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그림책의 거장!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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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이야기를 익숙한 현실처럼 그려 놓고, 이것이 현실일까? 환상일까? 천연덕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 칼데콧, 보스턴 글로브 혼 북 등 명예로운 그림책 상을 잇달아 수상하며 공히 판타지 그림책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작가이자, 영화 <주만지>, <자투라>, <폴라 익스프레스>의 원작자인 동시에, 뛰어난 조각가이자 포스터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문장 안에 담긴 놀라운 사건들의 실마리가 저를 매료합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아주 작은 일상의 사건을 유심히 관찰하고, 매력적인 환상성과 사실성을 덧입힌 다음, 유머와 난센스로 양념을 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는 작가가 본질적으로 탐구하는 현실 인식, 판타지라는 거름망을 통해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 삶을 통찰하고자 하는 세계관에 맞닿아 있습니다.  
“유머와 장난스러움이 넘치는 미스터리와 마술의 세계! 현실보다 더 객관적인 현실을 보여 주는 판타지의 대가!” 작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를 만나볼까요?
 
 
▶▶  당신의 작품에는 빠짐없이 희고 작은 개가 등장하는데, 특별히 개를 등장시키는 이유가 있나요? 혹시 그런 개를 키우고 있나요?
 
저의 처녀작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프리츠라는 개가 등장합니다. 프리츠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저는 프리츠가 불테리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저는 그때까지 불테리어가 어떤 개인지조차 모르고 있었죠. 그래서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불테리어에 관련한 사진을 찾기는 했지만 제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죠. 저한테 필요한 것은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살아 있는 불테리어였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들른 데이비드--데이비드는 제 처남이에요--가 골든 리트리버를 분양받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연의 일치도 그런 우연의 일치가 없었죠. 저는 데이비드에게 불테리어 사진을 보여 줬고, 데이비드는 다른 개들과 구별되는 매력적인 불테리어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얼마 안 있어 새끼 불테리어를 한 마리 분양받았습니다. 데이비드는 그 강아지에게 윈스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그렇게 해서 프리츠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윈스턴이 모델이 된 것이죠. 윈스턴은 저한테는 일종의 조카 같은 존재였어요. 어찌 되었든 처남의 강아지였으니까요. 그런데 불행히도 윈스턴은 다 자라기도 전에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제 첫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윈스턴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 작품마다 윈스턴과 같은 불테리어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 주로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저는 다양한 곳에서 이야기의 소재를 얻어 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날 아침 부엌에 서 있는데, 싱크대 위에 개미 두 마리가 보이는 거예요. 분명히 뒤뜰 어딘가에 있던 녀석들이 부엌까지 들어온 모양인데, 문득 뒤뜰에서 부엌까지 이 개미들의 여정은 어땠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개미 두 마리와 집 안을 무대로 한 그들의 특별한 여행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장난꾸러기 개미 두 마리』입니다.
또 이런 적도 있습니다. 네 살배기 딸아이인 소피아의 방을 청소하고 있을 때였어요.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터팬 색칠 공부책이 눈에 띄더군요. 타이거 릴리가 나오는 면이 펼쳐져 있었는데, 연못에 빠진 타이거 릴리가 애타게 피터팬을 찾는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저희 딸아이가 타이거 릴리의 얼굴을 초록색과 보라색 줄무늬로 칠해 놓았더군요. 그걸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저희 딸아이가 저지른 짓 때문에 타이거 릴리의 얼굴색이 그렇게 변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그 일을 발단으로, 색칠 공부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책장이 펼쳐지고 자기 모습에 색이 칠해질 순서가 됐을 때, 캐릭터들이 느끼는 기분은 어떨까 하고 말이에요. 이야기 소재는 사방에 널려 있어요. 하지만 그 소재들은 이야기의 시작점에 불과하죠. 작가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느냐는, 그것이 무서운 이야기든, 재미있는 이야기든 혹은 슬프거나 신나는 이야기든, 이야기의 발단이 되어 준 소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이야기의 결말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며, 그 작가가 어떤 인생관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죠. 
 
 
 
▶▶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이야기를 쓰고 그림까지 그리면 7개월에서 9개월 정도 걸려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이야기를 쓰는 일보다 더 오래 걸리죠. 저는 거의 모든 경우, 완성된 책에 인쇄된 그림보다 원본을 더 크게 그리는 편이에요.
 
