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맹점을 꿰뚫는 탁월한 이야기

2000년 이후 한국사회의 언어생활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품격입니다”와 같이 노골적으로 계급 구별짓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광고가 방영되는가 하면, “부자 되세요~”와 같은 말이 덕담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사람들은 스스로 속물임을 드러내는 말을 하면서도 거리낌이 없으며, ‘재테크’를 할 줄 모르는 자는 약간 모자란 사람 취급받게 되는 현상까지 생겼다. 상품의 사양을 일컫는‘스펙’(원래는 specification)이라는 외래어가 일하고자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모든 시간을 투여해 갖추어야 할 인간의 속성을 지칭하게 된 것은 또 어떤가.
 
사실 이런 언어생활의 변화는 그 근저에 있는 권력관계의 변화를 드러낸다. 그중 고용불안정이라는 측면을 보자. 불안정한 고용 자체가 원칙이 된 사회에서는 고용주나 중간 관리자는 다른 사람의 삶의 커다란 부분을 쥐고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원래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이 끊임없이 침식당한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만 아이를 낳으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암묵적인 차별의 계율은 ‘계약 기간 만료’로 사람을 자를 수 있는 제도적 권력 앞에 가려진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미화노동자들은 그 사업체에 직접 고용되지도 못한 채, 단지 그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용역업체의 중간관리자에게 뇌물을 바친다. 반면에 이전보다 더 많이 벌게 된 소수의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사치에 쓰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이 사회를 지배한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베스트셀러 목록으로 한 번 살펴보자. 그건 바로 “자기계발”, “긍정”, “자족”하라는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왜 잘렸는지는 고민하지 말고 빨리 새 취직자리나 알아보라는 메멘토 정신을 주장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우화 형식부터, 욕망에 정신을 집중하고 긍정적인 파동을 우주로 쏘아 올리면 그 긍정적 파동이 반사되어 지구로 돌아와 파동송신자를 위해 주차공간을 마련해 주는 식의 물리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시크릿』의 기괴한 종교적 교리를 거쳐, 젊었을 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되고 힘든 건 자연스러운 사태니 한 분야에 매진해서 진득하게 생산성을 향상시키라는 당연한 권고에다 약간의 위로를 짬뽕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멘토 조언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마지막 책의 광고 문구를 장식한 단어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멘토”. 왜 21세기 한국 사회는 마을 어른이나 지식인이 아니라 멘토(mentor)를 찾을까? 오늘날 개인의 삶은 지역 공동체가 돌봐 주지 않는다. 모든 건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재생산의 기본 단위는‘개인’이다. 개인은 지역 공동체와 같은 예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건 오로지 노동시장에 더 크게 의존함으로써 가능한 해방이었다. 이제 모든 건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바에 맞추어 개인 자신이 결정해야 하며, 울리히 벡의 용어를 빌리자면, 모든 문제는 “개인화”(privatization)된다. 먹고살기 힘들어졌는가? 당신이 스펙을 쌓지 않아서 그래. 아이를 낳기가 두려운가? 당신이 재테크를 제대로 안 해서 그래. 결혼할 형편도 못 되는가? 경제적 어려움을 딛고 결혼을 할지 독신으로 평생 살지 그건 당신 스스로 결정할 문제야. 모든 시간을 빨아들이는 기업사회에서 현대인의 완성체는 “언제든지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신 노동자”다. 개인의 삶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는 개인이 잘난 것이거나 개인이 유죄다. 그러므로 이미 해체된 지역 공동체의 마을 어른은 물론이고, 사회의 나아갈 바에 대해서 비판적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은 필요치 않다! 오로지 개인이 나아갈 바에 대한 전략적 지식을 제공하는 선배, ‘멘토’가 필요하다. 물론 멘토가 아무 데나 널려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사주팔자집, 점집이나 타로집에서 멘토를 찾기도 하고, 수백만 명에게 같은 ‘조언’을 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서 그 역할을 구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들의 조언 내용은 “나처럼 해라”다.
 
