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아

2011년 경악스러웠던 동일본 대지진. 그 때 쓰나미가 일던 모습을 뉴스 브리핑에서 본적이 있었다. 지진이 저렇게 무섭구나를 절실하게 느꼈고 쓰나미의 공포를 알게되었다. 물론 눈앞에서 거대한 물을 바라본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지가 벌써 8년이 지났다. 내가 매우 둔감한 탓에 우리나라에서도 요즘들어 자주 일고 있는 지진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집 거실에서도 아버지는 느꼈다는데.. 그저 나는 내가 둔감하다기 보다 우리집은 진앙지에서 매우 멀어 못느낄뿐이라고만 아직 그렇게 믿고싶다.

​아포리아 : 그리스어로 길이 없는 것, 통로가 없는 것이라는 의미


동일본 대지진 후 24년. 그러니까 2035년 다시 거대한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다. 그 재앙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살려내기 위한 이야기이다. 사실 요즘 일본이 좀 많이 밉다. 물론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시켰다는 것보다는 항시 그들이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옛 실수를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에 무척이나 분노하는 편이다. 게다가 그 시절에 살았음직한 사람들이 '실제로 그러지 않았을것이다'라고 내뱉는 망언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때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 강제징용자였던 할아버지들이 아직도 생존해 계신데 어찌 그것을 부정하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진실이 없어지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 사심을 감출수가 없다. 자연앞에 모든 사람들은 작은 존재이지만 내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동안은 아마도 다른이들과 마찬가지로 대할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국토에 지리상 어쩔수 없이 자주 일어나는 화산폭발, 지진이라는 공포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밖으로 눈을 돌렸다고 들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 공포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가족을 버리고 피신을 해야하는 심정을, 불도 들어오지 않는 밤, 곳곳에 SOS를 써놓고 구조를 기다려야만 하는 그런 심정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 이야기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참 대단한것같다. 이야기 속에서도 나오지만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곳곳에 대피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당분간 지낼수 있는 물품들을 구비해 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재난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예전에 뉴스를 통해 접해서 보았었다. 이는 참 대단한 것 같다.

엄마와 둘이서 살던 이치야. 등교를 거부하고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날은 엄마가 학교에 상담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진이 발생했다. 엄마가 쓰러진 건물에 갇혔다. 곧이어 닥친 쓰나미로 인해 지나던 아저씨가 자신을 억지로 차에 태워 도망쳤다. 이치야는 분노한다. 이 사람때문에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엄마를 죽였다....이 사람이.. 내가 엄마를 죽였다..... 이치야를 구해준 가타기리씨도 왜 이치야의 엄마를 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곧이어 닥치는 쓰나미 때문에 그대로 두면 그들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치야를 구하기 위해서는 엄마를 포기해야 했다. 이치야는 자신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더라고 등교거부만 하지 않았더라도 엄마가 그날 출근만 했더라도 엄마는 죽지 않았을텐데 모든게 자신때문이라는걸 알지만 그것을 인정하는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서히 이치야는 방문을 열고 세상속으로 나오게 된다.

자연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나약하다. 하지만 또 폐허가 된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는 또 강렬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제목의 뜻은 길이 없는것, 혹은 통로가 없는 것이지만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또다른 길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