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표

제1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탁경은, 「싸이퍼(Cypher)」
 
심사는 오정희(소설가) 신여랑(소설가, 제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지은(문학평론가) 선생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작품은 2016년 8월 사계절1318문고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계절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14회 사계절문학상 심사평
 
청소년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 못지않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작가들일 것이다. 열 몇 살 무렵이 되면 우리는 어린이라는 말랑한 지칭에서 벗어나 짙고 각진 터널을 번갯불처럼 통과한다. 소설이 우습고 세계가 만만하게 보이지만 사람이 두렵고 사랑이 무서운 때이기도 하다. 파괴의 순간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생성을 짓밟지 못하는 것이 성장의 딜레마다. 청소년 독자는 스타일에 민감하지만 그 안에 입담만이 가득하다면 매몰차게 등을 돌린다. 풀풀 날아가는 입담은 소설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과 소통만큼이나 보편 문학으로서 갖는 작품의 가치와 함량에 예민한 것이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믿는 이 까다로운 독자들의 특징이다.
14회 사계절문학상 응모작은 총 77편이었다. 작품들은 청소년기의 모순적 상황을 다양한 국면에서 조명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작품은 마치 분할하기라도 한 것처럼 세 가지 경향으로 나뉘었는데 농도 짙은 사춘기의 사랑과 성을 가감 없이 묘사한 작품들, 폭력과 강간, 살인 같은 잔혹한 공격과 그에 맞선 희생을 통해 청소년기의 격랑을 들여다보려고 한 작품들, 직면하는 현실의 깊은 회의와 절망을 백색의 순정이나 기원으로 이겨내 보려 하는 작품들이었다. 응모 주제를 에로스와 아가페 등으로 나눈 것도 아닌데 무작위로 분류한 작품들에서 극단적 차이가 엿보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청소년소설이 학교와 학원의 예측 가능한 몸부림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인 ‘한 사람’의 갈등에 다가서려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눈앞의 세상이 워낙 격렬하다 보니 묘사에서 좀 더 자극적이거나 좀 더 결이 고운 소재를 탐닉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떻든 천편일률적인 접근을 벗어나려는 작가들의 노력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분량에 비해 이야기의 힘이 약하다.”는 것이 심사위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주인공이 겪는 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독자가 끝까지 알 수 없어 무력한 경우도 있었고, 크기가 비슷한 똑같은 물병을 나열하는 것처럼 지루하게 연결되기만 한 장편들도 많았다. 시점을 변경하면서 작가 스스로 기준을 잃어 헤매거나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가 사라지고 다른 서사가 결말을 차지하는 기초적인 착오를 저지른 작품도 적지 않았다. 300~400매 분량으로 다루어도 좋았을 이야기를 700매로 늘리는 바람에 작품의 매력이 희석되고 구멍이 생겨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장편에 적합한 구조와 이야기의 층위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본심에는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올랐다. 저마다 주제와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작품이어서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논의하면서 한 편 한 편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중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행운의 편지’ 대신 ‘악마의 편지’라는 매력적인 장치를 제안하면서 주인공이 경험한 뜻밖의 사건을 경쾌하게 풀어나간다. 그러나 악마 이미지의 강렬한 스케일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갈수록 더 좁아지는 원의 반경 안에서 이야기가 맴돈다. 게임과 컴퓨터에 의존하는 청소년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냈지만 인물이 갈등하는 내용의 폭이 너무 좁다. 작품 속에 설계된 규칙은 존재를 근원부터 뒤흔들 수도 있는 큰 고민이다. 그러나 인물들은 온순하고 그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협소한 것이어서 아쉽다. 작가가 염두에 둔 선악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깊이 있는 사건과 날카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벗 아엠 낫 디 온리 원(But I’m not the only one)』은 일주일 뒤의 멸망을 가정하고 저마다 다른 길을 택하는 인물들의 엇갈림을 그렸다. 실존적 한계 상황을 다루는 작품임에도 공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묘사와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덕분에 읽는 내내 안온한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극도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 설정 속에서 과연 사람들은 이렇게 행동했을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부터 개별 사연이 하나의 흐름으로 모이지 않는 것, 지구 전체의 운명이 걸린 일인데 끝까지 한 번도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도 안타까운 요소로 꼽혔다. 분위기의 설득력을 구성의 매력과 밀도가 뒷받침해주지 못해 아쉽다.
