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은 자란다

(내가 남자여서 그런지 소녀들은 잘 알 수 없으나) 소년들이 자란다는 건 몸이 자란다는 뜻이다. 사춘기라는 말에는‘생각할 사(思)’자가 들어 있긴 하지만, 사춘기 소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 건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사춘기 소년들을 보면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들에게서 통제되지 않은 어떤 물체의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아주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건 아마도 사춘기 소년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변화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선입견 때문인 듯하다. 선입견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경험담이리라.

앞에서 사춘기의‘사’자를‘생각할 사’라고 말했지만, 그 뜻은‘그리워하다’에 가깝다. 그러니까 ‘사춘기’란 ‘푸릇푸릇한 사랑을 그리워하는 시기’라는 뜻이다.사춘기에 막연하게, 때로는 구체적인 대상도 없이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은 참으로 달달하고도 말랑말랑하다.
신기한 건 소년들(역시 소녀들은 잘 몰라서)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이런 그리움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뼈가 굵어지고 근육이 생기면 지구력이나 순발력 같은 것이 발달하는 게 정상일 텐데 감수성까지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과연 몸의 어디와 감정의 어디가 서로 연결돼 있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육체적 경험이 한계에 도달하면 정신적 경험으로 탈바꿈한다는 이 사실을 알게 되는 데까지가 나는 사춘기의 전말이라고 본다.

H. M. 반 덴 브린크가 쓴『안톤의 여름』은 사춘기의 시작과 끝에 왜 각각 몸과 정신이 닿아 있는지 보여 주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1938년과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끔찍한 전쟁 범죄들이 일어나기 전, 폭풍 전야와도 같은 시기의 암스테르담이다.

등장인물은 조정 경기에 참가하려는 두 소년, 안톤과 다비트, 그리고 소년들에게 조정을 가르치는 독일인 슈나이더. 두 소년 안톤과 다비트가 슈나이더의 코치를 받아 치열한 연습 끝에 대회에 나가 어떤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흔하디흔한 청소년소설처럼 보인다. 예컨대‘조정’이라는 건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마라톤’이라든가‘스노보드’라든가. 어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겪어야만 하는 많은 난관을 이겨 내는 일은 청소년소설에서는 관습과도 같은 이야기진행이다.
『안톤의 여름』과 관습적인 청소년소설의 차이를 찾는다면, 아마도 앞에서 말한, 사춘기의 놀라운 화학적 변화를 말한다는 점이리라. 이 소설에는 진지한 스포츠 철학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스포츠 철학서들은 몸이 바로 감정의 체계라고 말하며 몸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변화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꼭 그런 설명에 들어맞는다.
 

“우리는 훈련 끝에 찾아오는 근육 속의 나른한 느낌에 익숙해졌다. 그것은 우리가 정말 무언가를 해냈고, 그것도 제대로 해냈다는 신호였다. 이 느낌은 우리가 다음 날 다시 강으로 나갈 때까지 우리의 근육 속에 남아 있었다.”
 
 

나도 글을 쓰는 처지에서 보면, 위와 같은 문장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된다. 어떤 한계까지 몸을 움직여보면 그 느낌을 글로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그래서 위의 문장처럼“정말 무언가를 해냈고”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에서 받는 느낌은 전적으로 육체적인 느낌이지만 글로 써 보면 그게 정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래서 이 느낌을 구체적으로 쓴다는 건 참 어렵다. 그런데『안톤의 여름』은 이‘정말 무언가’를 참 탁월하게 문장으로 옮겼다. 마지막‘몰입 스퍼트’장면도 이에 해당하지만, 내가 탄복한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신이 허락한 그 순간까지 소리 없이 계속 썩어 간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시 쇠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쇠락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나는 강의 일부였다. 더 이상 늙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은 그대로 계속되어야 했다.”

 
사춘기 소년들이 몸의 변화를 통해서 알게 되는 건 자신의 한계다. 몸을 움직여 봐야 어디까지가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인지를 알게 된다. 이제 그 한계를 조금 넓혀 가는 일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 그게 어제보다 노를 더 빠르게 젓는 일이든, 실제로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자 안간힘을 쓰는 일이든, 그 한계를 조금 더 넓히는 일은 육체적인 일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일에 속한다. 처음에는 내 몸에 대해서, 그다음에는 나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내가 아닌 이 세계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이 바로 사춘기의 일이다.『안톤의 여름』은 흡사 곁에서 물이 튀는 듯한 생생한 묘사로 그 과정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경험되는지 잘 보여 준다.
 
 

글 ·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