사실 그 조언들은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들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당신 말을 모두가 다 같이 따라한다면 모두가 잘될 수 있는가? 모두가 어려움을 벗어나고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물론 답은 “아니오”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 이것을 논리학에서는 구성의 오류 또는 결합의 오류(error of composition)라고 한다. 1등 되는 법을 100명이 따라 해도 1등은 한 명 뿐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나머지 우울한 99명을 위해 상황과 현재의 질서를 ‘긍정’하고 ‘자족’하여‘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는 심리학 베스트셀러들이 뒤처리를 해 줄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 이야기들이 다양한 형태의 밈(meme)*이 되어 구성원의 뇌에서 뇌로 잘도 옮겨 다니고 있는 반면, 그 오류를 지적하는 이야기는 분석적이거나, 복잡하거나, 왠지 뻔한 소리 같아서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최규석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결합의 오류로 처음부터 끝까지 범벅이 된 이 사회의“점쟁이, 멘토, 치유사들 이야기”의 맹점을, 직관적으로 착착 와 닿는 우화로, 말 그대로 꿰뚫어 버린다.
 
 
미리 이야기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므로 딱 하나의 우화만 살펴보자. 2화「불행한 소년」. 세상에 저항하지 말고 긍정하며 살라는 천사를 노인이 죽이는 것에 어떤 독자들은 충격을 받지만, 충격받을 필요가 없다. 그 천사는 사실 천사가 아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 대하여 불공정한 부담을 지우는 질서를 규범적으로 정당화하고, 아Q식 위로로 저항을 무력화하는 이데올로기, 즉 허위의식이다. 그리고 이 우화의 클라이맥스는 죽기 직전의 노인이 그것이 허위의식임을 깨닫는 장면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천사들이 어려운 이들 곁에 하나같이 달라붙어서 허위의식을 불어넣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마지막 장면이다.
 
작가가 알고 썼는지 모르고 썼는지는 몰라도『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우화들은 정치철학의 커다란 주제들의 핵심을 다루고 있다.** 사실 제일 중요한 미덕은 이 책이 작가의 말처럼 “써먹기 좋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데 있다. 누군가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를 들먹이며 우리 사회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고 이야기하면「팔 없는 원숭이」이야기를 해 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아주 긴 뱀」을 들려줘라.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저 무지렁이들이 저렇게나 많이 번다”고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으면「농장의 일꾼들」을 보여 줘라. 고용불안정이 모두에게 좋은 일 이라는 선전은,「 원숭이 두 마리」로 날려 버려라. 증가하는 노동시간과 사치품 소비를 해결하는 누진소비세를 이야기하고 싶다면「숲」을 인용하라. 미디어법으로 언론환경이 변하고 있는데도 괜찮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냄비 속의 개구리」라고 조롱하라. “국익”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자에게는「흰 쥐」에 나오는 고양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반박하라.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가위바위보」이야기를 곁들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반목하게 할 땐「늑대와 염소」에 나오는 늑대의 계획이라고 고발하라. 세상은 넓고 우화들이 쓰일 곳은 많다. 여러 번 읽고 적재적소에서 꺼내들라. 그리고 우리의 삶 한켠에 개인의 삶이 아니라 사회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함께 행동하는 시간을 마련해 두자.
 
이 책의 효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림이 이야기마다 다채롭고 엄청 예쁘다. 생일,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선물로 딱이다. 읽고 나니 찝찝하다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연인으로부터 듣는다면 “그건 당신의 삶을 타박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합의 오류, 즉‘에러 오브 콤포지숀’을 지적하는 거야”라고 잘난 척하자.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은 가히 천재의 작품으로서 일독을 권한다고 이야기하자.
 
글 · 이 한 (변호사)
 
* 생물학적 특성을 정하는 정보로, 부모로부터 자식에게 전달, 복제되는 것이 유전자(gene)다. 이때 개체는 유전자의 운반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화적 요소도 이와 유사하게, 사람들의 뇌를 저장소로 삼아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바라본 문화적 요소를 밈(meme)이라 한다. 이 측면에서 보면, 오류가 큰 이야기도 단지‘복제에 능하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있다.
 
 
 
**「거인」은 체제를 지탱하는 약속이‘힘’에 의한 타협이라고 보는 홉스주의 철학비판과 관련된다.「가위바위보」는 민주주의 제도에서 절차 공정성의 본질적 의미를 다루고,「원숭이두마리」는 분배정의와 응분의 문제를,「아주 긴 뱀」은 호혜성의 원칙,「팔 없는 원숭이」는 형식적 기회 균등과 능력주의 쟁점을 이야기한다.
 
 
2012년 1318북리뷰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