경(경기 안산초 교사,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저자)
 
 
문제적인 5학년
최근 초등학교에서 가장 문제적인 학년을 꼽는다면 단연코 5학년이다. 조금은 어른스럽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린 티가 묻어나는 열두 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생겨나고 논리적 기억력이 발달하며, 2차 성징은 물론 내적 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출하는 시기다. 이런 아이들의 변화와 위기를 대하는 현실은 우호적이지 않다. 꽉 짜인 일과표와 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한다. 학습적으로도 공부 잘하는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가 구분되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간의 성적 격차가 생기는 때라 갈등은 표면화되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와 균형 잡힌 시각 그리고 따뜻한 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가? 현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나?’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를 둘러싼 세계와 어린이의 삶을 그린다는 아동문학 본연의 목적과 맞닿아 있다. 꼭 집어 열두 살, 5학년 어린이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 줄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안드로메다로 떠나고 싶은 소년의 마음
『지구별 소년』은 5학년 아이의 팍팍한 현실을 엉뚱하고 유쾌하며 사소한 사건과 정겨운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정감 있게 그려 내고 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 양수근은 별을 아~주 좋아해서 온 가족이 별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희곡을 쓰는 세 아이의 아빠인데 5학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고 싶어 첫 창작동화를 썼다고 한다. 그래선지 주인공 강찬들(곡식이 가득 찬 벌판이란 뜻)도 별과 별자리 특히 안드로메다은하에 관심이 많다. 심지어 자신이 안드로메다은하에서 왔다고 믿는다.
 
눈을 감고 안드로메다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의 지긋지긋한 잔소리에서 벗어나게 나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 쫌! 네?’
“강찬들!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너 태도가 그게 뭐야?”
“몰라 그냥 텔레파시 보냈어.”
안드로메다는 잔소리도, 일기장도, 문제 풀이도, 숙제도 없는 어린이 세상일 것이다. 나는 반드시 지구별을 떠나야 한다. 꼭! 꼭! (12~13쪽)
 
찬들이가 지구별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현실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엄마와 선생님의 잔소리, 해야 할 공부와 과제들, 관심 있는 이성 친구와 갈등이 전면에 등장한다. 우주와 은하계를 꿈꾸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찬들이지만 현실에서는 전학생 경우에게 똥침 날리기, 짝꿍 나연이 바지에 물통 엎지르기, 아파트 주민들에게 물 뿌리기, 집에서는 냄비 태우기 등 말썽꾸러기에 오두방정 깨방정 삼총사로 보일 뿐이다. 엄마와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니 더더욱 찬들이는 지구를 떠나 안드로메다로 가고 싶어 한다.
 
지구별 소년으로 자라기
찬들이가 우주로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안드로메다에 아빠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빠의 부재는 찬들이뿐 아니라 엄마의 삶도 팍팍하게 만들었다. 보험 설계사로 일하는 엄마는 찬들이에게 늘 미안해한다. 찬들이의 소원이 엄마가 따뜻하게 맞아 주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영업 실적’과 ‘계약 해지’라는 현실 앞에 미안함만 쌓이고 엄마가 속상해하는 걸 보는 찬들이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찬들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바로 대머리 경비 아저씨다. 엄마가 오시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음식을 데우다 냄비를 태워 꾸중을 들은 찬들이. 속상한 마음에 집을 나선 길에 경비 아저씨를 만난다. 둘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이후 학교에서 힘든 점이나 짝꿍과 싸운 이야기나 어려운 문제를 아저씨에게 풀어놓으며 찬들이는 세상과 부딪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우게 된다.
경비 아저씨는 찬들이가 폐지를 줍는 거북이 할머니를 데리고 와서 종이 상자를 드리려고 할 때도 다른 상자를 모아 주고 아파트 관리 소장이 야단칠 때도 찬들이 편을 들어 준다. 내 편이 되어 주는 어른이 있을 때 아이들의 아랫배엔 딴딴한 그 무언가가 생기고 주눅 들지 않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찬들이가 거북이 할머니를 도와준 일이 뉴스에 나가면서 찬들이는 ‘착한 소년’이 된다. 그러나 짝꿍 나연이의 물통을 일부러 떨어뜨린 것을 사과하지 못하고 있어 ‘착하다’는 말이 불편할 뿐이다. 고민하던 찬들이는 나연이가 말한 별자리 판을 만들고 친구들에게 별자리에 대해 설명하며 사과를 대신한다.
찬들이는 짝꿍 나연이와 소통하고 엄마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는데, 풀릴 것 같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웠다.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나연이와 엄마의 말을 잘 듣고 오래 생각하면서 저절로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모습이다.
엄마 말에 입을 다물던 ‘곰’같은 아이, 좌충우돌 엉뚱한 일을 벌이는 ‘짱구’였던 찬들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지구별 소년이 된 결정적 계기는 자신의 생각과 말을 인정받는 긍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찬들이는 학급 발표회에서 별과 별자리에 대해 자신 있는 발표를 하면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지구별 소년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게 되고 앞으로는 상상이나 공상을 위한 우주보다 현실에서 우주적 상상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지구별 소년』은 고학년 동화이다. 저학년 동화와 달리 현실의 질서와 논리가 요구되고 사회의 변화에 민감한 장르이다. 장르의 특징에 비추어 보면 이 작품에서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우선 찬들이가 ‘똥침의 전문가’로 ‘똥침’ 때문에 친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요즘 학교에서 ‘똥침’은 학교 자치위원회에서 다룰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동화의 재미와 때 묻지 않는 동심으로 그리기엔 인권이나 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와 요구들이 진일보하고 있다. 고학년 동화로서 재미를 놓치지 않는 서술 방식이나 5학년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질문이 필요하다. 아동문학은 여전히 어린이의 삶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이고 어린이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으며 어떻게 성장하느냐의 질문을 더 끈질기게 자세히 탐구하고 제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5학년 찬들이들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 한 곡 신나게 부르고 싶다.
 
메이데이 고장 난 나의 꿈
어서 내게 응답해 기다릴게
오 나의 우주 나의 그대여
길 잃은 나를 위해서 잠시 빛나주겠니
나의 우주 나의 꿈
널 향해 달려 갈 거야.
- 록그룹 체리필터의 「안드로메다」 중에서
 

 
조금 긴 필자 소개입니다.
최은경 인하대에서 아동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초등국어교과서를 집필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초등 1학년, 은경샘과 함께한 교실이야기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교육공동체벗), 문학교육실천서 『동화로 여는 국어수업 동화로 크는 아이들』(상상의힘)이 있습니다. 지금은 8년차 혁신학교인 안산초에서 아이들의 온전한 삶을 가꾸며 교육의 변화를 실천하는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