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품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

이성에 눈떠 가는 소년의 심리와 자연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조화를 이룬 수작

청소년문학의 새장을 여는 '제1회 사계절문학상' 우수상을 수상작.
문단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네티즌 사이에서는 꽤 인기 있는 작가 이재민의 청소년소설이다. 여름이면 반지하 방에 빗물이 스며들어 늘 ‘젖어 있는 방’에 살면서도,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 상황에서도 작가는 이 작품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고 한다. 비록 현실은 팍팍하고 고단하지만, 그에겐 중학 시절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은 자전적 소설로, 중학 시절 특이한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다.

제1회 사계절문학상 심사 당시 심사위원(현기영, 오정희, 황광수)들은 한결같이 이 작품의 뛰어난 서정성에 주목했다. 자연 묘사와 소년의 심리 묘사가 조화를 이루어 순수한 세계를 그려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 배경이 70년대 중반이라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과연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사이버 공간에 깊이 빠져 있고 자연에 대해 잘 모르는 세대들에게 오히려 자연에 맞닿아 있는 삶의 아름다움과 신선한 감각을 일깨워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맺었다. 작가 역시 수상 소감에서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순수한 자연과 인간의 세계를 보여 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첫사랑은 누구나 처음 겪어 보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 만큼 강렬하고 깊이 각인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은수 또한 옆집 사는 여자 친구 기숙이와는 다른 감정에 대해 무척 당혹스러워한다. 새삼스레 외모가 신경 쓰이고 누나의 은밀한 부분을 엿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나이다움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사슴벌레를 두고 무모한 게임을 시도하기도 한다. 누나의 애인으로 인해 처음 느껴 보는 질투심, 수치심, 누나의 살갗만 살짝 스쳐도 두근거리는 심장……. 어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은수의 첫사랑은 너무나 투명하고 풋익어서 빙그레 웃고 지나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학교 선생님이나 이웃 오빠나 누나를 마음에 두고 가슴앓이를 해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때만큼 진지하고 심각했던 적도 없을 것이다.

은수 역시 성장의 길목에서 통과제의를 거치듯 첫사랑을 통해 어른으로 한 걸음 성장해 간다. 자연과 생명과 참사랑에 대한 깨달음. 은수는 이제 세상을 더욱 자유롭고 폭넓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은 이성에 눈떠 가는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해 사이버 공간과 소비 문화에 길들어져 있는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인간과 자연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일깨워 줄 것이다.


 

작품 내용

중학교 1학년생인 은수는 가려움증으로 애를 먹다가 미송리에 있는 약수가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엄마와 함께 보름간 약수터에 머물게 된다.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꽤 오랜 동안 산길을 타고 가야 하는 미송리 약수터는 각양각색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병을 고치러 오거나 일반인들이 피서를 오는 일종의 휴양지 같은 곳이다. 약수터 주인 또한 폐병 때문에 이곳에 왔다가 병을 고친 뒤 아예 눌러앉은 사람이다. 은수네는 돈이 없어 방에 들지 못하고 마당에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잠을 자야 했다. 은수가 이곳에 온 지 사흘 만에 서울서 웬 어여쁜 누나가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합류한다. 폐가 안 좋아 얼굴이 창백한 그 누나는 달맞이꽃같이 청순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런 누나를 은수는 단박에 좋아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수는 여지껏 느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은수보다 아홉 살 많은 그 누나 역시 마당 멍석에서 지내게 되는데, 잠자리도 은수 바로 옆이다. 은수는 누나와 함께 나무를 하러 가기도 하고 목욕하는 것도 지켜 주며 정을 쌓아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애인을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은수에게 남모르는 고민과 갈등이 시작된다. 게다가 역시 서울서 온 동갑내기 기영이한테 누나를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해하기도 한다. 은수가 누나에게 자신의 남자다운 면을 보여 주고 기영이를 제압하기 위해 떠올린 방법은 사슴벌레 집게 사이에 손가락 넣기 시합이다. 은수는 사슴벌레를 유난히 좋아한다.


“나는 사슴벌레처럼 강한 사나이가 될 거야.”
“사슴벌레는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아. 하지만 얕잡아 보게끔 하지도 않지.”

이것이 은수가 사슴벌레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이다. 은수는 시골에서 자라 나무타기며 열매 따먹기며 온갖 곤충과 꽃들에 대해 잘 알지만, 특별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인식이 전혀 없다. 자연은 그저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대상일 뿐이다. 순진하고 때로는 인정도 많지만 산비둘기에게 돌을 던지거나 매미의 꽁무니에 강아지풀을 박거나 사슴벌레를 잡아 나무 구멍에 숨겨 놓기도 하는 등 자연에 대해 무의식적이고 무반성적이다.


약수터에 머무는 사람들과 캠프파이어를 하고 산책길에 나선 날 밤에도 사슴벌레를 잡는 은수에게 누나는 사슴벌레를 놓아주면 카세트녹음기를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동네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자그맣고 귀한 카세트를 준다는 말에 은수는 귀가 솔깃해진다. 언제나 말없이 웃으며 은수의 말을 듣기만 하던 누나가 그날은 밤늦도록 은수에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 애인이 어쩌면 영영 자기를 찾지 않을 거라는 것, 사랑이란 소유하거나 구속하지 않는 거라는 자기 다짐……. 하지만 이튿날부터 누나가 각혈을 하고 병세가 심해지자 은수는 카세트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잣이 폐병에 좋다는 말을 엿듣고 몰래 잣을 따고 까느라 시간이 금세 흘러가 버린다. 누나가 떠나는 날, 은수는 누나와 함께 밤새 깐 잣을 보따리째 건넨다. 누나가 떠난 뒤 은수는 여느 날처럼 점심 해 먹을 나무를 하러 갔다가 누나와 자기만 아는 비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카세트를 발견한다. 각혈을 하는 와중에도 누나가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은수는 전에 몰래 떡갈나무 구멍 속에 숨겨 두었던 사슴벌레가 생각나 찔끔한다. 결국 사슴벌레를 놓아줌으로써 은수는 이제껏 자신을 괴롭혀 오던, 누나에 대한 소유욕에서 해방된다.
‘순희 누나, 내년 여름에 꼭 만나요. 그 쪼다랑 같이 와도 좋아요. 건강하기만 하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