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스스로 시와 대화할 때

『청소년, 시와 대화하다』는 이른바‘좋은시’들을 모아 놓고 해설한 흔하디흔한 책과는 다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작지 않은 시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 줍니다. 그것은 이 책이 제목 그대로‘대화’라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뜻 가볍게 여기기 쉬운 대화 방식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글쓴이는 책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시를 놓고 읽어도 시의 느낌이나 시어의 의미, 시의 주제에 대한 생각은 모두 같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대화는‘다름’에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 편의 시를 둘러싼 생각들의 다름을 솔직하게 짚어 냅니다. 이‘다름’이 반짝이는 부분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김영랑의「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이야기하며‘하늘’을‘시원함’으로, ‘시의 가슴’을‘시를 읽고 쓰는 소중한 일’로 파악하는 것은 학생들의 대화 방식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힘들었을 귀한 생각입니다. 7차 교육과정 중학교『국어』교과서의 첫 작품으로 소개되었던 김지하의「새봄 9」는 어떤가요? 대개‘조화로운 삶의 아름다움’이라고만 배웠지요? 막연한 이야기라 뭐가 조화로운 삶인지 잘 모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 마련한 학생들의 대화를 보면 다릅니다.“ 단순함과 화려함이 잘 어우러진 봄 풍경에 흥겨운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의 감상을 들어 보면 조화로운 삶의 한 장면이 손에 잡히는 것처럼 떠오릅니다.
 

책 속 두 친구(은유, 명석)의‘시 노트’는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입니다. 별과 달이 서로의 꿈을 닦아 준다는 최영철의「밤에」에 대한 시 노트나 황지우의「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를 청소년기의 성장과 연관 짓는시 노트는 여러분의 맑은 심성으로서만 얻어낼 수 있는 귀한 결정(結晶)입니다. 모방 시 쓰기와 같이 여러분이 해 볼 수 있는 활동을 제시하거나 책 속의 다른 작품과 엮어 읽는 시 노트도 흥미롭습니다. 시 노트에는 김용택의「이 바쁜 때 웬 설사」라는 재미있는 작품에 대해 그보다 더 재미있는 명석이의 모방 시도 있답니다.
 
종소리는 울리지요
과목은 수학이지요
과제는 깜박 잊고 안 가져왔지요
설사는 났지요
화장실 칸 마다마다 사람 있지요
여학생 화장실은 비었지요.
 
또, 이 책의 매력으로 빠뜨릴 수 없는 점은 작품 선정의 새로움입니다. 전체 60편의 작품 가운데 20편이 21세기에 발표된 작품인 것은 놀랍습니다. 시인의 명성이나 문학사적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글쓴이 자신의‘시 보는 눈’에 대한 자신감이 보입니다. 덕분에 글쓴이가 새로 발굴한 뛰어난 작품들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 2009년에 출판된 오은의「글러브」를 1년 뒤에 출간된 책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 책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요. 이 책을 읽으며 여러분 스스로 채워 나가야 할 부분들을 몇 가지 말해 보겠습니다. 이 책은‘언어 감각, 감수성, 상상력’을 작품을 뽑고 읽어 나가는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운‘운율, 심상, 의미’라는 면에서 볼 때 작품에 따라 조금 설명이 덜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참고서도 아니고 시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니까 여러분 스스로 채워 나가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되겠지요. 예를 들어, 「말 1」에서“검정 콩 푸렁 콩”같은 구절은‘ㅇ’받침을 통해 말을 생각하는 시의 화자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잘 보여 줘요. 백석의「수라(修갥)」같은 경우에는 평안도 사투리의 풍성함을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고요.
 
글쓴이는 친절하게도 60편의 작품들을 세 단계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조금씩 수준을 높이며 읽어 가라는 배려겠어요. 하지만 그 분류를 꼭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요. 김소월의「산유화」나 김춘수의「꽃」은 작품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면 3단계 작품이지만, 시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또「산유화」는 단계 구분을 넘어 2단계에 실린 차창룡의「소화」와 연관 지어 패러디 문제, 즉“갈 봄 여름없이”라는 같은 시행이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지 생각해 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이 은유와 명석이라는 두 학생으로 한정되어서 조금 부족해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감수성이 풍부한 은유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명석이는 여러분의 멋진 친구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이들과 함께 여러분 나름대로‘내 친구라면?’또는‘나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면 시가 더 재미있을것입니다.
 
이 책을 보며 여러분 스스로 재미있는 활동들을 만들어 보면 더 즐거운 시 읽기가 될 듯합니다. 은유와 명석이처럼 모방시를 적어 보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과 엮기도 해 보세요. 이제 여러분 스스로 시와 대화할 때입니다. 그것이 이 책이 여러분에게 남겨 주는 가장 큰 여백의 한 페이지입니다. 60편의 시들은 여러분에게 말을 걸고, 여러분의 말을 들어 주는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글 ㆍ 정 학 재 ( 보성여자 중학교 국어교사)