『1997년생』은 작품명에서부터 연상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삼았다. 소제목을 읽으면 소재가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이 한 세대의 이야기를 우리가 문학으로 다룬다고 할 때 어떤 가능성이나 유의점이 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작가가 치밀한 취재와 깊은 공명을 통해 인물 가까이에 다가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이야기 속 공간을 뛰어다니고 있는데 독자는 그것으로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대답할 것 같다. ‘시계토끼와 앨리스’라는 환상적 장치는 본 서사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으며 사실의 엄청난 무게에 휘둘려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독자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결말을 찾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다. 이 사건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힘든 과정 속에 이 글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 아프게 내려놓았다.
다섯 편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집중해서 논의한 작품은 두 편이었다. 『눈의 전사 프로젝트』와 『싸이퍼』다. 이 두 편은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눈의 전사 프로젝트』가 결 고운 빗자루로 흰 눈을 쓸어 길을 내듯이 섬세하고 침착한 전개로 이야기의 형상을 완성해 가고 있다면 『싸이퍼』는 안개 속에서 훅을 지르며 내달리는 새벽 달리기 같은 작품이다. 따라서 두 작품을 바라보는 느낌도 상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불필요한 기울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몇 번이나 각각의 작품을 검토했다.
『눈의 전사 프로젝트』는 뒤로 갈수록 힘을 얻는 작품이다. 그만큼 작가가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흐름이 조금만 더 빠르고 선명했으면 좋겠다. 독자를 끌고 나가야 할 작가가 오히려 서사의 진행 경로를 잘 모른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수험생활의 일정 안에 멍하게 놓여 있는 서울 어느 일반고 고등학생들의 삶을 이만큼 현실적으로 그려내기도 어렵다. 성별에 따라, 개성에 따라 인물이 던지는 말과 행동도 자연스럽다. 내신 시험지를 빼돌리는 행위도 그 사건을 둘러싼 아이들의 두려움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몇 군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분을 만나면서 이 작가가 왜 청소년들을 눈의 전사로 묘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의미 없이 흩날리지 않으려고 깊고 묵직하게 쌓이는 ‘한 몸 한 방향’의 눈이 되려고 분투하고 있었다. 문장의 완성도도 높고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 깔끔한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곳곳에서 작가의 노력이 충실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700매 가까운 장편이 되기에는 약한 서사 구조라고 의견을 모았다.
『싸이퍼(Cypher)』는 ‘자신의 이야기를 프리스타일 랩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힙합 용어다. 제목 그대로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다. 무정형으로 삶을 기록해 나가는 두 사람의 래퍼 WB와 JJ가 주인공이다. 두 주인공은 각자 1인칭의 평행 서사를 전개하면서 점점 통합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 내용의 흐름으로 볼 때 JJ가 더 중심에 있으나 인물의 매력은 WB 쪽이 넘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을 잃지 않고 출렁이는 문장의 매력이다. 힙합을 잘 모르는 사람도 WB가 던지는 프리스타일 랩을 따라가면서 중얼거림의 숨은 의미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시집을 필사하는’이 독특한 21세기 소년에게 빠져들게 된다. 반면 JJ의 목소리는 랩이 아니라 담담한 평어로 기술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형식적 고려이면서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생선가게 이십 년 경력을 지닌 아버지의 고등어 랩이나 족발집 아저씨의 내공 가득한 족발 손질 비법은 뭉클해서, 말 그대로 ‘리스펙트(Respect)’할 만한 부분이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러 명의 형제들, 크루(Crew)가 어깨를 부딪치며 서로 격려하듯이 작은 역할을 맡은 인물도 소홀함 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이야기의 무대에서 내려간다. 청소년 인물들과 주변인의 생동감에 비해 몇몇 성인 인물의 존재가 밋밋하게 그려진 것이 아쉬움이었지만 작품의 활력은 그 아쉬움을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힙합의 비판 정신은 이 작품에 그려진 것보다 더 묵직한 삶의 뒤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날 청소년의 삶이 어떤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는지를 돌아본다면 ‘윗잔다리에서’ 했던 것처럼 독자들과 격려를 나누는 경험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청소년의 말과 정신이 변화하는 지점을 놓치지 않고 스타일로 포착한 작가의 예리함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쓰기 위해서 불면을 이겨 낸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정성스러운 원고 묶음으로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죄송스럽다. 그분들이 백지를 앞에 두고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멈추었는지 고뇌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에 공들인 작품을 보내 주신 모든 응모자 여러분께 존경과 고마움을 드린다. 진실한 형제의 마음으로 건필을 기원하며.
 
오정희·신여랑·김지은(제14회 사계절문학상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