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 : 유영은

제4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대상
유영은
 


사랑하는 내 아들, 바르톨로메에게.

피곤에 지쳐 곤히 잠이 들어 버린 너의 얼굴을 보며 어렵게 펜을 든다. 하루 종일 도방에서 일을 하는 것이 꽤나 고된 모양인지 너는 요즘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곯아떨어져 버리더구나. 이렇게 얼굴과 손과 옷에 물감을 마구 묻힌 채로 말이다. 그런 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마는, 잠든 너의 입가에 맴도는 미소를 보면 네가 지금 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나는, 명색이 네 아버지란 나란 사람은, 차마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너와 잠깐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힘들어 온 가족이 모여 앉은 밥상에서도 그릇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는 나란다. 이사벨이 어젯밤에 왜 너에게 다정히 굴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 꼴만 하고 있냐고 나를 나무라더구나. 낳아 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모는 평생의 은인이라는 말이 있지. 하지만 나는 너의 은인이기는커녕, 네 앞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구나.

바르톨로메야, 힘을 내야 한다. 아무리 지치고 괴로워도 자꾸자꾸 힘을 내야 한다. 네 아비인 나도 불구인 너를 대하는 것이 역겨워 그토록 모질게 굴지 않았더냐. 세상은 나보다 더 혹독한 시선으로 너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몸이 기형이라는, 너도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그 이유 하나로 잔인한 세상은 너를 자꾸 거부하려고만 할 것이다. 마르가리타 공주님이 너를 한낱 자신의 노리개에 불과한 인간개 취급을 한 것보다 더한 모욕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내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르겠구나. 희망은 주지 못할망정 겁만 준다고 말이다. 하지만 네게 희망만을 말하기엔 이 세상이 너무나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비뚤어져 있단다. 사람들은 잘못된 세상 속에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지. 우리는 눈에 비쳐지는 형상에만 집착을 해. 그 속에 감춰진 진정한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너와 같은 소수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거다. 사실 그들은 우리의 멸시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았어. 우리를 조금도 해하는 바가 없지. 단지 겉모습이 우리와 다르다는 그 유치한 이유 하나로 우리는 그들에게 위세를 부리고 있는 거다. 멀쩡한 사지가 자랑이라도 되는 듯.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절대 아닌, 우리의 몸뚱이가 무슨 자랑거리란 말이더냐. 신체 불구자들도 우리와 동일한 존재이며 우리 못지않게 훌륭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을 나는 너를 보고 깨달았단다. 물론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을 널 거친 자갈밭 위에 세워 두었지만 말이다.

오늘 나는 일을 마치고 그 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털어 널 위해 고급 물감과 붓, 캔버스를 사 왔단다. 사실 널 위해서라기보다, 자랑스러운 우리 아들의 멋진 그림을 집에 걸어 두고 자꾸 보고 싶은 이 못난 아비의 욕심에서 나온 행동이었지. 

바르톨로메야, 내 아들아. 너의 맑은 눈으로, 너의 작은 몸뚱이로 날 둘러싸고 있던 거부감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 버렸듯,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열어 보도록 하려무나. 나는 왠지 그런 기분이 드는구나, 네가 제2의 엘 프리모가 될 것이라는. 너는 글씨가 아닌 그림으로 너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지. 모두가 말하듯, 지금은 네가 화방에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도 엄청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불가능을 뛰어넘어 화가의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구나. 물론 화가가 되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겠지. 그렇지만 시련과 역경에 용감히 맞서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세상은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단다. 세상을 바로 이끄는 한 사람이 되어라, 내 사랑하는 바르톨로메야.

움츠리고 있던 모습을 벗어나 비상하는 새가 되어라. 존중받는 인간으로, 창조적인 인간으로, 너의 빛을 발해 보아라. 너는 절대 개가 아니다. 너는 인간이다. 너는, 바르톨로메 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내 아들이란다. 
 
_ 아름답게 부서지는 달빛 아래서, 새근새근 잠이 든 네 옆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