▶▶ 이야기부터 먼저 쓰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림부터 그리시나요?
저는 그림보다는 언제나 이야기부터 써요. 하다못해 이야기의 큰 줄거리라도 먼저 정해 놓는 편이죠. 그림 작업을 시작할 즈음엔 이야기가 거의 완성되었거나, 아니면 손을 조금 보면 되는 정도로 만들어 놓는데, 거의 변함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 세밀화처럼 섬세하면서도 환상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 작품은 대개가 판타지물입니다. 판타지처럼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제가 세밀화를 고집하는 거죠. 그림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저는 실제 인물들을 제 이야기의 모델로 사용하며, 원근법과 빛을 적절하게 섞어서 그림 속의 장소를 실제 장소처럼 표현합니다.
 
▶▶ 대다수 작품에서 다룬 형제간의 경쟁 구도는 당신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인가요?
제 작품들은 대개가 아버지가 되기 이전에 쓴 것들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사람들이 이제 조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쓸 것인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죠.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지금껏 제가 작업해 오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요. 저는 애초부터 제 딸아이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들이
한 살 두 살 커 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관계가 무척이나 극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으로서, 사랑을 토대로 이루어진 형제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반목과 갈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 『캘빈의 마술쇼』는 지금껏 당신이 고수해 오던 판타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변한 이유라도 있나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구상하는 단계에서 저는 무대 위에서 속임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술사 이야기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책 작가로서 마술사가 펼치는 환상적인 속임수를 그림으로 표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그러면서 그 마술사를 동경하는 어린아이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니 이번에는 마술사 견습생도 하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마술사에게 최면술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 최면술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거예요. 어찌 되었든 저는 주인공 캘빈이 제 손끝에서 탄생한 정교한 무대 마술과 초자연적인 마법을 마지막까지 잘못 사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캘빈은 로맥스의 최면술에 완전히 매료되어서 집에서 최면술을 해 보기로 하지요.

▶▶ 최면에 걸린 적이 있었나요?
아니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없습니다.

▶▶ 『캘빈의 마술쇼』 그림에 촉감이 살아 있어요. 그림에 사용한 화법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저는 60년 전, 아직 마술사가 극장에서 마술 공연을 했던 시대, 그러나 공연장의 인기가 서서히 시들어 가던 시대를 배경으로 선택했지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봤을 때, 책과 제 이야기의 분위기가 약간은 고풍스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속의 계절이 아주 무더운 여름날이었기 때문에, 배경의 밑바탕이 되는 색을 따뜻한 느낌을 풍기는 갈색으로 선택했죠. 구운 시에나토 염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세피아 물감보다 훨씬 더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저는 우선 파스텔을 이용해서 밑그림을 거칠게 완성한 다음, 연필을 이용해서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세밀한 부분들을 완성했습니다. 파스텔로 그린 밑그림 위에 연필의 질감을 꼼꼼히 살려서 ‘촉감이 살아 있는 그림’을 완성한 것입니다.

▶▶ 『캘빈의 마술쇼』에 등장하는 시대와 장소는 그랜드래피즈에서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한 것입니까?

그보다는 20년 더 앞선 이야기라고 해야겠죠. 제가 주인공 캘빈의 나이였을 때는 1961년이었으니까요. 『캘빈의 마술쇼』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초반입니다. 그리고 장소는, 제 기억에 남아 있던 그랜드래피즈의 풍경이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네요. 캘빈이 사는 동네를 조금 더 작게 묘사하기는 했지만, 그랜드래피즈의 지리는 아직까지도 제 기억 속에 정확히 남아 있습니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이웃 마을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을 걸어야 했는데, 가는 길에 높은 언덕도 몇 개를 넘어야 했죠. 저도 몇 번인가 시내까지 걸어가긴 했지만, 열두 살밖에 안 된 남자아이가 무더운 여름날에 자기 여동생을 짐수레에 태우면서까지 가고 싶은 거리는 결코 아닙니다.

▶▶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어떤 것인가요?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저는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고 대답해요.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다음 작품이 그 이전들 작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에요.

※ 본 글은 크리스 반 알스버그 공식 홈페이지(www.chrisvanallsburg.com)와 원작출판사 홈페이지(http://www.houghtonmifflinbooks.com)에 실린 인터뷰를 참고로 하여, 독자들이 자주 묻는 질문과 『캘빈의 마술쇼』에 관련한 알스버그의 답을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