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용과 함께_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

'이 이야기는 겉모양만 가족인 아버지와 형과 동생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글쓴이의 말이 귓가에 울린다. 어떤 집이고 문제 없는 집이 없다지만 도대체 이 가족은 어떤 문제가 있기에 '겉모양만 가족'이 되고 말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아니나다를까, 책장을 넘기자마자 심각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동생은 여섯 살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내다 이제야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다. 엄마를 대신해서 늘 동생과 함께 지낸다는 용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또 아직까지 불안정한 초등학교 1학년짜리 아이를 가사 도우미에게 떠맡겨 둔 채 아버지도 형도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곧 당황스러워졌다. 처음엔 동생 도키오에 대한 안쓰러움뿐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 책의 화자인 형에 대한 안쓰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이 동생 도키오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을 안겨다 주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알고 보면 형 또한 여섯 살이라는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는 동생 차지였다. 동생이 약했기 때문이라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동생의 말을 들어 보건대,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아는 아빠를 닮아서 스스로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표면으로만 보자면 맞다. 형은 엄마 없이도 뭐든지 스스로 잘해 왔고, 그래서 이른바 명문 중학교에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스스로 잘한다고 해서 엄마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서 버려진 상실감은 겉으로 표는 나지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려 있을 게 뻔하다.
비록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형이 동생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동생의 모습을 통해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 꽁꽁 감춰 왔던 상실감은 명문 중학교에 들어간 뒤 한순간에 '뛰는 놈'에서 '보통 사람'으로 전락하면서 또다른 열등감과 상실감으로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 아버지는? 현재 이 집의 유일한 어른인 아버지는 한참 뒤에서야 등장한다. 그만큼 집안일과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집안일은 누군가에게 맡겨 버리고 회사일에만 매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도키오의 문제는 그저 아버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일 뿐이고, 결국은 자신의 신세타령만 늘어놓는다. 오만한 그 모습이 화가 나지만, 순간 아파서 병원에 다니면서도 그 내색조차 하지 못하는 지치고 나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죽은 엄마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대충 그 상황만은 짐작이 된다. 이 가족이 '겉모양만 가족'이 된 건 엄마의 죽음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 문제를 증폭시키긴 했지만 결국 엄마가 있을 때부터 이미 겉모양만 가족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겉모양만 가족이 된 건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서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은 채 각자 자기 자신만 지켜 내려 애쓰느라 다른 가족들에게는 무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은 엄마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있던 가장 약하고 어린 동생 도키오를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어쩌면 이를 계기로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들 가족의 모습 속에 내 모습이 보인다. 비록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의 모습은 내 속에 감춰진 여러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가족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은 많지만, 대개는 그 작품이 보여 주는 상황 속에서만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와 다른 상황이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이 맞닥뜨린 문제가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게 한다. 이는 작가가 그려내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전형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이들 가족은 교외의 마당 있는 집에서 함께 산다. 아버지, 형, 동생 그리고 동생이 친구처럼 지내던 용 포치도 함께 산다. 그저 동생의 상상 속에 있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용이 당당하게 한 가족이 된 것이다. 용 포치를 한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건 서로의 내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뜻일 게다. 그 동안 힘든 일도 많았던 이들 가족이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겉모양만 가족'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오진원  나이 서른 되던 해에 어린이책의 색다른 매력에 빠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아이랑 함께 책을 보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어린이책의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결혼하면서 시작한 홈페이지 오른발왼발(http://childweb.co.kr)은 너무 느린 업데이트로 많은 분들의 질타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꾸물꾸물 계속 유지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